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호

한미연합사, 북한 유사시 대비 ‘작전계획 5029-05’ 추진

‘북한붕괴 유도책’ 논란… 정부, 뒤늦은 혼선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5-03-23 14: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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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연합사, 북한 유사시 대비 ‘작전계획 5029-05’ 추진
    2004년 12월 서울 용산의 한미연합사령부. 연합사 수뇌부와 기획참모부, 작전참모부 등을 비롯한 핵심부서 관계자들, 대한민국 합동참모부 관계자들, 전직 주한미군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인사들이 모두 자리를 함께했고 미국에서 날아온 고위 인사들도 참석했지만, 회의 개최 사실조차도 일절 알려지지 않았을 정도로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이날 회의의 핵심의제 가운데 하나는 연합사가 2005년 내 완성을 목표로 작성하고 있던 ‘연합작전계획 5029-05’. 그간 한국군과 미군 사이에 수 차례 오간 협의내용을 검토하는 자리였다.

    ‘작전계획(OPLAN·Operation Plan)’이란 특정한 상황에 대비해 군이 어떻게 작전을 전개해나갈지 사전에 수립해두는 계획으로, 구체적인 부대운용과 시간계획이 모두 포함된다. 이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를 가정해 1974년 처음 작성된 연합작계 5027. 한반도 유사시 한국방어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고 있는 한미연합사가 작성한 것이다.

    한반도에 적용되는 미군의 작전계획은 모두 태평양사령부 관할구역을 의미하는 ‘50’이라는 번호로 시작된다. 중부사령부 관할지역인 중동의 작계는 ‘10’, 남부사령부 관할지역인 남미의 경우에는 ‘60’으로 시작하는 식이다. 네 자릿 수로 된 작전계획 번호 뒤에 하이픈으로 연결된 두 자리 숫자는 해당 작계가 작성·수정된 연도를 가리킨다.

    한반도와 관련된 미군의 계획 중에는 5027 이외에도 북한의 핵시설을 정밀 공습하는 방안을 담고 있는 5026, 전면전이 아닌 우발적인 상황을 담고 있는 5028, 북한을 자극해 군사자산을 소진케 하는 5030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2003년 7월21일자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 기사에 따르면, 한미연합사가 아니라 미 태평양사령부의 독자적인 계획인 5030은 작성되기는 했지만 백악관의 최종승인은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작전계획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신동아’ 2003년 9월호 ‘美, 대북군사전략 바꿨다’ 기사 참조).



    주한미군의 전현직 고위 간부들이 검토회의를 열었다고 서두에서 설명한 작계 5029는 정권 붕괴 등 북한의 상황이 급변하는 경우를 상정해 수립이 추진된 계획이다. 이 계획은 지난 1999년 작전계획이 아닌 ‘개념계획(CONPLAN·Concept Plan)’의 형태로 처음 작성된 바 있다. 이 개념계획의 내용에 대해서는 미국의 군사전문사이트 글로벌시큐리티(GlobalSecurity.org)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개념계획이란 ‘특정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대략 이러한 원칙과 방향으로 대응한다’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작전계획보다 훨씬 분량이 작고 내용이 간략하다. 쉽게 말해 개념계획에는 특정한 상황에 대해 어떤 부대가 어떤 군사자산을 이용해 대응할 것인지, 이러한 작전은 언제까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 것인지 등의 세부내용은 담겨 있지 않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적용한다. 반면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작전계획에는 동원될 부대와 무기체계, 인원, 진행경로, 시간별 진행상황 등이 상세하게 담긴다.

    1999년 개념계획, 2005년 작전계획

    한미연합사가 2004년 한 해 동안 조용히 진행해온 작업은 1999년 작성된 개념계획 5029를 연합작전계획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CONPLAN 5029-99를 OPLAN 5029-05로 바꾸는 것. 유사시 한미 양국군이 함께 투입되는 것인 만큼, 작전계획을 수립하려면 한국군과 미군에서 동원할 수 있는 병력, 무기, 병참 등 군사자산을 모두 검토해야 한다. 또한 이 가운데 어떤 부대와 무기를 어떤 단계에서 어느 작전에 투입할지도 미리 결정해야 한다. 북한에서 특정한 상황이 발생해 정권이 붕괴하거나 불안정한 상황이 벌어지면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군과 미군이 어떠한 군사조치를 취해나갈지 구체화하는 것이다.

