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호

좌충우돌, 진퇴양난…교육부 ‘개혁실험’ 1년

미봉책 절충안, 비대한 관료주의가 ‘백년지대계’ 발목잡았다

  • 글: 이기우 인하대 교수·사회교육학 leekw@inha.ac.kr

    입력2004-12-27 10: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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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교육 잡을 복안으로 등장한 EBS 수능방송, 공교육을 살리자는 대입제도 개선안…. 2004년 초 안병영 교육부총리가 소신껏 밀어붙인 교육 개혁안들이 표류하고 있다. 수능방송은 되레 사교육 시장을 키웠고, 입시개혁안은 혼란만 가중시킬 조짐이다. 설상가상으로 교육부는 ‘수능 부정’이란 암초를 만나 사면초가에 빠졌다.
    좌충우돌, 진퇴양난…교육부 ‘개혁실험’ 1년
    2003년 12월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 장관 취임식. 정부 교육개혁 드라이브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안병영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게선 자신감이 묻어났다. 합리적 개혁성을 갖춘 인물로 평가받아온 그는 취임식에서 “과열된 사교육 시장을 잠재우고 공교육을 부활시키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이어 2·17 사교육비 경감대책, 대입제도 변경안 등 잇따라 정책을 내놓으며 힘찬 개혁행보를 보였다.

    그로부터 채 1년도 안 돼 안 부총리는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전례 없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부정 파문으로 입시 관리의 허점을 노출했기 때문이다. 역점을 두고 추진한 교육방송(EBS) 수능강의와 공교육 활성화 방안에도 회의적인 평가가 쏟아졌다. 게다가 방송강의에서 대거 출제된 2005학년도 수능은 변별력이 떨어져 학생들이 고가의 논술학원으로 다시 몰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혼란을 자초한 교육부의 개혁안을 되짚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BS 수능강의는 ‘해열제’?

    교육부는 2004년 2월17일 ‘사교육비 경감 및 공교육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다. 골자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교육방송 수능강의에 명망 있는 교사들을 총동원하고 방송 강의에서 시험문제를 출제하겠다는 것이다. 학원으로 몰리는 학생들에게 교육방송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하면 자연스럽게 사교육비가 절감된다는 계산이었다.

    또 하나는 현재 수능 위주의 대학 입시전형을 내신 위주 전형으로 전환하고 공교육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공교육에서 수준별 수업을 확대하고 보충수업 실시를 허용했다. 교사들이 학부모와 학생에게 개별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공교육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단기 대책은 EBS 수능강의다. 안 부총리는 한 특강에서 EBS 수능강의와 수준별 보충수업을 일컬어 ‘감기의 열을 내리는 해열제’라 지칭하며, 이를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단기 대책’이라고 설명했다. 또 교육의 체질강화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으로 수준별 이동수업과 내신 위주 대입제도, 교원평가제 등을 제시했다.

    사교육비 경감대책의 핵심은 역시 EBS 방송강의와 수능의 연계다. 실제로 대책이 발표된 이후 교육방송은 수능강의를 대폭 개편했고, 결국 EBS 홈페이지에 접속이 몰리면서 인터넷 서버가 다운돼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선학교는 EBS 방송을 시청하기 위한 설비를 확대했고, 수능방송 동영상을 보기 위해 가정의 컴퓨터 수요도 급증했다. 수능방송의 내용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순전히 수능시험 문제를 EBS 수능강의에서 출제하겠다는 정부 방침 때문에 빚어진 결과다.

    사교육 창출한 수능방송

    수능방송 교재는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수능방송 자체가 상품이 됐다. 학원가는 수능방송을 요약하고 해설하는 강좌를 발빠르게 개설했다. 사교육비 경감대책으로 마련된 EBS 수능강의가 학생들에게는 추가적인 학습부담을 안겨줬고, 사교육 시장엔 새로운 교육상품을 창출하게 해준 것이다.

    실제로 2005학년도 수능은 EBS 수능강의에서 상당수 출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원래의 정책 목표인 사교육비 경감효과를 얻지는 못했다. 오히려 수능의 변별력이 떨어져 혼란에 빠진 학생들이 논술학원으로 몰려드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교육부가 야심만만하게 내세운 사교육비 경감대책은 실패로 귀결됐다.

    사실 수능방송을 통한 사교육비 경감대책은 교육적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전국의 모든 학생이 교육방송을 통해 획일적 커리큘럼을 공부하도록 강요받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식정보사회에서 한국 교육의 획일성은 시급히 극복되어야 할 과제”라는 데 동의한다.

