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호

자살테러의 메커니즘

시간·장소 가리지 않는 비용대비 효과 극대화로 ‘인간 스마트탄’, ‘남는 장사’

  • 글: 최진태 한국테러리즘연구소장 jtchoi21@paran.com

    입력2005-05-25 15: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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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파병 등 한국군의 해외활동이 강화됨에 따라 ‘남의 일’이던 테러 위협이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2003년 오무전기 근로자, 2004년 김선일씨 피살사건에 이어 지난 5월4일에는 자이툰 부대 주둔지 인근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 많은 사상자를 내 당국을 바짝 긴장시켰다.
    • 21세기 들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공격’ 자살테러는 과연 어떻게 계획되고 준비되며 실행되는가.
    자살테러의 메커니즘

    자이툰 부대 요원들이 아르빌 현지시장을 방문한 한국 취재진을 경호경비하고 있다. 이들은 파병 이후 아르빌 시내를 활보한 첫 민간인이다.

    5월 4일의 자살폭탄 테러는 쿠르드족 자치지역 아르빌의 한국군 자이툰 부대 주둔지로부터 8km 떨어진 지점에서 발생했다. 사망자 60여 명, 부상자 150여 명. 범인은 현지 쿠르드 민주당 사무실에서 지역경찰이 되기 위해 모인 300여 명의 지원자 속에서 자폭했다.

    이번 자살테러는 쿠르드족이 과도정부에 참여하면서 분리독립을 추구하고 있고, 쿠르드 민병대가 미군의 치안활동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데 대한 반발로 이슬람 과격 테러조직이 자행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쿠르드족은 정치협상을 통해 상징적 지위이기는 하지만 이라크 국가원수인 과도정부 대통령을 차지했고 내각 37석 중 9석을 할당받았다.

    사건 직후 한국군 자이툰 부대원과 지원인력의 영외활동은 전면 금지됐다. 테러 징후 평가단계도 ‘긴장(amber)’에서 ‘위협(red)’으로 한 단계 격상하고 경계를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러 징후 평가단계는 보통(green), 긴장(amber), 위협(red), 위급(black)의 4단계로 구분되는데, ‘위협’ 단계가 발동된 것은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파병 이후 처음이다.

    이번 공격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면서 추가 테러를 경고하고 나선 것은 ‘안사르 알 순나’라는 수니파 조직. 이들은 2004년 2월 100명이 넘게 희생된 쿠르드 정당 사무실 두 곳에 대한 동시 테러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쿠르드족 자치지역마저 테러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쿠르드족 자치지역에 대한 재건 지원과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는 자이툰 부대와 한국인에 대한 자살테러 공격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일고 있다. 안사르 알 순나는 자이툰 부대 선발대가 주둔지인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 도착해 활동을 개시한 지난해 8월24일 KBS를 통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테러를 자행하겠다”는 내용의 비디오를 공개한 조직 ‘검은 깃발’의 이명(異名)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들은 지난해 12월 자이툰 부대에 대한 차량탑재 폭탄공격 지시가 내려졌다는 첩보에서 거론된 조직이다.



    그뿐 아니라 안사르 알 순나는 지난해 12월21일 이라크 북부 모술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부대에 대한 테러공격으로 22명의 사망자와 94명의 부상자를 낸 바 있다. 이미 자체적인 정보수집 및 테러 자행 능력을 갖추고 있는 데다 이라크 전지역으로 테러전술을 확대함으로써 미군과 연합군의 군사작전 능력 약화를 지속적으로 꾀해온 것이다.

    자이툰 부대가 환자 진료 등 성공적인 대민 지원활동으로 호평을 받으면서 한국과 쿠르드족 자치지역 간에 우호적인 관계가 형성되자 이를 저지하려는 의도를 가진 조직이라는 점도 염려스러운 부분이다.

    이렇듯 이른바 ‘그린 존(Green Zone)’에서도 자살테러가 발생해 이라크엔 안전한 지역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이라크 재건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우리 기업들이 이라크에 적극적으로 진출할 경우 한국이 자살테러의 초점에 놓이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예상할 수 있다.

