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호

독도, 냉정해야 지킨다

점유·관리 포기 않는 한 고유 영토, ‘실효적 지배 강화’ 요란 떨면 오히려 손해

  • 글: 김찬규 경희대 명예교수·국제법 duke36@hanmail.net

    입력2005-04-21 14: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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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노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 외교가와 사회지도층은 독도 분쟁 사태에 대해 얼음보다 차가운 냉정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국내에선 영토분쟁 관련 국제법의 이론과 실제 활용사례가 잘못 알려진 경우가 많다.
    • 우선 이런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독도, 냉정해야 지킨다

    독도 경비대원들이 독도 동도의 헬기장에서 삽살개 ‘곰이’ ‘몽이’와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竹島)의 날’ 조례안을 제정했고,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 일본대사는 서울에서 “독도 문제는 한·일 간 분명한 시각차가 있지만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일본 땅”이라고 주장, 한국 국민의 감정에 불을 질렀다. 다카노 대사의 발언은 국가를 대표하는 이의 공식 발언인데다, 국교 정상화 40주년을 맞아 ‘한·일 우정의 해’로 지정된 올해에, 그것도 우리 수도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심각성이 더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선 독도 수호를 위한 여러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것, 국제적 법률관계를 잘못 이해한 엉뚱한 견해들이 있다. 이런 견해들은 자칫 독도와 관련된 국익에 치명적 손상을 줄 수도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중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실 이 말은 요즘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꽤 자주 오르내린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는 독도에 대한 우리의 기본 방침과 상충하는 것일 뿐 아니라 우리의 법적 주장을 중대하게 훼손하는 독소를 내포하고 있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아울러 독도 문제를 국제재판에 회부하자는 제의가 있는 경우 이를 거부해 버리면 그것으로 만사가 해결되는지의 문제에 대해서도 꼼꼼히 따져보자.



    ‘실효적 지배(effective control, effectivit뢵)’는 무주지(無主地,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지역) 선점의 한 요건으로서 ‘현실적인 계속적이고도 평온한 국가 기능의 현시(the actual continuous and peaceful display of State functions)’를 의미한다. 이것은 팔마스 섬(Island of Palmas) 사건에 대한 1928년 4월4일의 중재판결에서 에리트레아-예멘(Eritrea-Yemen) 사건에 대한 1998년의 중재판결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적용되어 온 정의다.

    실효적 지배는 선점의 요건일 뿐

    단적으로 말해 실효적 지배는 무주지 선점의 한 요건이기에 독도의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독도는 우리의 고유 영토이지 무주지를 선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사 독도가 주인 없는 땅을 먼저 차지한 경우라 하더라도 실효적 지배는 선점이 실현되는 과정에 요구되는 것일 뿐, 선점이 끝난 후에까지 필요한 것은 아니므로 독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독도는 신라 지증왕 13년(서기 512)부터 우리 땅이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13년조와 열전(列傳) ‘이사부전(異斯夫傳)’에 따르면 이해에 지금의 울릉도와 독도로 구성된 우산국이 신라에 복속하여 신라의 일부가 됐다는 것이다.

    1392년 7월 한반도에는 이성계의 쿠데타로 고려조가 무너지고 조선조가 등장하는 정치권력의 변혁이 있었다. 이 때 권력투쟁에 패배한 고려 유민들이 울릉도에 유입,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꾀하는 일이 벌어졌다. 조선 제3대 왕 태종은 1417년 울릉도 주민을 강제 소개하고 울릉도에 접근을 금지했다. 이 조치는 그 후 약 450년 동안 계속됐다. 이를 두고 일본측에서는 ‘영토 포기’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결코 그렇게 볼 성질이 아니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조는 사람들이 다시 울릉도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면서 동시에 이 섬이 해적(왜구)의 소굴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몇 년에 한 번씩 정기 순시를 했다고 한다. 이는 공도(空島)정책의 표명인 동시에 섬을 관리하는 한 방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조선이 공도정책을 취하되 영유 의사를 포기한 것이 아님은 그 후 벌어진 여러 사실에 의해서 명백해진다. 태종 다음 왕인 세종도 공도정책을 답습했으나 영유권은 그대로 유지, 독도와 울릉도가 강원도 울진현 소속임이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온다. “우산국과 무릉의 두 섬이 현(울진현) 정동의 바다 가운데 있다. 날씨가 청명하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 신라시대에는 우산국이라 칭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1531년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란 책이 있다. 이것은 1481년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을 증보한 것인데 양자가 모두 공인된 우리나라 지리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독도와 울릉도가 강원도 울진현에 속하는 우리나라 영토임이 명확하게 규정돼 있다. 뿐만 아니라 이후에 나온 우리나라 고지도 중 많은 것에서도 울릉도와 독도가 정확히 그려져 우리나라 영토임을 표시하고 있다.