    교육과정과 교과서의 경직성은 교육의 획일화를 초래했다. 학교에 대한 관료들의 지나친 간섭도 지식정보사회에 역행하는 한국 교육의 폐단으로 지적됐다. 교육부가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마련한 EBS 강의와 수능의 연계방안은 한국 교육관료주의의 결정판이다. 교육의 획일화를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노력해온 교사들의 수업 재량권마저 수능방송 탓에 크게 위축됐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을 요구하는 지식정보사회에서 국가가 제공하는 수능방송은 어디까지나 보충적인 기능을 해야 한다. 수능방송은 학습자와 일선 교사들의 노력만으로 학습이 충분하지 않거나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훌륭한 보충 커리큘럼이 된다. 그러나 현행 입시를 좌우할 정도로 강력한 파워를 지닌 EBS 수능강의는 교육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교육부는 2008학년도부터 적용될 대학 입시제도의 변경안을 제시했다. 학생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의 반영 비중을 높이고 원점수를 표기하며, 과목별 석차등급제(9등급)를 변경하는 것이 한 축이다. 또 치열한 성적 경쟁을 완화하고 학생부 중심의 대입 전형을 유도하기 위해 수능의 백분위 및 표준점수는 제공하지 않으며 영역별·과목별 등급만 제공하는 것이 다른 한 축이다. 교육부는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등을 실시하지 않는 ‘3불(不) 정책’을 고수하겠다고 밝혔다.

    좌충우돌, 진퇴양난…교육부 ‘개혁실험’ 1년

    11월22일 국회 교육위원회에 출석해 휴대전화 수능 부정사건으로 국민에게 심려를 끼친 데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는 안병영 교육부 총리.

    이러한 교육부의 제안을 놓고 교육단체와 대학관계자, 교육학자 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논쟁의 초점은 학생부 반영 비중을 높이는 것이 타당한지, 수능의 반영 비중과 반영 방식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맞춰졌다. 논쟁이 격화되자 안 부총리는 여론 주도층 인사들에게 협조 서한을 보냈고 언론이 이 서한을 보도했다. 결국 국민을 향한 공개서한이 된 셈이다.

    제로섬 게임의 전장

    몇 차례의 공청회를 거쳐 최종안이 확정됐다. 교육부는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을 통한 공교육 정상화, 학교와 교사에 대한 신뢰 제고, 사교육비 감소 등을 대입 개선안의 기대효과로 내세웠다. 고심 끝에 내놓은 입시제도 변경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대학입시 개선방안이 사교육비를 절감시킬 것이라고 기대하는 학부모는 거의 없다. 내신이 강화되면 수능 과외 대신 내신 과외가 기승을 부릴 것이기 때문이다. 수능 시험의 반영비율을 낮춘다지만 수능은 여전히 존재하므로 이를 대비한 과외도 성행할 것이다.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수능시험 반영 비율을 높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신이 학교 공동체를 파괴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학교 구성원들이 학력신장과 인격발현을 위하여 함께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같은 학교 학생들끼리 경쟁단위를 이루며 제로섬 게임을 벌이게 된다. 학생들이 협력하면서 학력을 신장시키는 학습 공동체를 만들기도 어려워진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잘 지도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기보다는 평가하고 관리하는 데 치중하게 될 것이다. 결국 학교교육의 질적인 향상은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이번 입시제도 개혁안은 욕을 덜 먹는 변경안은 될 수 있어도,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하기엔 역부족이다. 교육부가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무리하게 절충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런 변경안을 제안할 바에는 차라리 현행제도가 낫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제도가 실제로 적용되는 시점이 되면 입시관리는 현재보다 훨씬 더 복잡해질 것이다. 수험생이나 교사의 입시 예측도 지금보다 현저히 떨어질 수 있다. 입시의 당락이 눈치작전에 따라 결정되는 폐단이 오히려 극심해질 수 있다.

    이렇듯 수없이 대입제도를 바꿔봤지만 학부모와 학생들의 혼란만 가중시켰다. 사설학원에서 주최하는 입시설명회가 이토록 성황을 이루는 나라가 또 있을까. 학교 교육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입시제도를 그렇게 자주 바꿔도 되는지 묻고 싶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다.

    2004년 11월17일에 실시된 수능 시험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한 부정행위와 대리시험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교육부는 또 한 번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이에 안 교육부총리는 특별담화를 통해 이렇게 대책을 제시했다.

