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호

‘교통지옥’에 빠진 서울, 어떻게 살려야 하나

신호등 없애고 지하보도 만들고 중앙차선제 폐지하라

  • 글: 최덕규 변리사 dkchoi20@hotmail.com

    입력2004-07-28 17: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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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지옥’에 빠진 서울, 어떻게 살려야 하나
    지난 7월1일 건국 이래 최초로 서울의 대중교통체계가 전면 개편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도로는 마비되었고 혼란은 가중되었다. 두세 번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승객들은 지쳤고, 작동하지 않는 새 교통카드단말기는 짜증을 넘어 울분을 가져왔다. 수십 대의 버스가 기차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 있는 버스전용 중앙차로는 심장이 멎을 듯한 답답함과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성난 민심(民心)은 서울시장을 상대로 집단소송과 국민소환 운동에 나섰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시장 퇴진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서울시장은 새로운 대중교통체계 시행 나흘 만에 백기를 들었다. 7월4일 이명박 시장은 자신이 추진한 정책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성명을 냈다. 이 시장은 또한 지하철 정기권을 도입하고 강남대로 중앙차로를 운행하는 버스 15개 노선을 가로변 차로로 옮기겠다는 개선대책을 긴급 발표했다.

    그럼에도 민심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더욱 편해질 것이라던 버스는 여전히 불편하다.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을 뿐더러 요금은 요금대로 올랐다. 또 대로 한가운데 설치된 버스정류장을 조심스럽게 오가야 한다. 차는 전보다 더 밀리고 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해 있기 일쑤다. 사회 일각에서는 교통체계 개편 이전으로 원상복구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번 대중교통 체계개편에 4000여억원을 쏟아 부은 서울시로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원상복구는 생각만해도 끔찍하고 그대로 밀고 나가자니 노도(怒濤) 같은 원성이 그칠 것 같지 않다. 가히 진퇴양난의 국면이다.



    예고된 실패

    이번에 서울시가 추진한 교통체계 개편은 버스의 간지선(幹支線)제, 중앙차선제, 지하철 환승을 위한 교통카드시스템이 골자다. 버스의 간지선제와 중앙차선제는 하드웨어적인 문제이고 교통카드시스템은 소프트웨어적인 문제라 할 수 있는데, 서울시는 이중 어느 하나도 완벽하게 준비하지 못했다.

    서울은 이번 교통체계 개편 이전에도 평균시속 20km 미만의 매우 심각한 교통체증을 앓아왔다. ‘교통지옥’을 방불케 하는 체증으로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으며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천문학적 수치에 다다랐다. 이러한 상황을 해소하고자 추진한 정책이 바로 간지선제와 중앙차선제이다.

    그러나 이 정책은 실로 무모한 짓이었다. 우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상식을 벗어났고 기본적인 검토나 연구도 턱없이 부족했다. 한 나라의 수도가 건국 이래 최초로 추진한 정책이라고 하기에는 어이가 없을 정도다. 필자는 서울시의 이번 대중교통 체계개편은 체증으로 불타고 있는 ‘집’에 간지선제와 중앙차선제라는 ‘기름’을 부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필자가 운영하는 ‘한국도로교통사이버연구소(www.uridoro.com)’는 지난 6월12일 홈페이지를 통해 버스중앙차선제가 실시되면 교통이 마비될 것으로 예측하고 그 구체적인 이유 3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첫째 중앙차선제는 도로의 사통팔달 기능을 가로막아 효율을 떨어뜨릴 것이고, 둘째 강남대로는 버스 통행량이 많기 때문에 편도 1개 차선만으로는 부족하며, 셋째 중앙차선제가 시행되면 U턴이나 좌회전이 제한되어 결국 체증을 심화시킬 것이다. 이러한 예측은 7월1일 이후 현실로 드러났다.

