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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논단

의문사위의 비전향장기수 민주화운동 인정의 문제점

악법철폐 기여했다고 ‘민주화 월계관’ 씌워줄 수는 없다

  • 글: 김종철 연세대 법대 교수·헌법학 jkim386@yonsei.ac.kr

의문사위의 비전향장기수 민주화운동 인정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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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기 의문사위가 비전향장기수 김용성, 변형만, 손윤규, 최석기, 박융서 등 5명의 의문사에 대해 조사를 개시한 것은 2001년 2월이었다.

의문사위에 따르면, 이들 중 김용성과 변형만은 남파간첩으로 국가보안법위반으로 형을 마쳤으나 사회안전법에 의한 보안감호 중 좌익사범을 담당하던 중앙정보부의 전향공작에 저항하다 강제급식과정에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손윤규는 국방경비법위반으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복역하던 중 계속된 전향공작과 고문에 저항하다 1976년 4월1일 강제급식과정에 사망했다. 나머지 최석기와 박융서는 국가보안법위반으로 복역중 전향공작에 저항하다 폭행으로 사망하거나 자살한 것으로 인정됐다. 제1기 의문사위는 2002년 9월 이들 가운데 김용성, 변형만을 의문사로 인정하고 나머지 3인에 대해서는 진정을 기각했다.

그런데 제2기 의문사위는 2003년 8월 진정인의 추가조사신청을 접수해 10월23일 제1기 의문사위에서 기각된 나머지 비전향자 3인에 대한 조사재개결정을 내렸다. 제2기 의문사위는 총 8개월여의 조사 끝에 2004년 6월24일 제30차 회의에서 손윤규를 의문사한 것으로 인정했으나 최석기와 박융서에 대하여는 진상규명불능결정을 내렸다. 최석기와 박융서의 경우에도 3인의 위원이 인정을 주장하였으나 소수의견에 그쳤다. 하지만 6월28일 제31차 회의에서 최석기, 박융서의 건을 재심의하기로 의결하고 그 이틀 뒤인 6월30일 제32차 회의에서 의문사인정결정을 내려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5인의 비전향장기수는 사상전향공작의 희생자라는 점에서 동일한 지위에 있다. 그러나 제1기 의문사위에서 의문사로 인정한 김용성, 변형만의 경우는 형의 만기복역 후 보안처분대상자의 지위에서 고문으로 사망했다. 반면 이번에 제2기 의문사위에 의해 ‘의문사당한 자’로 인정된 손윤규, 최석기, 박융서 3인은 형 복역중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사망한 이들이다. 형량을 복역했는지 여부에 차이가 있는 것.

이러한 차이는 제1기 의문사위의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 김용성 등 보안처분의 근거가 됐던 사회안전법은 유신체제가 맹위를 떨치던 1975년 7월 반체제인사를 탄압하기 위해 제정된 법으로, 양심의 자유, 무죄추정의 원칙, 적법절차의 원칙을 위반한 위헌성이 문제가 돼 1989년 보안관찰법으로 대체됐다.



한편 민주화보상위는 의문사위의 결정으로 사회적 논란이 증폭된 2004년 7월6일, 김용성과 변형만에 대한 명예회복 및 보상신청을 ‘비전향자의 악법개폐운동은 민주화운동 관련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제2기 의문사위의 이번 인정결정이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간첩이나 빨치산 전력자가 민주화유공자로 인정됐다는 식의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냉전이 종식되고 남북간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는 하지만 ‘레드 콤플렉스’에 바탕을 둔 색깔논쟁이 여전히 정치사회적 위력을 발휘하는 우리 현실에서 그러한 오해가 합리적 논의를 방해한 점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의문사위는 간첩이나 빨치산 활동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 바 없다는 사실이다. 이번 의문사위의 결정은 간첩이나 빨치산 활동을 이유로 수감된 ‘비전향장기수의 악법개폐운동’이 민주화운동과 관련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의문사위 vs 민주화보상위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실마리는 의문사위가 결정의 근거로 삼은 ‘특별법이 정한 민주화운동의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관련법은 민주화운동의 개념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해 민주헌정질서의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 신장한 활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제2기 의문사위는 이 규정을 문리적(文理的)으로 해석했다. 즉 비전향장기수가 사상전향공작이나 보안감호제도라는 권위주의 통치에 항거하다 고문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사망함으로써 사상전향제도를 폐지하거나 보안감호제도를 개선하는 계기를 마련해 일반 국민의 양심의 자유와 신체의 자유 등을 회복 신장시켰기 때문에 민주화운동과의 ‘관련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 견해는 민주화운동 관련성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해서는 안 되며 권위주의 체제의 부당한 과거를 청산하는 정신에 맞게 민주화운동 주도자뿐만 아니라 그 ‘희생자’까지 포함해 넓게 해석해야 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따라서 행위자의 사상이나 전력은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반사회사범이던 삼청교육대원이나 사상범이던 비전향자는 민주화 ‘운동가’일 수는 없지만 그 ‘관련자’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화보상위는 관련 법규정을 목적론적으로 해석해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엄격하게 해석하려 한다. 이는 권위주의체제에 의해 억압을 당하고 그에 단순히 저항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민주화운동과의 관련성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이다. 즉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바탕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그 전제가 되기 때문에 비전향자가 수감중에 반민주악법의 폐지를 주장했다는 사실만으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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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종철 연세대 법대 교수·헌법학 jkim386@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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