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호

‘7년 같은 7개월’ 보낸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국대사

“협상의 귀재, 그러나 ‘안 된다’ 판단하면 바로 돌아설 사람”

  • 글: 하태원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taewon_ha@donga.com

    입력2005-03-23 15: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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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5일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차관보로 지명된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대사. 지난해 8월12일 제27대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한 그는 이후 7개월 동안 무척이나 바쁜 일정을 보냈다. 1월말 이미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로 내정된 터라, 2월10일 북한 외무성의 핵 보유 및 6자회담 참가 무기한 중단 성명이 나온 뒤에는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는’ 형국. 중국으로 일본으로 미국으로 러시아로 바쁘게 날아다니며 6자회담 재개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최근 외교안보 분야에서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물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 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도,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도, 이종석 NSC 사무차장도 아닌 바로 힐 대사다. 힐 대사가 주로 오전 7시에 여는 조찬강연회는 늘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반미감정의 극복을 통한 한미동맹의 복원, ‘장기휴업’ 중인 6자회담 재개 등의 난제를 떠안고 있는 힐 대사의 생각을, 부임 이후 가진 20여 차례의 공식·비공식 강연회에서의 모두발언과 문답을 통해 정밀 분석했다. ]

    ‘7년 같은 7개월’ 보낸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국대사

    [연합]

    1월 26일 오후 4시반 서울 장충동 서울클럽 지리산룸.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 모임인 ‘EAI 지구넷 21’(회장 하영선 서울대 교수) 초청으로 힐 대사가 참여하는 비공개 토론회가 열렸다. 6자회담이 장기교착 상태에 빠진 데다, 새로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콘돌리자 라이스 내정자가 북한을 ‘폭정의 거점(outposts of tyranny)’이라고 비난하는 바람에 회담 재개 전망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던 때다. 국내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도 문제지만 미국이 북한을 자극하며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는 상황이었다.

    한용섭 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장, 신성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선혁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등 EAI 지구넷 소속 20여명의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들은 미국의 협상대표를 상대로 ‘곤란한’ 질문을 퍼부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힐 대사 도착 1시간 전에 미 국무부 핵비확산국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했고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창설작업에도 관여한 찰스 퍼거슨 미국외교협회(CFR) 연구원과 토론을 통해 ‘예행연습’까지 마친 상태.

    하지만 탁월한 연사이자 협상가로 알려진 힐 대사는 “퍼거슨 박사가 지쳐 있는 것을 보니 장시간 ‘폭정의 거점’ 문제에 대해 토론한 것 같네요. 제가 그 문제에 대해 더는 말을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라며 선수를 쳤다.

    그럼에도 이날 힐 대사는 몇 가지 의미 있는 말을 던졌다. 그 가운데 하나는 “미국이 북한에 대해 요구하는 것은 체제변화(regime change)가 아니라 체제의 행동변화(change of regime’s behavior)”라는 것. 미국이 관심을 갖는 것은 북한 지도자의 성품(personality)이나 지도자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힐 대사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한다는 ‘행동변화’가 중요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라는 사람이 권력에서 물러나는지 여부는 우리의 관심사항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물러난 뒤 새로 권력을 승계한 사람이 미국과의 대화에서 ‘나는 김정일이 아니다. 하지만 핵무기를 가져야겠다’고 말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아니냐”며 이같이 강조했다.

    또한 그는 “이미 북한에 당근을 제공할 시점은 지났다”며 향후 미국은 6자회담에서 북한에 대해 강력한 채찍을 사용하겠다는 의사를 직접적으로 내비쳤다. 이날 발언은 그가 6자회담의 수석대표로 내정된 뒤 처음으로 대북협상에 대해 의견을 피력한 것. 회담장에 돌아오는 것 자체가 협상카드가 될 수는 없다는 입장을 천명하는 동시에 협상장에 돌아온 뒤에도 향후 협상과정이 험로가 되리라는 점을 보여준 대목이다. 실제로 이날 힐 대사는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북한에 대해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자세로 압력을 가해야 하며, 협상과정이 매우 어려울(tough)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당근을 제공할 시점은 지났다”

    그는 또한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행동변화’이지만 인권 상황의 개선도 중요한 이슈 중 하나”라고 말해 6자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에 대해 인권문제를 제기할 것임을 시사했다. 핵문제라는 난제에 대한 협상을 앞두고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지만 이미 북한의 인권문제는 북한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힐 대사는 부임 직후부터 전임 대사들과는 조금 다른 독특한 행보를 보였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기득권 계층이나 미국을 잘 이해하는 사회지도층과 면담하기보다 비교적 ‘반미의식’이 강한 젊은 층과 대화하거나 대학 강연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 민간차원의 통일운동을 벌이고 있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에서의 강연도 눈에 띈다.