    ‘평범한 영토’ 전략으로 가야

    국제법상 무주지 선점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주지에 대한 점유와 관리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점유(possession)’라 함은 국가가 점유의사(animus·心素)를 가지고 당해 지역을 그 지배 아래 두는 것(corpus·體素)을 말하며, 관리(administration)라 함은 당해 지역에 대한 지배권의 현실적 행사, 즉 위에서 언급한 ‘현실적인, 계속적이고도 평온한 국가 기능의 현시’를 일컫는 것이다.

    독도, 냉정해야 지킨다

    3월16일 오후 자유총연맹 회원 500여 명이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에 항의하며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하고 있다.

    국가가 영토를 포기하는 데도 같은 논리, 다시 말해 점유와 관리의 포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공도정책에는 이런 것이 전혀 없었다. 한국은 독도에 대한 영유 의사를 포기한 적이 없으며 그 관리를 포기한 적도 없다. 공도정책 실시 중에도 한국이 몇 년에 한 번씩 정기 순시했음은 당해 지역에 대한 지배권의 현실적 행사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이 독도에 대한 영유 의사를 포기한 것이 아님은 그 후 벌어진 여러 사실에 의해서도 입증되는 것이기에 공도정책은 문자 그대로 하나의 관리방식에 불과했던 것이다.

    독도는 우리의 고유 영토이기에 그곳에서는 무주지 선점시 요구되는 실효적 지배는 필요치 않다. 독도에 대해 실효적 지배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독도가 우리의 고유 영토임을 부인하는 결과가 되며 엉뚱하게 그것은 무주지 선점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과도 맞지 않으며,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우리 정부의 공식적 방침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독도는 어떻게 관리돼야 할까. 그것은 우리의 고유 영토이기에 다른 고유 영토처럼 관리하면 된다. 우리의 고유 영토인 한반도에 “현실적인 계속적이고도 평온한 국가 기능의 현시”는 필요치 않다. 우리의 고유 영토를 우리 필요에 따라 이용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독도 영유권을 보강해야 한다면서 유인도로 만들어야 한다느니 무슨 시설을 설치한다느니 하는 논의는 긁어 부스럼이 될 수 있는 일이다.

    현재 독도에는 독도 경비대가 주둔해 있고 우리 해군과 해경이 독도 영해를 수호하고 있으며 우리 공군이 독도 영공을 수호하고 있다. 독도에는 문화재보호법, 독도 등 도서 지역의 생태계 보전에 관한 특별법, 영해 및 접속수역법 등 우리나라 법령이 적용되고 있다. 독도에 대한 주권행사는 현재로서도 완벽하다. 이에 더하여 필요치도 않은 시설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혈세(血稅)를 낭비하자는 얘기밖엔 안 된다.

    1952년 1월18일 우리나라가 국무원 고시 제14호로 ‘인접 해양에 대한 주권선언’을 하자 일본이 독도 영유권에 대해 시비를 걸어왔는데 그렇다면 이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이는 우리의 고유 영토에 대한 시비이므로 우리로서는 유엔 헌장 제53조 제1항 단서에서 말하는 구 적국의 ‘침략정책의 재현(renewal of aggressive policy)’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여겨진다. 전후 관계가 이러하므로 실효적 지배의 강화는 의미가 없다.

    현상타파와 현상유지

    국제재판엔 ‘결정적 기일(critical date)’에 관한 제도가 있다. 이것은 그 기일 이후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유권 분쟁시 당사국들이 명분 보강을 위해 시설구축 등 온갖 노력을 하게 마련인데, 국제재판에서는 일정한 시점을 정해 그 후에 일어난 일은 증거로 인정치 않는다. 이때 정해지는 일정한 시점이 바로 결정적 기일이다.