    최초의 자살테러는 1983년

    2003년 이라크전을 계기로 이슬람 과격세력이 이라크를 지하드의 새로운 전초기지로 삼아 반미·반서방 테러를 강화해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04년 한 해 동안 전세계적으로 988건의 테러가 발생했으며 이중에 이라크(581건)를 포함한 중동지역에서만 627건이 발생했다.

    이라크 내의 테러 발생 추세에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은 전쟁이 종결됐는데도 오히려 크고 작은 무장 저항세력의 테러 공세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외부에서 유입된 이슬람 과격분자들이 현지 저항세력과 연대해 피비린내나는 자살테러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

    자살폭탄 테러의 주된 공격대상은 미군이지만 이라크전에 참전한 연합군에 대한 자살테러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한 예로 지난해 10월25일 주(駐)이라크 호주대사관의 외교관 보호임무를 수행하던 호주군 장갑차 3대가, 그린 존 외곽에 있는 호주대사관에서 350m 떨어진 지역에서 순찰 임무를 수행하던 중 차량 자살폭탄 테러를 당해 3명이 사망하고 16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라크 사태의 장기화로 이슬람권의 반미·반서방 감정이 고조되면서 이슬람권 국가에서 동조 테러 위협이 확산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살테러 발생지역도 이라크뿐 아니라 인근 중동지역, 심지어 동남아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9월9일 주인도네시아 호주대사관 정문 앞에서 발생한 차량 자살폭탄 테러로 200여 명이 부상당한 사건이 그 예다.

    학문적으로 정의하자면 자살테러란 특정 인물이나 시설을 공격하기 위해 작전에 동원되는 사람의 목숨을 의도적으로 희생시키면서 대량 살상을 꾀하는 테러의 한 유형이다. 이러한 자살테러는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테러조직의 전술이라는 점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현대적인 의미의 자살테러는 1983년 10월 레바논에서 최초로 발생했다. 헤즈볼라가 수도 베이루트에 있는 미군 해병대 사령부에 대해 자살폭탄 공격을 가해 241명의 군인이 사망한 사건이다. 1만2000파운드의 폭약을 실은 노란색 벤츠 트럭이 이른 아침 정문을 통과해 사령부 건물 정면으로 돌진해 폭발했다.

    이 사건은 레바논에 주둔하고 있던 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의 평화유지군이 철수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헤즈볼라의 자살테러는 점령군 철수라는 목적을 달성한 성공적인 작전으로 인식됐고, 테러조직의 전술적 선택으로 정착됐다고 할 수 있다. 이 사건 이후 자살테러는 일종의 현상이라 할 만큼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1986년에는 헤즈볼라에 의해 선발된 젊은 레바논 여성이 차를 몰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탑승한 트럭에 충돌한 후 자폭해 충격을 던졌고, 1993년 9월13일 오슬로평화협정 체결 이후 1994년부터는 하마스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의 자살테러가 잇달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자살테러의 파도가 휘몰아쳤다. 극단적인 자살테러의 전형이 된 9·11 테러는 그 의외성으로 인해 미국인은 물론 전세계인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 제1단계 : 공격목표의 선정 ]

    통상적으로 자살테러는 공격목표 선정, 자살테러범 선정 및 훈련, 테러 수법 결정, 자살테러를 통해 얻고자 하는 목표 등에 대해 면밀한 검토를 거친 뒤 실행에 옮겨진다. 계획부터 실행까지 오랜 준비기간이 소요되어 9·11 테러의 경우는 무려 4년여가 걸렸다. 준비는 대개 자살테러 여부 결정, 공격목표 물색, 작전구상 및 준비, 자살테러범 선발 및 훈련, 테러범 배치, 실행의 단계로 진행된다.

    자살테러의 최초 결정단계는 테러조직의 지도부가 자살테러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하는 단계다. 보통 최고위급 간부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철저한 토론을 통해 이뤄지는데, 이 자리에서는 국제정세나 자신들이 처한 상황 등을 고려해 자살테러의 목적과 필요성, 공격목표 선정, 테러수법, 테러범 선발기준, 테러범에 대한 사후보상 문제 등 테러 전반에 대한 거시적인 틀을 결정한다.

    지도부의 단행 결정이 내려지면 목표선정에 들어간다. 지도부가 특정 국가, 특정 도시에 있는 시설 같은 큰 틀을 결정하면 중간 간부들이 구체적인 목표물을 설정하는 식이다. 목표물이 결정되면 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직접 현장을 답사하는 등 준비과정이 이어진다.

