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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명의 酒黨千里 ⑤

잃어버린 청주, 그 가슴 아픈 이야기

우리네 ‘맑은 술’은 아직도 ‘일제 강점기’

  • 글·사진: 허시명 여행작가, 전통술 품평가 soolstory@empal.com

잃어버린 청주, 그 가슴 아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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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일본은 우리와 얼마나 다른지, 한국으로 일본 청주를 수출하는 겟케이칸(月桂冠) 주식회사를 통해서 일본청주의 역사와 현주소를 살펴보자.

‘겟케이칸’은 월계관의 일본식 발음이다. 한국에는 겟케이칸의 술을 판매하는 전문유통업체로 한국월계관(대표·서정훈)이 있다. 한국월계관은 1995년부터 국내에 겟케이칸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해, 연간 30억원 규모인 한국의 일본 청주 소비시장에서 2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진로가 2004년 일본에 600억원 어치의 소주를 판 것에 견주면 미미한 분량이다. 그렇다고 한국 술이 일본보다 더 우수하다고 얘기하기는 곤란하다. 일본의 주류 소비유형이 더 다양하다는 표현이 알맞을 듯싶다.

겟케이칸은 1500여 개의 일본 청주회사 중에서 ‘하쿠쓰루(白鶴)’에 이어 매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2004년 출고량은 하쿠쓰루가 6만1964㎘였고, 겟케이칸이 5만6102㎘였다. 겟케이칸은 현재 청주, 쌀소주, 술지게미 가공상품, 화장품까지 만들고 있다. 청주 종류만도 70여 종인데, 용량과 디자인이 다른 상품을 포함하면 200여 종에 이른다. 단일 주력상품을 대량 판매하는 한국 주류회사들과는 사뭇 다르다.

겟케이칸 공장은 교토시의 남쪽, 후시미(伏見)에 있다. 교토는 헤이안 시대(784~1185)때 수도가 된 뒤로 일본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다가, 에도 막부 시대(1603~1867)가 시작되면서 정치 중심지는 에도(도쿄)로 넘어갔다. 1868년까지 천황이 교토에 터잡고 있었다. 화려하고 융성한 교토에 술을 공급하던 지역이 후시미였고, 그래서 고베(神戶)의 나다(灘)에 이어 일본에서 두 번째로 유명한 술 동네가 됐다.

후시미에서는 일찍부터 양조업이 번창했다. 이 동네에서 처음으로 양조 솜씨를 발휘한 것은 5세기 무렵에 외부에서 들어온 하타비토(秦人)라는 집단이다. 하타비토는 바다를 건너온 외래인을 일컫는데, 이들이 한반도에서 건너왔다는 견해도 있다. 후시미에서 가장 규모 있고 오래된 양조장이 겟케이칸이다.



겟케이칸이 창립된 것은 1637년이다. 그 무렵인 1657년에 후시미에는 술 빚는 곳(酒造家)이 83개가 있었고, 생산량도 2700㎘나 됐다. 한 곳에서 평균 32.5㎘씩 생산했으니 가내수공업 수준은 훨씬 넘어선 규모다.

1673년 바쿠후(幕府) 정권은 겨울에만 술을 빚도록 하는 법령을 시행했는데, 그 법령은 일본의 전통으로 굳어져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정치세력이 양조업을 지원하고 통제한 이유는 세금을 걷기 위한 속셈이 컸다. 일본은 878년에 처음으로 주세를 걷은 적이 있는데, 19세기 후반에 청일전쟁을 치르고 한반도를 넘보던 무렵에는 국가 세수(稅收)의 30%가 술에서 나왔다. 주세는 일본 근대화의 밑천이었고, 제국주의 침략의 군자금이었던 셈이다.

겟케이칸은 일제 강점기인 1942년, 충청북도 청주에 있던 고견(高見)주조주식회사를 인수해 한반도에서도 청주를 빚은 적이 있다. 1961년에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사계절 술을 빚는 회사가 되면서, 300년 동안 이어오던 양조 관행을 처음으로 깼다. 그리고 1989년에는 미국에 청주제조 회사를 설립해 해외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교토역에서 열차를 타고 10여 분을 가면 후시미 모모야마역에 도착한다. 후시미 술 동네 관광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역 주변엔 상가들이 즐비한데, 후시미에서 제조된 술을 모두 모아놓고 시음용 잔술을 파는 상점도 있다. 이 동네에선 큰길이라고 해봤자 폭이 그리 넓지 않다. 그 길 양쪽으로 작은 골목들이 뻗어 있고, 그 안쪽으로 목조건물이 눈에 많이 띈다. 분위기는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교토 중심가에 비해 한산하다.

상표만 봐도 청주 맛을 안다

후시미에는 130년 역사를 지닌 후시미 양조협회가 있는데, 현재 협회에 가입한 양조장은 30개다. 역에서 겟케이칸 회사까지 가는 길에 간이 우물터가 하나 있다. 작은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는데, 지하수다. 우물터 한쪽에는 양조장에서도 이와 똑같은 물을 사용한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고, 물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도시가 번성했지만, 아직도 지하수는 잘 보존돼 있다. 후시미에 술도가들이 건재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듯하다. 1920년대 후반 이 동네를 통과하는 지하철 노선이 정해지자 동네 사람들은 지하수를 지키려 지하공사를 반대해 지상으로 철로가 나도록 했다고 한다.

우물에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돌아서니, ‘달의 계수나무(月の桂)’라고 적힌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겟케이칸의 양조장이다. 양조장의 외벽은 삼나무판으로 덧대어져 길게 이어지고 그 중간에 음식점과 기념품 가게, 기념관이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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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허시명 여행작가, 전통술 품평가 soolstory@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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