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호

‘부시 2기’ 중동 군사력 기상도

핵탄두 300여개, 제공권 장악… 이스라엘, ‘이슬람 연합군’ 압도

  • 글: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입력2004-12-27 16: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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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은 거대한 군영(軍營)이다. 재래식에서 최첨단에 이르는 갖가지 무기가 적진을 겨누고 있다.
    • 국가 예산과 국내총생산 대비 국방비 지출규모도 어마어마하다. 군사적 긴장의 두 축은 이스라엘과 이슬람 국가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중동의 군사력 균형을 붕괴시켰다.
    • ‘이슬람 연합군’은 이스라엘 한 나라를 상대로전쟁을 벌여도 승산이 없다.
    ‘부시 2기’ 중동 군사력 기상도

    이스라엘은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 몰락 후 군사력 면에서 중동지역 최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사진은 이스라엘군의 장갑차 부대.

    사담 후세인정권이 몰락하고 이라크에 친미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라크는 이스라엘의 위협국가 명단에서 사라졌다. 이로써 중동의 군사적 균형은 깨지고 이스라엘에 매우 유리한 환경으로 바뀌었다. 한마디로 군사적 불균형이다. 이라크는 1973년 아랍국들이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 벌어졌던 욤 키푸르전쟁 때 병력을 파견했고,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을 사정권 안에 두는 미사일을 보유한 유일한 중동국가였다. 실제로 1991년 걸프전쟁 때는 이스라엘을 향해 스커드 미사일을 쏴올리기도 했다.

    2003년 3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 이스라엘 동부전선에 자리잡은 시리아와 요르단, 그리고 이라크의 병력 규모를 합치면 이스라엘보다 훨씬 컸다. 1990년대 이스라엘 군부는 동부전선에서 아랍연합군과 이스라엘군이 정규전을 벌일 경우, 군사력의 양적 측면에서 이스라엘이 열세에 놓인다고 판단했다. 아랍연합군이 39개 사단을 동원할 수 있었던 데 비해 이스라엘군은 16개 사단을 동원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아랍연합군이 대포 수에서는 3배, 탱크 수에선 2배 앞섰다. 전투기, 전투헬기도 아랍연합군이 이스라엘군을 압도했다. 이런 양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이스라엘군은 전투력의 질적 우세를 유지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후세인 정권이 몰락한 지금, 이스라엘은 양적인 면에서도 동부전선을 그리 걱정하지 않게 됐다. 시리아와 요르단이 동원할 수 있는 사단 규모는 16개. 이는 이스라엘군 동원규모와 같다. 대포 수는 시리아와 요르단을 합치면 이스라엘보다 많지만, 탱크 전투기 전투헬기는 엇비슷한 규모다. 후세인 몰락으로 이스라엘은 양적인 전투력에서 균형을 이루면서, 질적으로는 우세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를테면 이스라엘 탱크의 주력인 1790대의 머카바스(Merkavas)는 중동의 지형에 알맞게 설계된 것이다. 머카바스는 현재 이스라엘 인접국들이 보유한 어떤 탱크라도 압도할 만한 위력을 지녔다. 한 가지 예외는 미국산 에이브럼스 M1A1인데 이집트는 에이브럼스 MIAI을 550대 보유하고 있다. 이스라엘 군부는 장기적으로 머카바스 탱크 의존도를 크게 낮춰가면서 에이브럼스 M1A1의 후속 모델인 M1A2를 미 해외군사원조법 규정에 따라 무상으로 들여오는 방안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스라엘과 아랍국 사이의 군사적 균형은 이미 1990년대 초에 깨졌다.



    그 요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걸프전쟁으로 이라크의 군사력이 위축됐고, 다른 하나는 소련의 붕괴로 아랍국의 주요 군사물자 공급원이 끊긴 것이다. 소련은 동서냉전 구도 아래서 우방을 확보한다는 전략적 목표를 세우고 1980년대까지 아랍국들에 막대한 군사물자를 댔다. 그러한 소련이 무너짐으로써 러시아와 아랍국의 군사적 관계는 일반적 상거래(무기 수출입)로 변질됐다.

