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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단의 ‘여자 마광수’ 김별아

“자기 몸에 솔직할 수 없다면 자유롭지 않다는 거죠”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문단의 ‘여자 마광수’ 김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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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의 ‘여자 마광수’ 김별아

김별아는 “오늘날 우리 여성들도 솔직하고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았던 ‘미실’의 본능을 끄집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늘날 한국 여성들도 인위적인 것들을 다 벗겨내면 미실과 다를 게 없겠군요.

“미실은 남성의 것을 빼앗아가는 팜 파탈이 아니라 여성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그냥 여자일 뿐이에요. 여자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미실을 가지고 있죠. 삶이란 먼지처럼 스러져가는 건데, 우리 여성들도 솔직하고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았던 미실의 본능을 끄집어낼 수 있었으면 해요.”

-미실은 자신을 가장 사랑한 여자인 것 같아요. 심지어 첫사랑인 사다함마저도 진정한 의미에서는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고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나요? 자신이 중심축에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제대로 사랑할 수 없어요. 세계문학상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어떻게 모든 남자들이 미실한테 빠지느냐’고 묻더군요. 미실은 남자들 하나하나의 결핍된 부분을 알고 그것을 채워줬어요. 머리로 확실하게 계산했던 거죠. 하지만 사랑 하나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면 그렇게 판단할 수가 없어요. 실제로도 이기적인 여자들이 더 잘살잖아요.”

‘미실’에 나오는 인물 묘사는 무척 섬세하다. ‘화랑세기’엔 단지 ‘용모가 뛰어나다’고만 돼 있는 미실의 풍만한 육체가 눈앞에서 남성들을 유혹하며 살아 숨쉬는 것만 같다. 미실을 사랑하는 남성들의 외모 또한 아름답게 그려진다. 김별아는 “현실엔 아름다운 남성이 없기에, 머릿속으로 그려온 내 이상형들을 쏟아부었다”며 살짝 웃는다. 정사 묘사 또한 그러하다. 거의 동물적인 것에 가까운 원초적인 야함이 한 편의 시처럼 아주 고풍스럽게 그려진다.



-정사 장면이 상당 분량을 차지하는데, 생각보다 덜 야하더라고요. 강렬한 원색이 아닌, 예쁜 파스텔 색이랄까.

“더 야하게 쓰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웃음). 마광수 교수님처럼 써야 하는데. 사실 교수님은 이런 스타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아니, 상당히 싫어하셨죠. ‘핥고 빨고 정액을 묻혀야지, 그렇지 않으면 위선일 뿐’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당시엔 적나라하게 쓰는 것 자체가 작가를 짓누르는 억압을 해소하는 방법이었지만, 전 그런 억압을 받은 세대는 아니거든요. 전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야함을 그렸을 뿐이에요. 또 적나라하고 강렬한 야함은 소설이 아니어도 접할 수 있잖아요.”

김별아는 문단에서 ‘여자 마광수’라 불린다. 마 교수의 제자일 뿐 아니라 톡톡 튀는 표현이나 파격적인 묘사, 금기에 대한 도전 등이 마 교수의 그것과 꽤 닮았다. 마 교수가 1992년 음란물 제조혐의로 구속된 후 여러 차례 교도소로 격려 편지를 보내면서 그와 친분을 쌓았다는 김별아는, 그렇지만 자신은 “마광수의 ‘야한 여자’보단 영화 ‘스캔들’의 ‘숙부인’에 더 가깝다”며 손사래를 친다.

性의 이면, 족쇄와 부채

김별아는 1969년 강릉에서 부부 교사인 부모의 1남1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성장했고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사다준 세계명작전집을 읽기 시작한 이래 책벌레가 됐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친구도 많지 않았던 그는 덕분에 책에 더 몰두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문학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진로를 ‘소설가’로 정한 후 지도교사의 도움을 받아 숱하게 책을 읽고 습작을 했다. 학창시절 10년 연속 반장을 한 ‘범생이’였지만 학교 밖에선 17세 때부터 선후배 문학 지망생들과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며 ‘꽤 놀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창작의 자양분을 키운다는 생각으로 고향에서 두 달간 버스안내양을 하는 등 특이한 경험도 많이 했다.

소설가의 꿈을 품고 1988년 연세대 국문과에 입학하지만 연일 최루탄 가스를 마시며 징글징글하게 ‘운동’만 했다고 한다. 여러 남자들과 연애도 숱하게 했다. 하지만 3개월 넘게 만난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조건은 안 보고 ‘얼굴’만 본 덕분에 다양한 사람들과 만났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광고회사에 카피라이터로 들어갔는데, 딱 하루 출근하고는 그만뒀다. 사무실에 사람들이 획일적으로 앉아 있는 광경이 너무 헛되고 답답해 보였기 때문이란다. 그후 따로 등단 절차를 밟지 않고 무작정 소설집 ‘신촌블루스’를 펴내기도 했지만, 등단을 권유하는 주변의 권고에 따라 1993년 ‘실천문학’에 중편 ‘닫힌 문 밖의 바람소리’를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소설가의 길을 걷는다.

어린 시절부터 여성과 성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이는 여느 여자아이들처럼 관심과 죄의식의 팽팽한 갈등이기도 했다. 그는 “호기심과 욕망은 여태까지 내 성장을 이끈 친근한 벗이었고, 내 발목을 잡는 족쇄였고, 내가 마지막으로 해방될 부채”라고 고백했다. 이런 체험들은 장편소설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에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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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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