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호

‘사이비 우익’들아, 성실한 軍을 들쑤시지 말라!

‘진짜 보수’가 참다못해 던지는 준엄한 충고

  • 글 : 표명렬 예비역 준장·전 육군본부 정훈감

    입력2004-10-25 1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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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 일각에는 ‘대통령 노무현’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해서 노무현 정권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권이며 가능하다면 당장 끝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누구나 정치적 의견을 가질 수 있고 이를 표현할 수 있다. 문제는 그들이 내세우는 노 대통령 불가론이 근본적으로 색깔논쟁에 기대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와 헌정질서 파괴에 부역하고 그것을 진두지휘해온 이들이 이제 반(反)독재와 민주주의, 헌정질서 수호를 외치면서 마치 항일독립운동 투사라도 되는 양, 민주화투쟁이라도 하는 양 출몰한다.

    아무리 세상 돌아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아무리 대통령이 밉다고 해도 자신들의 심중을 표현하는 데는 최소한의 이성적 절제와 합리적 논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왜 이들은 이렇듯 막무가내, 마구잡이로 치닫는 것일까. 왜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이토록 후안무치하고 용감무쌍한 것일까. 뭔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것일까.

    이 대목에서 모 언론매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레닌의 투쟁방법을 공부하기라도 한 것인지, 투쟁방향과 선전 슬로건은 물론이거니와 행동지침까지 제목으로 뽑아내 사실상 특정세력의 기관지나 선전매체, 브레인 구실까지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지경이다. 또 하나의 버팀목은 어느새 한국 극우의 중추세력이 돼버린 듯한 재향군인회와 성우회 등 예비역 단체들이다. 그들은 ‘명령만 내리십시오!’ 하는 자세로 행동대원 구실을 톡톡히 해내는 모양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야 무엇을 하건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이들이 내심 후배인 현역 군인들도 필요할 때는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줄 것이라는 위험한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이들은 대통령 노무현의 정치적 신념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말 한마디마다 공격하며 아예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일관한다. 대통령 탄핵심판 상황이 진행되어 합법적 퇴진의 길이 보였을 때 그들이 얼마나 환호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국민 다수는 그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필자는 각종 예비역 단체들이 과연 진정으로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자신들이 지금까지 누려온 기득권에 반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하는 것을 두고 마치 세상이 당장 끝장나기라도 할 것처럼 고함치는 모습은 윤리적으로나 심미적으로나 결코 아름답지 못하다. 어쩌면 이성의 공황상태에 빠진 듯한 그들에게 윤리나 심미라는 말을 갖다붙이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한 귀로 흘리고 싶지만…

    더욱이 비합법적인 물리적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대통령을 물러나게 해야 한다고 흥분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특히 군사반란을 통한 정권전복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한편에 있던 연민의 정도 싹 가시고 만다. 예컨대 시대착오적인 선동가의 길로 본격 나선 듯한 앞서의 언론매체 대표가 지난해 8월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친북비호 독재정권 타도는 합헌’이라는 글을 보자.

    “정권이 나서서 반역과 독재에 대한 국민의 합법적 대응의 길을 막으면, 국가와 헌법과 자유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서 그런 정권을 반역 독재정권으로 규정하고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민 속에는 물론 군인도 포함된다. 이런 저항권은 4·19처럼 물리력을 동원하더라도 합헌….”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특유의 글 솜씨로 반란이나 내란교사죄의 핵심은 교묘히 피해가고 있다 해도, 이 글의 요지가 군사쿠데타를 노골적으로 주문하는 내용임을 눈치채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건전한 판단력과 상식을 갖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시민이라면, 이렇듯 비정상적인 궤변에는 코웃음을 치고 흘리거나, 혹은 헌정파괴 교사에 가까운 위험하고 부당한 발상이라 규탄하는 게 정상일 것이다. 그가 말하는 ‘반역’과 ‘독재정권’ 같은 말에는 아마도 자기들만이 알 수 있는 어떤 다른 의미가 들어 있는 모양이다. 그 개념의 질곡에 지나치게 깊이 빠져 다른 사람들과 의미 있는 의사소통이 가능할지 의심스러운 이들에게 측은한 마음이 든다(필자가 북한 사람들을 동정하는 까닭과 이들을 동정하는 까닭이 본질적으로 같다는 사실은 정말 아이러니다).

    높은 시민의식 수준과 고도로 정보화된 열린 사회의 특징을 생각하면, 이러한 선동에 솔깃해할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잘 안다. 다만 군 간부 출신 예비역 대다수가 그러한 비합리적인 선동을 맹신하며 극우세력의 사수대원을 자임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다.