    무기 수출은 한 국가의 군사력을 측정하는 하나의 잣대다. 이스라엘은 2002년 41억달러에 가까운 무기를 수출, 세계 제3위의 무기 수출국이 됐다(미국이 132억달러로 1위, 러시아가 44억달러로 2위).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국들과 마찬가지로 생화학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공군력과 미사일을 이용, 마음만 먹으면 대량살상무기를 중동지역 어느 국가로든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지구상에서 가장 군사화한 지역

    중동지역은 세 가지 잣대로 볼 때 지구상에서 가장 군사화한 지역이다. 국내총생산(GNP)과 정부총예산(CGE)에서 국방비 지출 비중, 수출입 통계에서 총수입액 가운데 무기수입 비중 등이 그 잣대다. 미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 앤서니 코즈만이 2004년 가을에 펴낸 ‘중동의 군사적 균형’에 따르면, 중동지역 국가 대부분이 엄청난 국방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중동 국가들의 국방비는 평균적으로 GNP의 6.8%, CGE의 21.4%이고, 총수입액 가운데 무기수입 비중은 7.9%에 이른다(1999년 통계).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국방비가 CGE의 43.2%, GNP의 14.9%에 달하고 총수입액 가운데 무기 수입 비중이 27.3%로 가장 높다. 이스라엘 역시 만만치 않다. CGE의 18.5%, GNP의 8.8%가 국방비이고, 무기 수입액 비중은 총수입액의 7.2%다. 가장 흔한 비교 잣대인 GNP 대비 국방비를 살펴보면, 이집트 2.7%, 요르단 9.2%, 시리아 7.0%다(참고로 2003년 한국의 국방예산은 GNP의 3.16%). 이스라엘, 이집트, 요르단이 해마다 미국으로부터 무상으로 건네받는 엄청난 군사원조가 통계에 잡혀 있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3개국의 군비증강 비율은 더욱 높다.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들은 지금껏 6차례 전쟁을 치렀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전쟁, 1956년 이집트 가말 나세르 대통령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선언으로 촉발된 군사적 충돌, 1967년 6일전쟁, 1970년과 1973년의 욤 키푸르전쟁, 1982년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침공이다. 1967년 6일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모셰 다얀 국방장관의 전격전(blitzkrieg)으로 승리했다. 그때만 해도 숙적 이집트와 시리아의 군사력이 이스라엘에 절대 열세인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했다. 그로부터 6년 뒤인 1973년 시리아와 이집트는 이스라엘에 대한 합동 기습공격을 벌였고, 전쟁 초반 이스라엘군은 패전을 거듭해 붕괴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당시 이스라엘 총리 골다 메이어는 군부의 핵무기 사용 검토안에 반대하면서, 비밀리에 미국 워싱턴으로 가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외교안보보좌관에게 매달렸다. 1970년대 미국의 외교정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두 개의 전쟁(욤 키푸르전쟁, 베트남전쟁)에 얽힌 비화를 다룬 키신저의 회고록 ‘위기(Crisis, 2003년판)’에 따르면, 예고도 없이 불쑥 워싱턴에 나타난 메이어 총리는 무려 1시간 동안 닉슨 대통령을 붙들고 눈물로 군사지원을 호소했다.

    그로부터 30년,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 사이엔 군사력 불균형이 커졌다. 욤 키푸르전쟁에서 고전했던 이스라엘은 국방력 강화를 국가 최우선 과제로 삼고 미국의 신무기들을 들여왔다. 한편으로 이스라엘은 미국의 도움을 빌리는 외교전략으로 주변 적성국가들을 중립화했다. 마침내 1979년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의 중재 아래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평화협정을 맺게 되고 이스라엘은 남서부전선(시나이 사막)의 방어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1994년 레바논 후세인 국왕과 맺은 평화협정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집트와 요르단, 두 나라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은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해마다 막대한 양의 경제·군사원조를 받아왔다. 이집트는 해마다 13억달러, 요르단은 1억달러 안팎의 원조를 받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대한 원조에 비하면 휠씬 작다. 이스라엘은 미국으로부터 1980, 90년대에 해마다 18억달러, 1999년엔 18억6000만달러, 2000년 28억2000만달러, 2001년 19억7600만달러 어치의 무기를 무상으로 원조받았다(미 대외원조 규모로 보면 1위는 이스라엘, 2위 이집트).