    그는 부임 첫날 이미 ‘대중 속으로’ 향하는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를 강조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지난해 8월12일 인천공항에서 낸 취임 일성도 “많은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10월5일 주한 미국상공회의소(AMCHAM) 주최 초청강연에서도 “내가 주한 미국대사로서 하려는 것은 틀에 박히지 않고(unconventional) 비일상적인(non-conventional) 청중에게 다가가는 일”이라고 말해 그동안 주한미국 대사가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을 만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 10월14일 한미우호협회에서도 “최대한 많이 다니면서 많이 듣도록 노력하겠다. 유쾌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물론 이미 지나가버린 일에 대해서도 듣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쾌하지 않은 곳’에도 가겠다는 힐 대사의 발언은 취임 한 달 후인 지난해 9월16일 광주의 5·18 묘역을 방문함으로써 실현됐다. 당시 힐 대사의 공식적인 광주 방문 목적은 광주 아메리칸클럽 개소식 참가. 힐 대사의 묘역 방문은 공식일정이 마무리된 뒤인 오후 6시에 이뤄졌고 대사관측도 당시 “애초 일정에 참배계획은 없었으며 개인적으로 방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톡톡 튀는 행보

    여하튼 힐 대사는 주한 미국대사로서는 처음으로 광주 5·18 묘역을 참배한 것으로 기록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힐 대사를 “보통이 아니”라며 주목하기 시작했다. 크게 공식화하지 않으면서도 ‘광주 문제’의 한 매듭을 풀어가기 위한 주의 깊고 계산된 움직임으로 볼 수 있는 힐 대사의 대담한 행보는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힐 대사의 주목받는 행보는 광주에서 그치지 않고 지난달 부산행으로 이어졌다. 2월22일 오전 7시반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외국어대학교 총동문회 ‘미네르바포럼’에 초청연사로 연설한 뒤 부산을 찾은 힐 대사는 23일 부산 범어사를 찾아 발우공양 등 전통불교문화를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벽안(碧眼)의 미국대사가 ‘안 나오는’ 자세로 전통다도와 불교예법을 따르는 모습을 보며 당일 행사에 참가했던 한 기자는 “솔직히 좀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주도면밀하고 치밀한 모습에서 무섭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정작 힐 대사 본인은 “범어사는 오늘 나에게 하루 휴식을 줬을 뿐 아니라 앞으로 일주일, 아니 한 달간의 휴식을 미리 제공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힐 대사가 가장 신경을 쓰며 해결을 위해 애쓰는 부분 중 하나는 반미감정. 2002년 6월 작전훈련 중이던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심미선·신효순양 사건으로 불거져, 촛불시위 등을 거치면서 인화력이 강한 사회현상으로 비화한 반미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힐 대사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이었다. 광주 5·18묘역을 방문한 것도 사실은 팽배해 있는 반미감정을 염두에 둔 사과의 표현이자 화해의 제스처로 이해할 수 있다.

    반미감정과 관련해 제임스 포스터 미 국무부 한국과장은 힐 대사가 “엄청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아시아재단 초청 한국 언론인 미국연수단의 일원으로 워싱턴 DC를 방문한 기자와 비공개 면담하는 자리에서 포스터 과장은 “힐 대사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 한국 대사로 부임해 다양한 아이디어로 50년 동맹관계를 유지해온 한국민들을 다독이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작전명 ‘반미감정을 다스려라’

    포스터 과장은 “힐 대사는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이용해 그들 속으로 들어가는 방식을 택한 것 같다”며 “인터넷의 양방향 소통방식을 이용해 미국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힐 대사는 지난해 10월19일부터 ‘인터넷 다음’에 카페(http://cafe.daum.net/usembassy)를 개설하고 네티즌들과 정기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사(ambassador)’란 필명으로 글을 올리고 있는 힐 대사는 인터넷에 올라온 ‘공개질문’에 거의 예외 없이 답하고 있어서, 일부 네티즌들은 “부시 대통령이 잃어버린 민심을 힐 대사가 다독이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힐 대사가 한국인들에게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힐 대사의 진지함 때문으로 보인다. 자칫 ‘제스처’로 보일 수 있는 5·18묘역 방문, 부산 범어사 방문, 인터넷 게시판을 통한 대화 등을 보면서 많은 한국사람들이 그에 대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는 것도 그의 성실성이 공감대를 얻은 때문으로 풀이된다.

