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호

수탉, 고양이, 오리새끼까지 축복해준 아래채 상량식

  • 글: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입력2005-07-11 1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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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은 보통 평생 세 번 집을 산다고 한다. 결혼한 뒤 30대 초반에 한 번, 40대 이후 아이들 때문에 더 큰 집으로 두 번, 자식들 내보내고 노후에 살 조그마한 집으로 세 번. 도시인에게 집은 매입의 대상일 뿐, 짓는 대상은 아니다. 김광화씨가 이번에 보내온 원고는 손수 집을 짓는 얘기다. 딸 자연이와 아들 무위는 새벽부터 일어나 망치를 두드리고, 부부는 돌을 져 나르고 톱질을 했다. 가족이 함께 살 집을 지으면서 그들은 서로 몰랐던 것을 발견했다. 도시인은 상상할 수 없는 집 짓기 노하우와 행복 일기.
    수탉,  고양이,  오리새끼까지 축복해준 아래채 상량식

    지붕 막바지 작업.패널 강판만 씌우면 시간에서 자유다.

    겨울만되면 아내는 ‘아래채, 아래채…’ 노래를 불렀다. 아래채가 있으면 혼자 무얼 하기도 좋고 손님이 와도 좋다며 아래채를 짓자고 했다. 아무리 작은 집이지만 집 짓기가 어디 만만한 일인가. 그렇다고 집 짓기를 남에게 맡기자니 그것도 내키지 않았다. 돈도 돈이지만 한 달 가량 일꾼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게 쉽지 않다. 그렇다고 내가 짓자니 아마추어가 그 일을 하려면 거기에 온통 매달려야 할 판이다. 여유 공간 가지려다 내 일상이 휘둘릴 게 뻔해 모르쇠 해왔다.

    그러다가 지난해 큰아이 자연(18)이가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더니 자기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고 했다. 아내와 달리 자연이가 집을 원하니 내 마음이 순식간에 돌아섰다. 살림집을 작게 지으면서 ‘아이들이 크면 그때 가서 또 짓자’고 했는데 벌써 때가 온 것인가. 아래채 짓기가 갑자기 설렘으로 다가온다. 자연이가 어느 새 많이 크기는 컸나 보다. 부모로부터 조금씩 독립을 준비하려나!

    그렇다고 그냥 지어줄 수는 없다. 이를 아이들 산교육의 기회로 삼기로 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집을 지을 힘이 생긴다면 많은 게 해결되지 않을까. 우선 내가 편하고 좋을 것이다. 이 다음에 아이들이 독립하더라도 아이들 집 마련하느라 내 허리가 휠 일은 없을 테니까. 아이들 역시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을 스스로 충당할 수 있다면 자신감도 커지리라.

    집 짓는 기술을 가르쳐주마!

    게다가 시골집은 살다가 장마나 태풍으로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집집마다 집 주인의 개성이 달라 다른 사람을 부르기가 쉽지 않다. 마음 고생, 돈 고생이 많다. 그러니 되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손수 하면서 집을 알아두면 살면서 집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연이에게 조건을 달았다.

    “남들처럼 아파트는 못 사줘도 집 짓는 기술은 가르쳐줄 테니까 ‘집 짓기 공부’로 한다면 좋겠다.”

    자연이는 기대로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식구회의를 했다. 함께 힘을 모으기로 했다. 나는 농사 틈틈이 하되 집 짓기의 큰 흐름을 잡아가기로, 자연이는 기초부터 마무리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집 짓는 과정에서 겪는 일을 일기로 기록하기로 합의했다. 자연이는 자연이대로, 나는 나대로 일기를 쓰기로 했다. 무위(11)는 아직 어리니 그때그때 놀이삼아 하고 싶은 일만 하기로 했다. 그리고 아내한테 내 품값으로 전문가용 디지털 카메라를 사달라고 부탁했다.

    설계는 간단했다. 한 칸은 자연이 방으로 구들방, 또 한 칸은 사무실 겸 손님맞이 마루방. 다 합해야 6평 남짓이다. 하지만 공사 일정은 여유 있게 1년을 잡았다. 3월에 시작해 장마 전에 지붕을 씌우고, 벽체는 여름에 비올 때나 무더운 날, 구들은 가을에 놓아 겨울이 오기 전에 입주 예정. 겨울에는 마루방 마루 놓기와 툇마루 놓기.