    이러한 외교전의 승리와 더불어 아랍권의 분열과 전쟁이 이스라엘의 안보환경에 도움이 됐다. 1980년대 8년 동안 치러진 이란-이라크 전쟁이 그 본보기다. 1982년 이스라엘 당시 국방장관 아리엘 샤론(현 총리)이 야세르 아라파트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세력을 소탕한다는 명분 아래 레바논을 침공, 베이루트를 넘본 것도 아랍권의 분열에서 “더 이상 욤 키푸르의 악몽은 없다”는 자신감을 가졌던 데서 비롯됐다.

    시리아, 이스라엘 적수 못 돼

    이라크 후세인 정권 몰락으로 40만 이라크군이 해체된 지금 그나마 아랍 쪽 군사력을 메우고 있는 국가가 시리아다. 그러나 시리아와 이스라엘이 정규전을 펼친다면, 시리아가 이기기는 어렵다. 병력 규모에선 시리아(31만9000명)가 이스라엘(16만7600명)을 앞서지만, 시리아의 무기체계는 1980년대 옛소련과 바르샤바조약기구에 속했던 동구 공산권 국가들로부터 들여온 것이 대부분이라 낡았다. 시리아로선 군 현대화가 시급한 과제지만, 미국이 시리아를 견제하는 상황에서 무기체계를 바꿔 전력을 강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스라엘 야페전략문제센터(텔아비브대 부설)가 펴낸 ‘중동의 군사력 균형 2000∼2001년’ 자료에 따르면, 시리아는 1987년 옛소련으로부터 미그-29기 20대와 MI-25 전투헬기 55대를 구입한 뒤로는 보다 성능이 향상된 전투기를 전혀 사들이지 못했다. 이제는 구식이 돼버린 전투기들뿐이다. 이에 비해 이스라엘은 미국에서 들여온 최신예 F-15와 F-16을 주축으로 전투기 345대를 보유했다. 전체 전투기 가운데 최신예 전투기의 비율이 절반에 이른다. 제공권(制空權)에서 시리아는 이스라엘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이스라엘은 자국이 시리아와 전쟁을 벌일 경우 이집트와 요르단이 중립을 지킬 것인가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한다. 두 나라 국민의 반(反)이스라엘 정서를 정치권에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의 절반이 팔레스타인 난민으로 채워진 요르단에서 반이스라엘 정서가 팽배해 있다. 아랍권의 군사강국 이집트는 이스라엘로서도 부담스런 나라다. 이집트는 미국의 군사원조 덕에 상대적으로 다른 아랍국에 비해 무장력이 강하다. 1980년대 옛소련으로부터 들여온 낡은 무기체계를 그대로 지니고 있지만그 비율은 이집트 전력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3분의 2는 미국 원조로 현대화된 무기체계다. 이스라엘은 그런 점을 걱정한다. 게다가 이집트는 오래 전에 만들어진 소량의 화학무기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시 2기’ 중동 군사력 기상도

    이란의 해변도시 부셰르에 건설된 원자력 발전설비. 이슬람 국가가 보유한 첫 핵발전소로 이스라엘이 주시하고 있다.

    요르단은 미국 군사원조를 바탕으로 군 현대화를 추진하면서 병력을 줄이고 양보다는 질을 추구해왔다. 그렇지만 첨단군사력 부분에서 이스라엘이나 이집트에는 턱없이 못미친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적수가 못 된다.

