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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內戰’ 막전막후

‘외로운’ 박근혜, 저격수 3인방 ‘분리 견인’ 시동 거나

  • 글: 이동훈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dhlee@hk.co.kr

‘한나라 內戰’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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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면 지난번 선거 때 제가 도와주겠다고 해도 안 받아들였어야 했다… 치사스럽고 비겁하다고 생각 안 하나…. ‘박근혜는 안 된다’ ‘필히 대선에서 망한다’고 하는데 언제 대선 후보 뽑았나. 대표 뽑은 것 아니냐. 무슨 소리하는 것이냐.”

장장 30분. 뭘 해도 신중하다는 박 대표다. ‘항상 하던 말만 되풀이한다’고 기자들의 핀잔을 듣던 그다. 그런 박 대표가 30분 동안, 그것도 한마디 한마디에 칼을 꽂아 쏟아냈다.

“여러분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제가 일을 할 수 없다. 당의 정체성을 흔드는 일을 당에서 하면 안 된다. 그러면 당의 지지율도 안 올라간다.”

길게만 느껴지던 박 대표의 발언이 마침내 끝났다.

토론 이후 일정은 저녁식사, 그리고 술과 노래를 곁들인 여흥 시간이었다. 의원들, 그 중에서도 이재오 김문수 의원은 충격이 컸던 듯 강당 옆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평소 입에 대지 않던 술을 들이켰다. 이 의원은 동료 의원들의 노래 요청에 “‘떠날 때는 말 없이’를 불러야겠지”라고 애써 농담 한마디를 던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낭만에 대하여’를 불렀다.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게냐마는…”

불그레한 얼굴로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김문수 의원은 “이건 제2의 유신이야” 하고 목청을 높였다. 다음날 여러 매체에 보도되어 관심을 끈 ‘제2 유신’ 발언은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洪, “약점이 많아. 검증도 안 됐고”

그 시각 박 대표가 묵고 있는 방으로 임태희(任太熙) 대변인 등 당직자들이 몰려들었다. “대표님, 좀 지나쳤다는 반응입니다.”

박 대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초봄부터 시작된 한나라당의 주류-비주류 갈등이 여름을 지나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늦은 밤 몇몇 의원은 삼삼오오 구례읍내로 몰려 나가 술자리를 벌였다. 일부는 “당이 어떻게 되는 거냐”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한나라당에서 드디어 둑이 터진 것이다. 숨가빴던 하루가 저물고 구례에서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사실 둑이 터지기까지 물은 오래 전부터 차곡차곡 차 올랐다. 17대 총선 공천 작업에 들어갈 채비가 한창이던 지난해 12월의 일이다. 당시 최병렬 대표 체제의 실세 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의 당사 2층방은 늘 기자들로 붐볐다. 말을 에두르지 않는 홍 의원에게 “박근혜 의원이 공천심사위원장이 된다면서요?” 하고 한 기자가 물었다.

“박 의원이 간판이 될 수 있겠나?”

홍 의원이 얼굴을 찌푸렸다.

“대중 지지도가 박 의원만큼 높은 정치인이 한나라당에 어디 있나요?”

“약점이 너무 많아. 검증도 안 됐고….”

총선 전 ‘간판’을 찾던 당시 최병렬 대표는 공천심사위원장에 박근혜 의원과 외부인사를 나란히 세운 뒤 박 의원을 선대위원장으로 내세워 총선을 치르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당의 실세인 이재오 사무총장과 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은 이 안을 극구 반대했다. 결국 ‘박근혜 카드’는 버려졌고 공천심사위원장은 김문수 의원에게 돌아갔다.

그 직후 최병렬 대표의 조기 퇴진과 탄핵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져나왔다. 총선 정국의 그림을 새 도화지에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했다. 한나라당은 응급처방을 찾아야 했고, 대중성에 영남 지지기반을 갖춘 ‘박근혜 카드’가 부활한 것이다.

그러나 3인방은 탐탁지 않게 여겼다. “박근혜가 한나라당의 대표가 되면 당을 나가겠다”는 이재오 의원의 발언은 이맘때 나왔다.

이런 3인방의 뜻과 무관하게 박근혜 의원은 선거대책위원장이 아닌 당 대표로서 한나라당의 17대 총선을 책임지게 됐다. 총선 기간 내내 박 대표는 폭넓은 대중적 지지를 기반으로 선거구를 종횡무진했다.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 전국을 누볐다. 하지만 박 대표는 투표일이 임박하도록 3인방의 지역구는 찾지 않았다. 먼 곳도 아닌 서울 경기 지역이었다(이재오 의원은 은평 을, 홍준표 의원은 동대문 을, 김문수 의원은 부천 소사).

“당연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고, “그래도 한 번은 가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다 투표일이 임박해 박 대표가 3인방의 지역구를 차례로 찾았다. 의례적이나마 박 대표와 3인방은 덕담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환호하는 유권자들 앞에서 손을 맞잡았다.

4월20일. 흙바람이 날리는 여의도 한나라당 천막당사 앞에서 17대 총선 당선자대회가 열렸다. 지옥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당선자들은 박 대표를 ‘구세주’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한 켠에 선 3인방의 눈매는 달랐다. “총선 이후 한나라당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세 의원은 짜 맞춘 듯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거론했다.

홍준표 의원은 말했다.

“이회창 총재만 바라보다 한나라당이 실패하지 않았나. 여러 명의 대권후보를 키워야 한다. 그런 면에선 우리 당도 이제 단일지도체제가 아니라 집단지도체제로 가야 한다.”

설득력 있는 얘기였다. 하지만 지난해 말, 그가 했던 말을 기억하는 기자들로선 “박근혜 견제책이 아니냐”고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꼭 그렇게 볼 필요가 있느냐”면서도 부인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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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동훈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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