    “식구가 함께 하는 집 짓기예요!”

    내가 집을 전문으로 짓는 목수는 아니지만 믿는 구석은 있다. 몇 해 전에 우리집을 여러 사람이랑 지어보았다. 뒷간과 광을 혼자 지으면서 집 짓기의 큰 줄기에 대해서 감은 잡고 있었다. 정농회 큰어른이신 김영원 선생은 “손수 집 짓기는 세 가지만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다”며 “수평과 수직을 볼 줄 알고, 벽이 지붕 무게를 견딜 수 있는지만 고려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집을 짓기로 하니 마음이 바쁘다. 식구들은 기대에 부풀었지만 나는 결정하고 판단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집을 몇 번 지어본 목수들도 고민하는데 하물며 선목수니 말해 무엇하랴. 게다가 꿈도 야무지게 자연이에게 집 짓기를 가르치겠다고 큰소리를 쳤으니…. 제대로 알아도 남을 가르치는 게 쉽지 않은 일이거늘, 이래저래 공부해야 했다.

    우선 책부터 보았다. 전에 보던 책들은 주로 심벽집(집의 뼈대인 기둥과 도리, 보를 나무로 짜 맞추고 벽을 흙으로 채우는 방식)에 대한 내용이었다. 지금 사는 살림집을 심벽집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래채까지 심벽집으로 짓고 싶지 않았다. 같은 방식을 되풀이하기 싫었다. 그러면서도 쉽게 지을 수 있고, 아이들 교육에 도움이 되며, 내 자신에게도 공부가 되는 집, 그게 뭘까.

    집 짓기 책을 구해 읽어보니 귀틀집(나무를 우물정(井)자 모양으로 쌓아가는 우리나라 전통 통나무집)이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한번은 지어보고 싶은 집이었다. 귀틀집을 다룬 책을 알아보니 ‘흙과 통나무로 짓는 생태건축’이 있었다. 공정 하나 잘못 판단하면 몇십만원은 순식간에 날아가는 게 집 짓기다. 당장 책을 샀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집과 관련된 책을 잔뜩 빌렸다. 인터넷 카페에도 두 군데 가입해 정보를 수집했다.

    나도 저렇게 자랐다면…

    수탉,  고양이,  오리새끼까지 축복해준 아래채 상량식

    자연이에게 물 수평 보는 법을 가르치는 모습. 보는 위치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난다.

    귀틀집으로 짓자고 마음먹고 나니 그 다음에는 나무를 무엇으로 할 거냐와 거기 따르는 돈이 문제였다. 통나무는 돈이 많이 들고 나무가 마르면서 수축되는 게 흠이었다. 게다가 귀틀 중심선을 잡아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고민 끝에 중고 목재를 쓰기로 했다. 하방이나 보, 도리처럼 주요 목재는 굵은 것(4치 각재)으로 하되 귀틀로 올리는 건 ‘오비끼’라는 3치 각재를 쓰기로 했다. 드디어 집 짓는 공사가 시작됐다.

    새벽에 잠이 깼다. 온갖 생각이 떠오른다. 중고 목재상부터 알아봐야 한다. 전주나 대전, 어디쯤 있을까. 문은? 공구도 없는데. 뭐부터 하지? 아차, 경운기부터 고쳐야 한다. 그래야 기초공사에 쓸 돌을 실어나를 수 있겠다. 날이 밝자 분주해졌다. 오늘은 씨감자 받는 날이다. 먹고사는 게 집 짓기보다 먼저 아닌가. 집에서 씨감자를 기다리면서 ‘내가 너무 서두른다’고 중얼거리자 자연이가 “아빠, 식구가 함께 하는 집 짓기예요”하고 말했다.

