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호

모순의 덫, 한국인의 ‘대통령 이미지’

2007년, ‘현실감각 없는 정치신인’이 대권 잡는다?

  • 글: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 swhang@yonsei.ac.kr

    입력2005-06-24 15:0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국민은 이상적인 정치 지도자를 꿈꾼다. 선거 때면 그런 지도자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투표한다.
    •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실망하고 후회한다. 드러난 지도자의 실체가 그동안 포장된 이미지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지도자는 흠결이 없어야 한다는 착각이 실망과 후회의 가장 큰 원인이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는 어떤 사람일까.
    모순의 덫, 한국인의 ‘대통령 이미지’
    올해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은 차기 대권주자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2년이나 남은 다음 대통령선거가 벌써부터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것.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통령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출되는 국민의 대표는 아닌 것 같다. ‘대권(大權)’이라는 말부터 마치 왕조시대의 ‘나랏님’을 연상케 한다. 이런 심리는 새 대통령이 선출되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새 대통령의 생가가 성지(聖地)처럼 국민 관광지가 된다.

    대통령제의 원조라는 미국의 경우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후 생가에 도서관을 만들어 기념관으로 삼은 경우는 있지만, 임기가 시작되는 대통령의 생가를 성지처럼 다루지는 않는다. 이것도 모자라 대통령이 된 사람의 조상 묘가 어디이고, 어떤 명당인지가 관심사가 되는 나라에서 무엇을 더 이야기하랴.

    더욱 흥미로운 점은 우리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자마자 마치 폐위된 왕처럼 된다는 것. 이런 현상은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 또는 정치 지도자를 바라보는 우리 내부의 엇갈린 심리에 기인한다.

    대통령이나 정치 지도자의 이미지는 ‘지지도’ 또는 ‘인기’라는 현상으로 표현된다. 대중정치에서 지지도나 인기는 정치 지도자의 능력의 지표처럼 보인다. 여론조사 결과는 바로 이런 이미지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최근의 예로 2004년 연말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는 ‘가장 호감이 가는 차기 대권주자’에 관한 조사결과를 들어보자. 그 결과를 보면 정치활동을 접은 고건 전 국무총리에 대한 지지도와 선호도가 가장 높다.



    ‘고건 현상’을 두고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국민의 기대욕구가 달라진 것으로 해석한다. 젊음과 패기보다 중용(中庸)과 경륜의 리더십을 갈망하고 있다는 것. 이와 달리 ‘고건 현상’은 현재의 정치권에 대한 실망의 단기적인 반영이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현재의 대통령 이미지가 달라진다면 고건 현상도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다양한 분석과 평가는 고 전 총리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 국민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현재의 대통령이 갖지 못한 또는 보여주지 못한 이미지에 대한 반사 작용(보완됐으면 하는 기대)이다.

    무엇이 실체이고, 이미지인가

    이미지와 실체, 이 구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의 정치 지도자를 파악할 때 적용하는 기준이다. 하지만 무엇이 이미지이고, 무엇이 실체인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연세대 ‘인간발달 소비자 광고심리 연구실 연구팀’은 지난 수년 동안 다양한 자료 탐색과 대통령에 대한 일반인의 표현 분석을 통해 한국인이 지닌 이상적인 대통령의 이미지가 무엇이며 이것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연구했다.

    그 결과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는 다양하게 나타났다. 나라의 아버지이던 사람, 구국의 영웅이라고 자처하던 사람, 스스로 보통 사람이라고 한 대통령, 개혁을 주장하던 사람, 국민의 대변자가 되겠다는 사람, 국민 참여 대통령…. 이런 이미지가 바로 한국인이 대통령에 대해 갖고 있는 심리의 표현이다.



    그리고 이상적인 대통령과 그렇지 않은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는 바로 현재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대통령에 대한 ‘작용과 반작용’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다시 말해 현재의 대통령에 대해 만족하는가, 아니면 불만스럽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각기 다른 대통령의 이미지가 만들어진다는 것. 물론 이런 만족과 불만은 대통령의 실체에 대한 탐색과 판단의 결과라기보다 자기 나름의 희망과 불만의 표현이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인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대통령을 판단하거나 또는 어떤 이미지를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어떤 이들은 대통령의 이미지를 이미지에 불과하다고 무시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대통령의 이미지는 대다수의 국민이 경험하는 바로 그 대통령의 실체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지닌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는 ‘이상적인 정치 지도자의 이미지(이상형)’와 ‘현실에서 경험하는 정치 지도자의 이미지(현실형)’로 구분된다. 이상형은 이상적인 리더십의 표현이다. 그리고 과 같은 행동특성이나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된다.