    결국 수많은 관계 공무원, 전문가 및 연구소가 동원돼 마련한 서울시의 교통정책이 개인이 운영하는 사이버연구소의 검토 수준에도 못 미친 셈이 됐다. 필자는 중앙차선제가 ‘철부지의 불장난’이라면 간지선제는 ‘욕망이 눈앞을 가린 도박’이라고 생각한다. 간지선제가 성공할 수 없는 요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서울시는 기존 시내버스에 대해 ▲노선이 복잡하고 ▲운행시간을 예측할 수 없고 ▲속도가 느리고 ▲난폭 운전이 횡행하고 ▲버스가 동시에 집중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때문에 버스의 수송률을 높이는 것을 정책의 목표로 삼았다. 그럼으로써 시민들이 승용차를 집에 두고 다니도록 하겠다는 야심만만한 계획이었다.

    7월1일 이전 서울 시내를 운행하는 승용차의 수송분담률은 28%에 불과했다. 그에 비해 도로점유율은 90%나 되었다. 중앙차선제와 간지선제는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다. 즉 버스의 수송분담률을 높이고 승용차의 도로점유율을 낮추려는 정책이었던 것이다.

    서울시는 이번 교통체계 개편에서 시내버스를 광역버스(R), 간선버스(B), 지선버스(G), 순환버스(Y)로 구분했다. 이중 광역버스는 기존 버스체계에서 크게 변경되지 않았다. 순환버스도 마을버스가 다소 확대된 개념이다. 문제는 수십 년간 운행해온 시내버스를 둘로 나누어 그 노선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은 간선버스와 지선버스이다.

    서울시는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기에 앞서 버스가 제 구실을 못하는 원인을 세밀하게 살폈어야 했다. 서울에서는 왜 버스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할까? 서울 시민들은 왜 버스를 많이 이용하지 않을까?

    그 원인은 서울이란 도시가 갖는 구조적인 문제에 있다. 서울은 기본적으로 도시계획에서, 그리고 지하철시스템에서 실패한 도시이다. 이러한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아니 살펴보지도 않고 버스시스템만 손을 대서는 나아질 것이 별로 없다.

    버스시스템에 간지선제를 도입하고 동시에 중앙차선제를 실시한다고 해서 갑자기 버스 주행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판단했다면 실로 큰 착각이다.

    중앙차선제를 확대 실시한다 해도 전체 도로에 비하면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간지선제는 오히려 환승 횟수만 늘릴 뿐이다.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는 간선버스에서 내려서 지선버스로 갈아타야 하는데 승객들은 갈아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조금 느려도 한번에 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교통체계를 개편하면서 이러한 기본상식을 무시했다.

    서울시는 이번 개편에서 ‘버스의 고급화’를 내세웠지만 이것도 현재로서는 실현되기 어려워 보인다. 현재 운행중인 버스는 타고 내리기에 불편한 구조인데, 그런 버스를 교체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고급화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타고 내리기가 불편한 버스를 두세 번 갈아타게 한 것은 한마디로 ‘개악’이다. 버스의 수송률은 종전보다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는 시내 도로의 평균속도를 높이는 방법을 먼저 강구했어야 했다. 시내 주행속도가 적어도 시속 40km를 유지하도록 해놓은 다음 버스 노선문제를 해결했어야 했다. 시내 주행속도가 40km 수준을 유지한다면 서울시의 교통문제는 그렇게 심각한 것이 못된다.

    이렇게 차량속도를 향상시킨 다음 잘못된 버스노선을 하나씩 개선하고, 버스정류장을 정비해 안내표지판을 바로잡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아울러 버스의 고급화를 실현하고, 버스운전사 친절교육도 하고, 요금체계도 천천히 개편했어야 했다.

