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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제언

한국 표준시 30분 늦추면 ‘대충대충’ 풍토 사라진다

동경 127도30분 채택은 ‘시간의 광복’!

  • 김기덕 건국대 연구교수·한국사 kkduk1551@hanmail.net

한국 표준시 30분 늦추면 ‘대충대충’ 풍토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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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표준시 30분 늦추면 ‘대충대충’ 풍토 사라진다

일본 고베시 춘일대공원에 설치된 동경 135도 표준시 기념탑.

중국 산둥반도를 지나가는 동경 120도가 베이징 표준시이고, 일본 고베에서 서쪽으로 20km 떨어져 있는 아카시라는 작은 도시를 지나는 동경 135도가 일본의 표준시다. 둘 사이에는 15도, 즉 한 시간의 차이가 있다. 중국보다 해가 일찍 뜨는 일본이 한 시간 빠르다. 우리나라 경기도 가평 부근을 통과하는 동경 127도30분이 일본 표준시와 베이징 표준시의 중간에 해당한다. 가평에서 볼 때 도쿄보다는 30분 늦고 베이징보다는 30분 빠르다.

이처럼 경도를 15도씩 분할할 때 우리나라에 가장 근접한 자오선은 동경 135도와 동경 120도다. 우리는 현재 동경 135도를 표준자오선으로 선택해 사용하고 있다. 프랑스, 스페인, 스위스도 우리나라처럼 자국 영토를 통과하지 않는 자오선을 표준자오선으로 사용한다. 각 나라는 관례적으로 15도에 한 시간씩 차이가 나는 24개의 표준자오선 중 하나를 선택하여 표준시로 삼고 있으나, 어떤 나라는 좀더 세분하여 지역주민의 편의에 따른 표준시를 사용한다. 네팔(15분대), 미얀마(30분대), 인도(30분대)는 한 시간 간격의 표준자오선을 사용하지 않는다. 반드시 24개의 표준자오선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서 표준시로 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이 동경 135도를 표준시의 기준으로 삼은 것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과거 한국의 표준시 변경과정을 살펴보면, 단순히 국제적 관례로 표준시를 선택했다고 보기 어려운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처럼 표준시가 왔다갔다한 적은 없다. 비록 지금의 표준시는 1961년 이후 40여 년 넘게 사용되고 있지만, 몇 번의 표준시 변경과정을 거쳤다. 조선시대의 앙부일구와 같은 해시계는 태양이 남중하는 때를 정오로 설정했다. 해시계는 조선시대 수도였던 서울에서 측정해 자연스럽게 서울을 지나는 동경 127도를 기준으로 한 표준시를 사용한 셈이다. 1907년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면서, 다른 근대 국가처럼 표준시를 제정해 사용했다. 1908년 2월7일 통과되고 4월1일부터 발효된 동경 127도30분 기준의 표준시가 그것이다.

이승만의 ‘복귀’, 박정희의 ‘뒤집기’



그러나 1910년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면서 표준시가 바뀌었다. 일본제국은 한국을 자국 영토로 간주해 1912년 1월1일부터 일본이 사용하는 동경 135도 기준의 표준시를 사용하게 했다.

이런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이승만 정권은 1954년 3월21일 자정을 기해 독자적인 표준시를 제정해 시계바늘을 30분 늦췄다. 당시 제시된 변경사유는 일제 잔재의 청산이었다. 이와 관련해 당시 ‘동아일보’는 “미군의 작전지휘권이 도쿄 미 극동사령부에 있는 관계로 미군은 표준시 변경을 따를 수 없다고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일 양국에 주둔한 미군의 처지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표준시가 달라지면 그만큼 군사적 작전운용이 불편했을 것이다.

이러한 반대에도 이승만 정권은 표준시 변경을 관철했다. 국립중앙관상대장 이원철 박사는 표준시 변경에 대해 “태양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는 합리적인 시간으로 복귀한 것”이라 강조하고 “한반도의 중앙부를 통과하는 자오선을 기준으로 하는 표준시간으로 복귀하는 것이 타당한 일”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 사설에서도 “일월의 출입시간이 정확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본 표준시를 그대로 쓴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유쾌한 일이 아니었는데 이번에 종래의 우리 표준자오선으로 복귀하게 된 것은 그야말로 ‘시간의 광복’이라 할 것으로 당연한 일이다”며 변경의 의미를 확실히 밝혔다. 이처럼 우리나라 서울 땅을 기준으로 표준시를 설정한 조치에 대해 당시의 분위기는 대단히 긍정적이었다. 서울 종로 보신각과 전국의 학교, 교회, 사찰은 종과 사이렌을 일제히 울림으로써 국민 모두 ‘시간의 광복’을 경축했다.

그런데 1961년 5월16일 박정희 장군이 주도하는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그로부터 석 달도 되지 않아, 8월10일 자정을 기해 군사정권은 법률 676호(표준자오선 변경에 관한 법률)에 따라 다시 시계바늘을 30분 앞당겨 일본과 같은 동경 135도 기준의 표준시를 사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유는 ‘국제적으로 30분 차이가 나는 표준시가 없다’는 것, 군사정권은 시차(時差) 환산의 편리성을 강조했다. 국제적 관례와 일치시킨다는 것이었다.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표준시를 변경한 과정에 대해 그동안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2004년 8월 KBS가 이석재의 사건파일 ‘광복 59년, 시간은 해방되지 않았다’는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KBS는 1961년 8월4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제27차 상임위원회 회의록을 입수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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