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호

‘7·1 조치’ 3년, 북한 경제 현주소

인플레·소득격차 심각, 유통 활성화 겨냥한 금융개혁 단행할 듯

  • 글: 임현진 서울대 교수·사회학

    입력2005-07-08 18: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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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 조치’ 3년, 북한 경제 현주소
    북한이2002년 7월1일 ‘경제관리개선조치’(이하 ‘7·1조치’)를 시행한 지 3년이 지났다. 북한 경제는 과거와 비교할 때 여러 면에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두고 한쪽에서는 중국식 경제개혁의 초기 단계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계획경제의 근간은 그대로 놓아둔 부분적 변화일 뿐이라는 평가가 엇갈려 나오고 있다.

    7·1조치 이후에도 북한 경제가 여전히 어려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조치는 실패한 개혁이라고 단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 경제가 느리지만 꾸준하게 성장해 어지간히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이라고 분석할 수도 있다.

    2003년 1.8%, 2004년 2.2%로 추정되는 성장률 통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 경제는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평양의 통일거리 시장은 영업시간을 연장할 정도로 활기를 띠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일부 도시를 제외한 농촌지역은 7·1조치의 사각지대라 할 만큼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국정가격과 시장가격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가운데 인플레이션이 심화돼 지역간 물가 차이가 갈수록 커지는 실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7·1조치가 시행된 지 3년이 지난 지금 그 효과와 역기능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북한이 앞으로 어떠한 추가적 개혁 조치를 통해 문제점을 해결하려 하는지 알아보는 것은 우리에게도 유용할 것이다.



    7·1조치의 핵심 내용은 임금과 물가의 동시 인상, 배급제의 축소, 그리고 자율성과 분권화의 강화에 있다. 그리고 몇 달 뒤에는 농민시장이 (종합)시장의 이름으로 공식화됐다. 이러한 시도는 1998년부터 북한 당국이 제시한 ‘실리(實利)’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이러한 일련의 경제적 시도는 비효율성을 제거하고 생산력을 확대해 국가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며, 1990년대 중반 이후 국가 능력이 약해지면서 광범위하게 나타난 경제적 난국을 수습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조치에 따라 기업과 지방은 확대된 자율성에 입각하여 자체 이윤을 높일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고, 개인이나 집단 역시 ‘창발성’을 발휘하여 이윤을 획득할 수 있는 경제활동의 자율성을 누리게 됐다.

    자율성과 분권화

    물론 이러한 자율성과 분권화가 정치적 자율성과 분권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북한은 국가적 의의를 지니는 기간산업과 전략물자에 대한 계획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여러 생산단위로 과감하게 권한을 위임했다. 이에 따라 기업은 생산품목 및 가격 결정, 판매 및 이윤의 사용에 대한 자율성을 확보했다.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할 때도 기본급에 더해 이윤에 따라 분배하는 이른바 ‘번 수입’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물질적 인센티브를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임금체계의 변화는 북한이 50년 넘게 유지해온 ‘평균주의’를 단번에 부정하는 것이다. 사실 그간 북한의 평균주의적 임금체계와 배급체계는 한 달에 3일만 일해도 한 달치 배급량을 지급하는 것으로, 국가재정에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었다.

    북한의 자체 발표에 따르면, 이러한 ‘공짜’ 임금 지급으로 인한 국가 부담금이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4%나 된다. 그러나 이제 북한에서 국가재정을 통해 주민을 먹여살리는 ‘가부장적 온정주의’가 더는 통하지 않게 됐다. 이러한 변화는 곧 각 개인이 꼼꼼하게 돈 계산을 하여 자신이 번 수입으로 생활을 영위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처럼 북한 경제 개혁조치의 핵심은 국가재정 부담의 완화, 임금과 물가의 현실화, 그리고 자율성과 분권화의 강화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물가와 임금의 동시적이며 불균형적인 인상과 더불어 국가 배급제도를 축소함으로써 주민으로 하여금 노동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번 수입에 따른 임금 지급은 한편으로 노동의욕을 고취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소득 불균형 및 소득격차를 심화시킬 가능성을 높여놓았다.