    여기에는 미래에 대한 기대, 즉 정치지도자가 우리를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포함돼 있다. 만능에다 비전까지 제시하는 정치 지도자가 바로 우리가 항상 바라는 이상형인 것. 하지만 이런 이상형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적 반응은 일정한 거부감을 동반한다.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완벽한 인물’ ‘강한 카리스마로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 ‘형식적, 습관적으로 생각하는 막연한 지도자의 이미지’ ‘친해지기 힘든 사람’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지도자를 연상시키는 대표적인 인물로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보고 등을 꼽았다. 드라마를 통해 구국의 지도자나 영웅으로 우상이 된 역사적 인물들이다.

    결국 우리의 이상형은 우상화한 어떤 지도자의 모습이다. 전형적인 예가 할리우드 영화가 그려낸 이상적인 미국 대통령의 모습이다. 영화 ‘에어포스 원’에서 해리슨 포드가 연기한 대통령, 바로 그 역은 이상적인 대통령의 이미지를 모두 담고 있다. 그는 영웅 그 자체다. 테러리스트의 공격에 의연하게 대처할 뿐 아니라 가족적이면서 공적인 책임에 충실한 사람이다. 여기에 로맨스와 인간미까지 갖췄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이상적인 대통령을 현존하는 인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 같은 이상과 현실의 갈등은 대통령을 인간적으로 그린 국내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화배우 안성기가 주연을 맡은 영화 ‘피아노 치는 대통령’에서 대통령은 매우 가족적이면서 로맨틱한 인간으로 그려졌다.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형을 적절히 이미지화한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흥행은 물론 관객의 공감을 얻는 데도 실패했다. 이유가 뭘까.

    미국의 문화는 현실적으로 완전하지 못한 대통령의 실체를 이상적인 이미지를 통해 받아들이는 데 그다지 큰 거부감이 없다. 반면 한국인은 그렇지 못하다. 이상형은 존재하지만, 그 이상형의 대통령이 결코 현실에 있는 대통령이어서는 안 된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날까.

    한국인은 가치관이 분명하고 추진력 있고 공정하고 결단력 있고 전문성 있으면서 민주적 태도를 가진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할까. 만일 ‘에어포스 원’에 등장한 대통령이 바로 우리의 대통령이라고 누군가 주장한다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까. 연구에 참가한 한 응답자의 답변이다.

    “아마, 미친놈일 것.”



    긍정적으로 보면 허풍도 용기

    지난해 10월 초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아르빌을 전격 방문해 우리 장병들을 격려하는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이토록 대통령에 대해 강한 믿음과 애정을 지닌, 감성적인 한국민이 이상적인 대통령의 이미지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팀은 이 대목에 관심을 가졌다.

    연구팀은 조사 대상자들에게 이상적 대통령의 이미지와 이상적이지 않은 대통령의 이미지를 동시에 표현해보라고 했다. 그 결과 현재의 대통령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통령의 이미지를 평가하는 심리적 기준으로 작용했다. 특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이야기할 때 현재 또는 과거에 실패한 대통령에 대한 기억이나 사건을 떠올렸다.

    는 한국인이 가진 이상적이지 않은 대통령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상적이지 않은 대통령의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확인함과 동시에 이런 이미지가 형성되는 방식에 대해 추론할 수 있었다.

    에 나타난 행동표현은 부정적으로 해석되기 쉽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선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특정 대통령을 좋아한다면 부정적인 행동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특정 지도자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과장과 허풍을 통해 자신감을 표현한다’는 표현을 말 그대로,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지도자를 좋아하거나 신뢰하는 사람은 그 표현을 바로 그 지도자가 보여주는 ‘자신감’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대통령의 이미지가 대통령의 실제 행동이 아닌, 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좌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사람들은 이상적이지 않은 대통령을 현실적이면서 직접 경험한 대통령의 실체로 받아들인다. 현실적인 대통령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은 정말 다양하게 나타났다.

    ‘사기꾼 스타일이다’ ‘선동가의 모습이지만 최소한의 지지 집단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인간적이며 재미가 있는 사람일 것 같다’ ‘역동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것 같다’ ‘나라를 망칠 것 같다’ ‘친밀감은 있지만 권위가 없을 것 같다’ ‘불안감을 증대시킨다’….

    이런 이미지를 지닌 대표적인 대통령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 그리고 히틀러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언급됐다. 영화 ‘화씨 911’은 이런 현실적인 대통령을 나름대로 열심히 표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모순의 덫, 한국인의 ‘대통령 이미지’

    영화 ‘에어포스 원’의 한 장면. 미국 대통령 역을 맡은 해리슨 포드(오른쪽)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이상적인 대통령 이미지를 모두 담아냈다.

