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호

‘모범 선진국’ 핀란드의 성공학

탄탄한 교육투자, 부패 없는 정부가 세계 1위 국가 경쟁력 견인

  • 글: 김학준 동아일보사 사장

    입력2005-03-24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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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범 선진국’ 핀란드의 성공학

    핀란드는 의회정치, 복수정당제, 법의 지배, 인권 존중 등의 서구 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해왔다.<br>사진은 수도 헬싱키 전경.

    필자는 지난 2월5일부터 13일까지 설 연휴를 이용해 핀란드 정부의 초청으로 핀란드를 방문했다. 핀란드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한반도의 역사와 닮은 데가 있다. 한반도가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들의 지배 또는 간섭을 받았듯 핀란드 역시 스웨덴과 러시아를 비롯한 주변 강대국들의 지배 또는 간섭을 받았다는 점, 특히 한반도의 북부가 소련의 지배를 받았듯 핀란드 역시 소련의 강력한 간섭을 받았다는 점, 한반도가 분단국가가 됐듯 핀란드는 국토의 일부를 소련에 할양함으로써 사실상 ‘분단국가’가 됐다는 점 등이 그 보기들이다.

    핀란드는 이처럼 여러 차례 역사적 시련을 겪었지만, 마침내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많은 나라가 선망하는 선진적 민주복지국가들 가운데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필자는 ‘무엇이 핀란드를 이렇게 모범적인 나라로 발전시켰는가’라는 물음을 놓고 마티 타넬리 반하넨(Matti Taneli Vanhanen) 핀란드 국무총리를 비롯해, 주로 이 나라의 입법부, 행정부, 언론계, 학계의 지도자들과 대화할 수 있었다. 그 내용들 가운데 몇몇 부분들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우선 핀란드의 현황을 살펴보자. 핀란드는 면적이 약 33만8000㎢로, 한반도의 약 1.5배에 해당한다. 면적의 약 75%가 삼림이어서 제재업과 제지업이 발달했다. 전국에 약 19만개의 호수들이 산재해 ‘호수의 나라’로 불리기도 한다. 면적으로는 유럽에서 여섯 번째로 큰 나라지만 인구는 약 520만명으로 인구밀도가 낮다. 수도는 헬싱키.

    핀란드는 1155년부터 스웨덴의 일부가 됐으나 스웨덴은 1809년에 핀란드를 제정 러시아에 넘겼다. 하지만 제정 러시아는 직접 통치하는 대신 ‘자치적 대공국’의 지위를 부여했다. 1917년 제정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 제정이 붕괴됐다. 핀란드는 이 기회를 활용해 그 해 12월6일에 독립을 선언했으며, 1919년에 헌법을 채택하고 대통령을 국가원수로 하는 공화국으로 새출발했다.

    1939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소련은 핀란드를 침공했고 핀란드는 거국적으로 용감하게 항전했으나 1940년에 패전했다. 전쟁은 1941년에 다시 일어나 1944년까지 계속됐다. 이 전쟁에서도 핀란드는 끈질기게 항전해 소련군의 핀란드 점령을 허용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독립과 주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부지방의 일부를 소련에 할양하고 ‘친소적’ 노선을 걷는다는 조건으로 종전을 성사시켰다.



    동서냉전 시대에 ‘친소적’ 노선을 걸으면서도, 핀란드는 신중하면서 동시에 실용적인 외교를 전개해 서방세계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리하여 1952년에 헬싱키에 제15회 하계 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었고, 1955년에 유엔에 가입할 수 있었으며, 1956년에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협의체인 ‘노르딕 카운슬(Nordic Council)’에 가입할 수 있었다.

    핀란드의 외교적 성취는 1975년 여름에 돋보이게 나타났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30주년에 즈음해 이 전쟁을 마무리하는 유럽안전협력회의(CSCE)를 헬싱키에서 개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때 채택된 ‘헬싱키 선언’은 뒷날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정권들을 붕괴시키는 데 이바지했으며, ‘헬싱키 과정(過程)’이란 말은 국제정치학의 교과서에 고정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핀란드의 국제적 위상은 높아졌으며, 핀란드는 더 이상 ‘친소적’ 국가가 아니라 서방 민주주의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렇게 볼 때 핀란드가 1995년에 유럽연합의 회원국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핀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소련의 계승국인 러시아연방과 국경을 접한 지정학적 입장을 고려할 때, 군사적 비동맹의 전통에서 벗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대서양조약기구와 협력 관계는 유지하고 있고, 국제연합이 파견하는 평화유지군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여성을 대통령으로 선출

    핀란드는 대외적으로 친서방의 입장을 유지하면서 대내적으로 의회정치, 복수정당제, 법의 지배, 인권 존중 등을 뼈대로 하는 서구 민주주의의 원칙들에 충실해왔다. 우선 거의 완벽한 수준의 의회민주주의를 운영해왔다. 다당제와 단원제를 중심으로 하는 의원내각제를 운영하면서도 6년 임기의, 그리고 1회에 한해 중임이 가능한 대통령을 직선함으로써 안정된 행정부를 보장하고 있다. 정치학자들이 핀란드의 정부 형태를 의원내각제도, 대통령제도 아닌 이원집정부제라고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모범 선진국’ 핀란드의 성공학

    마티 타넬리 반하넨 핀란드 총리가 동아일보 독자들에게 보낸 인사말.

    남녀평등은 이 나라의 ‘상표’와도 같아 행정부와 입법부 및 사법부에서 여성의 진출이 활발하다. 200명 국회의원 가운데 70명이 여성이다. 2000년에는 여성 변호사인 타르야 할로넨(Tarja Halonen)이 국가원수인 대통령으로 선출되기에 이르렀다.