    7·1조치를 통해 북한이 과거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정치·사상적 인센티브보다 물질적 인센티브를 더욱 강조한다는 점이다. 사회주의 개혁의 일반적 공통점은 개혁 과정에서 정치통제가 약화되고 그 자리를 대신하여 물질적 통제 및 유인(誘因)이 강화되는 데 있다. 7·1조치를 통해 북한 역시 이러한 경로를 따르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북한의 이번 개혁조치는 과거의 ‘비제도적’ 개혁과 비교해 ‘제도적’ 개혁의 범주로 묶을 수 있다. 즉 과거의 부분적인 개혁 조치가 제도의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다면 7·1조치는 제도의 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북한 역사에서 제도의 변화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50년대 사회주의 개혁 시기, 1960년대 경제관리체계의 변화 시기에도 제도 변화가 시도되었다. 1970∼80년대에 이르러서도 북한은 많은 변화를 경험한다.

    그러나 당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의 제도 변화야말로 단순한 효율성의 향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체제의 운영 원리를 바꾼다는 면에서 ‘개혁’의 범주로 규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플레이션과 불균형 성장

    7·1조치가 시행된 지 3년이 흐른 지금 이의 성패를 논하기는 다소 성급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결과에 기초해 7·1조치의 성과를 분명하게 논의하는 것은 필요하다.

    현재 북한은 높은 인플레이션과 소득격차의 확대로 인해 새로운 문제에 부딪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7·1 조치의 성공에 가장 중요한 조건은 공급의 정상화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적 현실을 감안할 때 단기간에 공급을 정상화하기는 무척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공급을 정상화하기 위해 여러 방식을 다각도로 모색할 수밖에 없었으며, 7·1조치 이후 나타난 무역의 활성화, 북·중 경제협력의 강화 등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상품 가격의 기준이 되는 쌀의 경우 7·1조치 이후 국가가 1kg당 40원에 수매해(벼의 경우 29원) 44원에 판매해왔다. 그러나 현재 국정 판매소에서는 45원 가량에 팔리는 반면, 시장에서는 130∼150원에 가격이 형성되고 있으며, 지역에 따라서는 이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공급이 정상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시장가격이 국정가격보다 훨씬 더 높게 형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다른 물품의 가격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아 평양 외의 지역에서 가격차이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계절적 영향을 고려하면 지난 겨울 동안 인플레이션이 훨씬 더 심각하게 나타났을 것으로 보인다. 통일연구원이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 시기에 북한의 물가가 크게 올라 곡물은 5∼8배, 육류는 4∼7배, 의류·가전제품은 2∼7배 상승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요인은 무엇일까.

    가장 큰 요인은 역시 공급의 부족이다. 그러나 공급 부족만으로 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공급 부족의 이면에 담긴 주민의 구매력 상승 요인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지난해 발표된 통계에서 북한이 중국에서 수입한 돼지고기가 1억달러 규모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1999년 이후 북한 경제가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서고, 시장의 도입과 노동 인센티브 강화 등에 힘입어 주민의 구매력이 상승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민의 구매력을 뒷받침할 만큼 충분한 공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주민의 구매력 증대 현상은 평양의 통일거리 시장이 영업시간을 연장한 데서도 확인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평양 같은 대도시에 국한된 것일 수 있다. 실제로 농촌은 말할 것도 없고 소규모 도시에서는 공급 부족으로 아예 상점이 문을 닫은 경우도 많다고 알려졌다.

    북한 주민의 구매력이 증대한 배경에는 변화된 임금체계가 자리잡고 있다. 즉 7·1조치 이후 북한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18배 가량 올랐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근로자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협동농장에서는 정보당 1t만 더 생산해도 금액으로 따지면 2만9000원 가량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 실제 일부 협동농장에서는 농민 1인당 소득이 10만원을 넘기도 한다.

    그렇다고 북한 노동자가 모두 이처럼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산직이 아닌 사무직의 경우 여전히 정액제로 임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실질 소득이 크게 높아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물가 인상이 이들에게 경제적 압박요인이 되고 있다. 거의 모든 단위가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면서 물건을 생산하지 못하는 사무직이나 일반 사무원에게 인플레이션은 소득 격차 못지않은 구매력의 차이를 불러오는 요인이 됐다.

