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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애드리브의 達人, MC 김제동

“내 유머의 콘텐츠는 숙성시켜 내 것으로 만든 것”

  • 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애드리브의 達人, MC 김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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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도 유능한 작가를 몇 명 붙이면 콘텐츠가 더 풍부해지지 않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적어준 이야기로는 내가 경험하거나 생각해낸 것만큼 표현할 자신이 없습니다. 외워서 하는 것보다는 안에서 숙성시켜 내 것으로 만들어야 자연스럽습니다. 집에 있을 때는 텔레비전 보고 라디오 듣고 신문과 책을 읽죠. 그도 저도 아니면 술 먹으며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요. 소형녹음기를 가지고 다니며 그때그때 떠오르는 것들을 녹음해둡니다.

‘야심만만’은 여덟 사람이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이죠. 감정을 솔직하게 얘기하려고 노력합니다. 잘 정제돼 있거나 미리 만들어놓은 대화는 아무래도 인위적인 냄새가 나게 마련입니다. 때로는 군더더기 하나 없이 매끄럽게 깎아놓은 목각인형보다는 아이들이 그냥 손으로 주물러놓은 찰흙인형이 더 감동을 주지요.”

김제동은 대본에 없는 애드리브에 강하다는 평을 듣는다.

-어록을 출판하자고 제의하는 출판사가 여럿이라지요.



“‘김제동 어록’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해서 그게 내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왕릉은 세월이 흐르고 나면 왕의 것이 아니고 왕을 만들어준 백성의 유산이 됩니다. 김제동 어록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제동닷넷(kimjedong.net)에서 팬들이 만들어 올려놓은 ‘김제동 어록’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한 말을 깔끔하게 정리해놓았더군요. 방송에서 순간적인 감정을 표출하고 나서 정작 나는 잊어버린 것도 있는데…. 상업적으로 이용되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좋습니다. 친구들한테 선물하기 위해 어록을 뽑아 복사해 책으로 만들어 돌리더라도 괜찮습니다. 김제동닷넷과 인터넷 팬카페 회원들이 뜻을 모아 책을 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은 어록을 만든 팬들한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팬카페에서 방송 대사의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습니까.

“대사는 물론이고 활동방향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팬이 들은 이야기나 경험담을 올려놓으면 적당히 가공해서 써먹을 때도 많죠. 좋은 후원자들입니다.”

-팬레터나 선물은 어느 정도나 옵니까.

“팬카페가 생겨선지 편지는 많지 않습니다. 나는 아직 활자를 좋아하는데요. 옷을 선물하는 팬도 있어요. 그래서 홈페이지에 선물 보내지 말라고 글을 올렸어요. 팬들이 대부분 학생이거든요. 돈을 벌어도 내가 더 벌 거 아닙니까. 가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 옷이나 신발을 사서 보내오는 경우도 있는데, 내 선물 사느라 자기 거는 못 샀을 것 아니에요. 그래도 선물을 주는 게 기쁨인데 그걸 막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항의가 나오길래 선물을 하려면 8000원 이내의 책으로 해달라고 그랬습니다.”

-신문 스크랩하며 메모하는 게 취미라면서요.

“신문을 그냥 보면 허투루 읽게 돼서자를 대고 볼펜으로 밑줄을 긋고 그 밑에 내 생각을 적어봅니다. 세상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신문을 다섯 가지 구독합니다. 논설위원 선생님 앞에서 건방진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사설 중에도 공감하는 사설이 있고 내 생각과 다르게 느껴지는 사설이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일기처럼 적어놓습니다. 그렇게 한 게 두꺼운 스크랩북으로 10권이 넘어요. 습관이 돼 하루라도 안 하면 찝찝해져요. 일종의 취미생활이지요.

고속도로 휴게소 남자화장실에 붙어있는 명언도 좋은 게 있으면 메모해놓습니다. 일주일 만에 명언을 교체하는 휴게소도 있고 한달 만에 교체하는 데도 있죠…. 방송에서 자주 써먹었어요.”

-어느 휴게소가 가장 낫던가요.

“단연코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칠곡휴게소죠. 여자화장실엔 어떤 걸 붙여놓았는가 들어가보고 싶을 정도예요. 거기서 읽은 것 중에서 팬들한테 회자되는 어록으로 발전한 게 꽤 있어요.”

잊히지 않는 대학축제 MC의 서러움

그는 1999년 모교인 대구 계명문화대학 축제에서 MC를 하다 윤도현밴드를 처음 만났다. 윤도현밴드 사람들은 시골 MC를 대수롭잖게 보고 무대에서 인터뷰에 잘 응하지 않았다. 공연 도중 한 연주자의 기타줄이 끊어져 갈아끼우는 동안 그가 무대에 올라가 시간을 때웠다. 그 다음부터 윤도현밴드 사람들은 대학축제 MC 중 김제동이 제일 낫다는 말을 했다.

윤도현밴드의 제의로 순회콘서트를 같이하게 됐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30분 동안 청중들의 분위기를 띄우는 바람잡이 역할이었다. 김제동은 바람잡이 대신 ‘사전 MC’라는 말을 좋아한다.

“내가 텔레비전에 출연할 수 있으리라고는 언감생심이었습니다. 사투리 쓰죠, 얼굴 못생겼죠. 윤도현씨가 KBS 2TV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사전 MC를 해달라고 불렀을 때 서울 쪽 대학의 축제를 맡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긴 했습니다. 가방에 달랑 책 4권 들고 서울에 올라왔어요. 홍익대 앞에 있는 여관에서 3개월 정도 묵으며 방송국에 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말수가 별로 없는 리듬 앤드 블루스(R&B) 가수들이 초대됐다. 분위기가 어찌나 무겁고 딱딱했는지 분위기를 띄우느라 무진 애를 썼다. 그걸 본 PD가 “바람잡이 하는 친구 재밌다”며 “한번 녹화해둬봐라”고 했다. 방송에 양념으로 나갔는데 반응이 괜찮았다. 하지만 그날뿐이었다. 몇 달 더 바람잡이를 하다 ‘리플해주세요’라는 고정코너를 맡았다. 인터넷에 올라온 시청자들의 리플을 윤도현과 함께 읽어주고 코멘트를 하는 역이었다.

그러다가 ‘폭소클럽’(KBS2) ‘컬럼버스 대발견’(SBS)에 나오면서 여기저기서 연락이 쇄도해 지난해 5월경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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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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