    그렇다, 함께 해야지. 아이들에게 기초공사에 쓸 돌을 주워오라고 했다. 자연이가 수레를 끌고 간다. 무위도 그 뒤를 따랐다. 아이들이 먼저 움직였다. 터에서 이것저것 생각하는 사이 아이들이 돌을 수레에 싣고 왔다. 자연이와 함께 터에 말뚝을 박아 규준틀을 설치했다. 그리고 물 호스로 수평을 잡고 줄을 치니, 시작이 반이라고 순식간에 공사가 시작된다.

    한 머리에선 터 파고, 한 머리에선 돌을 다져 넣었다. 무위가 제법이다. 삽질, 괭이질을 열심히 했다. 한참 하다가 집터 뒤 뽕나무에 매단 밧줄을 타면서 논다. 저녁에는 아내와 함께 설계에 따라 필요한 목재 물목을 뽑았다. 식구마다 형편껏 터를 파고 잡석을 다졌다. 그렇게 시키고 나는 감자밭에 갔다.

    저녁에 집터에 와보니 그 사이 ‘비리’가 생겼다. 자연이가 설계보다 제 구들방을 넓게 잡은 것이다. 구들방과 마루방 경계선을 따라 기초를 파는데 구들방 바깥 선이 졸지에 방 안 선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다시 묻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노골적으로 의도된 비리는 아니니까 웃고 넘어갈 수밖에. 저녁에 무위는 무엇이 즐거운지 수다를 떨었다. 밥상머리에서 아내가 무위에게,

    “일하니 좋으냐?”

    “예, 일석삼조예요.”

    “그래?”

    “팔에 근육 생기지요. 아빠 일 돕지요. 밥맛도 좋으니까요. 그리고 하나 더 있네요. 글쓰기도 잘될 것 같아요.”

    기초공사가 끝나갈 무렵, 중고 목재상에서 전화가 왔다. 목재가 준비됐으니 골라가란다. 다음날 아침 먹고 주먹밥 싸가지고 식구 모두 목재를 사러 갔다. 아이들과 함께 나무를 골랐다. 나무 값만 160만원이다. 자재 값이 많이 올랐다.

    이제 공구를 챙겨야 한다. 아래채 하나 짓자고 공구를 다시 사기가 뭣해 이웃에게 빌리기로 했다. 이웃은 선뜻 가져다줬다. 일이 잘 풀려간다고 신이 나 일을 하려는데 공구가 말썽이다. 고장 난 공구를 들고 면에 나갔다. 기술자가 없는 탓에 닷새쯤 뒤에 오란다. 시골에서 빈틈없이 시간을 정해놓고 일을 하려고 하면 낭패를 볼 때가 많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 없어 그 다음날 무주읍까지 갔다. 이번에는 전기톱 규격에 맞는 톱날이 없다. 대신에 톱에 맞춰 즉석에서 톱날을 제작했다. 인터넷을 뒤졌더니 경매로 나온 전기대패가 싸보였다. 주문하고 만 하루 만에 우리집까지 배달됐다. 인터넷과 택배, 정말 빠르다. 좋기는 좋구나.

    공구가 갖춰지자 자연이는 구들방의 문틀과 창틀을, 나는 마루방을 짰다. 각자 자기 영역을 맡아서 일했다. 여러 사람이 꼭 함께 해야 하는 일 외에는 각자 자신의 리듬과 호흡으로 했다. 그래야 자연이가 손수 일할 기회가 많아진다. 자연이에게 전기드릴과 전기대패 사용법을 알려줬다. 그러나 전기톱은 자연이가 쓰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더디더라도 공부하는 셈 치고 손톱을 쓰라고 했다.

    자연이가 먹줄을 튕기고 자로 치수를 재 나간다. 내 딸이지만 자랑스럽다. 드릴을 잡고 구멍을 뚫는다. 부럽기도 하다. 나도 저렇게 자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문틀 짜는 과정에서 자연이는 톱질, 끌질, 먹줄치기, 대패질 두루두루 해 나간다. 내게 묻는 것도 많지 않다. 대부분 어깨너머로 익히는 것 같다. 논에서 일하고 있으면 자연이의 망치 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딱딱. 울림이 좋다. 깨어난다. 깨어 있다. 자연의 숨결이 느껴진다. 망치질 소리가 새소리랑 어울린다.