    지난 3월30일에는 모 대학의 교수가 주로 예비역 고급 간부들이 모이는 해양연구소(이 연구소의 소장은 예비역 제독이다) 주최 조찬강연에서 “현 시국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국민들이 한시 바삐 이 현실이 혁명상황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하는 것”이라며 “정당한 절차를 밟아 성립한 좌익정권을 타도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복원하는 방법에는 군부 쿠데타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 이해될 것”(4월1일자 연합뉴스 기사 인용)이라며 말꼬리를 살짝 흐리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상 군사반란을 종용하는 이런 선동에 대해 그 자리에 모인 예비역 간부들 가운데 “도대체 군을 무엇으로 보느냐”고 따끔하게 질책하는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고 하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이비 우익’들아, 성실한 軍을 들쑤시지 말라!

    8월26일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국보법 폐지 권고 철회’를 요구하며 시위하던 서울 재향군인회 회원 150여명이 인권위 사무실로 진입하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이라도 한 것일까. 7월13일 육해공군과 해병대 예비역 대령연합회, 육사 3·7·8·9·10기 총동창회, 갑종157기, 164기 동기회, 공군전우 중앙회, 대한민국 해군동지회, 베트남 참전 전우회 등 전역군인 단체들이 주를 이루는 ‘국민행동본부’라는 단체가 성명서에서 “국군은 헌법에 위반한 정권의 어떤 명령도 거부해야 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또 “노 정권은 대한민국 해체에 나서고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국가의 안전보장을 사명으로 하는 국군을 믿는다”면서 군사반란을 유도하는 듯한 신문광고를 내기까지 했다.

    할말이 없다. 그동안 힘겹게 뿌리내려온 민주주의와 문민통치의 원칙을 꺾어버리기 위해 안달이라도 난 것일까. 아니면 이러한 군사반란 종용 움직임에 대해 공권력이 별 반응을 보이자 않자 힘이라도 얻은 것일까. 이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군의 움직임에 기대를 표명하고 나선다. ‘국민행동본부’는 최근 성명에서 “이런 반역세력을 검경이 단속하지 않는다면 우리 국민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국군뿐이다.… 국군이 나서기 전에 반역세력은 자숙하고 대통령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이 살아 있는 민주국가 안에서 정부전복을 종용하는 이런 주장이 조직적으로 남발되고 있음에도 사법당국은 왜 방관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최근 들어 재향군인회와 성우회처럼 공식적으로 등록·인가된 단체들은 정부전복 모의의 위법성에 대한 사법적 관심이 염려스러웠는지 반란을 종용하는 직접적인 언동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대신 이들은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운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들은 국가보안법의 존재가 국가안보를 위해 절대적이기 때문에 안보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법이 현재와 미래의 국가안보와는 거의 무관할 뿐 아니라 오히려 안보역량을 훼손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은 상식이 아닌가. 언제 우리의 안보가 무고한 정적(政敵)과 민주인사를 탄압하는 데 악용된 이 법에 의해 유지됐단 말인가. 이 법이 없었다 해도 대한민국 국군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용감히 싸웠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임이 분명하다.

    필자가 보기에 보안법 존폐 논란은 엄밀히 말해 대북정책과 관련된 정치적 문제다. 출발점은 북한의 실태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 있다. ‘기아와 질병 등 기초적 생존문제도 해결이 어려울 정도로 참담한 상황에 놓인 북한의 현실, 중국이나 소련, 베트남의 선례를 따라 시장경제체제로 변화·개혁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북한의 상황’을 인정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찬반이 갈라지는 문제다.

    자유민주체제의 우월성을 확신해 대북 경쟁에서의 자신감을 확고히 갖고 있다면, 통일에 대한 미래지향적 비전을 가진 사람이라면 국가보안법이 반드시 존속해야 한다고 믿진 않을 것이다. 반면 ‘보안법이 없어지면 서울 하늘에 인공기가 나부낄 것’이라며 금방이라도 적화통일이 될 듯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북한에 대한 자신감 결여나 패배주의, 냉전적 피해의식의 산물이 아닌가.