    현 국제법상 국제재판에는 강제관할권이 인정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동의가 없는 한 독도에 관한 문제가 국제재판에 회부될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러나 만약 이 문제가 국제재판에 회부됐다고 가정할 때 필연적으로 결정적 기일에 관한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

    독도 문제에 관한 결정적 기일에 대해서는 여러 기준이 있겠으나 어떠한 경우든 그것이 2005년 4월 현재의 시점 이전이 될 것임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이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실효적 지배의 강화’를 목적으로 독도에 여러 시설물을 설치해봐야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함을 의미한다. 여기서도 우리는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자는 구상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를 목격하게 된다.

    실효적 지배의 강화에 나서게 되면 항의 등 일본측의 대응조치가 있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국제법상 ‘항의’는 시효의 진행을 중단하며 항의의 대상이 의도하는 바가 실현되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가진다. 이를 독도의 경우에 대입하면 우리가 실효적 지배의 강화를 위해 독도에 어떤 시설을 설치한다 하더라도 일본측의 항의가 있으면 우리가 목적하는 바가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이 독도문제를 일으켜서 얻을 수 있는 국익은 무슨 수를 쓰든 현상을 타파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 일본은 무력사용을 할 수 있을까. 현 국제법상 그것은 금지사항이다. 1982년 4월2일 아르헨티나는 포클랜드를 침공했다. 이때 아르헨티나는 영국이 불법적으로 점거해온 자국 영토를 되찾기 위한 행동이라고 주장했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를 인정치 않았다. 오히려 불법적 무력행사라며 아르헨티나를 규탄했다.

    영유권 분쟁이 무력사용을 통해 해결된 선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1974년 1월 중국이 시사군도(西沙群島·Paracel Islands)를 무력으로 점령한 것이 그 예다. 통킹만 부근에 있는 시사군도는 중국과 베트남간 영유권 분쟁이 있던 섬이었고, 당시 그 섬은 베트남이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었다. 중국이 무력으로 이 섬을 점령한 것은 베트남이 서방 석유회사들을 끌어들여 이 섬 주변 자원개발에 나섰을 뿐 아니라 이를 발판으로 난사군도(南沙群島·Spratly Islands)에 대한 권리까지 주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독도, 냉정해야 지킨다

    국가간 영유권 분쟁을 심판하는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 재판정.

    이처럼 영유권 분쟁이 있는 섬에 대해 분쟁 당사국 중 일방이 이를 무력으로 점령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현 국제법상 허용되는 일은 아니다. 하물며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이며 유엔 헌장에 적국조항(敵國條項)이 엄연히 살아 있는 지금의 일본이 독도에 대해 그와 같은 모험을 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따라서 독도 문제를 두고 일본이 택할 수 있는 방책이란 국제법상 인정된 절차를 통해 현상타파에 나서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국제법상 인정된 절차로서 일본이 시도할 수 있는 것으로는 유엔 총회나 안전보장이사회 등 유엔 기관에 독도 문제를 회부하는 방법이 있다. 1946년 9월22일 코르푸 해협의 알바니아 영해를 지나던 영국 군함 4척이 기뢰에 부딪혀 한 척이 대파되고 이를 예인하던 다른 한 척도 기뢰에 부딪혀 다수의 사상자가 생긴 사건이 있었다.

    영국이 알바니아에 사과와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유족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했으나 알바니아가 이를 거부해 사건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됐다. 유엔 회원국은 어떤 분쟁이든 이를 안전보장이사회 또는 총회에 부탁할 수 있다는 유엔헌장 제35조 제1항에 따른 조치였다. 심사 후 안전보장이사회는 사건이 법률적 분쟁이라는 이유로 국제사법재판소(ICJ·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에 가져갈 것을 권고했고(유엔 헌장 제36조 제3항 참조), 이 권고에 따라 영국은 일방적으로 분쟁을 ICJ에 부탁했다.

    현 국제법상 국제사법재판소에 분쟁을 부탁하는 것은 일방적 제소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분쟁 당사국간 합의에 의한 부탁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 경우 알바니아가 영국의 일방적 부탁을 무시해 버리면 ICJ의 재판관할권은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알바니아는 재판소에 출정한다. 그 이유는 유엔 가입을 위해 안전보장이사회의 추천을 신청해 놓고 있던 알바니아로선 이사회 결의를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알바니아가 출정함에 따라 재판 절차는 개시됐다. 그런데 재판이 진행되면서 사태가 점차 자국에 불리하게 전개되는 것을 감지한 알바니아는 선결적 항변(先決的 抗辯)을 제기해, 자국이 출정한 것은 재판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영국의 변칙적이고도 용인할 수 없는 작태(irregularities and inadmissibilities)를 규탄하기 위해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재판소는 금반언(禁反言·estoppel)의 원칙을 적용, 이러한 항변을 수용치 않고 재판관할권이 성립했음을 선언했다.