    5월 들어서면서 집의 윤곽이 점차 드러났다. 하방 위에 문틀을 세우고 나자 속도가 난다. 통나무 대신 각이 진 ‘오비끼’로 하니 수평과 수직 잡는 게 한결 쉽다. 게다가 나무가 무겁지 않아 자연이도 혼자서 시나브로 쌓아간다. 벽이 점점 높아진다. 균형 잡기가 어렵다. 못 박는 자세도 불안정하다. 두 손으로, 온몸으로 박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아내를 보조 일꾼으로 모셨다. 일이 한결 빠르고 쉽다. 아래에서 못을 올려주고 버팀목도 집어준다. 나중에는 무위까지 와서 거든다. 처음에는 사다리를 타고 오다가 나중에는 마당에서 버팀목을 던져준다.

    수탉,  고양이,  오리새끼까지 축복해준 아래채 상량식

    야구 선수처럼 흙을 던지는 무위. 누나가 잘 받으면 스트라이크, 지붕에 제대로 올라가지 않은 흙 덩이는 볼, 누나가 받지 못했지만 지붕에 잘 떨어진 흙은 안타란다.

    일하다 보니 덥다. 갑자기 신발이 거추장스럽다. ‘휙’ 하고 벗어던져버리고 맨발로 섰다. 맨발이 되니 느낌이 잘 산다. 바람이 불어도 더 시원하게 느껴진다. 그러다가 나무에 긁혀 발에 피가 조금 났다. 그래도 신을 신고 싶지는 않았다.

    한참 일하다가 참으로 미숫가루를 막걸리에 타서 마셨다. 별미다. 뽕나무 그늘에 둘러앉아 함께 먹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내일이면 도리 보 아래까지 올라갈 것 같다. 모레는 이웃 집 짓는 곳에 들러 도와줘야겠다. 사람 노릇 하고 살아야 하는데 벌여놓은 일 때문에 쉽지가 않다.

    5월15일 : 새벽 3시쯤 잠이 깼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머리가 점점 맑아지면서 잠이 달아나버렸다. 지붕을 올릴 때가 가까워질수록 고민도 많아진다. 귀틀집은 지붕 무게로 집이 전체적으로 조금 내려앉는다는데 문틀 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미 반자는? 전기공사도 주름 관을 미리 빼놓아야 할 텐데. 대공을 어느 정도 높이로 줘야 지붕의 물매가 알맞을까? 쥐 방지 대책도 고민이다.

    귀틀집을 잘 아는 친구 박찬교(48)에게 하루 걸러 전화했다. 대공 높이는 정해진 비율보다 지붕 재료를 무엇으로 하냐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서까래로 물매를 잡아보고 편안하다 싶은 높이가 좋다고 한다. 전화를 한 김에 비가 올 경우 어찌해야 하는지도 물어봤다.

    “마른 목재니까 비 맞히지 마라. 비 맞고 나면 더 뒤틀린다.”

    나보다 한 해 먼저 내려와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는 고마운 친구다.

    5월16일 : 이웃 집 짓기에 온 식구가 몰려갔다. 이 집은 담틀집(담틀을 짠 다음, 흙을 모래와 잘 섞어 다져가며 벽체를 먼저 올리는 집)이라 또 신기하다. 벽체 두께가 자그마치 40cm다. 전통 건축이 현대화되어 안정감이 아주 좋다. 담틀 하나를 한참 다지는데 공정에 문제가 생겨 점심만 얻어먹고 그냥 돌아왔다.

    다시 아래채 일. ‘오비끼’로 하니 도리 보까지 금방 올라갈 듯한데 아니다. 선목수가 집을 짓다 보니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처 생각지 못한 일들이 자꾸 일어났다. 예정보다 일이 늦어지니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자꾸 앞으로만 나아가려 한다. 요 며칠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 무리했더니 저녁에는 목욕할 힘도 없다. 땀과 톱밥을 몸에 뒤집어쓰고도 며칠째 목욕을 못하고 있다. 아침이면 일을 좀 적게 하고 목욕할 힘을 남기자고 다짐하지만 저녁이면 남은 힘이 없다. 그래도 막걸리는 잘 들어간다. 한 잔만 하자고 했는데 두 잔을 마셨다. 취한다. 졸린다.