    과거에는 테러의 공격대상이 상징성이 높은 군사시설, 외교시설 등 강성 표적(hard target)이었지만, 자살테러의 공격목표는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쇼핑센터, 백화점, 재래시장, 대중교통수단 등을 포함하는 연성 표적(soft target)이 주를 이룬다. 1994년부터 2004년 9월까지 대중시설에 대한 공격은 총 87건으로 전체의 34%를 차지한다.

    테러조직이 이처럼 대중시설을 표적으로 삼는 이유는 테러의 피해가 크고 그만큼 공포 분위기가 확산되기 쉽다는 점도 있지만, 실제로는 이들 시설의 경우 보안대책이 전무해 침투가 용이하고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표적이 결정되면 다음은 작전구상 및 준비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테러수법, 구체적인 실행 시간 등이 결정된다. 과거와 달리 최근 자살테러의 수법은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다. 과거 폭탄을 설치하기 쉬워 자살폭탄 테러의 필수품으로 사용되던 조끼는 두께가 두꺼워 외견상으로 테러 용의자를 적발하기가 쉬웠다. 그러나 최근에는 겉옷 안에 입어도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얇게 제작된 최신형 조끼가 테러에 이용된다. 심지어 브래지어 폭탄이 사용된 경우도 있다. 지난해 7월7일 스리랑카 콜롬보 시내에서 테러 혐의를 받고 경찰서로 연행된 여성 테러범은 두 명의 여성 경관이 몸 수색을 하는 과정에서 손을 대면 폭발하도록 전선으로 연결된 브래지어 폭탄을 터뜨려 자폭했다.

    자살테러의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테러범이 직접 폭탄을 매고 자폭하는 방법, 둘째는 차량에 폭탄을 싣고 목표물을 향해 돌진하는 방법이다.

    자살테러의 3분의 2는 행인으로 가장한 테러범에 의해 자행된다. 차량을 이용한 자살테러는 정교한 하부 지원체계와 전문적인 지원이 있어야 가능하다. 우선 차량에 가득 실을 만한 양의 폭약이 있어야 하고, 차량이 경계망을 뚫고 표적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접근로나 검문검색을 피할 수 있는 방법 등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지원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행인으로 가장한 테러범이 도로상에서 벌이는 자살테러는 사건이 벌어진 후에도 공격에 사용된 폭발물의 종류, 테러범의 인적사항, 테러범이 속한 조직, 폭발물의 원리 등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폭발 순간 이를 밝혀낼 수 있는 증거가 대부분 소실되고, 부분적으로 확인된 증거를 바탕으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행인으로 가장한 자살테러의 경우 사용된 폭발물이 무엇인지조차 실체가 명확히 파악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행인으로 위장한 자살폭탄 테러의 경우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 방법은 폭탄 벨트다. 코트든 셔츠든 어떤 옷차림을 한 상황에서도 폭탄을 은닉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폭탄 조끼는 차량폭탄 테러에 비해 폭발력과 살상력이 낮지만,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폭탄 벨트나 조끼에 볼트, 나사, 너트, 못, 쇠로 된 볼베어링 등의 파편을 폭발물과 함께 은닉해 살상 능력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자살폭탄에는 폭약을 작동하는 장치와 테러범이 자폭할 수 있도록 조정장치가 필요하다. 다만 테러리스트가 마지막 순간에 결행을 망설여 작전을 그르칠 경우에 대비해 제2의 테러범이 원거리에서 폭발시킬 수 있도록 원격조정장치를 설치하기도 한다. 차량을 이용한 자살폭탄 테러에는 자동차와 트럭이 가장 자주 사용되지만, 오토바이, 자전거, 마차, 심지어 말이나 당나귀를 이용하기도 한다.

    자살테러를 자행할 시간대는 선정된 목표물에 따라 결정된다. 대중교통수단이 목표물이면 자행시간은 이용객이 많은 출퇴근 시간이다. 특정 버스에 탑승한 특정인의 암살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한 한밤중에 몇몇 승객만 탄 버스를 대상으로 자폭테러를 감행한 경우는 없다.