    힐 대사는 지난해 10월7일 중견 언론인들의 모임인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도 “내가 논리적·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한국 젊은이들은 논리적이지 않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에게 접근해서 그들을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분야에서의 세대교체에 대해서도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집단에 따라 전혀 다른 ‘집단적인 기억(collective memory)’을 가질 수 있으며 한국에서도 세대교체는 그 같은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직접화법을 쓰지는 않았지만 6·25전쟁에 참여한 미국의 ‘혈맹(血盟)’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인색한 평가를 내리는 젊은 세대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에둘러 표현한 것. 하지만 그는 “한국에서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한미 간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며 “피할 수 없는 문제라면 정면으로 부딪혀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1월26일 서울클럽에서도 한국 내 반미감정에 대한 문제의식과 그 해결방안을 자세히 설명했다. 반미감정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지만 해결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낙관론이었다. 힐 대사는 “현재 한국민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는 미국에 대한 반감은 미국이 추구하고 있는 정책에 대한 반감이라고 생각한다”며 “미국에서도 부시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이 절반 정도 되지만 그것을 반미감정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바로 그 안에 해결의 열쇠가 숨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책에 대한 반대의사가 있을 경우 그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며, 내가 지금 한국에서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설득한다 해서 상대가 반드시 내 의견에 동조하는 건 아니겠지만 최소한 진지하게 설명하는 내게 달걀세례를 퍼붓지는 않을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가장 중요하며 그 의사소통의 통로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유머는 나의 힘

    진지한 접근을 추구하는 힐 대사지만 본질에 접근하는 방법론은 늘 유머러스한 길을 택한다. 힐 대사의 강연을 듣고 있으면, 내용도 내용이지만 재치 있고 시의적절한 유머를 던지는 탓에 좌중에는 늘 웃음이 넘쳐난다.

    가장 즐겨 사용하는 유머는 스포츠에 빗댄 농담이다. 뉴잉글랜드 지역의 로드아일랜드주가 고향인 힐 대사는 미국 프로야구 보스턴 레드삭스의 골수팬. 부임하던 날부터 86년이나 지속되어온 ‘밤비노의 저주’를 풀고 보스턴이 우승할 거라는 예상을 내놓았던 힐 대사는 지난해 10월25일 민화협 강연에서 빗발치는 질문세례를 피하는 방법으로 야구 유머를 택했다.

    힐 대사는 당시 동북아 순방의 일환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콜린 파월 미 국무부 장관을 화제에 올리며 “오늘 파월 장관이 서울에 도착하는데 아주 우울한 기분으로 올 것 같아 빨리 대사관에 돌아가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유인즉 파월장관이 응원하는 뉴욕 양키스가 아메리칸지구 챔피언전에서 보스턴에 역전패한 탓에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한국을 찾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미국에서 듣고 왔다는 한반도 ‘10월 위기설(October Surprise)’에 대해 궁금증이 증폭되던 지난해 10월7일 관훈클럽 강연에서는 한 패널이 10월 위기설의 근거를 묻자, “레드삭스가 우승하는 것 외에 미국발 충격은 없을 것”이라는 말로 객석에 웃음을 던지기도 했다.

    한국의 동북아전략을 이야기할 때는 주로 미국 프로농구 NBA에 빗댄다. 힐 대사는 “작은 나라인 한국이 중국 일본 등 주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기동성”뿐이라며 “남보다 한발 앞서 패스하고 한 박자 빠르게 슛을 던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충고한다.

    청중석에서 질문을 받을 때도 예사롭게 받아넘기는 법은 없다. 좌측에 앉아 있는 청중의 질문이 이어지면 이내 “좌우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며 우측에 앉아 있는 청중의 반응을 이끌어내고, 좌우에서 이야기가 쏟아지면 “중도파는 어디로 갔습니까” 하며 재치 있게 질의응답을 이끌어간다.