    세상일에는 송두리째 바꿔도 되는 일과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수십년간 운행해왔고, 다소 불편하더라도 시민들의 몸에 밴 버스체계는 하루아침에 그렇게 송두리째 바꿔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과장된 중앙차선제 효과

    지금으로부터 4∼5년 전 천호대로의 약 5km 구간에 서울시 최초로 중앙차선제가 도입됐다. 그리고 지난 7월1일부터 강남대로, 미아도봉로, 수색성산로 3곳에서 중앙차선제가 새로이 실시됐다. 앞으로 시흥대로, 경인마포로, 망우왕산로, 통일의주로에서도 중앙차선제가 시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중앙차선제를 실시하고 있는 천호대로 5km 구간의 버스 평균 주행속도(35km/h)는 중앙차선제 실시 전 속도(20km/h 미만)에 비해 92% 상승했다. 일반차량의 주행속도는 중앙차선제 실시 후 21km로 종전보다 약 15% 상승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중앙차선제는 아주 유익한 제도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천호대로는 중앙차선을 제외하고도 편도 4차선에 달하는 넓은 도로이다. 반면 미아도봉로는 중앙차선을 제외하면 편도 2차선밖에 되지 않는 협소한 도로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아도봉로의 교통량이 천호대로보다 적은 것도 아니다. 때문에 중앙차선제를 실시하면 미아도봉로에서 일반 차량의 정체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사실 도로가 넓은 천호대로에서는 중앙차선제를 실시하지 않더라도 교통체증이 심하지 않다. 중앙차선제 실시로 버스 주행속도가 92% 상승했다는 서울시 주장은 과장된 것이다. 그리고 5km 구간에서 속도가 빨라졌다 해도 이 구간이 끝나면 다시 막히기 때문에 속도 상승은 큰 의미가 없다.

    한편 강남대로 구간은 중앙차선을 제외하고 편도 4차선이기 때문에 천호대로 구간과 여건이 동일하다. 그런데도 이 구간에서는 중앙차선제 도입 후 버스 주행속도가 별로 빨라지지 않았고 일반차량은 오히려 종전보다 더 밀리고 있다. 왜 그럴까? 강남대로가 천호대로에 비해 전체 교통량이나 버스 통행량이 훨씬 많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러한 구간별 특성을 파악하지 못했거나 무시한 채 중앙차선제를 실시한 것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60여 개 도시가 중앙차선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앞으로 47개 도시가 중앙차선제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되는 것은, 외국의 도시와 서울을 단순 비교할 수 없다는 점이다. 도로사정과 교통량을 비롯한 여러 가지 여건이 도시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도로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사통팔달이다. 사통팔달이란 어느 방향이든 가고자 하는 곳까지 막힘 없이 갈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클로버형 입체교차로(88자 교차로)가 그 예이다. 그러나 중앙차선제에서는 U턴이 금지되고 좌회전이 제한된다. 그만큼 도로의 효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 경우 교통체증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중앙차선은 최소한 2~4차선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중앙차선제는 왕복 6∼8차선 이상의 광활한 도로에서만 효율적이다. 서울이 여타 도시에 비해 광활한 도로가 많다지만 시 전역의 도로가 모두 넓은 형편은 아니다. 다시 말해 서울시의 중앙차선제는 제한적이고 국부적일 수밖에 없다. 서울시 계획대로 중앙차선 공사가 완료된다 하더라도 중앙차선 도입 도로는 서울시 전체 도로의 5%를 넘지 못할 것이다.

    ‘교통지옥’에 빠진 서울, 어떻게 살려야 하나

    미국 애틀란타 시내를 관통하는 고속도로. 사통팔달 도로의 이상적 형태다.

    중앙차선제에서는 버스정류장 접근이 불편하고 교통사고 위험성도 커진다. 또 버스통행량이 많은 구간에서는 정체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교통체계 개편 첫날인 7월1일 강남대로에서는 ‘버스기차’ 현상이 일어났다. 이번 서울시의 버스체계 전면개편은 탁상행정의 표본이라 할 수 있겠다.

    중앙차선제에서 좌회전이 허용된다 해도 일반 네거리에서보다 효율이 떨어질 것은 뻔한 일이다. 일반차량의 경우 왼쪽에 버스가 있기 때문에 시야가 가려지고 2차선에서 좌회전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회전반경이 커진다. 따라서 중앙차선제에서 좌회전 차량의 체증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서울시는 중앙차선을 ‘중앙 버스전용차로’라고 표현한다. 중앙차선에서는 버스만 다닐 수 있고 다른 차량들은 다녀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물론 버스가 한번에 많은 승객을 실어 나르기 때문에 그만한 특혜를 준 것이겠지만, 어느 경우건 ‘전용’이란 낱말은 유쾌한 기분을 주진 않는다.