    시리아의 속국이란 소리를 듣는 레바논도 정규전이란 잣대로 보면, 이스라엘에 그다지 위협이 못 된다. 군사력에 있어 상당 부분 시리아에 의존하는 레바논 정부군은 타국과의 정규전보다는 국내치안 확보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그러나 레바논은 ‘결정적 위협’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스라엘에겐 골칫거리다. 헤즈볼라를 비롯한 반이스라엘-반미 무장조직들이 레바논 남부국경을 따라 길게(7km) 펼쳐진 사바 평원에서 이스라엘을 줄기차게 공격해왔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유혈사태는 중동 군사력의 불균형을 상징한다. 미국의 군사원조로 한층 강화된 이스라엘군은 비무장 팔레스타인 민간인이나 엉성하게 무장한 팔레스타인 무자헤딘들에게 엄청난 희생을 강요했다. 유혈 참극은 언론보도를 타고 아랍국들로 퍼져 반이스라엘, 나아가 반미감정의 씨를 뿌렸다. 주변 아랍국들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유혈투쟁에 직접적인 개입은 삼가고 우회적으로 팔레스타인을 돕고 있다. 즉 시리아와 이란은 레바논 헤즈볼라(Hezbollah), 이스라엘 점령지역 바깥에서 활동하는 하마스(Hamas),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PIJ) 등을 도와 대리전을 치르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로서도 어려움이 없지 않다. 지난 4년간 줄기차게 이어진 팔레스타인 인티파다(intifada, 봉기)의 영향으로 ‘소모적인 비용’이 많이 들었다. 비록 인티파다가 이스라엘 입장에선 ‘저강도 전쟁(low intensity combat)’이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격언이 딱 들어맞는 경우다. 저강도 전쟁에 들어가는 인력관리 등 제반비용에 이스라엘군은 전체예산의 절반 가량을 그리고 현역과 예비역 합쳐 전체 병력의 25%를 투입하고 있다.

    이런 부담을 줄이려 이스라엘 국방부가 세운 것이 ‘켈라(Kela) 2008’이란 이름의 5개년 긴축계획이다. 이에 따르면, 2008년까지 지상군 병력을 20% 감축하기로 돼 있다. 이스라엘 극우 강경파 쪽에선 이 감축계획이 이스라엘군을 약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부정적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이스라엘 핵무기, 불균형의 상징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 사이의 군사적 불균형을 나타내는 지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이스라엘이 지닌 핵무기는 불균형의 단적인 예다. 이스라엘은 이미 1960년대 말 핵무기 개발에 성공, 세계 6대 핵무기 국가다. 500쪽 분량의 ‘이스라엘과 핵폭탄(Israel and The Bomb, 1999년판)’을 쓴 애브너 코언(미 국제안보연구소 연구원)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최대 300개 가량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코언은 유대인 출신이면서도 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사실을 비판적으로 서술, 찬사와 비판을 함께 받았다.

    이스라엘은 2003년 미국제 순항미사일을 개조,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을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능력까지 갖췄다. 이스라엘 정부는 핵무기 보유를 공식적으로 확인한 적이 없다. 이 같은 애매모호한 태도를 가리켜 ‘확인도 부인도 않는다’는 뜻을 지닌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또는 ‘전략적 애매모호(strategic ambiguity)’라 일컫는다.

    이스라엘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피하려고 1968년에 비준된 핵확산금지조약(NPT)에도 가입하지 않은 상태다. 다만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에 가입했을 뿐이다. 필자가 중동 현지 취재 때 텔아비브에서 야페전략문제센터 에프라임 캄 교수(정치학)를 만났을 때 “이스라엘 정부가 핵무기 보유사실을 공식적으로 시인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아주 짧게 대답했다. “이스라엘 국가이익을 위해서”라고.

    미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 구실 가운데 하나가 사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WMD)였다. 그러나 그 뒤 숱한 인력과 예산을 들이고도 WMD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라크 현지 취재과정에서 만난 바그다드대의 하산 알리 사브티 교수(역사학)는 “이스라엘에서 (WMD를) 찾았으면 벌써 찾아냈을 것”이라며 미국의 이중 잣대를 비판했다. 이스라엘은 핵무기 시비가 나올 때마다 “아랍이란 바다 한가운데 작은 섬처럼 고립된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해선 무엇을 못 가지랴”는 논리로 대응했다. 아울러 “이웃 이슬람 국가들은 핵무기는 아니지만 생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대량살상무기라는 점에서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반박했다. 예루살렘에서 만난 바르일란대 제럴드 스타인버그 교수(국제정치학)의 논리는 이러했다.

    “이스라엘은 매우 작은 국가다. 비행기로는 2분, 차로는 1시간 이내에 이스라엘 영토를 가로지를 수 있다. 이스라엘 주변에는 수억 인구가 거주하는 거대한 국가들이 있다. 그 나라들은 엄청난 땅덩이에 수십억 달러의 석유 매출을 자랑한다. 어떻게 이스라엘 같은 작은 나라가 그렇게 많은 국가를 위협할 수 있겠는가.

