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호

잃어버린 10년간의 새해 아침

  • 입력2004-12-27 14: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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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10년간의 새해 아침
    “한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옵니다.”해마다 이 무렵 우리가 가장 많이 하게 되는 말 중의 하나이고, 시간으로 겪고 마음으로 겪는 이 쉽고도 자명한 일이 내 젊은 날 10년 동안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면 젊은 날, 10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잃어버렸던 것이 아니라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오는’ 이 무렵의 서정을 10년이나 잃어버리고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 이야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스물한 살, 그때 처음 문학에 뜻을 두었지요. 그리고 그해부터 신춘문예에 도전했습니다. 첫해엔 멋모르고 하고, 두 번째 해부터는 ‘이게 이제 평생 내 길이다’ 하는 각오로 응모했습니다.

    신춘문예 당선작은 매년 1월1일 새해 아침에 발표가 나고, 신문 두 면이나 세 면에 실려 세상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이제 막 탄생한 신인 작가의 소설이 새해 아침 신문의 두 면이나 세 면을 독차지하고 나가는 겁니다. 한 작가로서 이만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기회도 없는 셈이지요.

    이태 전 대통령선거 다음날 대통령당선자에 대한 기사를 일부러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물론 그날 신문에는 1면부터 거의 중간 면까지 대통령당선자에 대한 기사가 줄줄이 이어졌지요. 그래도 세 면 연속으로 다른 기사 하나 섞이지 않고 당선자에 대한 기사만 나오지는 않더군요.



    그러나 신춘문예에 당선된 소설가의 경우 당선작과 작가 사진, 당선소감, 심사평, 이것만으로 신문 세 면을 채웁니다. 그것도 한 해가 시작하는 새해 첫 아침에 말이지요.

    당선자에겐 이보다 더 기쁘고 신나는 일이 없을 겁니다. 시의 경우엔 수천 편 가운데 한 편이고, 소설의 경우 수백 편 가운데 한 편이 그해의 영광을 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일정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보통 각 신문사는 11월10일을 전후하여 그 신문 1면에 ‘OO일보 신춘문예 공모’라는 사고(社告)를 싣습니다. 마감은 대개 12월10일 전후입니다. 그러면 각 신문사 문학 담당 기자가 응모작을 정리해 12월15일쯤 예심을 실시하고, 예심을 통과한 작품을 가지고 12월20일(때로는 22일이나 23일까지)쯤 최종심사를 진행합니다. 늦어도 12월24일 전에는 당선자에게 통보하지요.

    그러니까 24일까지 신문사로부터 통보를 받지 못했다면, 그해 자신의 작품은 떨어졌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10년간 내내 그랬습니다.

    꽤 오래 전부터 신춘문예 예선심사를 봐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도 11월10일쯤 그해 신춘문예 공고가 나면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듯 서늘해져옵니다. 이제 신춘문예 응모와는 전혀 상관없는 기성작가로 예심에 참가하는 입장인데도 그렇습니다. 자꾸 나의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11월10일 신춘문예 공고가 나면, ‘그래, 올해는 꼭 당선되어야지’ 하고 이제까지 쓴 작품들을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감일까지 한두 작품을 더 씁니다.

    그러고는 200자 원고지를 한 박스 사놓고 12월10일까지 한 작품 한 작품 옮겨 씁니다. 지금이야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컴퓨터로 출력을 하지만 그때는 한 글자 한 글자를 원고지 위에 옮겨 썼습니다.

    중간에 틀리게 쓴 글자가 있으면 혹시 그게 심사위원의 눈에 거슬릴까 싶어 그 페이지를 처음부터 다시 옮겨 씁니다. 글씨를 잘 쓰는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도 없는 것이 최종적으로 옮겨 쓰면서 때로 작품의 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옮겨 쓸 때는 그런 부분까지 고쳐가며 글을 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글자 한 글자 정성들여 옮겨 쓴 작품들을 누런 사각봉투 안에 신문사 별로 하나씩 넣고(물론 봉투 안에 든 작품들은 다 다릅니다) 마감일에 직접 신문사에 내러 갑니다. 학교 다닐 때는 방학 동안에 강릉우체국에 나가 우편으로 부쳤지만 졸업 이후에는 직접 신문사로 갖다 주었습니다.

    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 내려 서울신문에 들르고, 동아일보에 들르고, 한참을 걸어 한국일보, 다시 되돌아와서 조선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를 돕니다. 그때마다 옆구리에 낀 봉투가 하나씩 줄어드는 그 순례 길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 봉투를 내고 나면 이것이 일년간 나의 글 농사인가 싶어 그렇게 허탈할 수가 없고, 그렇게 길 한가운데 허탈하게 서 있는 내 자신이 불쌍해 견딜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그런 자신에게 연민의 정이 일어 눈물이 글썽 솟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 아무것도 아니지요. 최종심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12월20일부터 24일까지는 정말 견디기 힘듭니다. 내 몸의 모든 감각은 온통 귀로만 연결되고, 눈길은 전화기에만 가 머뭅니다. 때로는 그게 싫어 일부러 외출을 하지만, 이내 다시 집으로 들어오고 맙니다. 21일이 지나고 22일, 23일이 지나면 그야말로 불안해지고, 24일이 되면 ‘그래도, 그래도’ 하며 한 가닥 희망을 붙잡아보려고 하지만 이미 더없이 절망적인 상황이 됩니다.