    주민 구매력의 수준뿐 아니라 북한 경제의 불균형 성장도 공급 부족에 일정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북한의 내부 문서를 보면 7·1조치 이후 생산량이 1.2∼1.5배 늘어났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산량 증대가 어떤 부문에 의해 주도되는지는 확실치 않다.

    군수산업 위주의 불균형 성장

    ‘7·1 조치’ 3년, 북한 경제 현주소

    북한은 올해 신년 사설을 통해 농업을 ‘주공전선’으로 설정했으나 비료의 생산과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결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한의 보도에 따르면 공업총생산은 2002년에 12%, 2003년에 10% 증가했다. 그러나 생산 증가를 이끈 부문이 대체로 중공업일 가능성이 높으며, 따라서 주민의 수요와 직결되는 경공업과 농업의 생산 증가율은 상대적으로 낮았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간 불균형 성장이 초래된 것은 선군(先軍)정치 이후 북한이 채택한 ‘국방공업 우선, 농업과 경공업의 동시 발전’이라는 공식 경제노선에 따라 중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국방공업이 다른 산업보다 상대적으로 빠르게 성장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불균형 성장의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 해도 ‘북핵위기’로 긴장이 고조된 안보상황과 체제유지에 급급한 불안정한 정치여건에 있다. 북한으로서는 체제의 보위가 급선무인 만큼 민수(民需)경제에 부담이 되는 국방경제의 축소와 민수경제로의 전환을 쉽게 결정할 수 없으며, 대외개방 역시 무척이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결국 북한은 단기적으로 지속적 공급 불안정으로 말미암아 인플레이션의 고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추가적인 소득원이 없는 사무직과 일반 노동자들의 고통 또한 점차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개혁과 과감한 개방을 통해 산업간 불균형 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러나 쉽사리 이러한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데 북한 지도부의 고민이 있다.

    7·1조치 이후 북한 사회의 변화는 비단 제도의 변화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 주민의 가치관 변화다. 이미 북한에서는 1990년대 중반 국가 능력의 약화로 장마당이 활성화하고 주민들의 물질적 관심사가 증가하면서 전통적 의미의 사회주의적 가치관이 약화되는 조짐이 보였다. 7·1조치는 주민의 변화된 가치관을 어느 정도 수용한다는 의미도 띠고 있다.

    북한 주민의 가치관 변화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국가 능력의 약화로 국가 차원의 공급이 줄어들거나 붕괴되면서 주민들의 자구능력이 더욱 요구되는 상황에서 발생한 가치관의 변화다. 북한 주민은 이미 장마당을 통한 이윤 획득과 비사회주의적 일탈 행위를 통해 배고픔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국가에 대한 의존적 성향이 줄어들었다. 이러한 변화는 주관적인 의지라기보다 주변 여건의 객관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한 측면이 크다.

    개인주의 가치관 확산

    둘째, 개인 노동에 따른 소득 인정과 실리로 포장된 이윤 실현의 정당성, 분권과 자율성의 강화, 시장 기능의 활성화 등으로 개인의 이윤관념이 강화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특히 개인의 능력에 따라 ‘번 수입’의 개념이 도입되고 시장이 활성화됨으로써 개인 이익의 관념이 생겨나고 여기에 덧붙여 상품-화폐 관계가 활성화되면서 소유, 가치, 거래, 이윤 같은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강화되는 현상이 발견된다.

    셋째, 사회적으로 소득격차가 발생하고 구매력 차이도 생겨남으로써 주민사이의 계층 분리 현상이 발생했다. 특히 과거에 ‘장사 행위’에 대해 갖던 거부감이나 부정적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면서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과거의 당성(黨性)이나 정치성에서 점차 경제적인 요소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결국 집단주의적 가치관의 약화와 개인주의적 가치관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개인주의적 가치관의 확대 현상은 개혁사회주의 체제의 모든 곳에서 발견되는 공통 현상이다.