    억지력(deterrence)이라고 할 만한 무기(핵무기)를 지니고 있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주변 국가들에 의해 파괴되고 말 것이다. 한국 국민이라면 서울이 북한의 공격에 얼마나 위협을 받는지 잘 알 것이다. 우리는 그보다 더욱 취약하다. 남한은 미국의 억지력을 통해 북한의 공격을 막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미군이 주둔하지 않고, 국토도 좁으며, 인구도 적다. 따라서 핵무기를 갖는다는 것에 더욱 설득력이 있다. 이스라엘의 핵무기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그렇다고 위협용으로 제시된 일도 없다. 다만 최후의 수단이자 보험으로서 보유하고 있는 것뿐이다. 아랍국가들이 평화를 원한다면, 이를 계속 보유할 이유가 없다.”

    이란의 핵 보유 야망

    이스라엘의 핵 보유는 중동지역 이슬람 국가들에 핵개발 야망을 부추기는 결정적 요인이다. 이란 핵개발 의혹이 요즘 관심을 끌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사우디는 NPT엔 서명했지만, IAEA엔 가입하지 않았다. NPT 비준국은 당연히 IAEA 회원국이 돼야 하는데 사우디는 가입을 미룬 상태다.

    이스라엘은 사우디가 풍부한 재정을 바탕으로 핵무기를 사들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사우디는 이미 1980년대 중국으로부터 CSS-2 미사일을 사들였다. 이 미사일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주변국들을 사정권 안에 둔다. 사우디는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과 리비아의 핵개발에 재정지원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생화학무기를 보유한 시리아도 이스라엘에 위협적인 존재다. 이스라엘은 시리아가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비밀 우라늄 증폭기술을 지니고 있을 것으로 의심한다. 상당히 수준 높은 미사일 개발기술을 지닌 이집트도 핵무기 보유 야망을 지닌 국가다.

    이슬람 근본주의 게릴라 저항세력과 지루한 내전을 치르고 있는 알제리아 군부도 핵무기 개발 의혹을 사고 있다. 이스라엘 정보부는 알제리아 군부가 사하라 사막에다 비밀리에 대규모 원자로를 설치하고, 그 주변에 튼튼한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해놓았다고 의혹을 제기한다. 이슬람 국가로 나토 회원국인 터키도 핵개발 꿈을 지녔다. 핵개발을 하지 않겠다고 서약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그 서약을 휴짓조각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이즈음 이스라엘이 가장 신경 쓰는 국가는 이란이다. 이스라엘을 사정권 안에 두는 장거리 미사일 샤하브-3(최대 사정거리 2000km)을 보유한 이란은 핵무기 개발의욕으로 말미암아 미국·이스라엘과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NPT 규정을 준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IAEA의 사찰을 피하기 위한 시간벌기용이라는 눈총을 받는다.

    이란의 핵무기 보유 야망은 매우 강하다. 경제적인 제재를 가하겠다는 위협에 맞서 이란 정치지도자나 종교지도자들은 “외부 압력으로 인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핵무기 보유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좋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 일단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다면, 손익계산에서 실보다 득이 많다는 판단이다. 이란을 ‘악의 축’ 국가로 꼽은 미 부시 행정부나 이스라엘이 이란을 만만하게 볼 수 없다는 점, 중동지역에서 군사적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란은 2001년 9·11테러 뒤 국가안보 면에서 위기를 느껴왔다. 동쪽 국경을 접한 아프간이 미국에 점령당한 데 이어 서쪽의 이라크마저 미국이 점령, 동서 양쪽에서 협공당하는 처지라고 여긴다. 그런 안보위기를 핵무기 개발로 돌파한다는 것이 이란의 국가전략으로 풀이된다. 핵무기가 외부의 군사적 위협을 막는 억지력을 지닌다는 고전적 등식이 이란에서도 성립한다는 판단이다.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둔 국제적 분쟁관련 싱크탱크인 국제위기그룹(International Crisis Group, 약칭 ICG)의 로브 말리 소장을 비롯한 국제문제전문가들이 “이란 핵 위기를 푸는 길은 미국이 이란에 안보위협이 없다는 점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라고 제안한 것도 이란의 안보위기 의식에 초점을 맞춘 얘기다.

