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호

혈관 건강의 바로미터, 콜레스테롤 수치

  • 김효수 서울대 의대 내과학교실 교수

    입력2005-05-26 15:1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유명한 대중음악평론가 K씨(45)는 1년 전쯤 한밤중에 병원으로 실려갔다. 갑작스러운 가슴 통증과 호흡 곤란 때문이었다. 병명은 심근경색. 고지혈증으로 관상동맥에 죽상경화증이 생겨 혈관이 막혀 심근이 괴사상태에 빠진 것이다.

    K씨의 총콜레스테롤 수치는 무려 320mg/dl. 그는 대부분의 한국 중년 남성이 그러하듯 하루에 담배를 한 갑 혹은 한 갑 반 정도 피우고, 1주일에 나흘 정도 술을 마셨다. 번번이 자정을 넘기며 소주 두 병 이상과 맥주 세 병 이상을 마셨다. 안주는 삼겹살이나 불고기. 프리랜서인 그는 업무량에도 늘 쫓겼다. 술을 마시고 와서도 새벽까지 다음날 넘길 원고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K씨는 45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늙어 보였고 체중은 88kg였다.

    K씨의 경우는 쓰러지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로 발병이 예정되어 있었다고 할 만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중년 남성들에게 K씨의 사례는 조금 심할 수는 있어도 특별한 경우는 아니다. 다행히 최근 건강 열풍 덕분에, 그리고 부인의 걱정과 성화 덕분에 발병 문턱에서 가까스로 회귀한 사람도 많다. 그러나 K씨처럼 자신의 발병 원인이 고지혈증이란 사실조차 모른 채 병을 키우는 이들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지혈증이란 혈액 속에 지방 혹은 지질(脂質)이 늘어나서, 마치 수도관이 녹이 슬어 막히듯 혈관에 죽상경화증이 생겨 내경이 좁아지는 심각한 질환이다. 하지만 지질 자체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다. 세포막의 필수적인 부분을 형성하고, 비타민과 호르몬의 생성에도 없으면 안 될 요소다. 단 과잉 섭취할 경우, 남은 지방질은 인체에 누적된다.

    인체 내에서 작용하는 대표적인 지질로는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트리글리세라이드)의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콜레스테롤은 인체의 모든 세포를 만드는 기본 물질 가운데 하나다. 콜레스테롤은 소화에 필수적인 담즙산을 만들어 소화작용을 돕고, 호르몬과 비타민D의 합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간에서 합성되는데, 간경변증 환자와 같이 간 기능이 나쁜 사람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게 마련이다.



    중성지방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방이다. 에너지원으로 이용되며 과잉 섭취할 경우 몸에 쌓여 비만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중성지방은 피하와 복부의 장간막에 지방층 형태로 저장된다. 따라서 복부비만이 나타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지질 수치가 너무 높은 경우인데, 이를 고지혈증이라 부른다. 한편 좋은 콜레스테롤인 HDL 콜레스테롤은 수치가 낮은 경우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고지혈증이란 단어 대신에 비정상 상태임을 뜻하는 이상(異常)지혈증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지질 수치가 정상 범위를 벗어날 경우 여러 질병이 발병할 수 있고 잠재적으로는 생명을 위협하는 상태까지 야기할 수 있다. 고지혈증 혹은 이상지혈증이 결국 여러 종류의 심혈관 질환의 주범이 된다는 얘기다.

    콜레스테롤의 양면성

    최근 일요일 밤에 방영되어 인기를 끌고 있는 한 TV 건강 프로그램에서 콜레스테롤을 주제로 다룬 적이 있었다. 40대의 여자 연예인은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게 나와 가장 건강한 피와 혈관을 가진 것으로 판정받았다. 반면 배가 많이 나온 60대의 남자 탤런트는 나쁜 경우로 판정됐다. 또한 ‘사람이 재산이요, 사람과 정을 나눈다’는 휴머니즘의 기치 아래 술과 담배로 살아온 젊은 남자 연예인의 경우는 예외 없이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는 높게, ‘좋은’ 콜레스테롤 수치는 낮게 나왔다. 순전히 의학적 소견에만 의존한다면, 이런 20대는 40대 여자 연예인보다 건강하지 못한 셈이다. 20대부터 이 같은 생활을 계속한다면 앞서 예로 든 대중음악평론가 K씨처럼 쓰러지는 사람이 나오는 것이다.

    콜레스테롤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으레 혈관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악역’을 떠올린다. 하지만 콜레스테롤이라고 해서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콜레스테롤은 호르몬과 세포막을 이루는 필수요소다. 콜레스테롤은 이처럼 꼭 필요한 것이지만 넘치면 문제가 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경구가 딱 들어맞는다.

    혈관 건강의 바로미터, 콜레스테롤 수치

    콜레스테롤 수치는 혈액검사로 손쉽게 측정할 수 있다.