    이 밖에도 조찬모임이 많은 힐 대사는 “조찬모임은 미국이 수출한 최악의 작품”이라는 말을 종종 던져 졸린 눈을 비비며 조찬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도 하고, 한때 한국을 알리는 구호로 쓰이던 ‘조용한 아침의 나라(land of morning calm)’을 빗대 ‘아침 교통체증의 나라(land of morning traffic)’라는 유머를 던지기도 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이화여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막내딸 클라라는 힐 대사 표현에 따르면 ‘한국산(Made in Korea)’이다.

    한미동맹의 4대 기둥

    힐 대사는 20여 차례의 공개·비공개 강연에서 한미관계를 떠받칠 4개의 ‘기둥(pillars)’에 대해 역설해왔다. 기둥 4개가 견실하게 집을 지탱해야 안정을 찾을 수 있듯, 한미관계도 4개의 기둥이 든든하게 받쳐줘야 한다는 논리다.

    첫째 기둥은 안보동맹(security alliance)이다. 그는 “용산 미군기지 이전, 미래한미동맹 정책구상회의(FOTA) 등 이미 중요한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실제로 주한미군의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며 “그렇다고 해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에 대한 미국의 책임이 변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둘째 기둥은 ‘글로벌 이슈에 대한 전략적 대화’의 필요성. 일단 현재 진행중인 6자회담에서 추구하고 있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글로벌 이슈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고, 이를 기반으로 다자간 안보의 틀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힐 대사는 셋째 기둥이자 가장 강력한 기둥으로 한미 민간 차원의 인적유대를 꼽는다. 힐 대사는 “전략적으로 사고하면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을 공고히 하고 민간 차원에서 협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역시 동아시아 지역에서 믿을 만한 파트너가 필요한데 한국이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힐 대사는 “그런 면에서 나는 행복하고 할 일이 많다”며 “재임기간에 배울 것, 이해할 것, 만날 사람, 귀기울여야 할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기둥인 한미 간 경제 및 상업적 파트너십을 이야기하면서 힐 대사는 ‘한국이 해야 할 것’에 대한 주문을 많이 늘어놓았다. 현재는 북핵문제와 한미동맹의 미래에 대한 논의에 비해 뒤로 밀려난 느낌을 주지만 장래에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

    힐 대사는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한국과 미국 간에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돼야 한다”며 “내가 대사로 재임하는 기간 내에 자유무역지대로 향하는 진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FTA의 타결을 통해 한국은 동북아지역에서 미국의 경제적 교량(bridge)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이에 그치지 않고 FTA를 통해 한국은 태평양을 건너 남미와 북미를 한국의 무역파트너로 모두 확보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힐 대사는 “하지만 현재는 FTA로 가기에 앞서 양자투자조약(BIT)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을 벌이는 것이 시급하다”며 스크린쿼터 철폐와 농업시장 개방, 자동차 관세철폐 등을 구체적으로 주문하기도 했다.

    3월5일 6자회담 수석대표로 공식임명된 힐 대사의 당면과제는 북한을 협상의 테이블로 불러낸 뒤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힐 대사는 단순히 회담 재개에 그치지 않고, 북핵문제를 해결한 뒤 6자회담의 궁극적인 지향점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3월9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렸던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수요정책 간담회에서 힐 대사는 ‘동북아 안보구상’을 구체적으로 내놓았다. 1991년 주 알바니아 부대사에 임명되면서 분쟁지역 협상전문가로 변신해 1995년 보스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의 경계선 획정 협상에 참여했고, 1996년 초대 주 마케도니아 대사, 1999년엔 코소보 사태 담당특사 등을 거쳐 2000년 폴란드 대사로 활동한 힐 대사는 유럽의 ‘경험’을 한반도에 적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힐 대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동아시아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역내 국가들이 전략적 결단을 내렸냐 그렇지 못했냐의 차이”라며 “유럽연합(EU)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을 통해 안보협력을 넘어 통합으로 나아가는 유럽의 교훈을 생각할 때”라고 말했다. 힐 대사는 또 “미국이 유럽의 통합을 도왔듯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다자간 안보협력체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은 의욕이 있다”며 “북핵문제를 해결한 뒤 6자회담이 그 같은 다자간 협력체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귀재’의 답답한 속내

    승승장구하는 듯 보이는 힐 대사지만 그에게도 고민은 있다. 코소보에서의 협상 당시 게릴라 지도자들을 산에서 직접 만나 담판을 짓기도 했지만, 북한은 8개월째 “미국은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이고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라”는 말만 할 뿐 정작 회담장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제 아무리 협상의 귀재라도 테이블에 마주앉아보지 않은 상대와 의견을 조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답답할 법도 하다.