    대통령 전용비행기, 회장 전용엘리베이터, 변호사 전용출입문, 여성 전용주차장 등등. 이러한 ‘전용’ 없이 잘 굴러가는 사회가 정말 좋은 사회가 아닐까. ‘전용’이 없는 사회는 보편적 평등이 실천되어 특혜 시비도 적고 위화감도 적은 사회이다. 버스가 특혜를 받는 만큼 상대적으로 일반차량들은 제한을 받게 된다. ‘전용’ 없이 버스도 일반차량도 잘 달릴 수 있는 도로가 좋은 도로 아니겠는가.

    잘못 성장한 ‘젊은 도시’

    교통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편 실시한 7월1일 이전이나 이후나 서울은 변함없는 ‘교통지옥’의 도시이다. 서울이 교통지옥으로 변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도시계획 자체가 잘못되었고, 둘째 대중교통 정책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은 ‘젊은 도시’이다. 600년 수도(首都)의 역사를 지녔지만 강북 도심지역을 제외한 서울의 나머지 지역은 불과 30년 전인 1970년대부터 개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게임을 치르면서 교통체증이 심각해지기 시작해 현재는 교통지옥의 도시가 됐다. 30세밖에 되지 않은 청년기의 도시가 이렇게 교통지옥의 나락에 빠져든 경우는 전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보다 훨씬 오래 전에 건설됐고 서울에 버금가는 인구를 가진 외국 도시도 교통지옥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서울만 잘못 계획된 도시는 아니다. 불과 10여년 전에 건설된 4대 신도시(분당, 일산, 평촌, 산본)의 사정도 서울에 비해 별반 나을 게 없다. 이들 신도시에서도 교통체증은 어김없이 일어나고 있다.

    서울이 교통지옥으로 변한 두 번째 이유는 대중교통수단에 대한 정책 실패에 있다. 세계적인 대도시들에서 대중교통수단으로 가장 각광받는 것은 지하철이다. 그러나 서울은 지하철 정책에서 실패했다. 지하철 정책이 성공했다고 보려면 수송률이 최소 40%를 넘어서야 한다. 하지만 서울의 지하철 수송률은 36.5%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외국도시들에 비해 지하철이 부족한 형편도 아니다. 서울에는 현재 지하철이 9호선까지 건설되어 있다.

    서울 지하철의 수송률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잘못 설계됐기 때문이다. 서울 지하철은 타기 불편하다. 갈아타는 경우에는 더욱 불편하다. 그래서 시민들이 지하철을 외면한다.

    더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잘못 건설된 지하철에 대한 개선 방안이 없다는 점이다. 이미 건설한 지하철을 뜯어고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번의 잘못된 설계로 인해 우리 세대와 후손들이 엄청난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지하철 다음으로 대표적인 대중교통수단은 버스. 그런데 서울은 도시계획 자체가 잘못됐기 때문에 버스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도로가 잘못 닦여 있는 까닭에 버스의 주행속도도 크게 떨어진다.

    그렇다면 서울의 교통난을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이번 대대적인 교통체계 개편에도 실익이 없었던 것처럼 서울은 평생 무시무시한 교통체증에 시달리며 살아야만 하는 도시인가. 그렇지 않다. 서울의 교통난을 해결할 방법은 분명히 있다.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하기에 앞서 서울에 건설된 도로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서울시의 도로는 다른 외국도시의 도로와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물론 서울시 도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도로 전체가 그렇다.

    첫째, 우리나라 도로는 매우 넓다. 왕복 4차선을 ‘잡아먹는’ 중앙차선제를 실시하고도 편도 4차선이 남을 정도다. 이렇게 넓은 도로가 서울 여기저기에 건설되어 있다. 외국도시 중 이처럼 넓은 도로를 가진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상한 점은 길이 이렇게 넓은 데도 차가 달리지 못하고 곳곳에서 밀린다는 것이다. 도로가 제대로 건설되지 않았다는 점을 방증하는 셈이다.