    전국 시험관리의 한계

    “이번 사건이 휴대전화 등 최신 통신기기를 사용했다는 점에 주목해서 첨단기기를 이용한 부정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기술적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대리시험 등 다양한 방법의 부정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강구하겠습니다.”

    수능시험 부정 문제는 중앙정부와 교육부가 지방교육행정청을 통해 전국적으로 수능시험을 관리하는 것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적신호다.

    수능 시험을 위해 국민의 출근시간을 1시간 늦추는 나라, 듣기 평가를 위해 비행기 운항도 중단하는 나라, 시험지를 경찰관의 호위 속에 운반하는 나라, 해마다 며칠씩 수능 소식이 톱뉴스가 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 수능시험 감독을 위해 중·고등학교 교사가 차출되고 이 때문에 임시휴교를 하는 나라도 찾아보기 어렵다.

    단 한 차례의 수능시험으로 한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니 학생들은 한판승부에 모든 것을 건다. 그러니 첨단기술에 익숙한 학생들의 부정행위는 어느 정도 예측된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실제로 시험이 있기 전부터 소문이 돌기도 했다고 한다.

    수능시험의 횟수를 늘린다든가, 기술적으로 전파를 차단한다든가, 부정행위자의 차기시험 응시자격을 박탈한다든가 하는 수능 부정 방지대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보기 어렵다. 수능시험을 지금의 형태로 유지할 것인지, 국가가 대입시험에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교육부 장관과 교육감들이 대국민사과를 하고 시험부정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것으로 그칠 문제가 아니다.

    좌충우돌, 진퇴양난…교육부 ‘개혁실험’ 1년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에서 대리시험 부정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수능 응시생.

    대입시험은 근본적으로 대학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대학이 학문적인 정체성을 보전하고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대학에 필요한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 자율적인 선발방식을 갖추어야 함은 물론이다. 수능시험이나 내신 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려는 것은 국가가 기업의 취업시험을 관리하고 독점하려는 발상만큼이나 타당성이 없다. 수능시험이라는 획일적인 잣대로 학생을 선발하는 현행 입시제도는 창조적 지식을 생산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대학 교육의 본질에 어긋난다. 이는 교육의 수월성을 중시하는 지식정보사회의 요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다이어트 필요한 교육부

    2004년은 교육부에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후문 앞에서 벌어지는 시위의 절반이 교육부 관련 시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립학교 문제, 교원임용시험 가산점 문제, 미발령교사 우선발령 문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문제, 경제특구의 외국인학교 유치 문제, 교육감선거 비리 문제, 부실 사립학교 문제, 종교교육 문제, 고교등급제 문제, 내신 부풀리기 문제, 평준화 문제…. 큼직한 사회 이슈가 될 만한 교육 현안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운 지경이다.

    문제는 이러한 논란이 2004년 한 해로 그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한 해 조용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교육부에는 지금 백년대계(百年大計)인 교육 비전을 제시하고 미래의 청사진을 그릴 만한 여유와 상상력이 없다. 온갖 교육문제의 뒤치다꺼리에 급급하다 보니 100년을 내다보는 원대한 계획은 고사하고 눈앞의 1년 계획도 잡기 어려운 실정이다.

    교육부 장관은 누가 되건 참 어려운 자리가 되었다. 교육부가 교육개혁의 구호를 아무리 소리 높여 외쳐도 교육현장은 움직이지 않는다. 국민도 이제는 나아지리란 기대를 하지 않는다.

    진정 교육부가 교육개혁을 원한다면 개혁의 칼날을 자신에게로 돌려야 한다. 개혁 중에도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교육부의 비만을 치유하는 일이다. 교육부가 크고 작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어느 하나도 제대로 풀지 못했다. 비만으로 인한 과부하 현상이 도를 넘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듯, 교육부는 크고 작은 문제로 바람을 탄다. 거기다가 인적자원관리 기능까지 떠맡아 부총리 부처로 승격됐으니, 제 발로 걷기조차 힘든 고도비만 상태다.

    교육부가 건강을 회복하고 백년대계를 이루려면 다이어트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학교에 관련된 업무는 과감하게 단위 학교로 넘겨 교육문제는 학교의 교장, 교사, 학부모, 학생이 해결하게 해야 한다. 교육의 질적인 향상을 위해 교장과 교사, 학부모가 움직이게 해야 하는 것이다. 대학 교육은 헌법의 취지에 따라 학교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대학에 맡기되 그 구성원이 책임을 지게끔 해야 교육부의 짐이 줄어들고 교육의 질은 향상된다.