    목재 값이 어느덧 200만원

    5월17일 : 밤부터 비가 왔다. 아래채 지붕에 비가림막을 쳐야 한다. 아내랑 천막을 치는데 바람이 엄청 분다. 천막이 미친 듯 펄럭인다. 아이들을 불렀다. 자연이와 무위가 매달리고 잡아줘서 무사히 천막을 쳤다. 바람도 세지만 아이들도 세다. 검은콩 사이에 기장을 심었다. 오는 길에 고추 사이에 왕겨를 덮어줬다. 이제 남은 힘이 거의 없다.

    5월18일 : 새벽에 잠이 깼다. 비가 부슬부슬. 얼른 아래채를 보니 천막이 멀쩡하다. 휴, 다행이다. 고생한 보람이 있다. 바람이 을씨년스럽게 불며 천막을 날리고 있다. 집을 한 바퀴 둘러봤다. 안으로 들어가니 나무가 말짱했다. 보송보송했다. 천막이 찢어진 한 곳 외에는 비 한 방울 안 맞았다.

    다시 잠깐 잤다. 눈을 뜨니 오전 8시30분. 아침 먹고 서울 가는 아내를 터미널까지 바래다줬다. 11시, 다시 잤다. 푹 잤다. 두 시간을 내쳐 잤다. 피로가 풀렸다. 누워서 신문과 잡지를 봤다. 이틀치 신문을 한꺼번에 봤다.

    벽체가 올라가면서 무엇이 더 필요한지 뚜렷이 드러났다. 처음에 종이에다 주먹구구식 설계할 때와 달리 필요한 나무가 여러 개다. 집이 올라갈수록 설계 변경도 잦다. 손수 짓는 집 짓기의 장점이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중고 목재상에 목재를 추가로 주문하니, 목재 값이 어느덧 200만원에 달했다.

    어느새 모내기철이 돌아왔다. 집을 짓다 들판을 보면 우리 논을 빼고 모내기가 거의 끝나간다. 마음이 바쁘다. 모내기를 미룰 수 없다. 그런데도 자꾸 마음은 집 짓기로 간다. 큰비 오기 전에 지붕을 씌워야 한다는 부담감. 대충 날짜를 잡아본다. 5월21일쯤 상량, 23일은 지붕 씌우기, 25일 모내기 예정.

    요즘은 날마다 새벽 3~4시면 잠이 깬다. 내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집 짓기에 대한 생각으로 각성 상태에 빠진 게 아닐까. 한밤중에 내가 부스럭대자 아내도 잠을 제대로 못 잔다. 나를 ‘새벽형’ 인간이 아니라 ‘꼭두(새벽)형’ 인간이라 놀린다.

    도리와 보를 치목하는데 중고 목재라 일이 더디다. 나무가 마른 데다가 많이 휘었다. 무엇보다 나무 안에 남아 있는 못이 가장 큰 문제였다. 못이 있나 없나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대패가 못에 닿으면 몇만원이 순식간에 날아간다.

    먹줄 튕겨가며 대패질로 휜 곳을 잡았다. 다시 먹줄 튕기고 끌 작업. 아침을 먹고 고미받이에 서까래 홈을 파는데 모내기가 떠오른다. 논에 가 경운기로 로터리치고 논두렁을 바르다 날이 어두워졌다. 우선 급한 대로 물이 새지 않게만 해뒀다.

    수탉,  고양이,  오리새끼까지 축복해준 아래채 상량식

    우리 아이들은 일을 많이 한다. 식구가 함께 모내기 하는 모습. 왼쪽부터 자연이, 아내, 필자, 무위.

    먼 산 뻐꾸기는 농사일을 재촉하고

    서두르지 말자. 아이 혼수를 마련하는 마음으로 하자. 보통 10년 걸쳐 마련할 혼수를 몇 달 만에 하는 거다. 여유를 갖자. 오늘은 아내도 힘들었는지 저녁 준비를 제대로 못하고 식혜로 때우자 한다. 저녁으로 말린 밤 두 알, 식혜 한 잔, 생쌀을 조금 먹었다. 내일은 온 식구가 집 짓기에 매달리면 좋겠다고 말했다. 얼른 지붕을 씌우고 싶었다.

