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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도의 한국혼 ⑤

사쓰마 도자기의 핏줄 심수관家 (하)

“한세상 어느 때나 꼭 같은 그날, 고수레 고수레 자나깨나 잊지 않으리…”

  • 글: 김충식 동아일보 논설위원 skim@donga.com

사쓰마 도자기의 핏줄 심수관家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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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씨의 부인은 웃었다. 당신과 이 동네가 어떻게 소설의 소재가 되겠냐고 빈정대며 킥킥거렸다.

‘문예춘추’에서 나온 시바의 책을 찾으러 가까운 서점에 갔더니 두 권이 진열되어 있었다. 심씨는 두 권을 다 샀다. 혹시 창피한 대목이라도 있을까 봐 남이 보지 못하게 ‘증거인멸’ 차원에서 그랬다고 한다. 책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 숨죽인 채 자신의 라이프 스토리를 눈물을 글썽이며 읽었다.

심수관 14대는 시바에게 자신의 인생 목표와 도공으로서의 사업적 진로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물었다고 한다. 돌아가신 13대 심수관(14대의 부친. 1964년 4월1일 75세를 일기로 작고)의 유언을 소개하면서.

아버지가 임종하실 무렵 아들은 “다른 도예가들처럼 전람회를 열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평소 전람회 따위를 열어 예술가인 척하는 것은 의미도 없고 가풍에도 맞지 않다며 반대해왔다. 그러나 아들은 재차 건의했다.

아버지는 쇠약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심가 십수대의 예풍(藝風)이 미약하다면 모르겠다만….”

나와 네가 만든 것을 포함해, 언뜻 보기에는 조상 대대로 그냥 물려받은 것 같아도 흙이 다르고 솜씨가 달라 다 개성이 있다. 그 한 대, 한 대가 모두 산봉우리가 되어 집안이라는 산맥을 형성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 봉우리 하나로도 훌륭한 인생이 되지 않겠느냐…. 그런 의미였다.

아들은 이미 전람회 출품을 권유받은 상태였다. 뭔가 아버지대와는 다른 길을 걷고 싶은 충동도 있었다.

“그렇다면 아버지, 저라는 존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까.”

아버지, 모든 것을 가르치고 일깨우신 아버지, 저에게 삶의 빈 구석을 채울 길을 가르쳐주소서. 최후의 기도를 하는 심정으로 아들은 되물었다.

대답은 짧은 한마디였다.

“네 아들을 도공으로 만들어라. 내가 할일도 그것뿐이었고, 네가 할일도 그 것뿐이다.”

그가 시바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여기까지였다.

그러자 시바는 아이디어를 줬다. 가업을 계승하라는 유언은 지키되, 전람회는 남과 함께 하지 말고 개인전을 개최해 활로를 열어야 한다는 충고였다. 이는 결코 아버지의 유언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며 새 시대의 조류에도 맞는 것이라는 취지였다.

“심 선생, 개인전을 여시오. 한 점에 샐러리맨의 한달 월급, 가령 30만엔쯤 되는 것을 만들어보시오. 그런 정도의 물건이 팔릴 만큼의 평판을 쌓으시오.”

그는 용기를 내어 후쿠오카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러자 시바는 부부동반으로 찾아와 ‘선전부장’이 되어줬다. 백발의 대작가가 들렀다는 것만으로도 홍보효과는 대단했다. 시바로서는 개인전을 권유한 데 대해 약간의 책임을 느꼈을 법도 하다. TV 방송국에서 시바가 왔다고 취재해 방영하는 바람에 개인전은 대성공을 거뒀다. 원래는 7일 예정이었지만 사흘 만에 전시한 작품 50점이 매진됐다.

예술적 완성 이룬 12대

심수관가(家)의 기예적 완성은 12대 할아버지가 이룬 것이라고 한다. 그의 도예 솜씨와 경영수완은 대단했다.

메이지 유신이란 천황 중심주의, 국가주의로 무장하는 일이었다. 이 회오리바람 속에 나에시로가와 마을은 미야마(美山)로 이름이 바뀌고, 일본 제일주의에 발맞춰 조선 전통에도 제한이 가해진다. 폐번치현(廢藩置縣·번을 없애고 현을 설치한 조치)에 따라 번이 몰락하자 번의 보호를 받던 도공들은 시린 세상에 내던져졌다.

그 와중에 12대 심수관은 번에서 운영하는 도자기 공장(藩營陶瓷器處)의 주재자가 되어 기술적으로 완성의 경지를 개척했다. 특히 도자기에 아름답고 미세한 구멍을 뚫어 굽는 투조(透彫), 표면 그림을 입체화하는 부조(浮彫) 등의 기법을 개발했다. 이런 공적이 인정되어 상공장관의 공로상을 받고 황실에 그릇을 납품하기에 이른다.

1873년에는 오스트리아 만국박람회에 역작 대화병 한 쌍을 출품해 절찬을 받았다. 일본 국보인 높이 1m55cm의 이 대화병은 사면에 새겨진 사계절 그림이 너무나 정교하고 화려해 보는 이의 찬탄을 자아낸다. 12대의 타고난 창조성과 유연한 예술적 응용력이 배어 있는 작품이다.

그는 메이지 시대에 들어온 서양 사진에서 고층건물이나 교회를 보고 놀랐다. 기껏해야 2층 목조가 고작이던 일본에 비해 유럽의 건축양식은 그 높이와 크기가 경이롭기만 했다. 이처럼 커다란 건물 속에 놓인 도자기가 키가 작으면 주목도가 떨어진다. 도자기의 높이를 키워야 한다. 그러자니 김칫독이나 된장독을 만드는 항아리 기법을 응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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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충식 동아일보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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