    주한미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연합사가 이러한 작업을 진행한 근거는 한미 양국의 합참의장이 매년 만나 주요의제를 토의하는 최고 군사회의인 한미군사위원회(MCM·Military Committee Meeting)의 2003년 합의내용인 것으로 전해졌다. 2003년 11월15일 한국 국방부 신청사에서 열린 25차 MCM의 합의사항 가운데 ‘개념계획인 5029-99를 변화된 환경에 맞게 향후 1년간 구체적인 수단이 포함된 연합작계로 발전시켜나간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측의 제안으로 이뤄진 이 합의는 한미 양국이 이미 수립되어 있던 작계 5027을 상황에 맞게 수정하기로 한 결정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2000년 부시 대통령이 당선됨에 따라 강화된 대북압박 노선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에 따라 전면전에 대비한 작계 5027이 한층 강화된 5027-04로 ‘업그레이드’된 바 있다.

    작전계획 수립의 한국측 파트너는 합참이었다. 연합사의 작전계획이 한미 양국의 군사자산을 모두 활용하는 만큼, 작성중인 연합작계의 내용 가운데 한국군의 능력이나 한계를 넘어서는 부분이 있다고 판단되면 작계에 의견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합참의 협조는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양국 군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2004년 한 해 동안 워게임(War Game)을 포함해 여러 차례 합동회의가 열렸고 연합사가 작성한 초안 역시 수 차례 교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단순한 유사시 대비가 아니다”

    유사시 한반도 안보를 책임져야 하는 군이 북한의 급변에 대비한 계획을 세웠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앞서 설명했듯 연합사는 1999년에 이미 이에 관한 개념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당시 한미연합사 사령관이던 존 틸럴리 대장은 기자회견에서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그러한 계획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니냐”며 굳이 개념계획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합사, 그 가운데서도 미군측이 작성한 초안에 대해, 일부 관계자들은 이 ‘당연한 작업’에 ‘당연하지 않은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반응을 보인다. 지금까지 작성된 ‘연합작계 5029-05’ 초안은 단순히 유사시에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급변을 증폭시키거나 유도할 수 있는 여지를 담고 있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인 군사전문사이트 등을 통해 알려진 개념계획 5029-99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사태의 ‘원인’을 언급하지 않았다. 대량탈북자 발생,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대량살상무기의 해외유출 위험 같은 특정한 ‘상황’만을 규정해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왜 그런 일이 발생하는지는 따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미군측의 작전계획 5029-05 초안에는 평양에서의 특이징후 같은 원인까지 기술돼 있어 그러한 원인요소가 발생하는 즉시 군사적인 조치를 전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설명이다(‘원인요소’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한반도 정세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이상의 이야기를 종합해볼 때 작계 5029-05가 초안대로 완성되어 적용되는 경우 다음과 같은 상황전개를 유추해볼 수 있다. 이미 알려져 있는 개념계획 5029-99의 내용에 비추어보면, 북한에서 정변이 일어나는 등 높은 수준의 급변징후가 발생할 경우 한미 양국군에는 데프콘(Defense Readiness Condition·방어준비태세) 3가 발령된다.

    데프콘 3 상황에서는 이후 벌어질 수 있는 위험상황을 사전에 억제하기 위해 경제봉쇄 조치를 취하거나 외교적 압력을 가하고 감시와 정찰용 전력을 증가시키는 등의 신속억제방안(FDO·Flexible Deterrence Option)을 가동하게 된다고 미국의 공개자료들은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미 국방부의 FDO에는 대략 150개 항목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군사기밀이므로 밝힐 수 없지만, 미군 관계자들은 작계 5029-05 전개방안에 세부내역이 포함될 것이라고 전했다.