    대통령의 이미지로 표출된 한국인의 심리는 우리 모두의 기대와 현실을 반영한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리다. 이상적인 정치인은 앞으로 나라를 이끌어가길 기대하는 어떤 지도자의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이런 기대는 현실에서 현실적인 이미지, 즉 전혀 이상적이지 않은 대통령의 이미지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한국 사람이 지닌 대통령의 이미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이상과 현실이 공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상은 기대일 뿐이고 현실은 항상 실망, 인간적 모습, 재미, 불안 그리고 우리의 일상적 삶 그 자체였다.

    연구팀의 연구결과 2005년 현재 대한민국 사람들이 지각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정치인의 이미지’와 ‘지나치게 저질 또는 현실 정치꾼’으로 양극화됐다. 이는 다시 개인적인 성향과 정치적 견해에 따라 각기 다른 여섯 가지 이미지에 대한 선호와 거부의 형태로 표현됐다.

    이를 유형별로 보면 ‘선비형’ ‘관리자형’ ‘CEO형’ ‘정치꾼형’ ‘도박사형’ ‘이벤트형’ 등. 이 가운데 이상적인 대통령의 이미지는 ‘선비형’ ‘관리자형’ ‘CEO형’이고, 현실 속 대통령 이미지는 ‘정치꾼형’ ‘도박사형’ ‘이벤트형’이다.

    이 여섯 가지 이미지는 노무현 대통령을 어떻게 보느냐와도 관련이 깊다. 왜냐하면 현재를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대통령 또는 정치 지도자에 대한 이미지를 물었을 때 현재의 대통령에 대한 시각이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 집단의 여섯 이미지

    대통령의 이미지를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중립적이냐에 따라 조사대상자를 세 집단으로 구분했다. 이들 집단 사이에는 대통령의 이미지에 대해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참조).

    집단1은 노 대통령에 대해 절대적인 지지는 아니지만 비교적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50% 정도. 이들은 이상적인 대통령으로 이념과 이상, 규범에 투철한 ‘선비형’을 꼽았다. 반대로 이념과 이상, 규범을 갖추지 못한 대통령은 ‘정치꾼형’으로 봤다.

    집단2, 3은 노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그룹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지도자는 ‘관리자형’과 ‘CEO형’인데, 노 대통령이 갖지 못한 특성 또는 노 대통령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만들어낸 이미지다. 이들은 노 대통령을 ‘도박사형’과 ‘이벤트형’으로 보고 있다.

    집단별 특성을 살펴보면 집단1은 원칙, 규범, 자질 등 절대적이고 전형적인 어떤 기준에 따라 대통령을 평가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통령이나 지도자 개인의 과거 행위나 행적을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원칙과 소신 또는 자질을 가지고 있는지를 판단한다. 그 결과 원칙과 소신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면 ‘선비형’, 그렇지 않으면 ‘정치꾼형’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들은 ‘선비형’ 지도자로 정도전, 김구, 링컨을 꼽고, ‘정치꾼형’으로 대원군, 박정희, 히틀러 등을 꼽았다.

    평가에도 큰 차이가 있다. 집단1에 포함된 사람들은 ‘선비형’ 지도자에 대해서는 원칙과 소신을 본받을 만한 인물로 받아들이지만, ‘정치꾼형’에 대해서는 원칙을 악용 또는 왜곡하거나 기본적인 소신이나 자질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로 평가했다.

    하지만 인간적인 면에서 접근했을 경우 이 집단의 반응은 매우 모순적이다. ‘선비형’은 존경스럽고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이미지를 지닌 대통령에 대해서는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오히려 ‘정치꾼형’을 현실적일 뿐 아니라 자신과 가까운 사람으로 느꼈다.

    집단2는 정치 지도자를 ‘관리자형’과 ‘도박사형’으로 구분하는 사람들이다. 이 집단이 중시하는 것은 ‘문제해결 및 관리능력’. 이상적인 정치 지도자라면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그럴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지도자를 ‘관리자형’으로 봤다. 반대로 문제해결 능력이 없거나 운이나 ‘한 방’, 허세나 허풍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지도자는 ‘도박사형’으로 인식했다.

    이들은 관리자형 이미지와 가장 부합하는 사람으로 고건 전 국무총리와 황희 정승을 꼽았다. 주어진 일을 잘 해결하는 행정가의 이미지가 강한 사람들이다. 반면 노 대통령에 대해서는 ‘관리자형’으로서 갖춰야 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어떤 면에서는 ‘도박사형’으로 인식했다.

