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호

금서(禁書)의 사회사 ‘홍길동전’ ‘유토피아’

  • 글: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입력2005-07-11 18: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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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서(禁書)의 사회사 ‘홍길동전’ ‘유토피아’

    ‘홍길동전’ 허균 지음/허경진 옮김/책세상 ‘유토피아’ 토머스 모어 지음/황문수 옮김/범우사

    독일 시인 브레히트가 쓴 ‘분서(焚書)’라는 시는, 어떤 시인이 분서 목록에서 자신의 책이 빠진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나의 책을 불태워다오!” 하고 집권자에게 호소하는 내용이다. 히틀러 시대의 분서 소동을 조롱한 것이다.

    1935년 5월 베를린대학 광장에서 분서 의식이 거행됐는데 토마스 만,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앙드레 지드, 에밀 졸라, H. G. 웰스, 지그문트 프로이트, 마르셀 프루스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카를 마르크스의 책들이 ‘퇴폐적 저술’이라는 이유로 불탔다. 이때 분서 대상이 된 작가는 131명이다. 이 밖에도 카프카, 츠바이크, 호프만스탈과 같은 작가 그리고 후세를, 카시러, 부버와 같은 철학자의 책도 들어 있었다. 거기에 속하지 않은 ‘양심적인 작가들’은 얼마나 황당하고 괴로웠을까.

    검열의 역사는 길고도 길다. 검열 제도는 사상 통제, 사회 통제의 방법적 장치다. 검열의 역사는 금지의 규범과 모럴에 대한 저항의 역사를 만들었다. 많은 책이 금지되고 불태워졌지만 그 책들은 질기게 살아남았다. 그래서 이젠 불멸의 고전으로 추앙받는다. 경전의 대부분이 그렇듯 성서와 코란도 금서(禁書)였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도 금서였고, 조지 오웰의 ‘1984’도 금서였다. 몽테뉴의 ‘수상록’도,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도 금서였다. 허균의 ‘홍길동전’, 박지원의 ‘열하일기’, 정약용의 ‘목민심서’도 금서였다.

    대개의 금서는 ‘위험한 지식이 담긴 책’이다. 금서들은 당대에는 음란하다거나 신성모독적 또는 반역사적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위험한 책들은 주류의 가치 체계를 뒤흔들고 권력의 기반을 침식한다. 중상비방과 추문이라는 오물을 뒤집어쓴 채 금지된 책들이 결국은 낡은 사회를 뒤엎고 새로운 사회를 향해 나아가게 한다. 검열과 분서, 투옥과 사형은 금서들을 막아내지 못하고, 금서들이 지핀 혁명의 불꽃을 진화하지 못한다.

    혁명으로 세워진 나라조차 체제를 정비하고 권력 기반을 강화하는 과정에 검열 제도를 만들고 위험한 책들을 금서로 낙인찍어 체제에서 분리해내려 한다. 그게 권력의 생리다.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기반을 위협하는 책에 진저리치고 광분하는 것도 그의 처지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하이네는 “책을 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사람도 태울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금서의 저자들은 감옥에 가고, 재산을 몰수당하고, 유배를 당하고, 처형을 당했다. ‘유토피아’를 쓴 토머스 모어는 반역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로부터 83년 뒤 조선에서 ‘홍길동전’을 쓴 지식인이자 소설가인 허균은 변란을 기도했다는 죄목으로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처형당했고 집안은 풍비박산한다.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라는 이상국가를, 허균은 ‘율도국’이라는 새로운 사회를 꿈꿨다. 허균이 죽은 뒤 50년이 지나도록 사람들은 금서로 묶인 그의 책을 읽을 수 없었다.

    허균과 토머스 모어의 공통점

    허균은 여러 사화(士禍)로 요동치던 조선 중기인 1569년에 태어났다. 20대에 문과에 급제해 관직에 나아갔으나 파직과 탄핵과 유배를 번갈아가며 당했다. 45세가 되던 1613년에 예조참의가 됐으나 이틀 만에 갈리고, 3년 뒤인 1616년 5월에 형조판서에 올랐다가 같은 해 10월에 파직했다. 1618년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계(啓)를 올려 허균을 역적으로 몰고 옛 제자가 밀고한 끝에 옥에 갇혔다. 광해군이 직접 허균과 심복들을 국문했으나 역적이라는 증거를 찾지 못해 판결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자 이이첨이 광해군을 압박해 허균은 결안도 없이 붙잡힌 동지들과 함께 저잣거리에서 처형당했다.

    허균이 역적으로 몰려 처형당하자 그가 지은 책들은 뿔뿔이 흩어져 세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허균의 문집이 다시 세상의 빛을 본 것은 그가 죽은 뒤 50년도 더 지나서였다. 허균의 맏딸이 이사성에게 시집 가 낳은 맏아들 이필진(1610∼71)이 몰래 갖고 있던 허균의 문집을 정리하고 발문을 부쳐 내놓은 것이다.

