2017년 9월호

영화로 읽는 세상

브렉시트와 세월호라는 해석 프레임

‘덩케르크’와 ‘군함도’

  • 노광우|영화칼럼니스트 nkw88@hotmail.com

    입력2017-08-27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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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여름 제2차 세계대전 시기를 다룬 두 편의 영화가 개봉됐다. 두 영화는 비슷한 시기의 각기 다른 역사적 경험을 역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영화화했다. 7월 중순에 개봉한 ‘덩케르크’는 ‘메멘토’ ‘인셉션’과 ‘인터스텔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들었다.

    놀란 감독은 물리학의 상대성 이론을 적용해서 내러티브를 전개하는 특성을 보여준다. ‘군함도’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짝패’ ‘베를린’ ‘베테랑’ 같은 한국형 액션영화를 주로 만들어온 류승완 감독이 연출했다. 이 두 감독은 각자 추구하는 연출 방향도 다르긴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소재로 처음 전쟁 스펙터클을 담은 시대극을 연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이 두 영화를 비교해봄으로써 두 감독의 개성 차이만큼 두 영화가 생산, 유통되는 시대적 맥락을 살펴볼 수 있다.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는 대개 그 전쟁 자체에 대해 회고하기도 하지만 그 영화가 나오는 시점의 정세에 대한 인식을 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미국 영화를 보면 전쟁 당시와 전쟁이 끝난 직후에는 독일과 일본을 적대시하지만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권과 냉전이 격화된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시기에는 반전 사상을 담긴 하지만 독일 군인과 일본 군인이 전쟁에 동원된 희생양인 것처럼 묘사하는 영화들이 나온다.



    브렉시트에 대한 논평

    ‘덩케르크’가 다루는 철수 작전은 5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 약 일주일간 프랑스 덩케르크 지역에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연합군 33만8682명이 독일군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영국으로 탈출한 ‘다이나모 작전’이다. 영화는 덩케르크 해안에서 해군 구조선을 기다리는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일주일, 그리고 마지막 날에 해군에 의해 징발된 요트를 타고 덩케르크로 영국군을 데리러 가는 민간인들의 하루, 그리고 독일 공군의 공습으로부터 이들을 보호하려고 출격한 영국 공군의 한 시간을 교차 편집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시간에 각기 다른 임무와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영화의 말미에 이들의 시간이 하나로 수렴된다.



    영화에서 덩케르크 해안에 모인 영국군은 배를 타기 위해 잔교 위에 길게 줄을 서있다. 구조선에 부상병을 먼저 태우고 일반 영국군은 자기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프랑스 육군이 덩케르크 시내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독일 육군의 진격을 막고 있는 데 비해, 영국군은 프랑스 군인들을 구조선에 태우려고 하지 않는다. 구조선에 탑승하려는 이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독일 공군의 공습에 시달리고 간신히 탄 배는 독일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해 다시 해안으로 탈출하는 등 우왕좌왕하며 덩케르크 해안을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의 공포에 떤다.

    해군에 징발된 배를 몰고 가는 민간인들은 공간이 좁은 배에 과연 몇 명이나 태울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도버 해협을 건넌다. 이들은 해류를 따라 실려 오는 시체나 파괴된 배의 파편을 보면서 점점 전쟁의 공포를 느낀다. 영국 구조선들을 공격하는 독일 전투기와 폭격기를 요격하는 임무를 맡은 영국 공군 전투기 조종사는 연료계측기가 고장 난 상태에서 무선으로 동료 전투기의 연료량을 듣고 자기 비행기의 남은 연료량을 계산하면서 독일 전투기와 공중전을 치른다. 마침내 연료가 다 떨어진 상태에서 덩케르크 해안의 상공을 활강 비행하면서 독일 전투기를 격추하고 덩케르크 해안에 비상착륙한 후에 독일군의 포로가 된다.

    덩케르크 해안에 갇힌 영국군은 보이지 않는 독일군이 언제 공격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 이들은 자기들의 생존과 안위를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일부는 밀물이 들어오면 물위에 뜰 버려진 배 안으로 들어가는데 이 배는 이미 독일군이 장악한 지역에 위치해 있다. 여기서 영국군은 목숨을 구하려고 영국군 행세를 한 프랑스인의 정체를 알게 되고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낸다.