    북한에서 중대한 이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일정 정도의 혼란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북한 내부에서 이를 자체적으로 안정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한미 양국군이 앞서 가정한 것처럼 대응해 군사적 긴장감이 증가한다면 북한 내부의 상황이 악화되거나 혹은 북한이 군사적으로 대응하고 나섬으로써 충돌이 발생할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 일각의 우려다. 심지어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조차도 데프콘4를 유지했던 것 또한 이러한 우려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의 관계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북한에서 이상사태가 벌어진다 해도 과연 연합사 혹은 미군이 이에 개입할 근거가 있느냐는 점이다. 북한의 비상사태로 대량 탈북자가 발생해 휴전선 이남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경우 한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주한미군 부대가 대응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내부정변 같은 초기상황에 대해 연합작계를 가동하거나 휴전선 이북에서 발생한 상황에 연합사와 주한미군이 개입할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주한미군의 주둔 근거를 ‘한국 방어’에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북한을 자극해 군사적 자산을 소진케 하는 미군의 작계 5030 같은 경우에는 연합사가 아니라 미 태평양사령부의 작전계획으로 입안되었다. 다시 말해 전시가 아닌 상황에서 이뤄지는 작전이므로 한미연합사는 개입하지 않는다. 이 또한 연합사가 평시의 북한상황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에 이뤄진 결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작계 5029-05 미국측 초안내용이 이 같은 제도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일부 미군 관계자들도 수긍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두에서 설명한 연합사 검토회의에서 한 전직 주한미군 고위관계자는 이 문제를 강하게 지적하며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직 연합사 및 주한미군 관계자들은 이러한 지적에 매우 당혹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한편 이 문제는 3월8월 노무현 대통령이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연설을 통해 우려를 표시한 바 있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도 연관될 수 있다. 한미간의 협의를 통해 주한미군의 역할과 목적이 재조정될 경우 앞서 설명한 ‘근거부족’ 문제가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방어’로 한정되어 있는 미군의 전략적 역할이 ‘역내의 안정 유지’ 등으로 ‘유연하게’ 확대될 경우 북한의 급변과 같은 비상사태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가능하다.

    한국 정부는 뒤늦게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연합사의 작계 작성작업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정부 일각에서는 이미 지난해 가을부터 이 부분에 대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왔지만, 정작 NSC 사무처 등 담당부서가 문제를 인식하고 논의에 나선 것은 연말에 이르러서였다고 한다. NSC는 1월 초순 상임위원회를 소집해 현재 진행중인 작계 5029-05 작성 관련사안을 의논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계자들은 “사실상 작성을 무기한 유보하는 방안을 의결했다”고 전했지만, NSC와 국방부측은 “단순히 (논의되고 있는 작계의 내용에) 조정이 필요하다는 결론”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의결사항은 곧 주한미군 수뇌부에 전달되었고, 미군측은 이에 대해 즉각 강한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3년 MCM에서 합의한 사항에 대해 이제 와서 제동을 거는 것은 외교적 결례라는 논리다.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작계작성 중단’을 결정해 통보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보면 5029-05 준비작업이 중단되거나 마련된 초안이 폐기된 것이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남은 것 또한 한미관계를 의식한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이미 2004년 합의되어 추진중이던 작성작업에 대해 NSC 등 청와대 주무부서의 상황파악이 늦어진 이유에 대해, NSC 관계자들은 2월 초순 “그 동안 진행중인 작계 작성작업에 대해 연합사나 합참으로부터 구체적인 보고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1년여 동안 문제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한 NSC 관계자는 “군이 미군측의 밀어붙이기에 끌려가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고 말했다.

    반면 이에 대해 일부 군 관계자들은 “MCM은 청와대로부터 미리 의제를 검토받고 지침을 하달받는다. 물론 합의내용에 대해서도 보고서가 올라갔다”며 “이제 와서 NSC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자신들의 검토 부족 혹은 실책을 군에 떠넘기려는 것 아니냐는 곱지않은 반응이다.

    연합작계가 수립되지 않을 경우 미국은 태평양사령부 작전계획 등의 형태로 독자적인 북한 급변 대응계획을 수립할 공산이 큰데, 이렇게 되면 우리측의 의견이 반영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강도 높은 작계가 작성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있다. 굳이 방안 자체를 전면폐기하기보다는 작전계획 가동에 많은 전제조건을 두고 가동범위를 최소화함으로써 미국측 초안에 담겨 있는 위험요소를 가능한 한 줄여나가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5027-04 작성과정에서도 미국측 초안에 담겨 있던 공격적 요소가 협의과정에서 상당히 줄어든 전례가 있다는 설명이다. 국방부측은 이번 5029-05 작성과정에서 불거진 논란 역시 큰 틀에서 보면 이러한 조정과정으로 볼 수 있으므로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하면 양측의 견해와 접근방법이 합리적으로 수렴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다.

