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호

후반기 인생 준비하라는 축복의 신호

[PART 4] 남자의 아름다운 ‘폐경기’

  • 글: 송숙희 콘텐츠 플래너

    입력2005-04-26 15: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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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기에 접어드는 40대 중반의 남성들.
    • 그러나 이들의 상당수는 인생이 어긋난 것처럼 느끼며, 자기 자신과 가족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품기도 한다. 아내 아닌 여성에게 끌리기도 한다. 점잖고 헌신적이던 남자들에게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들은 바로 ‘폐경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후반기 인생 준비하라는 축복의 신호
    온 가족이 잠든 새벽, 혼자 일어나 아침을 간단히 챙겨 먹고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천길 아래로 떨어지는 듯한 아득함과 함께 가슴이 답답해진다는 샐러리맨 이기형(이하 가명·49)씨.

    김서윤(51)씨는 언제부턴가 거실에서 웃고 떠들던 아이들이 자신이 나타나면 제 방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돈버는 기계’인가 하는 자기 비하에 빠지곤 한다.

    선배와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황종선(53)씨는 10여 년을 정신없이 뛴 결과 회사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 싶을 즈음부터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쉬고만 싶었다. 젊은 시절의 꿈에 다시 도전하고 싶다는 말을 건넸다가 아내에게 ‘때가 어느 땐데, 그런 소릴 하느냐’는 핀잔만 들었다.

    추진광(48)씨는 몇 달에 한 번씩 아내를 상대로 하는 의무방어전을 치르기조차 힘들어진 자신을 발견한다. 집에 들어가기 무섭게 피곤하다며 잠자리에 들어 아내의 심기가 불편해져 있다는 것을 그도 잘 안다.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40대 중반 남성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기에 접어든다. 그런데 이들은 인생이 어긋난 것처럼 느끼며, 자기 자신과 가족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품기도 한다. 아내 아닌 여성에게 끌리기도 하고, 가장으로서의 책임 때문에 포기한 것들에 재도전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남편을 이해할 수 없는 아내들은 상처 받고, 남자들은 깨진 가정과 완성하지 못한 인생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점잖고 헌신적이던 남자들에게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들은 바로 ‘폐경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남자의 폐경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마치 ‘남자의 생리통’처럼 낯설게 들린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실재하는 현상이다. 남성의 폐경기는 폐정력기 혹은 남성 정지기로 불리는데, 호르몬과 신체적인 변화뿐 아니라 심리적인 면이나 대인관계, 사회적·성적·정신적으로 다차원적 변화를 겪는 시기다.

    남성 폐경기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호르몬 분비에 변화가 온다. 남성 호르몬의 대명사격인 테스토스테론을 비롯해 프리테스토스테론, DHEA, 멜라토닌, 갑상선 호르몬과 기타 여러 가지 호르몬의 분비가 감소한다. 신체적 변화로는 피로감을 호소하고, 건망증이 심해지며 지속적으로 체중이 는다. 심리적 변화로는 매사에 짜증을 내고, 결단력이 없어지며, 우울증을 호소한다. 사회적으로는 친밀한 우정을 원하면서 한편으로 고립감에 빠진다. 성적으로는 성욕이 떨어지고 발기에 장애가 생긴다. 또 성관계에 실패할까봐 두려워하게 된다. 정신적으로는 불안감이 증가하고 종교적 소명을 따르고자 하는 욕구가 커진다.

    사람에 따라 이런 증상을 모두 겪을 수도 있고, 한두 가지만 겪기도 하며 소리 소문 없이 넘어가기도 한다. 어쨌든 이런 증상들은 당신은 늙었으니 이제 죽음을 준비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인생의 전반기가 끝났으니 후반기 인생을 준비하라는 신호다. 그러니 폐경기라는 말을 굳이 부인하거나 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성년이 되기 위해 사춘기를 겪는 것처럼 폐경기는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축복의 시간이다.

    중년, 이젠 자신을 위해 울어도 될 때

    남성 건강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온 심리치료 전문가 제드 다이아몬드는 저서 ‘남자의 아름다운 폐경기’를 통해 이 시기를 어떻게 축복의 시간으로 바꿀 수 있으며 또 어떻게 해야 인생의 후반부를 더 활기차고 생산적이며 의미심장한 시간으로 채울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경험담과 그가 만나본 수많은 남성의 사례, 의학적 지식 등을 통해 성공적인 폐경기를 보내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1. 호르몬의 화음을 조율할 것

    중년에는 남성성의 상징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아진다. 체중 증가, 흡연, 약물 복용, 음주, 비타민C 부족 등의 생활습관을 돌아봄으로써 호르몬이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건강을 챙기는 것을 창피해하지 말아야 한다. 남성들은 흔히 건강 챙기기를 좀생원이나 하는 짓이라고 여기는데, 중년은 맛있는 음식과 기분 좋은 운동을 즐겨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생활수칙을 명심하자. 물을 많이 마신다. 콩 요리를 자주 먹는다. 포화지방산의 섭취를 줄인다. 토마토가 들어간 요리를 즐긴다. 태생적인 활동인 운동을 잊지 않는다.