    독도, 냉정해야 지킨다

    3월16일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오른쪽)가 우라베 도시나오 주한 일본 대사대리를 불러 ‘다케시마의 날’ 제정에 대해 강력한 항의의 뜻을 전하고 있다.

    당사국 중 일방이 본의 아니게 ‘어어~’ 하다가 안전보장이사회에 끌려가게 되고 종국엔 국제재판정에 서게 된 사례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 문제를 분쟁화 하는 데 성공하면 우리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최소한 안전보장이사회 상정은 가능하리라고 본다. 따라서 독도 문제를 분쟁화하려는 일본의 기도를 차단함으로써 현상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우리 국익에 부합한다고 할 것이다.

    독도 문제가 불거진 후인 1954년 9월 일본은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자고 제의한 적이 있다. 지난 3월24일 일본 자민당 외교관계 합동회의에서 고무라 마사히코 전 일본 외상이 독도 문제의 ICJ 제소를 거론한 바 있고 호소다 히로유키 관방장관도 일본 정부 내에 통일된 견해가 없음을 전제하면서도 “선택 방안 중 하나로 늘 생각하고 있다”면서 이에 동조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일본이 일방적으로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을 것인가.

    국제사법재판소에 일방적 제소 가능

    일단 국제법 발전의 현 단계에서 국제사법재판소는 강제관할권이 인정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방적 제소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답이다. 그러나 길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위에서 코르푸 해협 사건에서 알바니아가 본의 아니게 국제재판에 말려 들어간 사실을 보았다. 이런 특별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현재 일방적 제소의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법적 근거가 되는 것이 1978년 4월14일 개정된 국제사법재판소의 재판소 규칙(Rules of Court) 제38조 제5항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원고국이 청구의 상대국에 의해 아직 부여되고 있지 않은 동의, 또는 표명되고 있지 않은 동의에 재판소의 관할권을 의거하려 하는 경우에도 그 청구는 당해 상대국에 송부돼야 한다. 다만, 청구의 상대국이 당해 사건을 위한 재판소의 관할권에 동의할 때까지는 그 청구를 총계장부(總計帳簿·General List)에 기재해서는 안 되며 절차상의 어떠한 조치도 취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국제사법재판소에 일방적으로 제소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상대방의 동의가 있을 때까지 그 일방적 제소는 재판소의 사건 총계장부에 기재되지 않고 절차상의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한·일 문제에 적용하면 일본은 일방적 제소가 가능하지만 한국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 그 일방적 제소는 효력을 나타내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문제는 일방적 제소가 비록 사법적 효력은 없을지라도 국제사회를 향해 막대한 정치적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상대방이 응하지 않으면 일방적 제소를 한 측은 이를 근거로 정치적 공세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일본이 일방적 제소를 했는데 우리가 이를 거부하면 일본은 국제사회를 향해 ‘한국은 독도 영유권 재판에서 승소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재판에 응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의 독도 점유는 국제법적으로 불법이라는 의미다’고 대대적인 선전전에 나설 수도 있다는 의미다. 우리는 이 점에 각별히 유념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실제로 일방적 제소는 여러 차례 있었다. 다만 상대국이 응하지 않아 관할권 성립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런데 이와 관련 중요한 사례가 있다. 2002년 12월9일 콩고 정부는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국제사법재판소에 일방적으로 청구소장을 제출했다. 그러자 프랑스 정부는 2003년 4월11일 이에 응한다는 의사를 표시함으로써 재판소의 관할권이 성립한 일이 있다.



    2003년 8월5일에는 라이베리아가 시에라리온을 상대로 일방적 제소를 한 바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아직 시에라리온의 반응이 없다. 우리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일방적 제소는 할 수 없다는 잘못된 상식에서 일단 탈피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응하지 않으면 국제재판소의 재판관할권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원칙론에 안주해서도 안 된다. 국제사법재판소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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