    지붕을 무엇으로 하나? 아래채니까 쉽게 생각해서 슬레이트면 되겠지 했는데, 이제 슬레이트는 환경문제로 더는 생산이 안 된단다. 친구의 조언을 받아 강판으로 하기로 했다.

    그런데 지붕 씌우는 일은 업자에게 맡기고 싶었다. 지붕까지 손수 한다면 몸에 무리가 올 것 같았다. 우리가 거래하는 건재상에 부탁했더니 지붕을 업자에게 맡기면 100만원 정도 든다며 직접 하라고 했다. 그는 대전에 자재 사러 갈 때 직접 사다주겠다고 했다. 시골은 돈을 쓰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 된다. 돈은 절약되지만 내 일거리는 늘어났다. 일을 남한테 미루려다 도로 내게 넘어오니 일복이 터진 셈이다.

    자연이에게 뒤틀린 목재, 먹줄 튕기는 것을 가르쳤다. 구름이 끼어 일하기는 좋다. 무위가 밭에서 딸기를 따와 먹여준다. 상큼하니 맛있다. 힘이 난다. 점심 먹고는 식구가 모두 달라붙어 일했다. 자연이는 고미받이랑 도리 치목을, 아내는 고미서까래를 길이에 맞춰 자르고 대패질을 했다. 나는 고미받이 홈을 끌로 팠다. 무위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뛰어다니며 일을 거든다. 아내가 서까래 대패질을 끝내면 무위가 내게 날라다준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정말 여러 사람 몫을 한다.

    오후에는 면에 나간 김에 전기가게에 들렀다. 전기공사를 직접 하겠다니 가게 주인은 전기 배선에 대해 도면을 그려가며 자세히 가르쳐준다. 차도 한잔 얻어 마셨다. 시골 인심이다. 고마운 분들이다.

    돌아오는 길, 마을 들머리에서 우리 아래채가 보였다. 어느새 많이 했구나. 갈 길은 멀지만 새삼스럽게 숨을 고른다. 차근차근 해야겠다. 처음 세운 원칙이 자꾸 무너진다. 다시 되짚어본다. 즐겁게, 쉽게, 여유 있게 하자. 아이들 교육으로 하자면 시간을 넉넉히 갖자. 또 사진을 많이 찍어 두어야 한다. 한 번 지나면 그 장면을 다시 볼 수 없으니까.

    하지만 모내기가 하루하루 다가온다. 밭일도 쌓여 있다. 이래저래 상량식을 늦췄다. 아예 모내기하는 날로 겹쳐 잡을까. 그것도 나름대로 큰 뜻이 있으리라. 5월25일은 첫 모내기와 상량의 날로 정했다. 아무래도 이웃들 힘을 빌려야겠다. 그동안 식구 힘만으로 짓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몸이 고단했다. 내가 가둔 내 울타리가 아닌가. 생각을 바꿔 울타리를 허무니 죄 지은 사람이 고해성사 하듯 마음이 가볍다.

    일을 마무리하고 손을 씻으니 왼손 엄지를 다쳐 피가 엉겨 있었다. 무슨 일을 하다가 언제 그랬는지 기억조차 없다. 통증도 못 느꼈다. 몸이 하는 말에 늘 귀를 기울이자고 했는데 피가 나도록 몰랐으니 몸 공부는 아직 멀었다.

    ‘한량 집을 짓다. 와, 아래채 행복’

    수탉,  고양이,  오리새끼까지 축복해준 아래채 상량식

    식구 나름대로 목수가 되고 싶어….

    오랜만에 카메라를 들고 집 둘레를 찬찬히 살펴봤다. 봄에 깔아둔 전기선이 쑥과 토끼풀에 가려 있다. 그 사이 풀이 많이 자랐구나. 기초 벽돌을 쌓고 남겨 둔 벽돌 틈 사이에는 벌이 집을 짓고 있었다. 두 달 가까이 사람 손이 닿지 않았으니 새끼를 안전하게 키울 수 있다고 믿었나 보다. 논으로 가는 길에 찔레꽃 향기가 온몸에 가득 전해지고, 먼 산에서 뻐꾸기는 농사일을 재촉한다.