    3.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자신을 괴롭히는 과거의 상처나 그로 인한 우울증 등을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과거의 상처를 들추면 마음이 아프겠지만 그것을 치유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특히 ‘조용한 살인마’로 일컬어지는 우울증을 치료하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 가장 큰 축복이다. 우울증은 뇌에서 분비되는 물질이 문제이지 마음을 고쳐먹는다고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4. 아내와 친구, 사랑과 우정을 지켜야 한다

    동반자와의 사랑과 친밀감, 가족의 보살핌과 지원, 가까운 벗들과의 우정이 이 세상을 살아갈 만한 곳으로 만들어준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성의 폐경기가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자신뿐 아니라 친구, 아내, 가족의 따뜻한 배려와 마음이 절대적이다.

    5. 섹스에 대한 인식을 바꿔라

    삽입섹스에 대한 강박관념은 이제 놓아주어라. 진정한 섹스는 손길 하나, 상대를 인정하는 눈빛, 미소 같은 사랑과 관계에 대한 느낌만으로도 완성될 수 있다.

    6. 마음이 잘 통하는 남자들끼리 연대하라

    남자들은 어릴 때부터 다른 남자를 믿지 않도록 교육받는다. 직장 동료는 언제 내 자리를 노릴지 모르니까. 다른 남자가 내 여자를 빼앗을지 모르니까. 그래서 그들은 동성을 믿지 못한다. 하지만 친밀감은 건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제 남성에게도 동성의 도움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운동경기나 퇴근 후 술자리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와 보살핌, 사랑을 위해 남자들끼리 모여야 한다.

    7. 삶의 중심을 ‘정신성’에 두라

    2차 성인기에는 새로운 현실이 기다린다. 직장생활의 성공이나 실패가 새로운 의미나 목적을 추구하는 데 영향을 주기도 하고, 오랜 결혼생활을 끝내거나 아이들과 서먹해진 관계에서 부모님이나 가까운 이들의 죽음 앞에서 삶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누구이고, 살아오면서 세상과 다른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하는 의문들이 떠오를 것이다. 이것은 정신성의 영역이고 사람마다 그 답이 다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영혼이나 신을 찾는 것은 자기 자신을 찾고자 하는 욕구의 다른 면이고, 신념과 의혹, 지식과 이해를 넘어서 끝없이 추구해야 할 진실을 향한 길고 험난한 여정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가이드라인일 뿐이다. 보편적인 정신성의 길이 없는 것처럼 폐경기를 보내는 모범답안도 없다. 다만 두려워하지 않고 준비하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이라는 최고의 시간이 남성들을 기다릴 것이다.



    폐경기 남편 둔 아내에게 보내는 메시지

    중년 남성의 혼란은 광기도 아니고 혼자만 겪는 병도 아니다. 그런 만큼 누구보다 배우자나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다. 외도는 남성 폐경기의 전형적인 증상 가운데 하나다. 남자는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쉽게 저지르는 실수가 아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뀌지 않을까 섣불리 낙관하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외도를 하는 남성들은 예외지만.

    남편의 외도에 가장 큰 상처를 받는 것은 물론 아내다. 하지만 성급한 판단은 본인에게도 평생의 상처로 남을 수 있다. 의기소침해 있는 남성에게는 ‘걱정 마, 잘 될 거야’라는 위로보다 그의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것이 더 간절하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마음을 열고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것, 그리고 상대를 바꾸겠다는 욕심 없이 공감해주는 것이다. 그때 ‘난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과 함께할 거야, 우린 무슨 일이든 함께 이겨나갈 수 있어요’라는 메시지가 전해진다. 부부 사이에 마음을 연 대화는 실타래처럼 엉킨 마음의 혼란을 넘어서는 데 가장 중요하다.

    * 이 글은 남자의 폐경기가 무엇인지, 이 시기의 남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쓴 ‘남자의 아름다운 폐경기’(제드 다이아몬드 지음, 도서출판 뜰)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남성의 ‘폐경기’는 신체적·심리적·사회적으로 다차원적 변화를 겪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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