    한편 2월 중순 들어 한미 양측은 가급적 한국측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해 작계작성 작업을 조정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격한 반응을 내비치기도 했던 주한미군 수뇌부는 ‘지엽적인 문제로 한국과 마찰을 빚을 필요가 없다’는 본국의 메시지에 따라 더 이상 문제를 확대시키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측이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고 나선 배경이 “연합작계가 오히려 덜 강도 높을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기 때문인지 혹은 한미간의 절충적 해결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엇갈리는 말들

    큰 틀에서 볼 때 이러한 난맥상은 북한의 급변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 한미간에는 물론 한국 정부 안에서도 통일된 견해가 없어 파생한 문제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국민의 정부 이후 지속되어온 이른바 ‘연착륙 유도’ 방안에 대한 의견대립이 그것이다. 이는 북한에 이상징후가 발생할 경우 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체제 전환과 흡수통일을 유도할 것이냐, 아니면 가능한 한 안정화를 유도해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기다릴 것이냐 하는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 정부의 독자적인 북한급변 대비계획은 후자에 바탕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측의 해명에 따르면 문제는 가까스로 수습국면에 접어든 셈이지만, 한반도 정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이 진행되는 1년여 동안 정부가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뒤늦게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한미 양국 사이에 작지 않은 마찰이 빚어졌다는 것은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일이다. 우선 연합사와 합참의 한국군 관계자들이 이렇듯 ‘국민적 동의’가 필요한 전제를 안고 있는 사안에 지나치게 쉽게 접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가능하다. MCM에서 합의를 도출하는 단계에서부터 이러한 문제의식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군에 ‘정치적 고려’를 요구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최종적인 책임은 이러한 정치적 판단을 조율·고려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NSC로 귀결된다. 뒤늦게나마 문제점을 인식하고 조치를 취한 ‘공(功)’은 일부 인정할 수 있지만, MCM에서의 논의과정, 혹은 그 이전의 의제설정 과정에서부터 충분히 문제의 소지를 검토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NSC측은 정부 일각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이 사안에 대해 상당 기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또한 “보고를 받지 못했다”는 NSC의 입장과 “보고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군의 입장이 대립되는 형국은 한동안 흡사 ‘책임 떠넘기기’를 하는 것으로 비치기도 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사안은 NSC가 보고를 받았든 받지 못했든 문제가 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주요 외교안보 현안을 총괄 조정하는 NSC 관계자들이 “보고를 받지 못했다”면 군과 청와대의 관계와 관련해 본질적인 의문을 낳기에 충분하고, 반대로 “보고를 받았지만 중요성을 몰랐다”면 이는 NSC의 능력부족 문제로 귀결될 수 있는 까닭이다.

    결국 이번 사안은 청와대와 군의 의사소통 부족 문제 혹은 군에 대한 문민통제 강화의 필요성을 드러낸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주한미군 감축 공론화문제 등을 놓고 NSC가 미국 국방부측과 빚은 바 있는 이른바 ‘불필요한 마찰’의 또 다른 케이스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최고 통수권자 재가 안 받는 작전계획

    이에 대해 한 NSC 자문위원은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노 대통령의 LA 발언이나 ‘전략적 유연성’ 발언처럼 ‘얼굴을 붉히면서라도 할말은 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겠지만, 한국 정부 안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충분히 사전에 제어할 수 있었던 쟁점이 결국 홍역을 앓고 나서야 수습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보다 세부적으로는 한반도 안에서 벌어지는 군사적 충돌을 상정하고 있는 연합작전계획의 관리를 군사당국이 전담하고 있는 현재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알려진 바와 같이 전면전에 대비한 5027을 포함해 각종 연합작계는 군의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최종재가를 거치지 않고 국방부 장관의 전결사항으로 처리된다. 물론 청와대의 검토를 거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공식적인 대통령 재가를 받는 시스템이었다면 이번과 같은 난맥상이 과연 발생했겠느냐는 질문은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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