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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민족 高大’ 100년

압제에 항거하고 독재에 저항하며 써내려간 자유·정의 100년사

  • 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압제에 항거하고 독재에 저항하며 써내려간 자유·정의 10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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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제에 항거하고 독재에 저항하며 써내려간 자유·정의 100년사

1960년 4월18일 국회의사당 앞까지 진출해 3·15부정선거 규탄시위를 벌이고 있는 고려대생. 이 시위 이후 학교로 돌아오던 고대생들이 깡패에 피습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4·19혁명의 도화선이 타오른다.

실제로 재단에 출연한 것은 인촌이 아니라 그의 양부 김기중과 생부 김경중이다. 김기중은 500석 규모의 전답과 6000여 평의 대지를, 그리고 김경중은 5000석 규모의 전답을 재단법인 중앙학원에 기증함으로써 재정적 기초를 마련했다.

그러나 ‘교육구국(敎育救國)’을 앞세운 인촌의 대학 설립 의지는 ‘민족적 대사업’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확고부동한 것이었다. 3·1운동 직후 거족적으로 일어난 민립(民立)대학 설립 운동이 일본의 압력으로 실패하자 인촌은 자력으로라도 민립대학을 설립할 뜻을 품었다.

인촌은 재단법인 중앙학원을 설립한 직후에는 구미 각국의 대학 시설과 운영 방식을 살펴보기 위해 무려 2년간의 해외 시찰에 나섰다. 이 과정에 인촌은 영국의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를 보전의 이상으로 삼았고, 고려대 본관 건물(사적 285호)은 미국의 듀크 대학 건물을 참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인촌은 훗날 부통령까지 지낸 정치인답지 않게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검소하고 소탈한 면모를 보여 많은 이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1943년 보전에 입학한 이중재 전 의원은 “입학원서를 받으러 가던 날 원서 교부장소를 몰라 교정에서 잡초를 뽑고 있던 노인에게 길을 물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당시 교장인 인촌이더라”고 회고했다. 그만큼 그에게는 카리스마보다 인(仁)과 덕(德)으로 사람을 이끄는 힘이 있었다는 말이다. 말수가 적으면서도 탁월한 용인술을 보여준 인촌의 풍모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교정 풀 뽑던 仁村



게다가 인촌의 용인술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폭넓은 면모를 보여주었다. 4·19혁명 당시 고려대 학생처장을 지낸 현승종 전 국무총리는 “교수들이 좌우로 갈려 격론을 벌이다 분위기가 과열되더라도 발언을 자제시키기보다는 ‘자유토론을 계속하라’며 격려하던 모습이 생생하다”고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1940년경에는 고려대를 한국 최초의 민립대학으로 승격시키려 애썼으나 오히려 일제의 탄압만 더해질 뿐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말기로 접어든 1944년 4월에는 드디어 학교 이름마저 ‘경성척식경제전문학교’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됐고, 이른바 해외 개척을 위한 실과교육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광복 후 인촌의 오랜 숙원은 마침내 달성되어 1946년 보전을 기초로 하여 정법대학·문과대학·경상대학의 3개 단과대학으로 편성된 종합대학으로 ‘고려대학교’를 새로 설립했다.

6·25전쟁 중에는 초대 현상윤 총장이 납북되고 학교도 잠시 그 기능을 잃었으나 1951년 피란지 대구에 임시교사를 마련하고 유진오씨가 총장서리에 임명되어 다시 수업을 시작했다. 피란 중에도 고려대는 이학계의 학과와 농과대학을 신설하는 등 규모를 확장했고, 1953년 8월 환도한 뒤부터 종합대학으로서 기구를 확충하고 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본격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자유·정의·진리’로 대표되는 고려대의 교육이념은 1955년 개교 50주년을 맞으면서 탄생했다. 이는 ‘교육구국’이라는 건학정신을 계승하고 인간성과 진리라는 보편적 휴머니즘 정신을 담아 ‘세계 속의 한국 대학’으로 나아가겠다는 지향성을 분명히 한 계기였다는 것이 고려대측의 설명이다.

6·25 전쟁 이후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은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대통령 연임의 길을 열어놓았고, 자유당은 권력남용과 야당 탄압으로 국민적 지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결국 이승만 정권이 3·15 부정선거를 일으키고 그해 4월 마산에서 발견된 김주열군의 처절한 죽음이 알려지자 국민의 분노가 들끓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구 지역의 고교생 시위를 제외하고는 서울에서 대규모 항쟁이 일어날 조짐은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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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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