    행정부의 수장은 국무총리다. 2000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은 국무총리에게 그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권한을 주고 있다. 국무총리는 의회가 선출하며, 제1당의 대표에게 돌아간다.

    현재의 마티 타넬리 반하넨 국무총리는 1955년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고 신문기자로 입신했다. 36세이던 1991년에 중앙당의 청년단 의장으로 선출되고 국회의원에 선출됨으로써 정치에 입문했다. 그 이후 계속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그는 환경옹호론자로 명성을 얻었으나 유럽연합의 발전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오늘날에는 유럽연합 전문가로 손꼽힌다. 2003년 4월에 국방장관으로 입각했고 2개월 뒤 국무총리로 선출됐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 그리고 ‘중앙당에서 가장 정직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항공기 승무원인 아내와의 사이에 두 자녀를 두고 있다.

    국무총리의 부인이 항공기 승무원인 데서 알 수 있듯, 핀란드에서는 여성이 직업을 갖고 있는 것이 보편적이다. 필자는 비록 짧은 기간이었으나 방문 기간 내내 여러 곳에서 많은 전문직 여성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은 국가의 여러 제도들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범죄로 간주되고 있으며, 출산휴가와 육아휴가는 철저히 보장되어 있고, 영·유아에 대한 탁아소가 발달되어 있다. 정부가 2004년 가을에 채택한 ‘남녀평등에 관한 프로그램’은 여성의 지위향상을 더욱 촉진하고 있다.

    IT 강국으로 부상

    외교에서 실용주의적 노선을 걸었듯 핀란드는 내정에서도 실용주의적 노선을 걸었다. 국정운영의 우선순위 제1위를 교육의 발전에 두어 국민총생산(GNP)의 7% 이상을 정부 예산에서 교육비로 쓰고 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교육을 책임지고 있으며, 교육의 질적 향상을 목표로 교사에게 여러 방면에서 좋은 대우를 하고 있다. 그 결과 핀란드의 교사들은 자질이 우수하고 학생들의 학업 지도에도 성실하고 철저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종합적으로, 핀란드에서는 고등학교 또는 고등학교에 준하는 전문직업학교를 졸업하면 어느 직장에 몸담아도 일당백의 역할을 자신 있게 수행한다는 믿음이 확립되어 있다. 대학 교육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우수하다. 전체 인구의 약 13%가 학사학위 또는 그에 준하는 자격을 갖고 있다.

    1990년대 이후 핀란드 정부는 각급 학교에서 정보산업(IT)에 관련된 교육을 강화해왔다. 그 결과 핀란드는 정보산업의 강국으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전자공학 분야는 세계적 수준에 올랐으며 산업과 수출을 이끌고 있다. 휴대전화 제작과 판매로 유명한 ‘노키아’는 핀란드 정보산업과 수출의 상징적 존재다.

    핀란드는 공직사회의 투명성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예컨대, 국제투명성기구(TI)의 ‘정부 부패도 조사’에서 핀란드 정부는 매년 부패도가 세계 최저인 것으로 판정받아왔다. 반하넨 총리는 그 원인을 “첫째, 행정과 정책결정과정의 공개적이고 투명한 제도에 바탕을 둔 안정된 민주주의. 둘째, 독립적이고 효율적이며 신뢰할 수 있는 사법부와 독립적인 언론. 셋째, 공직자들의 부패 방지에 관한 국제적 협약들의 준수” 등 세 가지로 꼽았다. 그는 특히 ‘권력에 대한 언론의 일관된 감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핀란드는 언론매체들이 다양하게 발전한 대표적 선진국 중 하나다. 520만 인구에 신문 발행부수는 약 300만부에 이른다. 국민 1인당 신문 발행부수는 유럽연합에서 1위이고 세계에서는 3위다. 많은 국민은 자신들이 정보와 지식을 신문에서 얻고 있다고 말한다.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며, 부패가 없다시피 한 정부가 국제 경쟁력 평가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01년과 2003년에 이어 2004년에도 국가간 국제경쟁력 비교에서 핀란드에 1위를 부여했는데, 반하넨 총리 역시 그 공로를 ‘교육에 대한 적극적 투자’ 및 ‘깨끗한 공직사회’에 돌렸다. 그는 특히 연구개발비에 대한 투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5%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핀란드는 스칸디나비아의 다른 나라들처럼 적극적인 복지국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자연히 국민의 담세율은 높으며, 일하지 않으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 이것들은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 이러한 부정적 측면에 대해 반하넨 총리는 “최근 몇 해 동안 정부와 국회는 일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를 억제하는 쪽으로 법과 제도를 고쳐왔다”고 설명했다.

    핀란드는 문화적으로도 선진국이다. ‘핀란디아’로 유명한 애국적 작곡가 시벨리우스(Jean Sibelius)로 상징되듯, 핀란드의 음악은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국에 무려 30개의 전문 교향악단이 활동하고 있으며, 음악 프로그램이 포함된 문화행사가 1년에 300차례 정도 열린다. 문학, 미술, 건축, 디자인, 체육 등에서도 국제적으로 저명한 인사들이 많이 배출됐다.

    핀란드는 확실히 풍요로운 선진적 민주복지국가다. 그러나 이 나라에도 여러 병폐들이 나타나고 있다. 불완전한 인간들로 구성된 인간사회에 병폐가 없는 완벽한 국가란 존재할 수 없다. 다만 그 병폐들을 어떻게 고쳐나가는가에 따라 국가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 핀란드가 그러한 병폐들을 고치는 일에서도 모범적인 나라가 되기를 바라면서 이 나라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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