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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方外之士 (20)

보학(譜學) 연구가 서수용

“팔고조도(八高祖圖) 그려보면 우리 모두 친척이죠”

  •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사진 김형우 기자

보학(譜學) 연구가 서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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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보학은 정식 교과과목으로 개설돼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발로 뛰어 보학에 밝은 재야의 원로들을 만나봐야 했다. 직접 현장답사를 다니면서 취재해야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 필자의 마음에 들었다. 당시는 ‘필드가 선생이다’는 나름대로의 신념이 형성되는 시기였다. 책에 나오는 것 같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40대 영호남 보학자의 만남

이때부터 여러 집안을 찾아다니며 보학에 대한 영양분을 섭취하기 시작했다. 공부과정에 무식이 탄로나 당황한 경험도 여러 번이고, 명문가 후손에게서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삭 줍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노하우가 쌓였다. 이렇게 해서 필자가 쓴 책이 2002년에 펴낸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다. 책을 내니 좀더 완성도를 높여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러자면 필드의 전문가를 만나는 일이 공부의 첩경이다.

하지만 21세기가 되니 보학 이야기를 나눌 만한 사람들이 대부분 사라졌다. 송준호 선생도 2004년 작고하셨다. 70∼80대 원로만 몇 분 남아 계실 뿐이다. 호남지역 보학의 대가로는 창평 고씨 집안인 고홍석(高洪錫) 선생이 계시고, 전주에는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양만정(揚萬鼎) 선생이 계신다. 이 두 분은 내로라하는 명문 집안의 혼맥과 학맥, 유배지, 문집, 한시, 묏자리, 벼슬 등을 해박하게 꿰고 있다.

전남 장성의 손룡(巽龍)에 사는 변시연(邊時淵) 선생 또한 보학의 대가다. 변 선생이 펴낸 한적(漢籍) 문집만도 51권이나 될 정도로 한학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젊을 적부터 영남권의 유림과 교분이 두터워 호남은 물론 안동지역의 보학에도 해박하다. 하지만 이제 84세의 고령이라 언제 가실지 모른다. 이분들이 작고하시면 어디 가서 보학을 배워야 할지 막막하다.



그러니 40대 중반의 ‘새파란’ 나이인 필자 연배는 어디 가서 이 분야의 이야기를 나눌 것인가. 같이 놀고 싶어도 놀 사람이 없다. 필자 또래의 젊은 사람은 어디 없는가. 40대 중반의 영남 보학자는 어디 없는가 하고 물색하다가 만난 인물이 바로 서수용(徐守鏞·44) 선생이다. 그는 안동대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는 고전 번역에 몰두하고 있다. 특히 영남권의 문집과 집안에 대해서 빼어난 안목을 가지고 있다. 그는 원로를 제외한 40대 연령층 가운데 영남지방의 보학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으로 판단된다.

그의 보학은 소극(小極) 서주석(徐周錫·1926~97) 선생으로부터 연원(淵源)했다. 서주석 선생은 영남의 보학, 특히 안동 일대의 사대부 집안에 대해서 상세하게 꿰고 있던 재야 보학자다. 그 연구물 중 하나가 ‘안동문화산책’(2001)이라는 저술이다. 기호지방에 송준호 교수가 있었다면 영남에는 서주석 선생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동문화산책’의 앞장에는 송준호 교수가 서주석 선생을 추모하는 글이 실려 있다. 지금은 두 분 다 고인이 됐지만 생전에는 교류가 무척 깊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외로운 학문인 보학을 하고 있다는 공감대가 두 분을 연결하는 촉매제로 작용했을 것이다.

서주석 선생은 1980년대 초반부터 생업에서 한 걸음 물러나 보학 연구에 전념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20년 동안 영남지역의 명망 있는 집안과 유적지를 두루 답사했고, 그 결과를 꼼꼼하게 정리하는 데 열정을 쏟았다. 서수용 선생은 바로 서주석 선생에게서 보학을 배운 사람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필자는 호남의 송준호 선생에게서 보학의 세례를 받았고, 서수용 선생은 영남의 서주석 선생에게서 전수 받은 셈이다. 21세기에 40대 영호남 보학자 둘이 만나 보학과 유림, 그리고 고전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관중도 없고, 박수도 없고, 후원자도 없는 썰렁한 스탠드지만 우리는 보학이라는 축구공을 차면서 실컷 놀아보았다.

안동 김씨는 서울 사람들?

먼저 필자가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인터뷰에서 질문자는 되도록 짧게 말하고, 답변하는 사람이 길게 말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들어줄 만한 귀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장광설이 용인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아킬레스건인 지역감정의 근원부터 이야기해보자. 삼남 지방이라 하면 충청, 경상, 전라 지역을 일컫는다. 이 가운데 충청도는 광복 이후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지리적으로 서울과 가까운 탓에 급속하게 서울문화권으로 흡수된 감이 있다. 비교적 덜 흡수된 지역이 지리적으로 서울과 떨어져 있는 영남과 호남이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지역적 색깔이 보존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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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사진 김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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