    5월25일 : 모내기 시작이면서 아래채 상량이다. 그 일이 어디 보통 일이랴. 모내기가 농사의 꽃이라면 상량은 집 짓기의 백미다. 뜻 깊은 일이 겹친 셈이다.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생각보다 많이 와줬다. 선희씨, 애용씨. 지연씨, 하빈 엄마, 우리 네 식구가 다랑이 논에 들어서니 논이 꽉 찬다. 모내기하기 전 하빈 엄마의 지도로 요가를 20여 분 했다. 사람이 많아 논에 한줄로 서서 모를 심으니 착착 나아간다. 일손이 많으니 중간에 한 번 쉬면서 논두렁에서 몸 풀기를 또 했다. 하빈이 엄마가 허수아비 자세를 보여 준다. 논두렁에서 허수아비처럼 팔을 벌리고 허리를 굽힌 다음 한 다리를 뒤로 뻗는다. 그 상태로 천천히 몸을 좌우로 돌린다.

    오후 2시쯤 오늘 계획한 모내기가 다 됐다. 남은 건 우리 식구끼리 사흘 더 하면 된다. 일단 아래채 지붕을 씌우면 여유가 생기리라. 점심 먹고 좀 쉬다가 3시에 상량식. 상량 소식을 듣고 정수 엄마가 아이들이랑 왔다. 하빈이 아빠도 하빈이를 데리고 왔다. 나중에는 나람씨도 왔다.

    아내가 시루떡을 찌고 막걸리를 내왔다. 아내가 빚은 막걸리인데 상량이 늦어져 마지막 한 병이 남았단다. 간단히 상을 차리고 상량문을 쓰기 시작했다. 우선 나부터. 광(光). 그 다음 이어서 자연이, 아내, 무위. ‘광(光). 한량 집을 짓다. 와, 아래채 행복, 명(明).’ 그 다음은 온 손님 가운데 원하는 분은 누구나 쓰고 싶은 글을 쓰라고 했다. 일곱 살 정수가 성큼 나선다. 큰 대(大). 획이 멋지다. 정수가 뛰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정수 글씨 뒤에 정수 엄마가 길(吉). 다음, 애용씨는 그림을 그린다. 알 듯 모를 듯 신비한 그림. 마지막으로 선희씨의 태극 문양. 떡이랑 막걸리를 나눠 먹고 마룻대를 올렸다.

    그날은 짐승도 유난했다. 아침부터 수탉이 닭장을 뛰쳐나오지 않나, 오리장에 가니 문도 안 열었는데 이미 어미 오리가 새끼들을 데리고 나와 있다. 어째 이런 일이 겹치나. 우리집 고양이 둥이가 마당에서 짝짓기하는 걸 아내가 보았단다. 고양이 짝짓기는 보기가 쉽지 않은데 바로 눈앞에서 짝짓기를 했단다. 이래저래 모든 생명의 기운이 솟구치는 날인가 보다.

    상량을 한 다음 이웃 품을 사기로 했다. 다행히 나람씨가 이틀간 품을 내 주었다. 27일, 드디어 지붕을 씌웠다. 지붕을 다 하고 내려오는데 만세가 다 나온다. 내려와서 다시 올려다본다. 지난 3월부터 꼬박 석 달. 그 많은 목재를 재단해서 올리고, 문틀 세우고, 전기 작업까지…. 꿈 같다. 그리고 뿌듯하다. 좀더 물러나서 다시 바라본다. 또 다른 내 몸뚱어리 하나가 곁에 서 있는 듯싶다.