    북한에서 발견되는 개인주의적 가치관은 1998년 헌법에서 규정한 이윤, 수익성의 개념뿐 아니라 시장에서의 이윤 실현, 소유와 사용에 대한 개념 변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걸쳐 있다. 개인주의적 가치관의 확대는 장기적으로 공론장(public sphere)을 형성해 북한의 체제변화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7·1조치는 상품-화폐 기능의 중시, 시장의 도입, 분권과 자율성의 강화 등을 통해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려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실제로 북한은 이 조치 이후 여러 분야에서 추가적인 개혁을 단행한 사실이 감지된다.

    농업분야에서는 경작자가 생산물의 25% 정도를 토지 사용료로 내고 있으며, 초기 중국이 농업개혁에서 실시한 것과 유사한 포전(圃田)담당제가 실시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상업분야에서는 아직까지는 순수한 개인 상점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상 개인에게 임대해 운영하는 상점도 생기고 있으며, 인민반이나 각 단위에서 시장에 판매대를 설치하거나 거리에 간이 판매대를 설치해 장사 행위를 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이러한 내부 개혁 조치뿐 아니라 신의주 개방에서 보듯 대외 경제협력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 비록 신의주 특구사업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북한과 중국의 경제협력 사례는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미 북·중 무역 거래는 북한 전체 교역량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양국간 변경무역이 2004년 들어 급격히 늘어났는데 최근에는 무산철광 개발에 중국 기업의 참여를 허용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고, 평양 제1백화점의 경영권도 중국에 넘어가고 있다. 농업분야에서도 북·중 협력이 가시화하고 있다.

    급선무는 전력과 농업 문제

    이처럼 양국간 경제협력이 확대되는 이유는 남북 경협의 속도가 예상보다 느리게 진행되고, 핵위기로 인해 미국과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대중(對中) 경제협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북한의 의도와 북한시장을 선점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의 계산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렇게 대외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내부 경제를 추스르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북한의 경제는 심각한 인프라 해체 현상으로 인해 좀처럼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대외 경제협력의 방향을 인프라 건설과 단기적인 공급량 확보에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중국과 거래한 교역 물품을 분석해보면 에너지의 70%와 식량의 40%를 중국으로부터의 수입과 원조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의 대북 투자 역시 지하자원 개발이나 유리 공장, 트랙터, 컴퓨터, 운송 같은 분야에 집중됐다.

    그러나 대외 경제협력을 통한 개발보다 더 시급한 것은 북한 내부의 산업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과제가 산업의 기초가 되는 전력, 먹는 문제 해결을 위한 농업, 그리고 미래 첨단 산업으로 정보기술(IT) 분야에 대한 투자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것은 전력과 농업이다. 북한은 2003년 농업 정상화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토지와 수로(水路) 정리, 종자개량 등의 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다. 에너지 산업 역시 장기계획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오는 2007년까지 농업 분야에서 800만t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전국적인 토지정리사업을 대략 완료하고, 수로 건설도 일차적으로 마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감자 농사를 중심으로 종자 개량과 영농 방법 개선 등에도 역점을 두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동안 북한의 곡물 생산량은 2001년 395만t, 2002년 413만t, 2003년 425만t, 2004년 431만t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북한은 주민의 영농의욕을 고취하고 토지 생산성을 향상시켜 지속적인 생산량 증대를 시도해왔다.

    농업 분야에 대한 북한 당국의 의지는 2007년까지 800만t을 목표로 생산, 먹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표에서도 읽을 수 있다.

    올해 북한이 신년 사설을 통해 농업을 주공전선으로 설정한 것은 2007년을 목표로 농업의 정상화를 이룩한다는 시간표에 따라 올해를 하나의 전환점으로 삼았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북한 농업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 비료의 생산과 공급이다. 북한의 비료 생산능력은 연간 150만t 정도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실제 생산량은 연간 20만t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북한 농업이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고 험난하다.

    비료 생산능력 심각

    에너지 산업의 경우 주로 중소 규모 발전소 건설에 치중하던 데서 벗어나 대규모 발전소 건설과 기존 발전소의 개·보수는 물론 석탄 생산의 증대를 통해 상황을 타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여건에서는 전력난 극복을 위한 북한의 시도 역시 미래가 불확실하다.