    軍이 왜 이런 수모 받아야 하나

    안타까운 것은 군이다. 군이 과거 정상적으로 정치적 중립을 체질화해 왔다면, 정치인들의 이런 이전투구 와중에 군 출신 인사들이 무더기로 뛰어들어 편협하게 휩쓸릴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군 출신 인사들이 누구보다 안보에 대한 자신감이 투철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적의 역량을 실체 이상으로 부풀려 공포감과 패배주의를 조성하는 것은 심리전적인 측면에서 분명한 이적행위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재향군인회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안보단체’들은 지난 8월 몇몇 신문에 낸 광고에서 보듯, 적의 능력과 위협을 놀랄 만큼 과장선전해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선전요원처럼 앞장서서 북한을 돕고 있다. 참으로 기묘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군 간부 출신들이야말로 누가 뭐래도 국가안보에 헌신해온 애국자들로서 국민들의 존경과 신뢰를 한몸에 받아 마땅할 이들이다. 몇몇 극우적 직업 선동가들의 말에 이끌려 민족적 자존심과 정의감이 희박한 사대주의적 집단으로,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나 홀로 애국’의 골치 아픈 이기주의자들로 낙인 찍혀 백안시될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 묵묵히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군을 향해 군사반란의 추파를 보내는 냉전 극우세력의 중심에 예비역 장교들이 줄줄이 포진한 광경을 목도한다면 현역 간부들의 심정은 과연 어떻겠는가.

    분명 극도로 자존심이 상하고 엄청난 사기저하를 느낄 터인데도 군 당국은 눈치만 보며 분명하게 갈피를 잡아주지 못하고 있어 눈앞의 입신만을 생각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진 않을까 걱정스럽다. 안타깝게도 이런 부정적 징후는 여러 곳에서 눈에 띈다. 대통령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에 대한 군의 소극적인 협조, 서해 북방한계선 사건 당시의 허위보고 및 주요정보 보고 고의누락, 특정 언론에 대한 군 최고정보담당자의 정보공개 물의 등 일관된 지휘체제를 생명으로 하는 군대조직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통수권 경시현상이 연출된 바 있다.

    지금 ‘보수’를 말하고 ‘애국’을 말하면서 군을 들쑤시는 이들의 뿌리가 반민족적 친일세력과 민주주의를 파괴해온 군부독재의 핵심세력임은 부연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일부 군 간부 출신 예비역들이 극우적인 성향에 치우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들의 절대적인 영향력 밑에서 교육받고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불행했던 한국 현대사와 궤를 같이한다. 일본군 편에 서서 항일독립군을 토벌하고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하며 군국주의 군대에 충성을 다하던 이들이 건국 초기 우리 군을 석권함으로써, 국군 속에 민족의식이 싹트지 못하고 민족정기가 바로 세워지지 못하게 된 불행한 역사가 바로 그것이다.

    민족을 말하면 사상이 위험한 자로 의심받아 불이익을 당하는 현실에서, 이미 우리 군을 독차지해버린 반민족적인 상관들의 눈 밖에 나면 살아남을 수 없는 피나는 진급 경쟁 속에서, 군 간부들은 국가와 민족에 대한 비전을 갖지 못하고 상관의 주장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데 익숙해져버렸다. 이들이 그 관성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오늘날에도 민족적 자존심이나 자신감은 돌보지 못한 채 ‘민족의식 없는 극우’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후 냉전체제하에서의 극단적 좌우대립과 한국전쟁 발발은 반민족 세력이 군을 더욱 확고히 장악하게 하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줬다. 이들은 급기야 5·16 군사쿠데타를 통해 독재의 중심세력으로 자리잡았고 철저한 대북 적대의식을 통해 정권안보를 꾀해왔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반복된, 적개심 함양을 위한 멸공교육은 냉전의 막이 내린 지 오래고 북한이 더 이상 자기 백성의 생명조차 돌보지 못하는 허약한 체제가 된 지금에도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지금도 많은 군 간부 출신 인사들이 ‘붉은 공포’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냉전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극우’가 되어버린 것이다.

    ‘정치적 엄정 중립’이 군의 ‘보수성’

    흔히 군은 ‘보수집단’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작금 우리 사회에서 자칭 보수세력이라며 극우 바람몰이에 나서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수의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

    첫째, 군은 정치적으로 보수성향의 정당이 집권하건 진보성향의 정당이 집권하건 상관없이 국민이 투표로 선택한 정치권력에 대해 절대 순응한다는 점에서 보수적이다. 이데올로기적 의미로서의 보수성향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이야기다.

    둘째, 군인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필요한 경우 자기 목숨까지 바쳐야 하는 특수집단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조직의 구성원보다 특별히 국가와 민족의식이 투철해야 한다는 면에서 보수적인 집단이다. 세계화 시대에 국가와 민족을 유난히 강조하다 보면 자칫 국수주의 경향으로 흐르게 되기도 하지만, 이것이 군의 보수적 특징이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군의 보수적 특성으로 인해 어느 나라든 군 간부 출신 인사들은 민족과 국가의식이 철저하고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군 통수권에 영향을 미치는 부정적인 언동을 각별히 자제하는 태도를 취한다. 이는 국가의 상징이 가진 권위를 지키고 보호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대한민국 헌법도 대통령을 국군 통수권자로 규정하고 군의 정치적 엄정중립을 명시함으로써 군이 마땅히 지켜야 할 진정한 의미의 보수성을 명확하게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극우적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은 이러한 원칙이나 상식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하다. ‘군대는 원래 보수집단’이라는 말이 마치 군대가 정치적 극우집단의 안전을 보증하는 도피처라는 뜻으로 잘못 알고 있거나, 군 간부들은 영원무궁 자신들을 지지·추종하는 이들로 착각하는 듯하다. 한마디로 군을 자신들의 정치싸움판에 아주 손쉽게 끌어들일 수 있는 만만한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이들은 지금의 국민과 군 간부들은 과거와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 정치적 목적으로 군을 이용하려는 어떠한 몸짓도 그들을 분노케 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동녕, 윤봉길, 안중근의 흔적은