    콜레스테롤의 양면성은 실제 작용하는 과정에도 나타난다. ‘좋은’ 콜레스테롤과 ‘나쁜’ 콜레스테롤이 있는 것이다. ‘좋은 콜레스테롤’은 HDL(High Density Lipoprotein) 콜레스테롤, ‘나쁜 콜레스테롤’은 LDL(Low Density Lipoprotein) 콜레스테롤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콜레스테롤에도 ‘좋고’ ‘나쁜’게 있냐며 의아해할지 모르지만, 고지혈증 예방과 치료를 위해서는 ‘좋은’ 콜레스테롤과 ‘나쁜’ 콜레스테롤에 대해 바로 알고, 이 두 가지 수치를 점검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기억해둬야 한다.

    이 가운데 문제가 되는 것이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경우다. 결국 혈액 내에 나쁜 콜레스테롤(LDL 콜레스테롤)이 많아지면 마치 수도관에 녹이 슬 듯, 콜레스테롤이 동맥혈관벽에 쌓여 혈관이 좁아지는 죽상경화증이 발생한다. 죽상경화증이란 죽 같은 물질이 혈관에 끼는 병적 상태를 말한다.

    반면 좋은 콜레스테롤(HDL 콜레스테롤)은 혈관에 낀 콜레스테롤을 제거하여 간으로 보내 담즙으로 배설케 함으로써 죽상경화증을 방지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따라서 고지혈증을 치료하고 혈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좋은’ 콜레스테롤 수치는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LDL Low, HDL High’로 기억하면 편하다.

    수치 제대로 알아야 진짜 웰빙족

    그렇다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얼마나 높아야 고지혈증이라 할 수 있을까. 한 사례를 보자.

    얼마 전 병원을 찾은 회사원 김모(40)씨는 담당 의사에게서 심하게 꾸지람을 들었다. 총콜레스테롤 수치는 270mg/dl, 이 가운데 LDL 콜레스테롤은 185mg/dl이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고지혈증 진단을 받은 것이다. 1년 사이에 상태가 많이 나빠졌다. 지난해만 해도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하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출 수 있다고 했다. 언제라도 이를 실천만 하면 고지혈증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이 때문에 자신의 상태를 너무 안이하게 단정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난 올해, 콜레스테롤 수치가 너무 높아져 약물 치료를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제야 김씨는 자신이 고지혈증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또 다른 사례. 대학교수 임모(44)씨는 건강진단의 일환으로 20만원짜리 혈액종합검사를 받았다. 검사결과를 놓고 의사와 상담을 했는데 의사는 수십 가지 항목 가운데 두 가지를 가지고 한참 고민을 했다. 총콜레스테롤 수치는 200mg/dl으로 높지 않은데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170mg/dl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의사는 옐로 카드를 뽑아들었다. 유난히 건강에 관심이 많던 임 교수는 그동안 자신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정기적으로 체크해왔고 그것을 자랑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그는 총콜레스테롤 수치만 알았지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엔 무관심했다.

    콜레스테롤이란 단어를 처음 듣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김씨처럼 콜레스테롤 수치를 간과하거나, 아예 자신의 콜레스테롤 수치와 정상 수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한순환기학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남녀 100명 중 자신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다섯 명도 채 되지 않는다. 콜레스테롤 수치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징표다.

    그러나 콜레스테롤 수치는 ‘혈관 건강의 바로미터’라 할 만큼 중요하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심혈관 질환의 주요 원인이기 때문이다. 심혈관 질환은 전세계적으로 사망의 제1원인으로 악명이 높다. 세계보건기구(WHO)의 2002년도 세계건강보고서(World Health Report 2002)는 전세계 사망자의 3분의 1이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이는 해마다 1160만명의 인구가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함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비슷한데, 2002년 통계청의 사망원인 통계 결과에 따르면, 심혈관 질환은 1위인 암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2002년에만 5만5000명, 즉 날마다 150명 이상이 혈관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심혈관 및 뇌혈관 질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고됐다. 따라서 혈관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제대로 아는 것이 시급하고 중요하다.

    콜레스테롤 중에서 심혈관 질환과 관계가 가장 밀접한 것이 LDL 콜레스테롤이다. 한편 다른 위험인자가 동반하는 경우에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같을지라도 심혈관 질환 발병률이 상승하기 때문에 위험인자의 존재 여부에 따라 콜레스테롤 치료 목표치도 달라진다.

    2002년 발표된 미국 국립보건원의 콜레스테롤 교육 프로그램(National Cholesterol Education Program) 3차 지침에 따르면, LDL 콜레스테롤 수치의 치료 목표치는 사람마다 다른데, 위험인자가 1개 이하인 정상인은 160mg/dl 미만이고, 위험인자가 2개 이상인 정상인은 130mg/dl 미만이며, 심혈관 질환 환자는 100mg/dl 미만을 유지하도록 권하고 있다(표 참조).

