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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奇人·名人 ③

시인 이단전|“그래, 나는 종놈이다” 외친 천재문인

  • 글: 안대회 영남대 교수·한문교육 ahnhoi@yumail.ac.kr

시인 이단전|“그래, 나는 종놈이다” 외친 천재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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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씨는 전서(篆書)요 얼굴은 원숭이꼴, 시는 신선의 말이요 읊기는 귀신의 휘파람소리라.
  • 시인 이단전은 종의 신분으로 사대부와 교유하며 시를 지었다. 그의 시에는 가슴에 쌓인 울분과 기굴(奇푞)한 기상이 서려 있어 사람들은 귀신이 하는 말 같다고 했다. 술로 한을 풀다 요절한 광인(狂人)의 일생.
시인 이단전|“그래, 나는 종놈이다”  외친 천재문인
1781년 어느 봄날 한 청년이 재야 문권(文權)을 한 손에 쥐고 있던 일흔셋의 이용휴를 찾아왔다. 청년은 자신의 소맷자락에 넣어 온 시집을 꺼냈다. 이용휴는 천천히 시집을 훑어본 다음 말 없이 벽도화(碧桃花) 가지를 꺾어 그에게 건넸다. 무언의 꽃 선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부처가 빙그레 웃으며 제자 가섭에게 꽃을 주어 그를 인정한 이른바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였다. ‘내 너를 훌륭한 시인으로 인정하노라’는 마음을 벽도화 한 가지로 표현한 것이다. 이용휴를 찾아간 청년이 이단전(李亶佃, 1755∼90)이다.

이용휴는 당대 최고의 작가요 이단전은 천민이었다. 그가 천민이란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이용휴는 초면에 그를 인정했다. 이단전은 너무도 감격하여 이용휴가 세상을 떠나자 만시(輓詩)를 지어 올리며 이 사연을 적었다. 당대 대가와의 첫 대면에서 이단전이 내민 시집이 ‘하사고(霞思稿)’였다. 이용휴는 여기에 다음과 같은 서문을 얹어주었다.

[노인이 할 일이 없어 곁에 앉아 있는 손님에게 평소에 본 기이한 구경거리나 특이한 소문을 말해달라고 했다. 그중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아무 해 겨울 날씨가 봄처럼 따뜻했는데 홀연 바람이 일더니 눈이 내렸습니다. 밤이 되어 눈이 그치자 무지개가 우물물을 마셨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깜짝 놀라 소란을 피운 일이 있답니다.”

또 다른 손님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난 번에 만난 행각승(行脚僧)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언젠가 깊은 산골짜기로 들어갔을 때 한 짐승을 맞닥뜨렸는데 범의 몸뚱아리에 푸른 털을 하고 뿔이 난 데다가 날개가 돋쳐 있고 소리는 어린아이와 같았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황당한 거짓말 같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한 소년이 찾아와서 시를 봐달라고 했다. 이름을 물었더니 이단전(李亶佃)이라고 했다. 이름부터 남들과 달라서 놀랐는데 시고(詩稿)를 펼치자마자 괴상하고 번쩍번쩍한 빛이 솟구쳐 무어라 형용하기가 어려워 평범한 사고를 넘어서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앞의 두 손님 이야기가 거짓말이 아님을 믿게 됐다.]

보통의 시집 서문과 달리 특이한 구성의 글이다. 이용휴는 황당한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현실에 존재할 수 있음을 이단전의 시를 보고 깨달았다고 말한다. 극찬이 아닐 수 없다. 이단전의 ‘하사고’에서 지금까지 만나볼 수 없었던 특이한 시세계를 발견한 것이다. 시가 얼마나 독특했으면 이용휴가 그런 평을 했을까. 하기는 ‘무지개 생각’이라는 시집 제목부터가 남다르다.

호는 필한(疋漢), 하인놈

한편 이용휴는 이단전이라는 작명(作名)에 놀랐다고 했다. 단(亶)은 ‘진실로’라는 의미요, 전(佃)은 소작인 또는 머슴이라는 뜻이니 단전이란 이름은 영락 없이 진짜 머슴, 진짜 하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누가 그런 자기모멸적인 이름을 지어주겠는가. 이용휴가 이상하다고 여길 만도 했다.

이단전은 연암 박지원의 절친한 친구이며 재상을 지낸 유언호(兪彦鎬) 가의 종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여종이었고 아버지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아비도 모른 채 계집종에게서 난 천출임이 분명했다. 이단전과 교유한 바 있는 임천상(任天常)도 “지체가 지극히 낮고 미천하며, 사람도 엉성하고 물정에 어둡다”고 평했다.

더욱 기이한 것은 이름만 아니라 호(號)조차 필한(疋漢)이라는 사실. 이용휴가 호의 뜻을 묻자 이단전은 이렇게 답했다. “필(疋)은 하인(下人)이다. 내가 바로 하인놈이니 호를 필한이라 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소?”

필(疋)은 하인(下人) 두 글자를 합한 글자요 한(漢)은 사내라는 뜻이니 필한은 ‘하인놈’이 된다. 수많은 사람들의 호를 듣고 보았지만 스스로 ‘하인놈’이라고 떠벌리는 호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우아하거나 상징적이고 멋지고 품위 있는 호를 쓰는 것이 상례이고, 더구나 시인이란 그런 데 매달리는 존재가 아닌가. 그렇건만 이단전은 이름과 호로써 ‘나는 종놈’이라고 밝히고 다녔다.

게다가 그는 자(字)까지 운기(耘岐)와 경부(耕傅)라고 썼다. 김매고 밭갈이하는 사람이라고 너스레를 떤 것이다. 또 문집 ‘풍요속선(風謠續選 : 영조시대 시 700여수를 시인별로 엮은 책)’에는 호를 인헌(因軒)이라 하고 연안(延安) 이씨라고 밝혔으나 근거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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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안대회 영남대 교수·한문교육 ahnhoi@yumail.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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