    둘째, 신호등이 없는 도로가 없다. 아무리 길을 넓게 만들어놓아도 수많은 신호등 때문에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신호등이 많이 설치된 왕복 8차선 도로는 교통 효율 면에서 신호등이 전혀 없는 왕복 2차선 도로와 같다. 물론 서울에도 올림픽대로, 강변북로, 동부간선로, 서부간선로, 북부간선로 등 신호등이 없는 도로가 있다. 그러나 이 도로들은 사통팔달 기능이 없기 때문에 매일 체증이 발생한다. 즉, 다른 도로와의 접속이 엉망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도로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수립한 정책이 성공할 리 없다. 승용차의 주행속도를 더 떨어뜨려 시민들이 버스를 타도록 하겠다는 이명박 시장의 발상은 근본부터 잘못됐다.

    먼저 승용차가 40∼50km로 달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버스가 존중되어야 하는 것처럼 승용차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 보행자 존중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서울의 만성적인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도로의 특성을 파악한 후 이를 역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네거리 통행방법 개선해야

    이제 서울시 교통난을 해소할 구체적인 방법을 살펴보자.

    첫째, 주요 간선도로에 있는 신호등을 거의 모두 없애야 한다. 그리고 보행자를 위한 지하보도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현재 서울에 건설되어 있는, 40∼60개의 계단으로 이뤄진 것과는 다른 지하보도여야 한다. 보행자는 땅굴 같은 지하보도를 좋아하지 않는다. 15계단 미만의 얕은, 그래서 보행자나 휠체어가 아무런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지하보도라야 효율적이다. 대만이나 중국 베이징에는 15계단 미만의 지하보도가 많이 건설되어 있다.

    예산 걱정을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이번에 중앙차선제와 간지선제에 들어간 4000억원 정도의 예산이면 충분할 것이다.

    신호등을 제거하고 대신 지하보도 400개를 건설한다면 보행자는 콧노래를 부르며 서울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고, 도로 효율은 현재의 25%에서 50%로 상승할 것이다. 이는 서울시 도로가 2배로 늘어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이 정도면 서울의 교통체증이 시원하게 해소되지 않겠는가.

    둘째, 네거리의 통행방법을 개선해야 한다. 교차로에서 U턴과 좌회전을 활성화하면 각 방향에서 도로 통행률을 50%까지 상승시킬 수 있다(필자는 이 방법을 개발해 국제특허를 출원했다. 자세한 내용은 ‘길이 제대로 돼야 나라가 산다’(세창미디어, 2002) 참조-편집자). 도로의 폭이 넓기 때문에 교차로에서 U턴을 활성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교통량이 많은 교차로에는 지하차도나 고가차도를 놓아야 한다.

    셋째, 간선도로가 아닌 편도 2차선 이하의 도로에서는 비보호 좌회전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비보호 좌회전은 교통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일본 오사카나 대만에서는 좌회전 신호 없이도 차량이 원활하게 좌회전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원만하게 시행되는 비보호 좌회전이 우리나라에서 시행되지 못하는 까닭은 도로가 너무 넓기 때문이다. 편도 2차선 이하의 길에서는 비보호 좌회전이 비교적 안전하지만 편도 3차선 이상의 넓은 길에서는 매우 위험하다.

    정부·전문가 인식전환 필요

    필자는 이상의 방법을 시행하면서 새로 만든 3개 지역의 중앙차선제를 폐지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간지선제는 당분간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원상 복구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원상복구보다는 앞서 제안한 방법을 통해 교통체증을 제거한 다음에 버스노선을 하나씩 재정비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때에 이르러서는 간선버스와 지선버스를 통합해야 한다.



    7월1일 전면 실시된 서울시의 새 교통체계가 빚은 일대 혼란을 계기로 서울의 교통난과 교통체제의 문제점, 그 해결책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교통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와 관계 공무원, 그리고 관계 전문가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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