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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國志 兵法 ⑤

춘추시대 두 번째 패자(覇者), 진 문공의 국가경영학

군정합일(軍政合一), 정평민부(政平民阜), 개방 인사로 내실 성장

  • 글: 박동운 언론인

춘추시대 두 번째 패자(覇者), 진 문공의 국가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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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께서는 어찌하여 그렇게 잔인하실까요.”

그래도 헌공은 “증거도 없는데 설마…” 하고 결론내기를 주저했다.

태자의 측근은 여희의 작란(作亂)이니 즉각 변명하자고 했다. 혹자는 외국 망명을 건의했다. 그러나 착하디 착한 태자 신생은 고민 끝에 고령의 아버지 헌공이 여희와 더불어 편안하게 여생을 마치시길 연원한다면서 자살하고 말았다(司馬遷, 史記, 晉世家).

[제3단계-‘공범’조작과 잔적 소탕] 포와 굴에 각기 움츠려 살다 그러한 정보를 접한 두 공자는 어찌할 바를 몰라 걱정이 태산 같았다. 수도의 동향을 알아보고자 탐문꾼을 파견하기도 했다.

한편 여희 측에서는 이를 역이용하며 잔적(殘敵) 소탕전략을 세웠다. 헌공이 철저한 조사를 엄명하자 여희는 매수한 정보원들을 시켜 “나머지 두 공자인 중이와 이오도 독살 음모를 미리 알고 있었으니 공범임에 틀림없다”고 보고하게 했다.



이에 헌공이 분노하여 군대를 보내 포를 쳤다. 공자 중이는 가까스로 도주하여 적(翟)으로 망명했다. 망명과 유랑 19년의 어설픈 출발이었다. 헌공은 또 굴을 쳤다. 공자 이오는 양(梁)으로 망명했다.

마침내 후계자 교체 음모로 빚어진 만성적 국정혼란의 시기가 개막됐다. 늙은 군주가 후처를 사랑하고 그 소생을 태자로 삼으려면 혼란이 생기게 마련이다. 어느 왕조에나 흔히 있을 수 있는 부정적 사례다. 현대의 ‘인민공화국’이라 해도 권력세습에 집착하면 유사한 사태 발생을 모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여론형성층과 유대 못해

여희의 음모로, 국내에서는 해제의 즉위 외에 다른 대안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것은 단기적 성공에 불과했다. 외국으로 망명한 ‘대안’들이 건재했기 때문이다. 국내라고는 하지만 여희의 매수 작전은 귀족 관료사회의 일부에 그쳤던 것이다. 우선 군대를 장악하지 못했다. 또 반대세력 탄압에 활용할 정보기구도 없었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 특히 여론형성층과 이해일치(利害一致)라는 유대를 설정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물론 미래에 대한 비전도 없었다. 그러니 유사시에 국민의 외면과 방관, 지배층 내부의 혼란이 초래될 것은 자명했다. 헌공은 그 와중에 불안과 고민을 가누지 못한 채 노환으로 병석에 드러눕게 됐다. 하루는 심복이라고 믿어온 중신 구식(苟息)을 불러 말했다.

“나는 해제를 후계자로 작정했으나 아직은 어려서 여러 대신이 심복지 않고 있다. 즉위 후 반란이 있을까 걱정된다. 경은 해제를 옹립하고 수호할 수 있겠는가?”

구식이 대답했다.

“안심하십시오. 결심이 섰습니다.”

그러나 구식은 결심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세 판단이나 조건 형성은 제시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헌공은 그 말만 믿고 구식을 재상으로 임명해 해제 옹립을 부탁했다. 헌공이 사망하자 외국에 망명 중인 중이를 영입하려는 세력과 이오를 옹립하려는 세력이 뒤질세라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중이 영입파인 리극(里克)이 상중(喪中)의 해제를 궁중에서 시해했다. 구식이 해제의 동생 탁자를 즉위시키고 헌공의 시신을 매장했다. 그 다음달에 리극 등은 탁자도 시해하고 말았다. 동시에 구식도 순사했다.

승리감에 도취한 리극 등이 중이한테 특사를 파견, “영립(迎立)할 것이니 속히 귀국해 즉위하소서” 하고 권유했다. 만약 당신이 중이의 처지에 있었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중이는 얼씨구나 하지 않았다. 깊은 생각 끝에 사퇴하면서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나는 부군의 뜻을 어기며 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그래서 부군이 서거하셨어도 장례에 참석지 못했습니다. 그런 내가 어찌 귀국할 수 있겠습니까. 대부(大夫)께서 아무쪼록 다른 공자를 옹립하시기 바랍니다.”

그의 숙고를 현대식으로 해석하면 이렇다.

“일부 대신들이 군주를 두 사람이나 죽이고 나를 새 군주로 옹립하려 한다. 이 마당에 곧바로 귀국하면 그들이 피 묻은 손을 들어 나를 환영하겠지만, 결국 나 역시 암살당하든지 그들의 괴뢰가 되고 말 것이다. 국민이 따르지 않고, 국제적으로도 평가받지 못할 것이다. 지금 귀국하면 불안만 가중될 뿐 소신을 펼 수 없겠다. 즉위하고 싶지만 현재는 그 시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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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동운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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