    최근에는 한국 외교안보 라인에서조차 이런 상태로 6자회담을 진행해나가는 것은 무모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기본적으로 북한에 책임이 있지만 솔직히 미국은 북한을 ‘6자회담 피고인석’에 세워 심판하려 할 뿐 그동안 한 게 없다”며 “북한이 핵 능력을 키우는 시간만 벌어준 형국”이라고 비난했다.

    물론 정부 관계자들도 힐 대사가 이전의 협상가들과 다르다는 점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북한과 협상해보겠다는 의지가 상당한 만큼 북한과의 협상이 재개되면 최선을 다해 임할 사람이라는 것.

    한국대사를 자원했고, 대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놀라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힐 대사. 그러나 2월10일 불쑥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고 6자회담 참가를 무기한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가도, 열흘 남짓 지난 뒤 최고지도자가 중국의 특사를 만나 갑자기 ‘(여건이 성숙하면) 대화에 참가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식으로 예상치 못한 행동을 이어가는 북측에 대해서는 몇 차례 놀랐을 것이다.

    실제로 힐 대사는 3월9일 수요정책 간담회 자리에서 “북한과의 협상처럼 힘겨운 협상은 본 적이 없다”며 고충을 토로한 바 있다. 하지만 아직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된 것도 아닌 데다, 힐 대사의 표현대로 테이블에 마주앉아 실제로 협상을 벌이는 과정은 장외에서 벌이는 ‘샅바싸움’보다 훨씬 고통스럽고 힘겨울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취임 이후 힐 대사가 쏟아낸 6자회담 관련 발언을 정밀하게 분석해보면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북핵문제 해결과 관련한 힐 대사의 발언 뉘앙스가 미묘하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기에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2004년 9월22일 한미협회 초청 기조연설)

    “6자회담은 매우 어려운 프로세스며 큰 좌절의 순간이 있을 수 있지만 성공할 것으로 낙관한다.”(2004년 9월24일 국방연구원 초청연설)

    “공통의 목표를 성취하는 앞길이 험난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궁극적으로 성공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2004년 10월5일 미국상공회의소 초청 기조연설)

    “북한에 대해 단결된 공동전선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2004년 10월14일 한미우호협회 초청연설)

    “미국은 6자회담을 통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펼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2004년 10월25일 민화협 초청 특강)

    “6자회담이 무척이나 힘들겠지만 노력을 해야 하고 반드시 성공으로 이끌어야 한다.”(2004년 11월1일 고려대 특강)

    “6자회담이 꼭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2005년 2월18일 고려대 언론인교우회 초청간담회)

    지난해 9월22일 한미협회 초청연설에서 그는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전제하긴 했지만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한반도 비핵화의 공동목표를 가지고 있기에 성공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틀 뒤인 24일 국방연구원(KIDA) 초청 강연에서도 “좌절의 순간이 있을 수 있지만 성공할 것으로 낙관한다”고 말했다. 이후 여러 차례 기조연설하는 자리에서 힐 대사는 ‘어려움은 있을 수 있지만 외교적 노력이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반면 2월18일 고려대 언론인교우회 초청 간담회에서 그는 처음으로 “6자회담이 꼭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며 한발 물러나는 태도를 보였다. “6자회담이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미국이 에너지를 충분히 쏟지 않았거나 창의적으로 사고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라고 말해 미국의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태도도 보였다.

    물론 6자회담의 미국측 새로운 수석대표로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는 북한에 밀리지 않겠다는 외교적 수사이자 ‘결단의 시간이 임박했다’는 의미로 북한에 대해 압박전술을 구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외교정책을 담당하는 한 고위 당국자의 이야기는 귀담아들을 만하다. 그는 힐 대사에 대해 “협상의 귀재이므로 외교적 해결을 위해 노력을 다할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북한과 도저히 협상이 안 된다고 판단하면 바로 다음날 (압박 또는 제재로) 돌아설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간의 평가와는 사뭇 다른 이 ‘색다른 판단’은 6자회담의 미래나 북핵문제 전망과 관련해 우리 정부나 북한 당국 모두 주의 깊게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2005년 봄 한반도에서 크리스토퍼 힐 대사의 머릿속에 담겨 있는 ‘생각’은 충분히 그럴 만한 무게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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