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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 분석

‘좌충우돌, 王변덕’, 한나라당 소장파들의 속살

개혁 마인드 수혈받은 귀 열린 ‘오렌지’
머리 너무 좋은 게 약점인 소신파 ‘한라봉’

  • 글: 이동훈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dhlee@hk.co.kr

‘좌충우돌, 王변덕’, 한나라당 소장파들의 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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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이들은 ‘이회창의 한나라당’에 몸을 맡김으로써 진로의 절반 이상을 선택한 셈이다.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 양쪽에서 동시에 구애를 받던 원희룡 의원은 “당시 내가 한나라당을 선택한 것은, 국가발전을 위해서는 우파 쪽에 축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소장파의 의미는 ‘이회창 총재의 액세서리’ 정도였다는 평가도 있다. 이는 본인들도 일부 인정하는 대목이다. 오세훈 전 의원은 17대 총선 불출마 선언 이후인 2004년 1월 당 공식 회의석상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우리는 액세서리였다. 소장파라는 명분 아래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수행하면서 액세서리 노릇을 했다.”

이 총재 시절 박근혜 의원의 탈당과 미래연합 창당 과정에서 한나라당 소장파가 당시 소장파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당 개혁을 촉구하며 이 전 총재에게 반기를 든 박 의원에게 소장파는 차갑기만 했다.

“이회창 총재를 보위해 집권하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다”는 게 당시 상황에 대한 소장파 의원들의 변명이다. 한나라당 소장파는 대선 패배 직후인 2003년 1월 일부 세력이 ‘국민속으로’를 만들면서 1차 분화한다. 김부겸, 김영춘, 안영근 의원 등은 이후 탈당 대열에 동참하게 된다. 원희룡 의원도 ‘국민속으로’ 멤버였다.



남은 소장파 세력은 새로운 선택을 찾아 나섰는데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분화가 일어난다. ‘서청원계’와 ‘최병렬 옹립파’로 갈라진 것이다. 서청원계엔 박종희 임태희 의원이, 최병렬 옹립파엔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의원이 섰다. 최병렬 옹립파는 2003년 5월 만들어진 ‘쇄신모임’의 주축이 된다.

당시 최병렬 의원의 모토는 ‘개혁적 보수’ ‘보수의 반성’이었다. “보수(補修)하는 보수(保守)”란 말은 최 대표가 원조다. 최 대표는 수시로 미래연대 토론에 참석했다. 원희룡 의원의 회고다.

“다른 중진을 야단만 치던 최 대표가 소장파의 ‘국가보안법 개폐’ 토론에 참석, ‘본질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지만 일리 있는 주장도 있다’며 경청했다. 그런 최 대표에게서 정통보수이지만 다원성을 존중하고 합리적이란 느낌을 받았다. 대안은 최병렬이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기획 똑바로 해!”

소장파는 대표 경선에 나선 최병렬 의원의 숨은 참모 노릇을 톡톡히 했다. 최 의원도 그들과 함께 일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실제로 최 대표는 첫 당직 인선에서 원희룡 의원을 기획위원장, 오세훈 의원을 청년위원장에 앉혔다. 정통 보수와 개혁적 보수의 만남. ‘세팅’은 훌륭해 보였다. 소장파를 가리켜 ‘신주류 계파’라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오래갈 것 같던 신구(新舊)의 동거는 이내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2003년 9월 당시 기획위원장을 맡은 원희룡 의원은 닥쳐올 불법 대선자금 국면을 헤쳐나갈 방도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최 대표 앞으로 며칠째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올렸다. 최 대표가 별 반응이 없자 그는 7층 대표실을 찾아 독대를 청했다.

“다가올 여권의 공세를 헤쳐나갈 방법은 지난 대선의 불법자금 문제를 국민 앞에 진솔하게 밝히는 정공법뿐입니다.”

최병렬 대표의 인상이 구겨졌다.

“국민 앞에 진솔하게 밝혀 이해를 구한 뒤 당사를 팔고 천막으로 가야 합니다.”

최 대표가 더는 듣지 못하겠다는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기획 똑바로 해!”

최 대표는 이후 이재오, 홍준표, 김문수 의원 등 재선 3인방을 중용하며 당을 비상대책위 체제로 몰고 간다. “진솔하게 밝히고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한다”는 소장파의 해결 방식 대신 “적이 칼을 휘두르면 그 칼을 물고 맞짱을 떠야 한다”는 재선 강경파의 해결 방식을 택한 것이다.

소장파와 최 대표 사이에 파열음이 나기 시작했다. 원희룡 의원은 이재오, 홍준표 의원에게 철저하게 따돌림당한다. “소장파도 물갈이에서 예외가 아니다”는 경고가 강경파 실세 의원들의 입에서 거침없이 터져나왔다.

2003년 11월. 이 같은 기류는 정면으로 충돌한다. 비대위원장 이재오 사무총장이 비대위원인 원희룡 의원에게 “더 이상 비대위 회의에 나올 필요없다”고 통보한다. 원 의원이 그 즈음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근거 없는 폭로는 당장 그만둬야 한다. 지금 1980년대식 재야 투쟁하는 것이냐”며 비대위 주도의 대여(對與) 폭로공세를 비판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재오 총장은 격노했다. “새벽부터 이리 뛰고 저리 뛰는데 격려는 못해줄 망정…”이라며 한동안 분을 삭이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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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동훈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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