    스페인이 프랑코의 혹독한 독재 사슬을 끊고 민주화를 이룩했을 때 가장 먼저 단행한 것이 군 개혁이다. 핵심은 간부들에 대한 대대적인 의식개혁이었다. 과거 군부가 행한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노출시켜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고, 인간존엄이라는 기본가치를 존중하는 민주적인 열린 군대문화를 정착시키는 작업을 면밀히 진행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바로 사관학교 훈육의 개혁이었다. 생도들에게 새로운 시대의 민주적 가치관과 꿈을 심어줌과 동시에 각계각층에 기득권의 철옹성을 탄탄히 쌓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선배들의 행적을 정의의 눈으로 바라보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역사의식을 배양하는 일이었다. 이로써 부끄러워 고개 들지 못하고 자숙해야 할 인사들이 활개치며 공공연히 군사반란을 부추기는 역사후퇴 현상의 불씨를 뿌리뽑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치적 민주화는 이룩했지만 민주적 조직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이런 필수과정은 거치지 못했다. 때문에 민주화 이전이나 지금이나 군대는 여전히 그대로다. 국군의 정통성에 정면으로 반하는 만주군관학교 출신 친일인사이자 국군사에 치욕으로 기록되어야 할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정치적 평가야 어떻든 적어도 군인으로서 그는 참으로 불명예스러운 인물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는 ‘자랑스런 육사인’으로 뽑혔고 그의 휘호는 우람한 바윗 돌에 새겨져 지금도 뽐내듯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서 있다. 반면 육사의 효시라 할 수 있는 항일독립전쟁의 간부양성 요람 신흥무관학교의 초대교장 이동녕이나 지청천, 윤봉길, 이봉창, 안중근 같은 독립투사들의 흔적은 육사 교정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어디 그뿐인가. 엄청난 부조리에 연루되어 처벌을 받은 이들, 국가반란죄로 중형을 선고받은 이들, 불법 사조직을 구성해 장성진급을 싹쓸이한 이들, 광주민주화운동을 학살로 진압한 책임자들이 과거 높은 계급에 있던 선배라는 이유만으로 일말의 뉘우침도 없이 군을 선동하는 발언을 일삼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우리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는 신념을 생도들에게 훈육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이들의 영향력이 군에 미칠 수 없도록 차단하고 분리시키는 것이 한국군 개혁의 중요한 기초작업이라고 믿는다. 주저하고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그들의 진짜 목적을 묻는다

    군사쿠데타의 가능성에 대해 현역 군 간부들과 좌담을 했더니, 한 간부가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일상화된 요즘 같은 정보화사회에서는 기능적 측면에서 군사반란이 불가능하다”고 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물론 국민이 그 같은 시도를 용납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전제한 내용이겠지만, 이러한 기사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군 입장에서는 너무나 수치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현역 고급 간부들이라면 예비역 선배들에게 ‘그런 시대착오적인 망상에서 벗어나 자중자애하여 명예와 자존심을 지켜달라’고 간청해야 옳지 않았을까.



    10월4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사수 국민대회’ 한쪽에선 극우성향을 대변하는 한 언론매체가 판촉활동을 벌였다고 한다. 여러 가지 말들을 그럴듯하게 하긴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이 광경이 이른바 ‘애국세력’을 자임하며 군을 선동하고 있는 이들의 본질을 정확하게 비춘 것 아닌가 한다. 지나간 냉전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고 존재하지 않는 공포를 열심히 불지피며 판을 벌인 다음, 결국은 자신들의 본래 목적인 상업적 이익을 도모하는 모습이 바로 이른바 ‘한국식 극우세력’의 현주소를 상징한다는 이야기다.

    필요한 것은 두 눈을 크게 뜨는 일이다. 누가 애국을 자신의 전유물인 양 외치는가. 국가방위에 충실해야 할 군에게 시대착오적인 반란을 선동하는 목소리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 지금 ‘진정한 보수세력’에게 필요한 것은 이를 분별하는 합리와 상식의 혜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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