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호

인천공항 공사 입찰, 법정다툼 번진 내막

“하도급 업체 공사 실적도 인정, 무자격 업체 ‘봐주기’ 의혹”

  • 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5-06-28 15: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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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공항 공사 입찰, 법정다툼 번진 내막

    인천공항 2단계 확장공사 중 항공등화 시설공사는 총 공사금액이 480억원 규모에 이른다.

    인천공항2단계 확장공사를 둘러싸고 낙찰업체와 입찰에서 탈락한 업체 사이에 자격요건을 둘러싸고 잡음이 일고 있다. 탈락업체가 낙찰업체의 적격성을 문제삼아 법원에 공사중지 가처분신청을 내는가 하면 낙찰업체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소하면서 입찰과정에 대한 의혹이 확산되고 있는 것.

    문제가 된 공사는 인천공항 2단계 확장공사 중 항공등화(航空燈火) 시설공사다. 항공등화 시설공사는 한마디로 공항 활주로와 유도로에 조명시설을 설치하는 공사를 말한다. 일반 조명시설과 달리 활주로 및 유도로 항공등화는 항공기 유도 및 착륙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첨단장비라 이 공사를 따내기 위해서는 과거 항공등화 설치 실적을 포함해 몇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지난해 7월 끝난 항공등화 시설공사 입찰의 최종 낙찰자는 국내 도급순위 5위의 대림산업.

    국내 굴지의 건설업체인 대림산업을 상대로 특혜설을 주장하고 소송으로 맞선 회사는 서광종합개발이다. 서광은 건설업계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회사는 아니지만 전기공사 분야, 특히 공항 및 활주로 전기시설 공사 분야에서는 선두주자로 꼽히는 업체다. 서광은 인천공항 개항 당시 1단계 공사에서도 활주로 및 유도로 항공등화 공사를 맡아 했을 정도로 기술력과 시공능력을 인정받는 회사다. 서광이 이 분야에서 설계 및 시공, 유지보수 등 모든 공정에 걸쳐 선두업체라는 사실은 서광과 대림 양측 모두 동의한다.

    문제는 지난해 7월 실시된 2단계 공사 입찰에서 1단계 공사를 맡았던 서광이 탈락하면서부터 불거졌다. 2단계 항공등화 시설공사는 총 공사금액 480억원 규모로 전기 분야 단일공사로는 보기 드문 대형 공사여서 대림과 서광뿐만 아니라 현대건설, 한진 등 총 5개 업체가 참여해 치열한 수주전을 벌였다.

    “대림 실적증명서 근거 없다”



    당시 입찰에서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공항공사)측이 낙찰 조건으로 내세운 기준은 두 가지. 우선 최저가 입찰 방식을 따르되 공사 적격심사 세부기준에 의해 해당업체의 시공능력 등 적격성 심사를 벌여 종합평가가 90점 이상일 경우 낙찰을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입찰 결과 대림이 최저가격을 써내 1차 관문을 통과했고 2차 관문인 적격성 심사에서도 대림은 공항공사측이 요구한 평가 기준을 뛰어넘는 항공등화 600개 이상의 기존 공사 실적을 인정받아 만점을 받았고 결국 최종 낙찰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대림보다 공사 실적이 월등히 많지만 최저가 경쟁에서 밀려 탈락한 서광은 이내 대림의 공사실적이 허위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대림측이 공항공사에 제출한 실적 증명서 중 1993~94년 시공했다는 강릉 공군 비행장 조명시설 설치공사 중 411개가 대림이 직접 시공한 것이 아니라 중소 전기업체인 J전기에 하도급을 주어 시공했다는 것이다. 결국 “하도급업체의 실적을 가로채 대림이 시공한 것처럼 꾸며 인천공항 2단계 공사를 낙찰받은 것이므로 대림은 낙찰자로서 자격이 없다”는 주장이다.

