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호

‘지하 핵실험 징후’ 지목된 북한 길주 산악지대 위성사진

실험가능 폐갱도 3곳, 대형시설 확인…그러나 ‘분주한 움직임’ 없어

  • 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5-06-27 11: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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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6일 “지하 핵실험 장소 건설작업이 진행 중이며 최근 공정이 빨라졌다”는 ‘뉴욕타임스’ 보도로 인해 초미의 관심지역으로 떠오른 함경북도 길주군. 그 가운데서도 1000m급 봉우리로 둘러싸인 용담노동자구 일대는 군 당국이 “1990년대 이후 갱도공사가 진행됐다”고 밝히면서 핵실험의 제1후보지로 거론됐다. 지난 5월27일 이 일대를 촬영한 위성사진을 단독으로 입수, 공개한다.
    ‘지하 핵실험 징후’ 지목된 북한 길주 산악지대 위성사진

    함경북도 길주군 북서쪽 산악지역 전경(큰 사진)과 이를 입체화해 남동쪽 각도에서 본 그래픽(작은 그림) 붉은색 네모부분을 각각 확대한 것이 뒤페이지의 정밀사진이다.

    길주군은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약 50km에 걸쳐 있다. 그중 길주읍이 있는 남서쪽은 상주인구와 산업시설이 많아 후보지역에서 일찌감치 제외되고, 북서쪽 산악지역이 핵실험장 의심지로 유력하게 거론됐다. ‘동아일보’ 5월6일자는 이 지역 출신 탈북자들의 말을 인용해 “1980년대 이래 텅스텐 광산이 있다가 1990년대 폐쇄된 용담노동자구에 핵시설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후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1990년대 말부터 갱도굴착 징후를 추적하고 있으나 핵실험을 준비하기 위한 사람이나 물품의 이동은 전혀 포착된 바 없다”며 외신보도를 부인했다.

    ‘신동아’가 ㈜위아에서 입수한 위성사진은 미국의 상업위성 아이코노스가 5월27일 길주 북서쪽 일대를 촬영한 해상도 1m급 사진이다. ‘신동아’는 영상분석, 핵공학 등 다양한 전문가들과 함께 이를 정밀 판독했다. 결론적으로 핵실험 준비작업으로 볼 만한 움직임은 찾을 수 없었다. 대신 곳곳의 갱도와 집단주거시설, 대형건물과 잘 닦인 도로는 한때 이 일대에서 국가 차원의 주요 사업이 진행된 바 있음을 시사했다.

    ‘지하 핵실험 징후’ 지목된 북한 길주 산악지대 위성사진
    ‘지하 핵실험 징후’ 지목된 북한 길주 산악지대 위성사진

    불규칙적인 임동리 마을(사진①)에 비해 용담노동자구의 주거시설(사진②)은 반듯하게 줄지어 있어 계획적으로 건설됐음을 알 수 있다. 사진② 오른쪽 상단의 시설은 이 지역의 유일한 대형 건물로, 주변의 가옥 수를 감안하면 학교 등 공공시설로 보기는 어렵다.

    골짜기 사이로 흐르는 남대천(南大川)을 따라 몇 군데 마을이 형성되어 있지만 우선 눈에 띄는 것은 40여 채의 민가가 들어선 임동리(사진①)와 집단주거시설 및 대형건물(사진②)을 중심으로 80여 채의 건물이 있는 용담노동자구다. 특히 사진②에서는 연병장 형태의 공터에 길이 80m 안팎의 대형건물 세 채가 나란히 서 있는 것이 특기할 만하다. 주변에 빽빽하게 심어진 나무들은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한 보안 조치로 보인다. 과거 이 지역에 광산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초에는 광산 사무소였을 공산이 크며, 5월26일 ‘동아일보’ 기사처럼 1990년대 후반 이후 광산시설이 핵시설로 이용됐다면 이 시설의 현재 용도는 핵과 관련된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위성사진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지하 핵실험 징후’ 지목된 북한 길주 산악지대 위성사진