    정말이지 한숨을 돌렸다. 비를 가릴 수 있는 지붕 덕분에 넉넉한 시간이 내 앞에 주어졌다. 이제 천천히 마무리 공사를 해가면 된다. 비가 와도 실내에서 벽체 마감을 할 수 있고, 책장을 짜도 된다. 조금 어수선하지만 손님을 맞기에도 나쁘지 않다. 손님에 따라 구경거리가 되기도 하고 흙벽 치는 일을 함께 할 수도 있다. 여름에는 모기장만 치고 잠을 자도 된다. 무엇보다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아래채를 지으면서 짧은 기간이지만 배우고 느낀 게 많다. 우리 자연이 교육으로 시작을 했지만 나 자신을 위한 공부가 많이 됐다. 가장 많이 배운 건 아무래도 집 짓기 기술이다. 목재를 다듬고 귀틀집 구조를 파악한 것도 좋은 공부였지만 더 소중한 배움은 나무 자체에 있다. 제재한 나무는 위아래를 구분하는 게 쉽지 않다. 이론으로는 옹이의 나이테가 넓은 쪽이 나무 아래라 한다. 옹이를 꼼꼼히 살피는 계기가 됐다.

    ‘쉽고, 즐겁게 하자’

    그리고 나무가 마르면서 뒤틀리는 모양이 참 신비롭다. 나무 중간쯤을 기준면으로 잡고 먹줄을 튕기면 나무 위아래 뒤틀림이 반대가 된다. 아마, 해가 떠서 지는 방향으로 나무가 자라는 성질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전기도 빼놓을 수 없다. 학교 다닐 때 전기 배선에 대해 배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론으로만 배워 실전에서는 늘 두려움이 있었다. 이번에 자연이와 두 번에 걸쳐 실습하면서 제대로 알게 됐다. 그래도 전기는 조심스럽다.

    그리고 전문가의 힘이 참 크고 소중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집을 짓는다는 건 여러 분야가 결합돼야 한다. 그 대부분이 전문 분야다. 목수일, 전기 공사, 구들 놓기, 마루 놓기. 배우겠다고 도움을 요청하니 ‘튕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 대가 없이 모두 흔쾌히 가르쳐줬다.

    둘째는 이웃에 대한 생각이다. 그동안 자급자족을 외치며 웬만한 일은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큰 자만이었다. 일기를 써보니 이웃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집 짓는 데 보탬이 된 글을 쓴 사람들도 모두 이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식구를 넘어 이웃의 숨결이 내 숨결을 고르게 한다. 이전에 세운 ‘몸 공동체’의 울타리가 조금 더 넓어지는 걸 느낀다.

    셋째는 우리 아이들이다. 자연이랑 바로 가까이서 석 달을 함께 일해보니 나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유 있고, 평화롭다. 천장에 드릴 작업하는 것 하나만 봐도 다르다.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는다. 얼굴 근육이 나보다 부드러워서인가. 처음 계획했던 ‘쉽고, 즐겁게 하자’는 슬로건을 아이들은 잘 해낸 편이다. 나는 내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얽매이다 보니 자주 종종거리고 인상을 찡그렸다. 무위는 일을 놀이로 쉽게 연결한다. 지붕에 흙 올리는 일도 야구공을 던지는 놀이로 바꿔 재미있게 했다. 일이 갖는 문화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참을 먹는 것도 그렇다. 일을 힘들게 하거나 시간에 쫓기면 참이 당긴다. 배고픈 것 못지않게 정신적인 허기도 참을 먹게 하는 것 같다. 아래채 짓기는 내 일이 아니고 아이들 교육이라는 또 다른 명분에 사로잡혀 자기 기만과 자기 분리가 언뜻언뜻 드러난다. 사실 깊이 따져보면 이 일도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고, 나를 위한 일이다. 아이 교육도 내 일이 아닌가. 그런데도 일이 힘들 때면 ‘정신적 허기’가 생겨 참을 먹는다. 잘 안 먹던 참을 먹으니 먹는 순간은 좋지만 먹고 나서는 뱃속이 더부룩했다.

    또 하나 깨달은 것은 아직도 내 몸을 내가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내 몸에 맞게 일하자고 다짐했지만 내 몸이 일상을 벗어나는 순간 고유한 리듬을 놓치기 일쑤였다. 망치질 한 번, 대패질 한 순간이라도 온몸을 실었어야 하는데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앞으로 남은 집 짓기 과정만이라도 ‘일상의 몸놀림’으로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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