    반면 나이트클럽 같은 시설에 대한 자폭테러는 야간에 자행되며 식당에 대한 공격은 식사시간대에 집중된다. 군사시설에 대한 자살테러는 늦은 밤 시간을 이용한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의 병사가 취침한 데다 경비들도 어느 정도 긴장을 푸는 시점을 노리기 때문이다.

    [ 3단계 : 지원자 선발 및 훈련 ]

    작전구상과 준비가 끝나면 작전에 동원될 자살테러범을 선발하고 훈련을 시킨다. 테러범의 최종 선발은 지도부가 맡는다. 선발기준은 지원자의 능력이나 경력보다 미국과 서방에 대한 증오심의 정도, 테러에 대한 열정과 순교에 대한 각오, 이슬람 원리주의에 대한 충실성, 종교적 신념이 주를 이룬다. 지원자들은 모두 지도부와 면담을 통해 순교에 대한 각오를 확인받는다.

    최종적으로 실행자가 선발되면 동원될 수법에 대한 교육과 함께 종교 및 이념을 집중적으로 교육해 자살테러에 대한 각오를 강화하는 작업도 병행된다. 자살테러의 수법은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것이 아니므로 지원자의 정신 무장에 더 많은 시간을 할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살테러는 이슬람의 ‘파트와’ 같은 종교적 의무의 성취를 의미하므로 가장 숭고한 희생이며, 자살테러를 감행한 ‘순교자’는 천국에서 72명의 처녀와 함께 영원히 살 수 있고 또한 자신의 혈족 중 70명을 천국에 데려올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다는 식의 교육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통적으로 자살테러범은 저학력자, 불우한 가정 출신자, 정신이상자, 18세에서 27세 사이의 남성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실제 자살테러범이 이러한 범주에 속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9·11 자살테러의 행동대장 모하메드 아타는 고학력자이고, 다른 테러범들도 변호사, 대학교수 등으로 이뤄진 상류가정 출신이다. 2003년 10월3일 이스라엘 하이파에서 자살테러를 자행한 여성 테러범도 변호사였다. 자살테러에 가담하는 자들의 정신상태는 극히 정상이며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테러를 자행한다.

    테러범이 강인한 남성 전사라는 고정관념은 깨진 지 오래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적군(赤軍), 서독의 적군파 등 여성이 리더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경우가 있으며, 연쇄적인 항공기 납치로 인해 얼굴이 알려지자 성형수술을 하고 또다시 항공기 납치를 주도한 여성 테러범도 있다. 자살테러도 마찬가지다. 아직은 남성이 압도적이지만, 자살테러를 자행하고 자폭한 여성 테러범이 40여 명에 이르며 테러에 실패하고 체포된 여성 자살테러범도 최소 35명에 이른다는 한 보고서는 자살테러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님을 말해준다.

    러시아 북오세티야 공립학교에서 몸에 폭탄을 두르고 자폭한 테러범과 그에 앞서 발생한 러시아 여객기 테러의 주범은 모두 여성이다. 2002년 모스크바의 극장 관객을 붙잡고 인질극을 벌인 테러범 41명 중 18명이 여성이다. 미국 등 서방 국가에서는 체첸 출신 여성 테러범을 상복(喪服)의 검은색에 빗대어 ‘검은 과부들(Black Widows)’이라고 부른다. 러시아와 전쟁 중 남편이나 아들을 잃은 여성이 테러조직에 가담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여성으로만 구성된 테러조직도 눈에 띈다. 2002년 와파 이드리스라는 팔레스타인 여성이 예루살렘에서 자살테러를 감행한 후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알 아크사 여단 내에는 ‘와파 이드리스 그룹’ 혹은 ‘선택된 부대(The Chosen Unit)’로 알려진 여성 자살테러 조직이 만들어졌다. 2003년 3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일간지 ‘아샤르크 알 아우사트’는 “알 카에다가 미국에서 자살폭탄 테러를 벌이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 등 아랍권 국가 여성들을 모아 자살 공격부대를 구성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2003년 4월4일 이라크에서는 두 명의 여성 테러범이 연합군을 대상으로 자살폭탄 테러를 자행해 3명의 군인이 사망하고 2명의 민간인이 부상했다. 사건 직후 여성 자살테러범이 코란과 무기를 들고 사담 후세인을 지지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낭독하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가 알 자지라 방송을 통해 보도됐는데, 놀랍게도 이들 2명 가운데 한 사람은 임신 중이었다.

