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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기⑫|삽당령에서 진고개까지

“산은 벗고 걸어야 제 맛, 한번 훌훌 벗고 걸어보시게”

  • 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산은 벗고 걸어야 제 맛, 한번 훌훌 벗고 걸어보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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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역에서 삽당령으로 가는 버스를 수소문했다. 젊은 택시기사는 “오래 전에 버스운행이 중단됐다”며 택시로 오를 것을 권했다. 하지만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는 “구 시청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하루에 2대 있다”고 알려주었다. 택시를 타고 구 시청으로 가서 20여분쯤 기다리자 정말 버스가 왔다. 승객은 두 사람. 일찌감치 들에 나가는 할머니와 필자뿐이었다. 버스기사는 언제까지 삽당령 노선이 계속 운행될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강릉에서 삽당령으로 가는 길은 구불구불한 산길이다. 버스기사는 두 사람을 위해 조심스럽게 벼랑을 올랐다. 도중에 할머니가 내리자 기사는 저녁 버스시간을 알려준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사를 향해 손을 흔든다. 세상에 이처럼 정겨운 모습이 또 있을까 싶었다.

날이 밝아오면서 벼랑 왼편의 강릉저수지가 눈에 들어왔다.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저수지 위로 군데군데 우뚝 솟은 봉우리들이 운치를 더해주었다. 마침내 삽당령이다. 버스기사는 중요한 임무라도 끝낸 것처럼 한숨을 내쉬며 필자에게 안전한 산행을 당부했다. 필자도 방금 전의 할머니처럼 떠나가는 버스에 손을 흔들고 고마움을 표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빗줄기가 더욱 세차게 느껴졌다. 방수 파커를 껴입고 배낭 커버를 씌운 뒤 산행을 시작했다.

닭목재, 닭목골, 닭목

삽당령을 출발해 862m봉을 지나면서 빗줄기가 가늘어지는가 싶더니 들미재를 거쳐 석두봉(982m)에 이르자 다시 굵어졌다. 거의 폭우 수준이다. 석두봉 못 미쳐 펼쳐진 잡목지대와 석두봉 너머 길게 늘어선 산죽밭을 통과하자 온몸에 물기가 스며들었다. 다행스러운 건 산세가 험하지 않아 힘 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다는 점. 산길 곳곳에 도토리와 깨금(개암)이 떨어져 있고, 이따금씩 다람쥐와 산토끼가 뛰어다니며 먹이를 챙긴다. 여유롭게 이어지던 대간 마루금은 화란봉(1069.1m)에 이르러 모처럼 급하게 올라선다. 빗물에 발이 미끄러지기를 수차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올라서니 구름이 산을 감싸는 모양새가 일품이다. 왼편으론 구름에 가려 있다 나타난 소나무들이 도도한 자태를 뽐낸다. 날씨만 쾌청하면 이곳에서 다리를 두드리며 건너편 산세를 조망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화란봉 너머는 가파른 내리막이다. 겨울철 눈밭산행이라면 꽤나 애먹었을 구간을 몇 군데 지나자 멀리 닭목재(706m) 주변의 채소밭이 보인다. 이곳은 5·16 이후 군인들이 개간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강원도의 특산물 감자의 채종지역으로 유명하다. 보통 감자는 한 곳에서 내리 재배하면 바이러스 등에 쉽게 감염되는데 이를 ‘퇴화’라고 한다. 그러나 강원도의 고랭지 지역에서 재배한 감자를 종자로 쓸 경우 퇴화를 예방할 수 있다. 더구나 강원도 감자는 알이 굵고 녹말 함유량이 많아 전국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강원도에서 많이 생산되는 감자와 옥수수는 통일 이후의 한반도 식량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북한지역은 남한보다 산지 비율이 더 높아 벼농사에 한계가 있는 반면, 고랭지 지역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어 옥수수나 감자 재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글로벌 시대에 식량안보는 어울리지 않는 논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선진국일수록 농산물 자급수준이 높은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한국의 농산물 자급률은 쌀을 제외할 경우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우리가 식량문제에 새롭게 대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닭목재 위로는 강릉과 임계를 연결하는 410번 도로가 지나간다. 닭목재라는 이름에 걸맞게 근방에 위치한 마을 이름도 닭목골과 닭목이다. 비가 쉬이 멈출 것 같지 않아 도로 옆 농산물 저장창고에 퍼질러 앉아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걸음을 멈추자 한기가 올라왔다. 확실히 가을은 가을인가 보다. 몸이 떨리자 의욕도 한풀 꺾였다. 잠시 발길을 돌릴까 하는 유혹이 들었으나 계속 내치기로 했다. 다음 코스를 따져보니 대관령까지 끊는 것이 무난할 듯싶었다.

목장길 지나 마주친 구름바다

닭목재를 떠나자 곧바로 넓은 배추밭이다. 싱싱한 배춧잎에 떨어지는 빗물이 흐르지 않고 튀는 것으로 보아 배춧잎이 제법 싱싱한 모양이다. 저 정도면 중간상인들의 등급심사를 무난하게 통과할 것 같다. 보통 서울의 도매상들은 배추를 고를 때 밑동을 걷어차본 뒤 품질을 가늠한다. 956.6m봉을 지나자 오른편으로 철조망이 보였다. 이곳은 한우목장과 대간 마루금의 경계선이다. 온통 구름에 가려진 목장 아래쪽으로 희미하게나마 소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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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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