    대림은 1993년 강릉 공군 비행장 공사 당시 실적을 입증받기 위해 공군 중앙관리단이 발급한 실적증명서를 공항공사에 제출했다. 공항공사가 대림의 공사 적격성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도 공군측의 실적증명서를 근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서광측은 이 실적증명서 자체를 신빙성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서광 관계자의 말이다.

    “그 실적증명서는 대림에서 마음대로 작성한 뒤 공군 중앙관리단에 가서 형식적으로 확인 도장만 받아온 것이다. 대림측이 당시 계약서나 설계도 같은 증빙서류를 ‘파기했다’는 이유로 제출하지 않았는데도 실적증명서만을 근거로 적격성을 판단한 것은 특혜라고 할 수밖에 없다.”

    반면 대림측은 당시 발주처인 공군 당국이 발행한 실적증명서를 근거로 낙찰받은 것이고 공항공사에서도 입찰 자격을 문제삼고 있지 않은데 경쟁업체가 이를 문제삼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설명이다.

    대림측은 또 “서광이 과거에 우리측 실적을 근거로 자기네 공사의 이행 보증을 세울 때는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실적 내용을 문제삼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주장한다. 또 ‘실적증명서 외에 다른 서류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군 공사의 성격상 상세 설계 도면 등 세부 자료를 제출할 수 없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가처분신청 기각되자 고법 항고

    그럼에도 서광측은 입찰이 진행중이던 지난해 6월 대림측의 공사실적이 허위라고 주장하며 공항공사측에 이의를 제기하는 동시에 대림이 최종 낙찰자로 결정된 직후 법원에 공사중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그러나 법원은 서광측의 가처분신청을 기각했고 서광측은 이에 반발해 고등법원에 항고하는 한편, 이번에는 대림측 공사 관계자를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는 등 총력전 양상으로 나오고 있다.

    고소장을 접수한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는 지난 3월 허위 공사실적 서류를 근거로 2단계 공사를 낙찰받았다는 업무방해 혐의로 대림산업 이 모 부장을 불구속기소하는 것으로 일단 수사를 마무리지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불똥은 대림측의 과거 항공등화 설치공사를 하도급맡아 시행했다는 J전기로도 튀었다. 당시 하도급 계약서 등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J전기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라 이 공사가 대림이 시행한 것이냐 하도급을 준 것이냐가 가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J전기의 대표이사 P씨와 또 다른 대표이사 K씨의 진술이 서로 엇갈리는 상황이어서 진상이 규명되기는커녕 사태가 더욱 복잡하게 꼬이는 양상이다.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은 J전기 대표이사 2명 중 대림과 계약한 당사자인 P씨는 “강릉 공군 비행장 전기공사를 대림산업에서 하도급맡은 것은 사실이지만 J전기가 담당한 것은 활주로 조명 설치를 위해 바닥에 배관을 묻는 관로공사와 맨홀공사뿐이었다”고 주장했다. 인천공항 2단계 공사 입찰 자격과 관련해 정작 중요한 조명 설치 공사는 대림에서 담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대표이사인 K씨는 “P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당시 J전기는 전선에 전등을 연결하는 공사를 포함해 항공등화 공사 전체를 하도급맡아 시행했다”고 상반된 주장을 폈다. K씨의 주장에 따르면 대림은 2단계 항공등화 공사 낙찰 자격이 없다.

    대림의 공사 실적과 관련해 논란이 이는 것은 강릉 비행장뿐만이 아니다. 지난 2001년 대림이 낙찰받아 착공한 김해공항 2단계 확장공사를 둘러싸고도 비슷한 잡음이 일고 있다. 서광측은 이들 공사 당시 대림이 중소 전기업체들과 체결한 하도급 계약서와 대림의 하도급 공사 항목이 담긴 기성내역서 등을 증빙서류로 제시하며 이들 공항의 항공등화 공사 역시 대림이 직접 한 것이 아니라 하도급업체에서 시행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림은 이에 대해 “서광이 제시한 서류는 하도급 공사만이 아니라 대림 직영 공사를 포함한 전체 공사 서류일 것”이라며 서광이 법원에 제출한 서류의 조작 의혹도 제기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논란

    이처럼 인천공항 2단계 공사 입찰 과정에서 불거진 잡음은 지난해 국정감사로 이어졌다. 당시 건설교통위원회 소속 열린우리당 김기석 의원이 공항공사에 대한 국감에서 항공등화 공사 입찰에 대한 특혜설을 제기한 것.