    이처럼 여성이 테러의 전면에 나서는 것은 ‘여성은 약자’라는 이미지를 이용해 국제여론의 동정을 받을 수 있다는 측면과 남성에 비해 주목을 덜 받아 검거될 위험이 적다는 이점을 노린 것이다. 이스라엘의 표적 공격으로 살해된 하마스의 지도자 야신도 초창기에는 여성 자살테러에 대해 반대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지난해 1남1녀의 어머니인 림 리아시가 자살테러를 감행한 후 “남성 전사들은 활동하는 데 너무 많은 제약에 부딪힌다”며 “성전(聖戰)은 무슬림 남성과 여성 모두의 의무”라는 주장을 한 바 있다.

    [ 제4단계 : 감행과 사후조치 ]

    사전준비가 마무리되면 마지막 단계는 자살테러범의 배치와 테러의 감행이다. 테러조직은 작전 실행 하루 전날 조직의 깃발 아래서 코란과 총을 들고 자살테러를 감행하는 이유 등을 밝히는 영상물을 제작한다. 테러조직은 제작된 영상물을 자살테러 감행 후 공개해 정치 선전물로도 활용하고, 지원세력의 결속을 다지는 매개물로 사용해 조직원 충원이나 자금조달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2002년 1월27일 와파 이드리스가 예루살렘의 쇼핑지구에서 자폭해 9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직후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그녀의 ‘영웅적 행동’을 칭송하는 포스터가 내걸렸고 이를 보고 자살테러에 자원하는 여성들이 줄을 이었다. 실제로 이드리스 자폭 후 2002년 전반기에만 이스라엘에서 발생한 여성 자살테러 사건이 10여 건에 달했다.

    테러조직은 순교가 갖는 상징적 가치를 이용해 그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세속집단에서도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구성원의 죽음에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테러조직은 구성원의 희생을 통해 극적인 지지와 지원을 이끌어내려 한다. 순교자의 죽음을 찬양하는 포스터를 제작해 배포하거나 순교를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어 확산시키는 등 자살테러범을 순교자로 영웅시함으로써 ‘순교문화’를 확산시키려 노력한다. 자살테러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이후 지원자 모집을 원활하게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자살테러가 감행된 후에는 테러범 가족에 대한 위로금 지급, 주택편의 제공, 직업 알선과 같은 보상이 이뤄진다. 2002년 예루살렘의 버스정류장에서 자폭해 6명을 숨지게 한 여성 자살테러범은 결행 직전에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임무가 완수되면 가족에게는 사망 소식과 함께 보상금이 전달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총 274건의 자살테러로 6134명이 사망하고 1만9529명이 부상을 당했다. 연평균 25건의 자살테러가 발생해 558명이 사망하고 1775명이 부상을 당한 셈이다. 사건당 사망자수는 24명, 부상자수는 78명으로, 다른 모든 유형의 테러사건과 비교해볼 때 압도적으로 희생자가 많다.

    더욱이 자살테러에 의한 희생자수는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우선 자살테러 사건 자체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테러 가운데서도 가장 극단적인 형태인 자살테러가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설명해볼 수 있다.

    첫째, 투쟁방식의 이슬람화, 즉 ‘순교테러의 확산’을 들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알 카에다의 전술 중 하나는 자살테러다. 2001년 이후 알 카에다와 같은 목적을 추구하는 국제 테러조직들의 연대가 강화됨에 따라 알 카에다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이슬람식 전술이 전파되고 있는 것이다.

    체첸 조직들이 자살테러 전술을 채택하고 있는 것은 체첸 내에서 과격 이슬람 원리주의 조직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하며, 동시에 알 카에다 같은 과격조직과 연계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발생한 테러 가운데 상당수가 이라크에서 발생했고 그 가운데 자살테러의 비중이 높아졌다는 사실은 이라크 내에 외부의 과격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조직이 개입하고 있거나 혹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둘째, 자살테러는 다른 어떤 형태의 테러보다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자살테러 사건이 발생하면 테러범의 인적사항이나 동기에 대한 본능적인 관심, 대량 희생자 발생에 따른 뉴스 가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각국의 언론이 집중적으로 주요뉴스로 처리한다. 이를 이용해 테러조직은 테러의 이유와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적 등을 광범위하게 전파할 수 있으므로 전술적으로 자살테러를 이용하는 측면이 있다. 때로는 여론의 환기 및 관심 집중이 자살테러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기도 한다.

