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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책 하고 놀자’

사유하는 지식인, 김우창을 읽는다

‘풍경과 마음’ ‘구체적 보편성의 모험’

  • 글: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사유하는 지식인, 김우창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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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는 땅과 풍경에 대한 감각적 체험이 바탕을 이루지만 거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좁은 공간에 대한 감각적인 체험을 넘어서서 번잡하고 속되며 잘게 쪼개진 일상 세계를 포괄하는 세계의 전체상, 넓고 탁 트인 공간의 체험, 부분적인 지각과 전체적인 의식을 통합함으로써 생겨나는 초월적 암시 등을 담아낸다. 김우창은 이렇게 말한다.

“한편으로 동물 생태학자들이 말하는 ‘영토적 본능(territorial imperative)’에 관계되는 것일 수도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현세(現世) 안에 형이상학적 토대를 원하는 인간의 형이상학적 본능에 관계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쉽게 철학적·형이상학적·신비적·종교적 또는 정신주의적인 관점으로 변화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관념적 요소 품은 산수화

정선(鄭?)의 ‘금강전도(金剛全圖)’는 한국의 진경산수(眞景山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이 그림은 풍경이나 세계를 하나의 시점에서 파악하고 이해하려는 서양화가의 공간 이해와는 사뭇 다르다. ‘금강전도’는 하나의 고정된 관점이 아니라 다원적 시점, 혹은 움직이는 시점을 통해 보고 이해한 풍경이다. 정선은 일만이천이나 되는 금강산의 웅장하고 복잡하게 펼쳐지는 봉우리와 기암괴석의 도형학적 세목(細目)들을 사실적으로 모사(模寫)하기보다는 그것과 마주친 뒤 느꼈을 감각적 충격과 법열감, 지적인 현기증을 표현하려는 의도에서 ‘금강전도’를 그렸을 것이다. 이는 동양 산수화가들이 지켜온 오랜 관습이자 전통이다. 그렇기 때문에 ‘금강전도’는 풍경의 사실성보다는 관념적이며 정신적인 이해의 측면을 표현하는 데 더욱 공을 들였을 것이다. 김우창은 이렇게 쓴다.

“‘금강전도’는 한편으로 풍경의 생활체험에 충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 생활체험 자체가 관념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걸 전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관념적 요소란 산의 지형에 대한 지리학적 이해와 그것의 밑에 놓여 있는 공간 이해(기하학적 의미에서건 또는 내용적인 의미에서건 이상화된 공간 이해)를 포함한다. 이러한 요소가 우리의 감각적 경험이나 마찬가지로 우리의 풍경에 대한 경험을 구성한다는 의미에서 ‘금강전도’는 규칙적 구성의 서양 풍경화보다도 실체험에 가까운 그림이 될 것이다.”



예술의 아름다움은 감각적 경험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김우창은 이렇게 말한다.

“한 예술작품은 그것이 묘사하고 있는 구체적인 것을 통해서 그에 관련되어 있는 다른 사물들의 존재를 암시하고 또 한 시대의 힘과 움직임을 느끼게 한다. 또 하나의 인공 구조물은 그 환경에 어울리고 또 그 시대의 삶을 표현함으로써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 된다. 자연의 한 조각도 그것이 사람이 사는 환경의 일부가 되었을 때, 사람이 자연에 대하여 갖는 어떤 태도, 한 시대가 자연과 공존하는 방식을 비춤으로 하여, 아름다운 것이 된다(‘시인의 보석’, 민음사, 1993).”



필자는 정선의 ‘금강전도’를 천천히, 오래 들여다본다.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솟은 크고 작은 봉우리들은 마치 땅에서 솟아오른 불꽃 같다. 이것은 우리 마음속의 근원적인 형상과 상호 조응한다. 이 산수화는 관념적 요소가 두드러진다. 정선의 금강산은 지리학적으로 파악된 산의 지형지물, 그 지리학을 내면에서 떠받치는 심리적이면서도 정신적인 이해, 땅에 대한 철학과 신화를 뒤섞어 체계화한 풍수지리의 관념이 빚은 산이다.

정선의 금강산은 그 물리적 구체를 벗어나 민족의 신령스러운 영산(靈山)으로 거듭난다. 그것은 안으로부터 창조된 풍경, 즉 ‘미화되고 신화화된 지도’로 존재한다.

신동아 200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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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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