    최근의 경향은, 비록 콜레스테롤 수치가 이미 목표치 이하로 내려가 있다 할지라도 심혈관 질환자나 당뇨병 환자에게는 콜레스테롤 강하제인 스타틴 제제를 100%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여기서 위험인자라 함은 고혈압, 흡연, 고령, 심혈관 질환에 대한 가족력, HDL 콜레스테롤이 낮은 경우 등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수치는 HDL 콜레스테롤인데, 남자는 40mg/dl 이상이고 여자는 50mg/dl 이상이어야 정상으로 간주한다. 여성에서 더 높은 이유는, 여성호르몬이 HDL 콜레스테롤을 높이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적당한 음주와 운동은 HDL 콜레스테롤을 높이고, 흡연은 HDL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려 죽상경화증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중성지방이 있다. 중성지방은 음식물의 당분을 통해 간에서 합성되므로 당이나 포도당을 많이 섭취하면 혈액 속의 중성지방 농도가 높아진다. 중성지방은 1차적으로는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당질이 많은 음식물이나 알코올을 과잉 섭취하거나 칼로리를 필요한 만큼 소비하지 않으면 중성지방이 남아돌게 되는데, 그 잉여분은 장간막이나 간에 저장되거나 혹은 피하지방으로 저장된다. 즉 복부비만이나 지방간이 발생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당뇨병이나 죽상경화증의 발병으로 이어진다. 고중성지방이 관상동맥 질환의 독립적인 위험인자인지는 불분명하나 다른 위험인자나 고지혈증과 동반될 경우 관상동맥 질환의 위험도가 높아진다. 중성지방의 허용 수치는 150~200mg/dl 미만을 정상으로 본다.

    따라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목표치를 벗어나 있으면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목표치는 LDL콜레스테롤을 기준으로 정상인은 160mg/dl 미만, 위험인자 2개 이상 보유군은 130mg/dl 미만, 심혈관 질환자는 100mg/dl 미만이다. 목표치를 30 이상 상회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 2~3개월의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을 시도하며, 이후에 한 재검사에서도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약물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단 처음의 수치가 매우 높아 목표치에서 30을 상회할 경우엔 처음부터 생활요법과 함께 약물요법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엔 약물요법을 좀더 적극적으로 시도하자는 주장이 설득력 있는 결과를 배경으로 힘을 얻고 있다. 즉 목표치를 조금만 상회하더라도 바로 ‘생활요법+약물요법’으로 시작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전세계적으로 수행된 임상연구 결과, 약물을 통해 콜레스테롤 수치를 대폭 하강시켰을 때 심혈관 질환의 발병률이 가장 효과적으로 감소한다는 것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중성지방의 치료는 그 다음에 고려하는데, 콜레스테롤 강하제를 사용한 후 측정한 혈액검사에서 콜레스테롤치는 목표치에 들어왔으나, 중성지방이 계속 200mg/dl 이상이면, 중성지방 강하제인 파이브레이트 약제를 추가해서 복용해야 한다.

    혈관 건강의 바로미터, 콜레스테롤 수치

    콜레스테롤이 축적되는 과정.

    콜레스테롤이 부족하면 혈관이 탄력을 잃어 터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성호르몬 생산에도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정보를 전폭적으로 신뢰해서 마음 놓고 고지방 음식을 먹어댄다면 위험천만이다. 물론 음식은 콜레스테롤의 주요 공급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콜레스테롤은 음식을 먹지 않아도 체내에서 생합성으로도 만들어진다.

    서양 식단의 경우 육류, 달걀, 유제품 같은 음식물 속 지방으로 흡수하는 콜레스테롤 양은 하루에 400~500mg이다. 그러나 간은 음식물과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하루에 약 1000mg의 콜레스테롤을 만들어낸다. 다만 간에서 생성되는 콜레스테롤은 체내에서 생성되는 총량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배설되는 콜레스테롤을 소장에서 다시 흡수하여 재활용하는 부분도 상당하다. 즉 소장에서 소화과정에 쓰이지 않은 담즙은 소장 하부에 재흡수되는데, 이때 담즙 속에 함유된 콜레스테롤이 재활용되는 것이다. 장에서도 15%가 합성되며 위장벽의 상피세포 또한 재활용되어 콜레스테롤이 된다. 그 밖의 여러 조직에서도 콜레스테롤이 합성된다. 결국 먹지 않아도 인체는 스스로 콜레스테롤을 만들어 몸의 기능을 유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식습관에서 콜레스테롤을 조금 줄인다고 해서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지질 강하제를 복용하면서 지나치게 식품의 섭취를 제한하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많이 떨어질 수 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콜레스테롤 고유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많아도 위험, 부족해도 탈, 여기에 더하여 만들어지는 과정도 여러 경로로 복잡한 것, 이것이 콜레스테롤이다. 가까이 하기엔 위험하고, 멀리하기엔 아쉬운 것이 바로 콜레스테롤이다. 결국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전문의와 상의하여 적절한 시점에 약물요법을 적극적으로 받는 것만이 건강을 지키는 최선의 길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