    신춘문예에 10년 내내 떨어졌던 내 20대의 크리스마스 이브와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절망 속에서 의식 장애, 공황 상태에 머물곤 했습니다. 이미 판이 끝났다는 걸 알면서도 무언가 연락과정이 잘못되어 나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 것 같은 느낌.

    그렇게 연말을 보내고 모두들 어떤 의무처럼 ‘희망차다’고 말하는 새해 아침을 맞이하며, 다시 그날 집으로 배달된 신문에 절망했습니다. 내 작품보다 나은 당선작에 절망하고, 때로는 심사평 한귀퉁이에 거론된 내 이름이나 작품 제목에 절망하고, 또 때로는 최종심에도 올라가지 못한 나의 무재주에 절망합니다.

    이 의식공황 상태는 꽤 오래갑니다. 모두들 희망을 말하는 새해 아침을 절망스럽게 맞이하여 절망스럽게 1월을 보내고 지옥처럼 2월을 보냅니다. 3월쯤 되어서야 비로소 ‘신춘문예 절망의 늪’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조금 늦은 스물다섯 살에 입대하여 군에서 두 번 연말연시를 보냈습니다. 그때도 신춘문예 작품 응모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보초를 나갔다 온 다음 전우들 모두 잠든 내무반의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다시 한 자 한 자 응모작을 옮겨 적었지요. 그러다 이런저런 눈총도 많이 받았지만 응모만은 20대의 어느 해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연말이 되고 새해 아침이 밝아오면, 또 참으로 절망스러웠지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20대가 가장 꽃 같다고 하는데 저는 신춘문예 때문에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그 시절 매번 한 해를 마감하고 한 해를 새로 시작하는 시기의 절망 때문에 10대나 30대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20대로는 절대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물론 돌아간다면 다시 그때처럼 이 일에만 매달리겠지만, 그때의 절망이 내게는 사무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법 그런 절망으로부터 벗어난 듯 여겨지는 지금도 가을이 되면 ‘새 작품을 준비해야지’ 하고 가슴이 싸해지고, 신문 한귀퉁이에서 신춘문예 공모 사고만 봐도 가슴이 쿵쾅거리고, 영락없이 가을을 앓다가 겨울로 접어듭니다. 심사를 하면서도 내가 응모한 것처럼 가슴이 서늘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 10년 동안의 절망이 내 문학의 거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20대에 잃어버린 10년간의 크리스마스와 새해 아침의 절망이 그나마 내 문학을 지탱해주는 힘이 아닐까 싶은 것입니다. 지난해 인터넷 동아일보 신춘문예 사이트에서 이런 글 하나를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의 소설이 최악의 혹평을 받고 미국 사회에서 매장되었을 때 쓰여졌다. 그 어떤 출판사도 ‘노인과 바다’를 출간하려 하지 않았고 ‘노인과 바다’를 출간하기로 결정한 출판사는 회사의 사활을 걸어야 했다. 책이 실패하면 출판사는 문을 닫고 직원들은 해고돼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공격으로부터 헤밍웨이를 지켜줄 명망 있는 사람의 서문이 필요했다.

    ‘노인과 바다’의 교정쇄를 읽어본 뒤 서문을 쓰겠다고 나선 사람이 작가 제임스 미치너이다. 미치너는 “헤밍웨이는 최고다. 그런 것이라면 내가 써주겠다”고 나섰고, 어렵게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미국 대륙은 물론 유럽까지 휩쓸었으며 결국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었다.

    제임스 미치너가 ‘노인과 바다’의 교정쇄를 처음으로 읽어본 곳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한국의 어느 산골, 멀리서 포성이 들려오는 참호 안이었다.]



    저 옛날 저처럼 지난해에도 당선 통지를 받지 못해 낙담하는 친구에게 다른 친구가 올려준 글인데, 글을 쓰는 자에겐 저마다의 앉은 자리가 바로 참호 아니겠는가 싶은 거지요. 아니, 문학뿐 아니라 우리가 일하고 있는 저마다의 자리가 바로 자신의 현재를 지키고 미래의 꿈과 이상과 희망을 지키는 참호가 아니겠는지요.

    새해, 모두들 보다 희망차길 바랍니다.그 희망의 기운을 예전의 저처럼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하여,근하을유(謹賀乙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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