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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환의 문화오디세이 ⑦

1920년대 자살 급증, 오늘날과 닮은꼴

분에 못이겨 목매고, 가난이 고달파 동반자살

  • 글: 천정환 명지대 인문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서울대 강사 heutekom@hanmir.com

1920년대 자살 급증, 오늘날과 닮은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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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생물학적, 유전학적 현상이기도 하다. 인간의 생물학적 상황은 인간의 정신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특히 자살의 원인인 ‘우울’은 호르몬이나 신경전달물질에 의해 명백히 영향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중추신경계에 있는 ‘노에피네프린’이라는 물질이 정상 상태에 있는 이들보다 부족한 경우가 많다. 공격 성향과 관계되는 ‘세로토닌’이라는 화학물질의 수치가 낮으면 자살 가능성이 높아진다고도 한다. 정신과 의사들은 프로작(Prozac)과 같은 약물로 이를 조절해주려 한다. 약물이 생의 의지, 즉 정신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자살은 인간의 모든 다른 행동처럼 일종의 동물적 행동이다. 즉 유전자에 의해 영향받고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행위가 자살이다. 진화생물학자들은 동물의 자살이 다른 동종의 개체를 위해 택하는 이타적인 행동이라고 설명한다. 또는 집단 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우울증의 부산물이라고 보기도 한다.

다른 한편 자살은 사회학적이며 문화적 현상이다. 자연과 기후, 사회적 소통의 상태와 경제 상황, 사생관(死生觀)에 결부된 문화적 전통이 자살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세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일본은 오래전부터 ‘하라키리’ 또는 ‘셋푸크(切腹 : 할복)’라 불리는 독특한 자살 문화를 발전시켜왔지만, 1950년대 이후에는 할복자살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졌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세계 여느 나라보다 자살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앞에서 열거한 그 어떤 것도 자살에 대한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그저 배경일 뿐이며 결과론적인 설명일 뿐이다.

목숨보다 더 중요한 명예

사회적 사건으로서 자살은 사회적 변화상을 보여준다. 자살이라는 사건에는 한 사회의 가치관과 문화적 모순이 집약된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최초의 근대 한국인들은 오늘날의 한국인과 비슷한 이유로, 또는 전혀 다른 이유로 자살을 선택하였다.



‘독립신문’ 1896년 4월25일자 기사가 먼저 눈에 띈다. “만리재 물 떨어진 다리 근처에서 김가라 하는 자가 술을 먹고 목매달아 죽었다더라”는 단신이다. 이 단신에는 자살 동기가 나타나 있지 않다. 자살 관련 기사는 ‘독립신문’ 잡보(雜報- 오늘날의 사회면에 해당)란의 중요 기사였다. 잡보나 단신이 자살자의 운명과 운명적 선택을 설명하기란 무척 어렵겠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자살은 단신일 뿐이다.

1896년 6월27일자 ‘독립신문’은 근현대 한국인의 보편적 형태의 자살 유형을 소개했다. “인천 항구의 병막(兵幕)지기 김소성이라는 사람이 ‘생계 수단이 없는 것에 슬프고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자기 집 건넌방에서 목을 매 죽었다”는 내용이다. 신문은 김소성의 칠십 된 노모는 품을 팔고 오십 된 병든 처가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른바 ‘생계형 자살’이다.

‘독립신문’은 김씨 부부에게 자녀는 하나도 없었고, 김씨의 네 형제가 모두 흩어져 살고 있었다는 점도 덧붙였다. 가족 사이의 갈등이 자살의 동기가 되기도 하겠지만 대체적으로 대가족 체제는 개인의 자살을 어느 정도 막아주는 기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공동체 속에서 확고한 지위를 갖고 있는 사람은 그만큼 자살할 확률이 낮다.

1896년 7월9일에는 빚 독촉을 못이겨 자살한 사람의 소식이 실렸다. 용천군에 사는 김달호라는 이가 베 값 빚을 진 김예렴에게 상환을 독촉하였더니 김예렴이 나무에 목을 매 자살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엽기적인 복수 살인극으로 이어졌다. 자살한 김예렴의 아들들이 ‘아비의 원수를 갚는다’며 빚쟁이를 끌고 가서 아버지가 목맨 그 나무에 목매달아 살해한 것이다. 이 아들들은 관에 붙잡혔다.

비슷한 사건이 또 있었다. 청산군 수안말에 살던 남선지라는 자가 1896년 음력 6월19일 밤 그 이웃 동리 새터에 사는 과부 조씨에게 ‘무례한’ 행실을 했다. 피해자인 과부 조씨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서까래에 목을 매 죽었다. 그러자 조씨의 아들 리문구가 자신의 아내와 작당하여, 어머니의 원통함을 갚기 위해 남가를 유인하여 둔기로 때려 죽였다.

독립신문의 ‘분사(憤死)’ 보도

과부 조씨의 자살은 일종의 명예자살이다. ‘정절을 훼손당한’ 조선 여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왔다. 또한 리문구의 복수 행위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후 새로운 국면이 펼쳐진다. 피살된 남가가 평소 행실이 아주 나빴는지 어땠는지 알 수 없으되, 피살자의 아버지인 남병호와 남씨 일족들은 “자식이 부모의 원수를 갚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살인을 불문에 부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살한 과부 조씨의 열녀 행적과 그 아들 내외의 효성을 관에 고하기까지 했다. 조씨와 그 아들들에게 열녀문이나 효자비를 내려달라고 건의한 것이다. 그러나 관은 이미 묻힌 남선지의 시신을 꺼내 새로 검시하고 범인과 피살자의 아버지 등을 모두 잡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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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천정환 명지대 인문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서울대 강사 heutekom@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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