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호

제1부 - 격동기 민초들의 일상과 죽음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 편집기획·진행: 황일도

    입력2004-12-28 16: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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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생활의 단면이 담긴 사진들을 제1부에 담았다. 도회의 모습을 담은 것도 있고 농촌의 풍경을 담은 것도 있지만,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어느 쪽이든 일상에는 큰 차이가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사진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관청으로 출근하는 관리나 돈푼깨나 있어 보이는 양반도 등장하지만 대개는 가난한 민초들의 일상이다. 몇몇 사진의 주인공이 여자와 아이들이라는 점도 재미있다. 전통사회에서 남녀와 장유(長幼)의 구별이 엄격했던 사실에 비추어보면, 특히 집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상생활의 편린을 엿볼 수 있는 진귀한 사진이 적지 않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짓거나 청소와 빨래, 절구질이나 다듬이질, 물 긷기 등의 집안일은 모두 여자들 몫이었다. 어른을 모시고 아이를 기르며 손님도 대접하고, 철 따라 명절이나 제사준비도 해야 했다. 그렇다고 베를 짜거나 농사 짓는 일을 게을리할 수도 없었다. 양반댁이야 조금 덜했겠지만 여자들의 하루하루는 몸이 견뎌내기 어려울 정도로 노동의 연속이었다. 다듬이질을 하는 어린 여자아이에서부터 물동이를 이거나 절구질을 하거나 요강을 닦는 아낙에 이르기까지 여인들을 담아낸 사진에서 그러한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여자들은 외출할 때 장옷을 입거나 삿갓을 써야 했다. 장에 다녀오는 정도의 멀지 않은 나들잇길에도 장옷을 걸쳤다.

    아이들이 연날리기와 비석치기(혹은 돈치기를 하는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를 하는 사진도 있는데, 일부는 이미 공개된 것이다. 사진 자체는 실내에서 연출된 것으로 보인다. 사내아이들은 서당에 나가 공부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집안일을 도와야 했고, 가난한 집 아이들은 장에 나가 장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디나 남자들의 삶이 비슷하기 때문일까. 성인남성의 일상을 보여주는 사진은 그리 많지 않다. 관리는 아침에 조복을 입고 남여(籃輿)를 타고 등청한다. 한량들이 활터에 나가 활 솜씨를 뽐내거나 기생집에 앉아 술이며 음식을 먹고 마시는 모습도 카메라에 담겼다. 반면 민초들은 먹고살기에 바빴다. 농사짓는 일에 매달려 한 해를 보냈다. 소를 돌보아야 했고, 땔감을 구해 장작도 패야 했다. 장에 나갔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 막걸리 한 사발 마시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으리라.

    삶을 살아가며 반드시 맞이하는 관혼상제는 중요한 행사였다. 어쩌다가 세금을 내지 못하거나 이웃과 다툼이 커지면 관아에 끌려가는 일도 있고, 일이 잘못 풀려 볼기를 맞는 일도 있었다. 대부분의 민초는 평생 그럴 일이 없었겠지만, 무거운 죄를 지어 칼을 쓰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지방관이 맡고 있던 재판권은 갑오경장 이후 제도적으론 재판소로 이관되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지방 관리들이 행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네에 일본인이 하나 둘씩 나타나고, 생전 처음 보는 큰 코와 흰 피부의 서양 선교사들이 지나가 주민들을 놀래키기도 했다. 1900년대 후반에는, 왜적을 쫓아내려고 봉기한 의병들이 마을에 머무른 뒤 일본군이 들어와 죄없는 민초들을 죽이고 불을 질러 마을을 피폐하게 만들곤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100년 전 민초들의 일상은 사실상 그 이전 수백 년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근대문물이 평민들의 일상생활에 파고들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들은 선대가 살아온 대로 살다 갔지만, 사진 속 아이들은 그렇듯 나른하게 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뒤 불과 몇십 년 동안 한반도에 찾아든 변화는 몇백 년 계속되어온 생활의 근간을 격렬하게 흔들었기 때문이다. 비록 사진 속 아이들은 그러한 미래를 짐작할 수 없었을 테지만 말이다.

    제1부 - 격동기 민초들의 일상과 죽음

    <b>칼을 쓴 죄수 </b> 칼은 중죄를 지은 죄수의 목에 씌우는 형구로 마른 나무널조각으로 만들었다. 칼을 쓰면 죄수는 보행이 불가능한데 원칙적으로 양반에게는 칼을 씌우지 않았다. 사진의 죄수들은 동학농민군이라는 설명도 있는데, 의병들이었을지 모르겠다.