    영화의 말미에 영국 해군 제독은 모든 영국군을 철수시킨 뒤에 자신은 덩케르크 해안에 남기로 결정한다. 그는 철수하는 영국 육군 장교에게 구축함이 오면 다른 연합군도 구조하겠다고 말한다. 이것은 영화 초반부에 프랑스군의 승선을 거부하는 영국 헌병들 모습과 대비된다. 이렇게 영화에 나타나는 영국인과 비(非)영국인의 구분과 영국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의 한 지역에 고립된 영국인들의 불안감은 최근에 벌어지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에 대한 감독의 논평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세월호’ 프레임

    ‘덩케르크’는 실제 있었던 사건을 사건이 벌어진 시간에 맞게 나열하고 각기 다른 공간에 있는 인물들을 그려냈다. 이에 비해 ‘군함도’는 1945년 2월부터 8월까지 6개월 동안에 벌어지는 일을 압축해놓았고 각기 다른 곳에서 한 장소에 모인 인물들이 같은 시간대에 각기 다른 처지에 놓인 것을 대비시킨다.

    영화는 태평양전쟁 말기 징용으로 일본 나가사키 근처의 하시마 섬(일명 군함도)에 끌려온 각기 다른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들은 대체로 속아서 끌려온 것으로 그려진다. 이들의 이야기는 조선인 형사가 써준 추천장만 믿고 온 경음악단 단장 이강옥(황정민)과 그 딸 소희(김수안), 경성 건달이던 최칠성(소지섭), 위안부로 중국까지 끌려갔다가 다시 군함도 유곽으로 끌려온 말년(이정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여기에 군함도 내의 조선인들이 모시는 지도자로 윤학철(이경영)이라는 명망가가 등장하고 그를 탈출시키기 위해 광복군 특수부대 OSS 요원인 박무영(송중기)이 투입된다.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창작물이기에 기존의 일제강점기를 다룬 한국 영화에 등장하는 전형적 인물군상과 클리셰를 차용한다.

    군함도는 시마자키 소장(김인우)과 야마다 노무계장(김중희)을 정점으로 하고 일본인과 조선인이 각각 구분된 공간에 거주하는 곳으로 그려진다. 파도가 거센 섬 주변은 높은 콘크리트 벽이 세워져 있어서 마치 감옥이나 요새와 같다. 조선인이 석탄을 채굴하는 지하 탄광이나 그들의 거주 공간은 어두운 폐쇄 공간으로 그려진다. 일본인이 생활하는 밝은 상층부 공간과 대비된다. 상상으로 그려진 이런 공간과 민족의 구획은 군함도를 역사적 장소인 동시에 ‘설국열차’나 ‘가타카’ 같은 SF 영화에서 보았음직한 디스토피아적인 이미지로 등장시킨다. 영화는 탄광 채굴 작업 중 벌어지는 각종 사고와 아동노동을 보여주면서 채굴 작업의 위험성과 비인간성을 간간이 부각하지만 그 고통이나 슬픔을 제대로 형상화해내지는 못한다.

    박무영과 이강옥은 윤학철의 비밀을 알게 되고 결국 군함도의 조선인 모두의 탈출을 시도한다. 이는 ‘나가사키 원폭 투하’라는 다가올 대재앙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감옥에서의 탈출인 동시에 재앙으로부터의 도피이기도 하다. 이때부터 영화는 탈출영화인 동시에 재난영화의 코드를 담게 된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서 가장 두드러진 장르는 사실 재난영화였다. 그것은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한 상태에서 재난 상황이 발생할 것에 대한 위기의식과 불안감의 영화적 표출이었다. 2014년 세월호 침몰사건 이후에 이런 재난영화의 코드는 더더욱 확고해졌다.

    ‘군함도’도 그러하다. 탈출 장면에서 석탄 운반선에 연결한 사다리가 무너지자 조선인들이 힘을 합쳐서 그 사다리를 다시 세우거나 콘크리트 장벽에서 바로 바다로 뛰어내리는 장면이 그러하다. 촛불집회를 연상시키는 조선인 집회 장면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생존자들은 원자폭탄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나가사키 쪽을 바라본다. 살아남은 소희의 얼굴을 근접촬영으로 보여주며 영화는 끝난다. 보통 이런 역사적 사실을 다룬 영화는 자막으로 소재와 관련된 사실이나 정보를 제공하기 마련인데 ‘군함도’는 그렇게 처리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세월호라는 현재의 문제에 영향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노광우
    ●   1969년 서울 출생
    ●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박사(영화학)
    ●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 연구원
    ●   논문: ‘Dark side of modernization’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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