    셋째, 자살테러는 비용 대비 효과가 뛰어난 경제적인 전술이라는 특징을 들 수 있다. 미국 RAND연구소의 브루스 호프만 박사에 따르면 이스라엘에서 자살테러에 이용되는 재료를 확보하는 데 드는 비용은 150달러 정도다. 테러조직은 150달러가 소요된 자살테러를 통해 동일 문화권 출신으로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동정심과 애국심을 자극해 거액을 기부하도록 유도한다.

    실제로 팔레스타인의 18세 소녀가 슈퍼마켓에서 자살테러를 감행한 직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장시간의 방송모금을 통해 100만달러라는 거액을 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테러범의 가족에게 전해지는 금전적 보상을 제외하고도 테러조직에게는 ‘남는 장사’가 되는 셈이다.

    넷째, 자살테러는 공격시간과 공격장소를 조정하기가 용이하다. 우선 애초부터 테러공격에 가담하는 요원의 탈출경로를 확보할 필요가 없어 작전이 훨씬 단순해진다. 테러범은 공격 목표에 원하는 시간에 최대한 접근할 수 있다. 테러범 자신이 폭탄을 운송하는 최적의 수단이 되므로 동원되는 공격 무기와 함께 ‘스마트 폭탄(smart bomb)’이 되는 셈이다.

    동시에 자살테러는 테러조직의 생존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조직원이 체포되어 정보가 노출될 염려가 전혀 없으므로 조직원의 체포와 심문, 재판, 투옥에 따른 부담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자살테러는 공격대상이 되는 이들에게 광범위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협박하는 효과가 뛰어나다. 자살테러범이 결코 광기를 가진 정신이상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함에도, 마치 테러조직이 광신집단인 듯한 인식이 확산되어 공포감이 증폭되는 것이다. 테러조직의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자살테러 캠페인은 계속될 것이며 자살테러를 사전에 막을 방법은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짐으로써 목표달성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효과가 있다.

    죽음을 각오하고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자살테러를 예방하고 대응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국제사회는 자살테러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공격적 방법과 방어적 방법이라는 두 가지 접근경로를 택하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공격적 방법이란 테러조직의 본부 및 훈련캠프에 대해 군사적 공격을 감행하거나 조직 지도자를 체포하고 표적 살해하는 방식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대(對)테러 정책노선에 따라 군사적 보복공격을 감행하는 이스라엘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특히 최근 들어 이스라엘은 테러조직의 지도자와 간부에 대한 살해 혹은 체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군사적 공격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 해도 간부들이 건재한 상황에서는 조직 재건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보안당국이 하마스 지도자 야신과 란티니를 살해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편 자살테러 지원자들의 충원과정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테러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지역의 정치, 문화, 사회, 경제적 상황에 따라 고도로 계산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즉 자살테러 빈발 지역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사회적 안정을 확보하며 정치적 협상을 위해 대화 통로를 개설하는 노력을 통해 자살테러의 정당성을 허무는 작업이다.

    반면 방어적 방법이란 자살테러범이 공격목표물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 혹은 체포하는 것이다. 자살테러가 성공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주요시설에 대한 엄격한 출입통제, 인터넷 등에 노출되기 쉬운 관련 시설의 민감한 정보를 적절히 관리하는 작업 등이 필요하다. 유사시 국민이 냉정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대테러 국민행동요령을 홍보하는 것도 방어적 방법의 하나다.



    근본적으로 자살테러는, 절망적인 현실에서 적에 대한 끓어오르는 증오를 자신의 몸과 함께 폭발시키는 극단적인 방법이다. 비록 공식적으로는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동정을 받고 있다. 이상론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자살테러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 원인이 되는 정치·이념·종교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 자체를 방지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노력이 선행되거나 수반되지 않는 한 자살테러를 막기 위한 시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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