    뒤집어보면 결국 집단2가 노 대통령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기에 ‘도박사형’과 반대되는 ‘관리자형’을 이상적인 대통령의 이미지로 상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들에게 도박사형 대통령의 이미지는 아무런 알맹이가 없거나, 실력 없는 사기꾼 또는 승부사의 모습, 가볍고 경박한 모습으로 비친다.

    하지만 이들이 가진 이상적인 지도자의 이미지는 노 대통령의 지지도 및 이미지 변화에 따라 또다시 바뀔 가능성이 높다. 즉 노 대통령에게서 도박사형 이미지가 약화되면 될수록, 현실에서 ‘관리자형’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낮아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고건 현상’은 노 대통령의 이미지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따라 그 변화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집단3은 대통령의 이미지를 ‘CEO형’과 ‘이벤트형’으로 구분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과 실행계획을 제시하면서 체계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가를 이상적인 지도자상의 기준으로 삼았다. 반면 감각적인 이벤트와 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정책을 추진해가는 지도자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일반적으로 ‘CEO형’은 보수적이고 합리적이면서 체계적인 방식으로 과제를 수행하는 특성을 지닌다. 반면 정치사회적 이데올로기나 역사의식을 강하게 표현하지 못해 상황에 따라 그 과제 수행의 명분이나 당위성을 잃을 수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 진대제 정통부 장관과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가 언급됐다.

    이에 대립되는 이미지가 ‘이벤트형’이다. 이런 형은 허황된 꿈을 남발하고 자극적인 무엇을 위해 국민을 끌고 갈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마치 다단계 판매회사의 마케터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모습을 보인다. 간혹 사람들로 하여금 감성적인 기대감을 갖게 하는데, 마치 로또 발표 직전에 느끼는 흥분감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비슷하다. 집단2에 포함된 사람들은 이명박 서울시장과 노무현 대통령의 이미지에서 ‘이벤트형’ 이미지를 발견했다. 이 시장의 경우는 선호여부에 따라 ‘CEO형’과 ‘이벤트형’ 두 가지 이미지를 모두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세 집단의 성향을 보면 집단1은 진보적 성향을 비교적 강하게 띠었고(56%), 스스로도 보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들의 67%는 열린우리당을 지지했고, 가장 싫어하는 정치인으로 한나라당 박근혜(67%) 대표를 꼽았다. 이들의 50% 정도는 공동체적 개방형이라는 라이프스타일 특성을 보였다(‘신동아’ 2004년 6월호 ‘한국사회의 세대별 라이프스타일 연구’ 참고).

    이에 비해 집단2는 스스로 보수라고 응답한 사람이 70%를 차지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반대하는 성향 또한 70%로 나타났다. 집단3은 중도의 이념성향을 보이지만, 나름대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64%가 노 대통령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다. 집단2와 3에서 고건 전 총리나 손학규 경기도지사, 이명박 서울시장에 대해 싫어한다는 응답은 전혀 없었다. 반대로 이들은 유시민 의원에 대해서는 높은 안티 성향을 드러냈다.

    한 가지만 선택하라

    인간은 현실이 완벽하지 않기에 이상을 추구한다. 현실 정치인을 보면서 이상적인 정치 지도자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 기대가 클수록 사람들은 현실 정치인의 행동에 대해 더 실망하고 불만스러워 한다. 그러면서 정치인에 대한 신뢰감은 더욱 떨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의 정치가 발전할 수 있을까. 마냥 이상적인 정치인을 기대하고 그런 사람을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는 행운을 기다리는 것말고는 없을까.

    이상과 현실의 극명한 차이가 드러나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연애와 직업선택이다. 남자는 대부분 예쁘고, 돈 많고, 성격 좋은 여자를 찾는다. 직장은 연봉 높고, 여유롭고, 평판 좋은 곳을 구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여자나 직장은 현실에서 존재하기 힘들고, 존재하더라도 나와 관련이 없기 십상이다. 즉 그 여자가 또는 그 직장이 나를 선택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를 하거나 취직을 하려면 먼저 최우선적인 기준 한 가지를 정하고, 그것이 충족되면 다른 것은 미흡하더라도 만족해야 한다. 만일 자신이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거나 또는 다른 기준을 포기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그게 바로 한국인들이 정치 지도자 또는 대통령을 선택할 때 겪는 갈등이다.

