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무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윤석화

“내용 좋은데 흥행 안 된 작품? 그건 ‘마스터베이션’이죠”

  • 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무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윤석화

2/9
무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윤석화

윤석화는 1999년 월간 공연전문지 ‘객석’을 인수했다.

‘위트’ 앙코르 공연이 4월22일부터 정미소에서 6주 동안 열린다. 위트의 주인공 비비안 베어링과 윤씨는 공교롭게도 같은 나이.

-결혼도 안 하고 존 던의 시에 몰두하다 난소암에 걸려 죽는 비비안 베어링이 관객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비비안 베어링은 ‘난 두뇌만 명석하면 잘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인간적인 따뜻함이라곤 없고 공부만 하는 여자였죠. 그러나 정직했습니다. 죽음을 맞아 삶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깨닫습니다. 아이러니는 대단한 문학적 장치입니다. 극과 극을 메타포(은유)로 연결하니까요.

한 개인의 죽음은 슬플 수밖에 없지만 베어링 교수의 죽음은 일종의 부활이라 생각합니다. 치열한 아픔을 겪으면서도 그녀가 남긴 말은 ‘죽음도 나를 죽일 수 없다’였습니다. 다시 인간의 자리로 돌아간 사람은 죽음도 결코 죽일 수 없다는 거죠. 서재로 들어가는 마지막 신(scene)을 저는 일종의 부활이라고 해석했어요.”

-홈페이지 머리에 ‘연극은 그녀의 이데올로기이고 친구이며 생(生)이고…전부다’라는 글이 떠 있더군요.



“연극은 제 삶에 있어 구도하는 길이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연극에서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연극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좋은 모습은 없었을 것 같아요. 연극을 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행복했죠. 저는 사는 법을 연극에서 배웠습니다. 그래서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죠.”

‘신(神)의 아그네스’는 윤석화라는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킨 작품이다. 총 532회 공연에 10만 관객이 몰려 한국 연극의 신기록을 수립했다. 그가 직접 번역을 하고 타이틀 롤을 맡았다. 뉴욕대에서 드라마를 공부할 때 이 작품을 보고 감동받아 여름방학 때 한국에 들어와 무대에 올렸다. ‘객석’ 대표 사무실에는 27세 때의 윤씨 모습이 담긴 ‘신의 아그네스’ 공연 포스터가 걸려 있다. 여성으로서 전성기를 맞은 윤석화가 수녀복을 입은 모습이 매혹적이다.

30년 동안 매번 최선 다했다

“미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좋은 번역극을 골라내는 것도 학교 공부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죠. 우연히 ‘신의 아그네스’를 보고 이 작품이야말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감을 줄 수 있는 작품이라 판단했습니다. 신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작품이죠. 나는 누구일까. 신은 무엇일까.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이런 의문을 누구나 갖고 있죠. 제가 생각하는 연극이란 좋은 질문거리를 찾아 관객에게 던져주는 것입니다. 대답은 관객이 스스로 찾아야죠.

‘신의 아그네스’는 여자 셋만 나오는 연극입니다. 무대를 장악하는 메시지, 구성 그리고 희곡의 힘이 아주 좋다고 생각했어요. 대본도 천신만고 우여곡절 끝에 거의 기적적으로 구했어요. 저자하고 협의가 안 이뤄져 대본이 그때까지 출판되지 않고 있었죠. 어느 날 공연 끝나고 그냥 무작정 무대 위로 뛰어올라갔어요. 제가 극장의 구조를 잘 아니까요. 드레스 룸으로 가서 연출자를 만났습니다. 연출자가 자기들만 볼 수 있는 대본을 하나 구해 저한테 줬습니다.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번역을 시작해 귀국하자 마자 이틀밤을 꼬박 새우며 대본을 완성했습니다.

여러 극단에서 손을 내밀었습니다. 실험극단 윤호진씨와 손잡고 작품을 했죠. 처음 연습할 땐 참 서러웠어요. 연습장소가 없어 아파트 부녀회관을 빌렸죠. 그런데 제가 애 낳는 장면에서 하도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주민들의 항의를 받고 쫓겨났어요. 외로운 작업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작품이 될 거라고 믿었어요.

‘닭 모가지에 새 다리’로 뉴욕 맨해튼을 거닐며 가난, 서러움, 외로움, 배고픔을 연극이란 꿈 하나로 이겨냈습니다. 순간순간이 연극을 향한 기도였습니다. 이 작품을 고르고 나서 남들이 상상하지 못할 만큼 노력했습니다. 기도가 헛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잘될 줄은 몰랐죠. 대한민국 연극계에 이변이 일어났죠.”

-‘닭 모가지에 새 다리’는 무슨 뜻입니까.

“제가 닭 모가지에 새 다리거든요. 다리가 가늘고 목도 가늘어요.”

윤석화는 가슴이 살짝 드러나는 네크라인의 블라우스를 입고 그 위에 카디건을 걸쳤다. 카디건은 윗단추 하나만 잠가놓아 가슴 위에서 자연스럽게 벌어졌다. 그녀는 손으로 카디건 앞자락을 여미다가 제스처를 할 때는 놓아버렸다. 그때마다 가슴이 노출됐다. 아무나 흉내내기 어려운 과감한 옷차림이다.

2/9
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연재

황호택기자가 만난 사람

더보기
목록 닫기

무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윤석화

댓글 창 닫기

2019/09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