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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테마여행

백제혼 깃든 아스카 건축의 백미 호류지(法隆寺)

단아하게, 때론 고고하게… 일본 최후의 大木이 복원한 세계 최고(最古) 명찰

  • 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백제혼 깃든 아스카 건축의 백미 호류지(法隆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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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혼 깃든 아스카 건축의 백미 호류지(法隆寺)

태자의 실물 크기로 조각한 구세관음상을 모신 몽전.

호류지가 서 있는 곳은 지금도 여전히 한촌(閑村)이다. 태자는 왜 선왕을 위한 절을 왕도가 아닌 이런 한촌에다 지었을까. 아직까지 그 이유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유추해볼 수는 있다. 하나는 이곳을 새로운 정치 중심지로 만들고자 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학자 스타일에 명상까지 즐겼던 태자라 현세적 권력의지가 부족해서 공동 통치자와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는 왕도인 아스카나 나라보다는 한적한 이카루카가 더 적지였을 것이다.

정작 필자의 궁금증을 자극한 것은 따로 있다. 목조건물인데도 13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버텨왔고, 아직도 늠름한 이유 말이다. 스네카스옹은 먼저 습기에 강한 ‘히노키(檜)’를 목재로 사용한 점을 이유로 들었다. 노송나무의 일종인 히노키는 대륙에서는 볼 수 없고 오직 일본과 대만에서만 자라는 수종이며, 곧게 또 오래 자라는 게 특징이라는 것.

1300년 세월을 버티게 한 비밀

스네카스옹은 “히노키는 오래 자라는 만큼 수명도 길어 천년을 자란 히노키는 천년을 버틴다는 말이 있다. 일본에서는 절이나 신사 등 중요한 건물을 지을 때에는 반드시 히노키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호류지에 쓰인 히노키는 수령이 2000년쯤 된다며 화재와 같은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한 앞으로 700년은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두 번째 이유로 일체의 장식을 배제한 구조의 강건함을 들었다. 호류지의 힘은 바로 그 강건함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 이유로 연(軟) 구조를 지적했다. 못으로 꽉 고정한다든지 볼트로 죄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라 혹 지진이 일어나 흔들린다 해도 그 요동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도록 얼마간의 틈을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다.

궁대공 집안에서 태어나 동량(棟樑) 수련을 거쳐 궁대공이 된 스네카스옹은 공업학교가 아니라 농업학교를 다녔다. 그것도 3년제 학교였다. “제도권 교육을 더 받다 보면 가방이나 들고 다니는 월급쟁이가 되고 싶어진다. 그래서는 호류지의 목수 노릇을 못한다”는 할아버지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그는 속으로 ‘할아버지는 이상한 억지를 부리는 어른이셔. 목수가 될 내가 무엇 때문에 거름통을 져야 한담’ 하고 납득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렇지만 나중에 할아버지의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면서, 자신이 이해한 할아버지의 속마음을 이렇게 적어놓았다.

‘사람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 나무 또한 흙에서 자라 흙으로 돌아간다. 건물 역시 땅 위에 세우는 것이니 흙을 잊어버리면 사람이고 나무고 탑이고 있을 수 없다. 흙의 고마움을 모르고서는 인간도, 훌륭한 목수도 될 수 없다.’

그는 “농업학교를 다니면서 씨를 뿌리면 싹이 돋고 거름을 줘야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생명이란 그것이 무엇이든 이런 식으로 탄생한다는 것을 몸소 체득할 수 있었다”면서 “농업학교에 들어가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이 글을 읽고 반한 필자는 그가 이미 여든 중반의 나이라는 것을 알고는 생전에 꼭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1995년 3월초, 그를 찾아 일본으로 갔다. 초인종을 누르자 며느리가 맞아줬는데 스네카스옹은 병환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의 유일한 제자인 오카와(小川三夫)씨를 불렀다. 그렇지만 얼마 있지 않아 옹은 필자의 편지를 받고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응접실로 나와 필자를 만나줬다.

“한국은 일본의 스승”

그의 집은 작았다. 가구도 별로 볼 만한 게 없었다. 궁대공이라는 게 돈 되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은 그의 책을 통해서 알고 있었지만 좀 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입에 하얀 마스크를 하고는 이따금 기침을 했으나 말은 조리가 있었고 발음도 또렷했다. 특히 호류지의 건축양식은 한반도에서 건너왔다면서 “한국은 일본의 스승”이라고 말할 때에는 강한 힘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는 일본 건축의 원류가 한반도이기 때문에 한국 고대 건축에 대해 늘 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고는 한국 건축, 나아가 대륙 건축과 일본 건축의 차이를 설명해줬다. 바로 그의 일본 건축론이었다.

“대륙의 건축은 처마가 짧아서, 중국의 절 같은 것을 보면 건물의 규모는 크지만 도리 밖으로 내민 지붕의 길이는 짧습니다. 그러나 호류지는 건물은 작지만 도리 밖으로 내민 지붕 부분이 아주 큽니다. 고대 일본인이 대륙으로부터 건축 기법을 막 배웠을 때에는 아마 처마를 짧게 지었을 겁니다. 그러던 것이 습기가 많은 일본의 풍토를 고려하다 보니 처마를 길게 만드는 지혜를 짜내어 호류지에서 볼 수 있듯이 처마가 긴 건축물로 발전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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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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