    당시 김 의원은 “항공등화 공사가 항공기 안전운항과 직결되는 공사임에도 불구하고 조달청이 과거 기준만을 적용해 지나치게 느슨한 자격요건을 도입함으로써 특정업체에 혜택을 주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건설업계의 이러한 논란이 독자적인 영업 능력을 갖춘 대형 건설사와 그렇지 못한 중소업체 간에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인 것이라는 데에 있다. 중소 건설업체의 한 관계자는 “전기, 배관 등의 현장 기술자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대형 건설업체들이 중소업체에 하도급을 주고 정작 공사 실적은 자기들이 챙기는 방식은 건설업계에서는 오래된 관행”이라고 전했다.

    게다가 중소업체 처지에서도 실적을 쌓기보다는 당장 다음번 공사에서 대기업의 하도급을 따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계약 관행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원청업체가 확인도장을 찍어주지 않는 한 하청업체는 실적 신고를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이 공사가 하청업체의 몫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인천공항 2단계 항공등화 시설공사를 둘러싼 논란도 입찰에서 탈락한 서광측이 최종 낙찰자인 대림이 발주처의 공식 확인을 받아 제출한 실적증명서가 허위라는 사실을 어떻게 입증하느냐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부실한 검증이 논란 불러

    인천공항 2단계 건설사업은 지난 2001년 공항 개항에 이어 증가하는 항공 수요에 대비해 시설을 추가 확보하고 경쟁 공항보다 더 나은 시설로 우위를 선점해 중추 공항으로 발전한다는 목표에 따라 오는 2008년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이중 항공등화 시설공사는 2단계 공사지역에 진입로 404개, 활주로 862개, 유도로 7091개, 지시표지등 1892개 등 총 1만249개의 항공등화를 설치하는 것이다.

    이 공사는 2008년 7월 완공될 예정이다. 현재 공사 진척도는 4% 정도. 서광측은 올해 말까지 공사를 진행해도 진척도는 전체 공정의 8%에 그치는 데다 본 공사는 내년부터 시작되는 만큼 법원의 판단을 구해서라도 대림이 공사를 시행할 만한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끝까지 밝히겠다고 한다.

    공항공사 입찰 규정상 선순위자가 적격심사에서 탈락할 경우 2위 입찰회사를 상대로 적격심사 후 낙찰 여부를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서광측의 공사 실적이 대림에 비해 월등한 만큼 대림이 ‘무자격업체’라는 법원의 판단만 내려진다면 서광이 2단계 항공등화 사업을 맡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림측은 서광의 의도를 의심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법원의 판결을 기다린다는 신중한 입장이지만 사태 전개에 따라서는 맞고소 등 정면 대응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대림측 관계자는 “항공등화 분야에서는 건교부, 공항공사 등 어디에도 서광측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서광측의 공세에 맞서 확전을 시도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풀이되는 대목이다.

    대형 시설공사를 둘러싸고 낙찰업체와 탈락업체가 갈등을 빚는 일은 종종 있지만 소송은 물론 형사고소 사태로까지 이어진 것은 이례적이라는 게 건설업계의 이야기다. 특히 인천공항 제2단계 항공등화 시설공사의 발주처가 국내 굴지의 공기업이라는 점에서 입찰 자격요건을 좀더 엄밀하게 검증하지 않아 자꾸 뒷말을 낳게 된 데는 공항공사측도 책임의 일단을 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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