    허균이 태어날 무렵 조선은 무오사화(1498), 갑자사화(1504), 기묘사화(1519), 을사사화(1545)를 거치며 무고한 선비들이 죽어 나가고 국가의 잠재력이 침식된 상태였다. 1592년에 일어난 7년 조일(朝日)전쟁으로 나라 살림은 피폐해지고 국가기강은 더욱 흐트러진다. 허균은 조선을 지배하는 성리학과 봉건제도의 모순과 불합리를 깨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개혁의식을 지닌 진보적 정치 사상가인 동시에 뛰어난 한시와 소설작품을 남긴 문장가였다. 그는 일찍이 중국에서 세계지도와 서양문물을 접하고 근대에 대한 맹아 단계를 거치며 국제관계와 새로운 사상의 흐름에 대해 누구보다 앞서 꿰뚫어보았다.

    ‘홍길동전’의 저작 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대략 1612년쯤으로 추정된다. ‘홍길동전’은 서얼 출신으로 불합리한 신분제도로 말미암아 사회 모순을 뼈저리게 체험한 홍길동이 의적의 두목이 되어 율도국을 세운다는 이야기를 중심축으로 삼고 있다. 천문을 꿰뚫고 바람과 구름을 부리며 자유자재로 둔갑하고 탐관오리를 혼내는 홍길동의 신출귀몰한 활약상은 지금 읽어도 통쾌하다. 홍길동이 세우는 율도국은 서얼 차별과 빈부 격차가 없는 이상국가다. 산에는 도적이 없고,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사람도 없었다. 다 함께 잘사는 태평스러운 나라가 율도국인 것. 허균은 ‘홍길동전’을 통해 사회개혁의 꿈을 펼쳐 보이려고 했던 것이다.

    ‘유토피아’를 통해 본 현실

    ‘유토피아’를 쓴 토머스 모어는 1478년에 태어나 1535년에 죽었다. 영국의 개혁 지향적인 정치가이자 대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다. 여러 모로 허균과 닮았다. 헨리8세가 전처와 이혼하고 앤과 결혼하자 교황은 이 결혼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국왕을 파문하겠다고 한다. 헨리8세는 가톨릭과 결별하고 영국 왕이 교회의 교주임을 선언한다. 가톨릭 신봉자이던 토머스 모어는 대법관직을 사퇴하고 새로운 왕후의 대관식에도 불참한다. 이듬해 전처 소생의 왕위 계승을 금지하고 새 왕후 소생에게 왕위 계승권을 인정한다는 법이 의회를 통과한다. 토머스 모어는 이 법안에 동의한다는 선서를 할 것을 명령받는다. 토머스 모어는 그것이 가톨릭 교리에 위배되고 교황의 권위를 부인하는 것이라며 거부했다. 국왕은 즉시 그를 감금하고 1535년에 반역죄로 기소해 사형선고를 내린다. 그는 사형 집행리에게 “내 목은 대단히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라 이르고 당당하게 죽었다.

    1516년에 나온 ‘유토피아’에서 시민은 누구나 농업에 종사해야 한다. 사유재산제를 폐지해 부자와 가난한 자, 노동계급과 사용자 사이에 차이가 없다. 부의 축적도, 빈부 격차도 없는 평등한 사회를 구현한다. 여자와 남자를 가릴 것 없이 똑같이 하루에 오전, 오후 각각 3시간씩 노동하고 공동주택에서 함께 산다. 누구나 좋은 시설을 갖춘 병원에서 진료받고 치료받을 수 있으며 생필품은 무료로 배급받는다. 국가가 베푸는 교육 기회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열려 있지만 카드놀이와 주사위놀이 그리고 사냥은 금지된다.

    ‘유토피아’는 영국의 군주제와 농업말살 정책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당시 귀족과 지주들은 양모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농토를 목초지로 바꾸고 소작인들을 내쫓았다. 토머스 모어는 한 작중인물의 입을 빌려 이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유토피아’는 그리스어 ‘u(없다)’와 ‘topos(장소)’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어디에도 없는 땅이란 뜻이다. 현실에 없는 이상향, 영원히 실현 불가능한 사회라는 함의를 머금은 용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현실을 ‘유토피아’에 비춰봄으로써 현실을 전체적, 근본적, 실체적으로 돌아보게 한다. 조지 오웰의 ‘1984’는 ‘유토피아’와 완벽하게 대응하는 작품이다.

    “책은 살해될 수 없다”



    조선의 허균이나 영국의 토머스 모어는 당대의 진보적 정치가이자 사상가이며 문필가였다. 두 사람 모두 시대를 너무 앞질러 갔기에 제 명(命)을 다하지 못했다. 그들이 쓴 책들은 ‘금서’로 묶여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금지하면 할수록 더욱 갈망한다. 한 모로코 작가는 “책은 살해될 수 없다. 제 스스로 살고 죽는다. 일단 꽃병이 깨지면 생명의 파편들은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목소리들은 달아나 모험의 길을 간다. 금서가 있는 곳에 항상 새로운 정신적 만남과 혁명과 향연이 있다”고 썼다.

    불에 태워도 살아남는 게 책이다. 금서라는 가시면류관을 쓰고 시련을 견뎌내고 살아남아 고전이 된 책들을 기리며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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