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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파라다이스 문화재단 이사장 된 ‘객주’ 작가 김주영

“소설의 위기? 同시대인 공유한 생각 천착해 쓰면 잘만 팔린다”

  • 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사진: 김성남 기자

파라다이스 문화재단 이사장 된 ‘객주’ 작가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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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성장기를 보낸 고향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우리 시대 유명 작가의 작품 가운데 90%가량은 고향 얘기입니다. 유소년기를 보내면서 보고 느낀 모든 것이 작가의 문학적 자산이 되는 거죠. 한승원씨는 전남 장성이 고향입니다. 지금도 바닷가에서 삽니다. 한씨의 작품엔 으레 바다가 배경으로 깔립니다. 이문구씨의 고향 충남 보령 관촌마을이 무대인 ‘관촌수필’은 명작이죠. 경북 영양 출신인 이문열씨의 주목받는 작품들도 거의 고향 이야기입니다. 김원일씨의 ‘마당 깊은 집’도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을 배경으로 한 소설입니다.

저도 ‘홍어’ ‘멸치’ 같은 소설에서 고향 이야기를 했습니다. 편모 슬하에서 자라며 가난을 절절이 경험했습니다. 형제가 셋이었는데 동생 하나가 일찍 죽었죠.

소풍 가는 날 어머니가 도시락을 싸주셨습니다. 우리 집에는 네모난 알루미늄 도시락이 없었습니다. 주발에다 보리밥을 담고, 그 속에 고구마나 감자를 한두 개 박고, 뚜껑을 닫고 보자기로 싸줍니다. 그걸 들고 학교에서 4km쯤 떨어진 낙동강 지류 반변천(半邊川)으로 갔죠.

강변에서 한참 노는데 상급반 학생들이 모래밭에서 축구를 해요. 가까이 가보니 보자기에 싸인 도시락 주발로 축구를 하고 있었어요. 깜짝 놀라 달려가 도시락을 겨우 수습했습니다. 음식이 너무 누추해 어린 마음에 부끄러워 바위 뒤에 숨어서 먹었습니다. 밥주발이 축구공 노릇 하느라고 모래 반, 밥 반이 돼 있었습니다. 도시락을 먹으며 왠지 억울하고 서러운 생각에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세상, 어머니가 종일 노동을 해도 먹을 것을 충분히 마련할 수 없는 세상에 눈뜨기 시작한 것이죠. 제가 만일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거나 그런 가난을 겪지 않았다면 다른 직업인으로 살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홍어’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같은 작품을 저 정도 연배의 독자가 읽으면 푸근한 고향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그런데 요즘 신세대가 그런 소설을 읽고 필링을 받을지 모르겠어요.

“요즘 아이들은 옛 시절의 가난 얘기를 아주 싫어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지금 젊은 사람들 흉내를 낼 수는 없습니다. 나훈아, 남진, 송대관 같은 가수들이 요새 젊은 가수들의 랩송을 흉내 내면 아마 미친놈이라고 하겠지요. 송대관이는 바로 그날로 없어지는 거예요. 저도 마찬가집니다. ‘홍어’ 같은 소설을 제 나름대로 깊이 있게 써야지요. 젊은 작가 중에서 은희경, 김영하, 성석제의 작품을 즐겨 읽으면서도 제가 그들의 작품을 흉내낼 수 없는 이유죠.”

자전적 성장소설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의 도입부에는 고향 집 묘사가 나온다.

마을에서 면사무소로 올라가는 오르막길 들머리에 궁핍을 겪었던 시절의 집이 있었다… 울바자 너머로는 언제나 먼지와 허섭스레기가 흩날리는 장터거리가 있고, 거기선 닷새마다 한 번씩 저자가 섰다. 무싯날에는 내왕하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을 정도로 휑뎅그렁하기만 해서 동네의 개들이 몰려나와 한가롭게 흘레를 붙곤 하였다. 그러나 저자가 서는 날엔 꼭두새벽부터 노점상들과 장꾼들이 몰려들기 시작해서 아침나절이 되면 그 넓은 장터가 사람들의 아우성으로 꽉 들어찼다.

저울추 모으기가 취미

김주영의 작품엔 대표작 ‘객주’를 비롯해 장터와 장꾼을 소재로 한 것이 많다. 그는 저울추를 모으는 이색적인 취미를 갖고 있다. 시골 5일장에서 흔히 쓰이던 재래식 저울추를 50개 가량 수집했다. 시골 장터는 그에게 도서관이자 박물관이었다.

“보통 시골 동네 구멍가게 앞에 앉아 있으면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빤합니다. 매일 보는 사람들만 왔다갔다하지요. 낯선 사람은 없죠. 그런데 장날은 그렇지 않습니다. 장날 장터거리에 나가 보면 낯선 사람이 많죠. 말도 전부 다릅니다. 점포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트럭에 장짐을 싣고 다니면서 장터만 찾아다니는 난전꾼들이죠.

충청도 전라도 강원도 경상도를 넘나드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와서 무슨 축제 벌이듯 왁자하게 싸움질하고 웃고 떠들고 하는 모습이 어린 소년에게 신선하게 보였죠. 바깥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조그마한 소년은 장날이 되면 핑계를 대어 학교에 빠지고 장거리를 배회했습니다. 그 낯선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보고 듣고 하는 습관이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배었죠.

객지로 나가 학교에 다니며 생활하는 동안 고향 풍경이 야금야금 안개처럼 퍼져버리고 알맹이만 남아 있었죠. 작가가 되고 나서 어린 시절에 봤던 장터 이야기를 써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다른 지방의 장터를 찾아가 보고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장꾼의 원조에 보부상이란 큰 덩어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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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사진: 김성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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