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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처에 방화광(放火狂)이 숨어 있다!

“노력해야 헛고생, 차라리 다 같이 죽자…”

  • 글: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도처에 방화광(放火狂)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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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처에 방화광(放火狂)이 숨어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 방화범죄가 늘고 있는 것도 소외계층의 확산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은 금융위기 이후 8년 만에 빈곤층 인구가 두 배나 증가했다. 노동시장이 급격하게 유연해지면서 실업자가 늘고, 비정규직이 확대되고 있다. 빈곤층 가족은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으며, 자녀 보육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만큼 경제적으로 피폐해졌다. 경쟁에서 밀린 약자들은 사회와 정부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중앙대 신광영 교수(사회학)는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경제 회복을 위해 승자(勝者) 독식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남발한 결과 방화 같은 범죄가 증가하는 후유증이 나타났다”며 “정부는 말로만 분배정책을 실시한다고 할 뿐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지 않아 불평등은 점점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의 지적대로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계층간 사회적 갈등이 심화될수록 범죄는 증가한다.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급증하고 있다. 특히 방화는 살인이나 강도보다 훨씬 위험하고 치러야 하는 대가가 크다. 한꺼번에 수많은 생명을 위협하고, 재산상의 피해 또한 적지 않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대구 지하철 참사는 방화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줬다.

2003년 방화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361명. 10년 전인 1994년 105명이 사망한 것과 비교하면 3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방화현장을 자주 목격하는 수사관들은 불에 타서 숨진 사람의 형체는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참하다고 전한다. 대부분 몸이 오그라든 채 숨져 있다. 때론 탈출하려고 창문에 매달린 채 타 죽은 경우도 있는데, 그 광경이 얼마나 처참한지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다고 한다. 그나마 고인에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이렇듯 타서 재가 되기 전에 이미 유독가스로 질식한 상태라는 사실이다. 불에 타는 끔찍한 고통은 느끼지 못하고 사망했으리라는 것.

화재로 사망한 사람보다 더 고통스러운 경우가 중화상을 입은 사람이다. 방화로 화상을 입은 사람은 1994년 208명에서 2003년 550명으로 늘어났다. ‘화상은 천형(天刑)’이라고 할 만큼 끔찍하다. 갖가지 합병증에 시달려 살아도 산다고 할 수 없는 것이 화상이다. 이런 환자가 500명을 넘어섰고, 증가 추세에 있다는 사실은 언젠가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몸서리쳐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도처에 방화광(放火狂)이 숨어 있다!
이렇듯 끔찍한 짓을 자행하는 방화범은 대체 어떤 부류의 사람일까. 전국 9개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방화범 55명을 만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형민 박사는 “대다수의 방화범이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며 경제적으로 하류층이었다”고 분석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남과 어울리지 못하고, 함께 문제를 풀지 못하는 사회적 장애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성향은 빈곤과 맞물려 방화범 자신을 막다른 길로 몰아넣고, 자폭성 폭발로 이어진다.

지난해 연말 경찰에 붙잡힌 모자(母子) 방화범이 그랬다. 68세 노모와 24세 아들 박씨는 노인이 거주하는 단독주택만 노려 물건을 훔치고, 스무 차례나 방화했다. 박씨는 검거되기 전 경관을 흉기로 찔러 죽여 잔인한 살인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를 만난 범죄분석가는 “알려진 것과는 많이 다르다”면서 “박씨가 노인이 사는 주택만 노렸다는 것은 그만큼 심약하다는 증거”라며 “그는 곁에 어머니가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이라고 전했다. 박씨가 방화범죄에 노모를 끌어들인 것도 범행할 용기를 얻기 위해서였다. 박씨는 범행 장소 반경 50m 이내에 어머니를 데리고 가, “잠시 다녀오겠다”고 한 후 도둑질을 하고 불을 질렀다.

경찰에 따르면 대구에 사는 이 모자의 처지는 “기막힐 만큼 가난했다”고 한다. 이들은 쌀이 없어 물로 배를 채우기가 다반사였다. 박씨는 경찰관에게 “방에 쌀 한 가마 들여놓고 쳐다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기본적인 사회보장 혜택조차 누리지 못하는 계층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박씨에게 약탈과 방화는 생존을 위한 마지막 수단이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방화범은 불을 지르기 전까지는 사회적 약자이자 피해자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를 참지 못하고 무서운 가해자로 돌변한다. 쌓인 응어리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풀지 못하고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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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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