    제1부 - 격동기 민초들의 일상과 죽음

    <b>태형(笞刑) </b>길이 1m 정도의 곤장으로 볼기를 치는 형벌. 가벼운 죄를 처벌하는 것으로, 삼국시대부터 일제 초기까지 존속되다가 3·1운동 직후인 1920년 완전히 폐지되었다. 태 10부터 여러 등급이 있었고, 속형(贖刑)이 허락되어 주로 가난한 민초들에게 집행되었다.

    제1부 - 격동기 민초들의 일상과 죽음

    <b>교수형 </b>교수형은 중죄인의 목을 형구로 옭아매어 죽이는 형벌이다. 사진에서 교수형을 당한 사람들은 의병이 아닐까 추측된다. 1910년 전후 10여명이 공개적으로 교수형을 당할 만한 사안은 일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한 의병 외에는 달리 없었다.



    제1부 - 격동기 민초들의 일상과 죽음

    <b>죄수와 하인 </b>간략한 사진 설명에는 ‘죄수’라고만 되어 있는데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혹 귀양살이하는 양반 죄인이 하인을 데리고 가는 광경일 수도 있겠지만, 옆의 담장으로 미루어 시골풍경은 아니다.



    제1부 - 격동기 민초들의 일상과 죽음

    <b>소 발굽 갈기 </b>소를 이용한 농경은 삼국시대부터 시작됐다. 온순하고 인내심이 강한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짓게 된 것은 농업기술 발달에 획기적인 일이었다. 소를 쓸모 있게 활용하려면 굽갈이는 필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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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등청하는 관리 </b>조복을 갖춰 입은 관리가 의자처럼 생긴 남여(籃輿)를 타고 관청에 출근하고 있다. 뒤에는 서류를 넣은 궤를 짊어진 하인이 따른다. 사진을 찍는 모습이 오히려 구경거리였던 듯 집안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

    제1부 - 격동기 민초들의 일상과 죽음

    <b>담장 공사 </b> 세 명의 인부가 담장을 쌓고 있다. 나무틀에 돌과 진흙을 개어 넣어 토담을 쌓는 광경이다. 나무틀 안에서 흙을 밟아 다지는 인부가 흙을 쏟아 붓는 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제1부 - 격동기 민초들의 일상과 죽음

    <b>활터 </b>활터에 나가 활 쏘는 일은 한량들의 스포츠였다. 멀리 있는 과녁을 겨누어 막 활을 당기고 난 모습이다. 몇 사람은 아직 시위에서 화살이 떠나지 않았다. 시합을 마친 뒤엔 술 한잔씩 마시고 헤어졌을 것이다.

    제1부 - 격동기 민초들의 일상과 죽음

    <b>마구간 </b>말들이 먹이를 먹고 있다. 말은 주로 군용(軍用)이나 역마(驛馬)로 사용되었지만 일반에서는 타고 다니거나 수레를 끌게 하고 농사에도 동원했다. 값이 비싸 농가에서 기르기는 쉽지 않았다. 사진은 말을 길러 삯짐을 실어 나르던 곳의 마구간일 것이다.

    제1부 - 격동기 민초들의 일상과 죽음

    <b>장례식 </b>장례 행렬을 구경하는 사람들. 권세 있는 개성 상인이 세상을 떠난 듯 상점가 깃발이 펄럭인다. 지붕에 올라앉은 아이들에게는 좋은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제1부 - 격동기 민초들의 일상과 죽음

    <b>다듬이질 </b>여자아이 둘이 다듬잇돌에 세탁된 옷감을 놓고 방망이로 두들겨 다듬고 있다. 옆에서 동생들이 구경을 한다. 옷 손질과 바느질은 여성들의 일상이었다. 두 사람이 네 개의 방망이로 다듬이질을 하는 리듬감 있는 소리는 이제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제1부 - 격동기 민초들의 일상과 죽음

    <b>연날리기 </b>네 아이가 연 날릴 준비를 하고 있지만 시선이나 표정이 부자연스럽다. 이미 1890년대 초부터 널리 퍼진 연출기법에 따른 사진이다. 한 아이는 얼레에 연줄을 감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종이에 대오리를 붙이고 실을 매어서 공중에 날리는 연 놀이는 당시 어린이에겐 최고의 겨울 스포츠였다.

    제1부 - 격동기 민초들의 일상과 죽음

    <b>비석치기 </b>비석치기는 돌만 있으면 할 수 있는 놀이다. 선을 긋고 비석이라 부르는 작은 장방형의 돌을 세워두고, 조금 떨어져서 자기의 비석을 던져 상대의 비석을 쓰러뜨리는 방식이다. 여러 명이 모이면 패를 나누어 놀 수도 있었다. 이 또한 연출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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