    ‘한국이 박세리나 이창호와 같은 세계적 선수를 배출한 것은 교육부가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우스개가 인구에 회자될 정도다. 지방교육행정에 대한 권한은 지방자치단체로 과감히 이양해야 한다. 하나의 교육부가 아니라 250개의 지방자치단체가 짐을 마주 들면 교육부의 일손이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

    인적관리기능도 교육부가 주도하거나 독점하려 해서는 안 된다. 교육에 관련된 인적자원관리에 전념하고, 다른 부처에 관한 것은 손을 놓아야 한다. 교육부는 감투를 줄이고 몸집을 줄여야 한다.

    비만으로 제 몸도 못 가누는 교육부에 21세기 지식정보사회의 성장엔진인 교육을 맡겨두기는 어렵다. 보다못한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방과 후 독자적인 교육과정을 만들어 공부하는 것이 현실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에서 한국학생의 학력이 세계 2위로 나타난 것은 대단히 기쁜 소식이다. 국가의 희망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사교육 시장에서 유능한 교사를 구해 자식을 가르치는 어머니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때가 됐다.

    교육자율과 분권화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서 세계 중심 국가로 발돋움할 기회가 다가왔다. 반만년 한민족 역사에서 초유의 기회이다. 이 기회를 살려 우뚝 일어설 것이냐, 아니면 기회를 놓치고 바닥을 칠 것이냐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교육개혁을 통해 창조적이고 다양한 지식을 창출하고, 인격을 발현시켜 문화 발전으로 연결해야 성장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다.

    지금껏 교육부는 비판을 덜 받을 만한 임시방편의 해법을 교육개혁으로 포장해왔다. 그것은 진통제에 불과하다. ‘교육 질병’의 근본 원인은 교육부와 교육청이 모든 교육문제에 관여하는 교육관료주의에 있으며, 여기에 길든 교육현장의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교육활동에 있다.

    머리는 바쁜데 손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제 학교에서 교장이, 교사들이, 학부모들이, 학생들이 적극적인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창조적인 교육 실험을 해야 한다. 실험을 주도한 교육 주체가 그 성과에 책임을 지도록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한 명의 장관이 담당하는 교육과 연구를 한국에서는 부총리 겸 장관이 담당하고, 국장이나 과장이 담당하면 될 지방교육을 도지사와 대등한 교육감이 담당한다. 세계에서 한국의 교육감투가 가장 높은 셈이다. 감투가 지나치게 높으니 감투 쓸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에서 교육부총리 겸 장관을 인선할 때 어느 자리보다 산통이 컸다. 교육감투가 높으면 교육문제의 해결 경로가 길어지게 마련이고 단계마다 교육관료주의는 강화된다. 교장이 교사, 학부모와 의논해서 결정할 문제가 교육청 계장, 과장, 국장, 실장, 부교육감, 교육감을 거쳐서 다시 교육부로 들어간다. 이를 반복하다 보니 대응방안이 마련되면 이미 상황은 끝나고 다른 문제가 터진 경우가 허다하다.

    교육부는 비판을 덜 받는 방어적인 행정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일부 이익집단을 겁내 눈치나 살피며 개혁을 피하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이익집단이 두려워 교육개혁의 비전조차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국가임을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욕을 먹더라도, 고통스럽더라도 제대로 개혁해야 한다.

    역할의 재배분

    이미 늦었지만 진단과 해법은 나와 있다. 바로 참여정부가 가장 강조하는 분권적 교육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교육을 교육부가 독점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교육현장의 학교가 교육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해법을 찾도록 역할을 나눠야 한다. 교장, 교사, 학부모, 학생의 손발을 묶고 있는 관료적인 규제를 풀어주어야 한다. 역할의 재배분만으로도 교육문제가 지닌 여러 가지 위험을 분산할 수 있으며, 다양한 해법을 통해 문제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다.



    그렇게 되어야 새벽부터 밤까지 서류뭉치 속에서 온갖 문제를 근심하느라 휴일에도 쉬지 못하는 교육부총리가 가끔은 청사를 떠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지식정보사회에서 우뚝 선 대한민국의 백년 교육대계를 구상하는 여유와 상상력을 갖게 될 것이다.



    교육&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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