    아름다운 여인들의 얼굴에서 가장 예쁜 부분을 하나씩 떼어다가 합성해놓았을 때, 그 얼굴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지각될 것인가를 알아본 연구가 있다. 연구결과 사람들은 합성된 여인의 얼굴을최고의 미인이 아니라 뭔가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꼈다. 어떤 생명력이나 개성을 가진 아름다운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체성 없이는 현실도 없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어떤 이상적인 정치 지도자를 지향할 때 직면하는 심리적 반응과 같다. 가장 이상적인 행동특성을 특정한 정치 지도자에게 바랄수록 더욱 비현실적이고 비정상적인 인간을 찾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통령이나 정치 지도자를 선택할 때 사람들은 이런 심리현상이 있음을 부정한다.

    가장 바람직한 선택은 많은 단점이 있음에도 자신이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 한 가지를 가진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 가지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 때, 실망하지 않고 그 지도자에 대한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다. 그렇게 가장 이상적인 대통령은 우리에게 현실적인 지도자가 돼야 한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표현할 수 있는 사회에서나 가능하다. 그리고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심리상태에 있는가도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정체성의 문제다. 정체성이 있는 국민,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형태의 삶을 좋아하는지 아는 국민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질 수 있고,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다.

    모순의 덫, 한국인의 ‘대통령 이미지’

    <표3> 대통령 이미지에 따른 집단별 성향

    정체성이 없다면 그 자체로 혼란스럽고 힘들다. 이런 경우 외적인 면에서 바람직한 기준을 모두 모아야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성향이 나타난다. 이상적인 기준이 난무하고 평판이 요동치는 현상이 쉽게 일어난다. 이럴 경우 최고의 조건을 모두 갖춰야 비로소 만족하기 때문에 어떤 정치 지도자가 나서더라도 만족하기 힘들다. 그래서 대통령의 이미지는 중요하다. 이미지는 허상이 아니라 사람들이 대통령을 지지하거나 반대하게 만드는 분명한 실체다.

    역설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대통령은 국민 스스로 인정한 가장 현실적인 대통령이다. 현실적인 정치인을 찾고 현실적인 정치를 기대하면 그만큼 실망이나 기대가 덜하기 때문이리라. 우리가 정치발전을 이루지 못한 이유가 이상적인 대통령을 찾으려는 우리 자신의 의식 문제라고 한다면, 초점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일까.

    이상을 추구하려는 성향이 높은 사회일수록 저질 정치가 판친다. 요동치고 불안감이 높아지고 신뢰가 떨어지지만 재미있는, 한편으로는 역동적인 상황을 보인다. 현실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에게 ‘현실이 당신이 직면할 미래보다 훨씬 낫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별로 반갑지 않다. 삶을 허무하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미래에 대한 장밋빛 희망의 정치가 비록 ‘사기’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런 정치를 원한다.

    스스로 만든 이미지의 포로

    이렇게 본다면 한국사회에선 분명한 과거를 갖지 않은 정치 신인이 혜성처럼 등장해 새로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보다 ‘이럴 것 같다’는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는 추상적 인물을 오히려 이상적인 지도자로 착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7대 대선에서 정몽준이나 노무현 후보가 일으킨 바람이 바로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다.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2007년에 어떤 정치인이든 혜성처럼 나타난다면 한국인은 그 사람에 대해서 아주 쉽게 이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낼 것이다. 때문에 한국은 정치도 사회도 계속 역동적으로 요동치게 될지 모른다.

    현실이 어렵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희망의 동반자를 찾는다. 대통령선거 때마다 국민은 자신이 선택한 대통령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거의 모든 대통령이 처음에는 개혁적이고 변화를 주창하다가도 나중에는 반개혁적이고 또 다른 실망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새롭게 정권을 잡은 정치 집단은 처음에는 사회 전반의 변화와 정치 활동의 개혁을 내세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이 곧 반개혁 세력처럼 인식되고 만다. 사람만 바뀌었지, 정치권력을 행사하고 또 정치권력을 통해 소수의 집단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꾼은 항상 그대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끊임없이 불거지는 게이트와 비리는 누구를 정치 지도자로 뽑더라도 정치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거듭 확인해준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은 점차 정치행위를 냉소적인 시각으로 보게 된다. ‘혹시나’ 하고 기대해 보지만 ‘역시나’가 된다. 그러다 다시 선거철이 되면 가장 이상적인 정치 지도자라고 믿는 사람을 선택한다.

    이상적인 지도자의 이미지는 어떤 대상의 특성을 깊이 이해하고 파악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대와 희망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미지다. 스스로 만들어낸 이미지의 포로가 되는 순간이다. 그 다음에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이미지가 현실과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다시 불안해하거나 절망하거나 또 다른 이미지를 열심히 찾는다. 그게 우리의 현실이자 한계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