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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작가 김은국의 행적을 찾아서

매사추세츠 시골마을서 암 투병중… 그러나 불꽃처럼 타오르는 예술혼

  • 김욱동 서강대 교수·영어영문학, 문학비평가

‘순교자’작가 김은국의 행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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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작가 김은국의 행적을 찾아서

처녀작 ‘순교자’가 베스트셀러가 된 직후인 1964년 찍은 김은국 부부의 사진.

김은국의 행방을 찾아내기로 결심한 2004년 가을, 필자가 생각한 첫 번째 접근방법은 그의 부친을 경유하는 것이었다. 한 국내 연구자가 쓴 논문에 따르면 그의 부친 ‘김창도’는 일본 식민지시대 독립군으로 활동한 애국지사로 1994년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인물이다. 당연히 그의 유족에 관한 기록도 관계기관에 남아 있을 터. 이를 통해 김은국 본인과 연결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고, 최소한 그의 친형제와 연결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첫 시도는 어이없게 좌절됐다. 그의 부친에 관한 이야기 자체가 사실과 달랐던 것이다. 국가보훈처 자료를 살펴보면 애국지사 ‘김창도(金昌道)’는 평안남도 대동 출신으로 3·1운동에 참여한 뒤 만주로 망명하여 홍범도 장군과 이청천 장군 휘하에서 활약했다. 김은국의 부친과는 고향부터 달랐다. 결정적으로 김창도 옹의 외아들인 김원진씨는 현재 충청북도 청주에서 식료품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김은국과는 도무지 연결될 수 없는 고리였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필자가 김은국의 소재와 근황을 찾기 위해 다음으로 접근한 경로는 로스앤젤레스에 본부를 둔 ‘미주한국문인협회’였다. 마침 2004년 겨울방학을 맞아 미국에 잠시 머무를 계획도 있었기에 적극적으로 협회와 접촉했다. 1982년 9월 창립된 이 협회는 한국에서 문인으로 활약하다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만든 단체로 박남수, 고원, 권태응, 송상옥, 마종기 등의 문인이 주축이 되어 운영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이미 작고했고 현재는 송상옥씨가 회장을 맡고 있으며, 230여명이 정식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이 협회의 연혁을 보면 김은국은 1984년에 협회가 주관한 제2차 범세계한국예술인대회에 참석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때 함께 참석한 사람은 서정주, 김춘수, 전숙희, 이해랑, 김윤성씨 등 잘 알려진 문인들이었다. 1986년에는 일본 도쿄에서 제3차 범세계한국예술인대회가 열렸는데 김은국은 이때도 송상옥, 김송희씨 등과 함께 참가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이후 김은국은 미주한국문입협회와 이렇다 할 관계를 맺지 않았다. 1990년대 이후 국내에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던 것과 시기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행방을 쫓을 만한 단서도 구할 수 없었다. 회원명단에는 올라 있지만 실제활동은 거의 하지 않아 다른 회원들과는 달리 주소나 전화번호조차 적혀 있지 않았다. 협회 사무실에 몇 차례나 문의해보았지만 매번 그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난감한 노릇이었다.



장시간 통화도 어려울 만큼 쇠약

한국과 미국의 두 가지 근거에서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한 필자는 결국 인터넷의 힘을 빌리기로 마음먹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의 소재를 찾아주는 유료 검색 웹사이트가 그것이었다. 화면을 열자 이름과 생년월일, 살고 있는 도시를 입력하도록 되어 있었다. 김은국의 미국명인 ‘Richard E. Kim’을 입력했더니 무려 100여명에 이르는 사람이 명단에 올라왔다. 아직 좌절할 때는 아니었다. 국내에 알려진 그의 생년월일이 맞다면, 그의 소재가 이 웹사이트에 올라 있다면 후보를 줄여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생년월일을 치자 이번에는 일곱 사람으로 줄어들었다. 명단을 꼼꼼히 살펴보니 주소가 같은 것으로 보아 그 몇 사람도 결국은 동일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비용을 결제하고 확인한 이 ‘Richard E. Kim’의 거주지는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조그마한 시골마을이었다. 화면을 확인하는 순간 허탈한 느낌이 온몸을 파고들었다. 인터넷으로 이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을 그동안 그렇게 안달복달했다는 말인가.

물론 ‘Kim’이라는 성이 한국계와 중국계에 상당히 흔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매사추세츠의 리처드 킴’이 김은국과 생년월일까지 같은 동명이인일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방법은 확인뿐. 주소와 함께 알아낸 전화번호를 돌렸다. 계속 울리는 신호. 그러나 아무도 받지 않았다.

시간대를 달리해서 몇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한 번도 통화를 할 수 없었다. 발신자 번호를 확인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좀처럼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었지만 필자가 머물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와 매사추세츠는 그리 가깝지 않았다.

계속 연결을 시도하던 지난 1월25일 오후 2시 무렵, 드디어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혹시 김은국 선생님이 아니냐”고 묻자 “맞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마침내 찾았다는 기쁨을 느낄 수는 없었다. 가까스로 통화가 되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통화를 오래 할 수 없을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 전화를 잘 받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문제의 시골마을은 매사추세츠의 주도(州都) 스프링필드에서 30여마일 떨어진 곳으로 매사추세츠대학이 위치한 앰허스트에서 그다지 멀지 않다. 그렇다면 그는 결국 1964년부터 1980년대 초까지 창작을 강의해 온 매사추세츠대 근교를 떠나지 않고 계속 살아온 셈이다. 물론 뉴욕주의 시러큐스대와 캘리포니아주의 샌디에이고주립대, 그리고 풀브라이트 교환교수 자격으로 2년 남짓 한국에 머물던 때를 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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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동 서강대 교수·영어영문학, 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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