    2007∼2008년을 목표로 경제 분야에서 어느 정도 정상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현재 진행하는 7·1조치뿐 아니라 몇 가지 추가적인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추가로 선보일 조치가 무엇일지 아직 분명히 드러나 있지 않다. 그러나 현재의 북한 개혁이 주로 유통과 기업소의 자율성 확대와 분권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을 감안하면 추가 개혁은 이를 뒷받침하는 조치일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아마도 금융개혁일 것이다. 공급자로서의 국가 구실이 축소된 현실에서 통화, 유통 및 기업소의 운영에는 은행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북한에서 1만원권 고액 화폐가 새로 등장했다고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다. 하나는 7·1조치 이후 나타난 인플레이션이 아직까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화폐의 유통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외 경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무역, 은행의 기능 확대와 강화는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에서 금융개혁은 개혁 사회주의 체제로 진입하는 데 필수적인 것으로 지적된다. 북한에서 금융개혁이 어떤 내용과 방향으로 전개될지가 앞으로의 개혁 방향을 가늠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북한의 개혁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길로 들어섰다. 지금 단계에서 과거로 돌아가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북한은 이러한 모색을 ‘실리 사회주의’라고 이름붙이고 있다. 내용에서는 실리를 추구하지만, 그 강조점은 여전히 사회주의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분권화와 시장화를 진행해 왔음에도 국가권력체계에서 내각의 경제지도 기능을 과거보다 훨씬 더 강화했다. 이는 경제에 대한 중앙집권적 지도 기능을 축소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대신 당이 경제행정사업을 도맡아 주도하는 일은 줄어들었다. 경제는 경제논리로 풀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내각의 기능이 강화됐고, 내각 총리가 실권을 갖는 총리로 격상됐다. 일종의 당정(黨政) 분리인 셈이다.

    이러한 변화는 전체적으로 개혁사회주의 체제의 초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북한의 변화를 가로막는,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하나는 체제 수호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폐쇄성이며, 다른 하나는 북·미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정치적 역학관계다.

    게다가 이 두 가지 문제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폐쇄성에서 벗어나면 북·미관계도 풀리게 마련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남북관계는 북한의 개혁을 가속화하는 데 결정적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남북 경제협력이 개성공단을 중심으로 완만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중국의 급격한 대북 투자 확대와 북중 경제협력의 증진 현상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북중관계의 진전은 앞으로 북한 경제체제의 변화와 관련한 우리의 입지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앞으로 남북경협을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만 그 방식과 속도에 대해서만큼은 전략적으로 사고할 것을 요구한다고 하겠다.

    현 시점에서 남북경협은 생산기지 진출을 통한 것이 대부분이다. 생산기지 진출을 통한 자본 및 기술과 노동력의 결합은 남북의 장점을 흡수하는 경제협력 모델로 적극적으로 활용할 만하다. 또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의선과 동해선의 남북 연결 사업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을 진행하는 데는 미국의 대북 경제봉쇄, 국내 법·제도의 정비 문제, 정치적 환경 등이 장애요인으로 남는다. 바로 이것이 남북경협이 지지부진한 이유이다.

    인프라 건설 지원해야

    이런 상황에서 남북경협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북한의 인프라 건설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여기에는 구체적으로 지하자원의 개발과 북한이 절실히 바라는 전력시설의 교체 및 보수, 농업분야의 협력, 그리고 관광 인프라 개발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이는 민간기업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의 과제이기도 하다.



    남북간 경제력 차이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 북한의 국민총소득(GNI)은 남한의 33분의 1에 지나지 않고, 1인당 국민총소득은 914달러로 남한의 15분의 1에 해당한다. 문제는 미국 랜드연구소가 추산하듯이 통일비용이 적게는 500억달러에서 많게는 6700억달러가 들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다.

    통일은 언제 닥쳐올지 모른다. 남북경협을 통해 북한이 빠른 속도로 개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미래의 통일비용을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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