    이란은 이라크와 북한을 거울 삼은 듯하다. 후세인은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이라크가 핵무기를 보유했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기 전인 1990년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그리고 그 뒤 혹독한 무기사찰을 당했다. 따라서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은 후세인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았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라는 풀이가 가능하다. 이란은 이를 후세인의 결정적 실수라고 여긴다.

    현재 이란의 목표는 북한의 예처럼 국제사회가 “이란이 이미 핵무기를 개발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리도록 하는 데 있다. 실제로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군사 퍼레이드를 하며 핵무기 보유사실을 선전할 필요가 없다. 진짜(real) 핵무기 보유보다는 북한처럼 사실상의(virtual) 핵무기 보유국가로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초점은 과연 미국이 공습을 포함한 무력 사용으로 이란의 핵개발을 막으려들 것인지에 모아진다. 공군 대령 출신으로 미 국립전쟁대학 교수인 샘 가디너는 이와 관련한 모의실험(simulation)을 한 결과, “이란에 대한 군사력 사용은 매우 어렵고, 아주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란 결론을 내렸다. “이란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선택 폭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 이라크에서 미군이 고전하고 있어 안 그래도 머리가 아픈 펜타곤(미 국방부) 지휘부다. 그런 상황에서 이라크보다 훨씬 덩치 큰 이란을 상대로 제한적인 공습이든 정규전이든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가디너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전 바그다드 점령 뒤 일어날 사태에 대한 모의실험 결과, 요즘 미군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정확히 짚어냈다).

    미 공군도 가상 모의전쟁 결과 “이란 공습은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로서는 IAEA로 하여금 이란에 대한 핵사찰 압력을 계속 가하고 유엔 안보리로 안건을 넘기는 것이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결의한다는 것도 간단하지 않다. 세계 석유시장에서 이란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자칫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큰 탓이다. 최근의 유가상승으로 이란은 가만히 앉아서 200억달러의 추가이익을 올렸다. 이란이 국제유가를 더 높이려 든다면,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은 물론 세계경제마저 휘청거릴 수도 있다.

    이스라엘, 이란 공습할까

    이란은 지금 부셰르 원자로를 거의 다 지은 상태다. 만일 이란과 러시아가 처음에 합의한 대로 러시아 쪽에서 원자로를 움직일 연료를 대준다면, 이스라엘이 공습에 나설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스라엘은 이미 1981년 미국이 무상으로 원조해준 F-15, F-16 전투기를 동원, 이라크 오시라크 원자로를 공습한 역사적 전례가 있다. 1970년대 후세인은 프랑스 정부를 설득, 프랑스 핵개발 모델에 따라 바그다드 가까운 곳에 수십억 달러를 들여 40메가와트 규모의 오시라크 원자로를 세웠다. 그러나 레이더를 피해 낮은 고도로 1100km를 날아온 이스라엘 F-15, F-16 전투기의 기습공격을 받아 불과 80초 만에 파괴됐다.

    24년 전 이라크에서처럼 이스라엘이 이란을 겨냥한 공습을 감행할 경우, 이란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관심사다. 이란이 최신형 중거리 미사일 샤하브-3의 사(射)거리가 2000km에 이른다고 발표한 것도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용 성격이 짙다. 이 미사일은 북한 노동미사일 제조기술을 수입, 여기에 러시아의 정밀발사 기술을 덧붙여 개량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공습을 한다면, 이란은 샤하브-3 미사일로 보복공격에 나설 것이다.

    지금껏 이 글에서 살펴보았듯, 지구촌의 화약고 중동은 국력을 쏟아 붓는 군비경쟁 속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과 같다. 큰 그림으로 보면, 그 긴장의 중심에 이스라엘의 핵무기가 있고, 이에 맞선 중동 이슬람 국가들의 핵개발 야망이 이글거리는 모습이다. 결국 초점은 이스라엘이다. 주변 이슬람 국가들의 핵개발 야망을 누그러뜨리려면, 이스라엘이 먼저 핵을 폐기하는 것이 바람직한 해결책이라는 지적이 이어졌지만, 어디까지나 이상론에 지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핵을 포기할 확률은 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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