    온통 화재로 그을린 산등성이에서 확인된 갱도 입구들. 노란색 원 안에서는 작은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세 곳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일대에서 확인된 갱도입구 추정지 세 곳. 해발 1000m급의 이 지역 봉우리들은, 광산 채굴을 위해 예전에 파놓은 수평갱도에서도 핵실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다. 수직으로 촬영한 위성사진을 통해 갱도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지만, 보통 갑자기 길이 사라지거나(갱도 속으로 연결된 경우) 산 중턱에 갑자기 공터가 나오는(회차 및 작업용 공간) 등의 특징이 나타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우선 사진③은 용담노동자구에서 7km 북쪽에 있는 갱도시설이다. 경사를 타고 올라가던 도로가 평탄한 곳에서 갑자기 꺾이는 지점(사진④)은 갱도입구를 위성에서 찍으면 흔히 나타나는 특징을 보여준다. 도로가 갑자기 사라진 사진⑤ 역시 마찬가지다.



    ‘지하 핵실험 징후’ 지목된 북한 길주 산악지대 위성사진

    산속에 난 도로가 갑자기 끊기거나 큰 규모의 공터가 있어(붉은색 네모부분) 갱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⑦의 큰 그림자가 진 시설은 이 일대에서 유일하게 발견된 수십m 높이의 인공구조물이다.

    용담노동자구에서 서쪽으로 5km 떨어진 지점(사진⑥)에서도 유사한 형태를 볼 수 있다. 이곳도 산불에 그을려 있다. 노란색 네모부분의 인공적인 무늬는 이 지역에 한때 큰 시설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흔적이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검은색 네모부분을 확대한 사진⑦. 한낮에 촬영되어 다른 건물에는 거의 그림자가 없음을 감안할 때 이처럼 큰 그림자는 높이 30m 이상의 인공구조물이 서 있음을 의미한다. “북한이 핵실험 장소로부터 수km 지점에 관측대를 설치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와 관련해 주목할 만하다.

    ‘지하 핵실험 징후’ 지목된 북한 길주 산악지대 위성사진

    사진⑧의 건물 두 채(검은색 네모부분)는 갱도 입구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한 검문소로 보인다. 사진⑨의 구조물은 왼쪽에 관리용 건물이 있고 주변에 균일하게 나무가 심어져 있어 중요한 시설임을 알 수 있다. 사진⑩의 차량 그림자(검은색 원)는 이 곳이 ‘힘 있는 기관’임을 보여준다.

    용담노동자구에서 서쪽 8km 지점의 산속 도로(사진⑧) 역시 갱도가 있음을 시사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골짜기에서 300~400m 들어간 곳에서 갑자기 갈래길이 숲 아래로 사라지는 모양(붉은색 원 세 군데)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⑨와 ⑩은 용담노동자구 주변에 있는 시설물이다. 집단주거시설 서쪽 인근에 있는 사진⑨의 시설물은 용도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독특한 모양새다. 색깔이 균일해 저수조일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남대천 색깔과 달리 지나치게 검다는 반론에 부딪혔다. 장비 등을 검은색 위장막으로 덮은 것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용담노동자구의 남쪽에 있는 사진⑩의 시설물 역시 긴 건물이 줄지어 있고 공터가 있어 공공시설로 보인다. 검은색 원안에는 자동차로 보이는 몇 개의 장방형 물체가 나란히 서 있다. 평일 낮에 이렇듯 차량이 모여 있다는 사실은 활발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지 않음을 시사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판독결과는 “길주에서 핵실험 준비 중”이라는 외신보다는 “과거에 광산이었으나 최근 분주한 움직임이 관측된 것은 아니다”는 한국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을 뒷받침한다. 물론 이것이 북한이 아예 핵실험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우선 ‘길주’라는 지명이 잘못 전해진 것일 수도 있고, 최초 보도한 지 20일 이상 지난 뒤 촬영된 사진이므로 이미 준비가 끝났기 때문에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한편 자문에 응한 핵공학 전문가들은 양강도나 함경북도 북부 등 더욱 적합한 지역이 많은데, 반경 30km 안에 김책시를 비롯한 대도시와 주요전력망, 철도 등의 시설이 밀집한 길주를 핵실험 장소로 선택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군사정보당국의 한 전직 고위 관계자는 “대포동 미사일 시험장과 가깝다는 이유로 길주군을 핵실험과 연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미사일 자체가 평양 인근에서 제작되어 대포동 시험장으로 운반되는 만큼 거리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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