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호

한미동맹 난제를 푸는 세 가지 ‘묘수’

▼ 전략적 유연성 조건부 인정 ▼ 작전통제권 단계적 환수 ▼ 대북정책 협의체로 공동보조

  • 박건영 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think@catholic.ac.kr

    입력2005-08-12 16: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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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동맹 난제를 푸는 세 가지 ‘묘수’
    최근들어 한국내 반미감정이 급격히 고조되고 이에 대한 미국내 반한감정이 고조되면서 한미동맹에 균열의 조짐이 보이자 한미 양국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미국은 1990년대 중반 미일동맹의 표류를 막기 위해 시도했던 ‘나이 보고서(Nye Report)’와 신(新)미일 안보공동선언을 연상시킬 만큼 한미동맹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의 공동구상은 주한미군 재배치와 용산 미군기지 이전 같은 개별적 이슈에 논의를 집중함으로써 한미동맹의 미래와 관련한 근본적 문제들에 대한 토론을 뒤로 미루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과 미국이 이처럼 ‘마차 앞에 말을 갖다댄’ 데는 기술적 불가피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러한 방식보다는 일반적 문제로부터 특수한 문제로 우선순위를 낮춰가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고 생산적일 것이다.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문제들에 대한 결정이 나중으로 미뤄지면 이미 이뤄진 작은 결정에 따른 정책을 무력화하거나 역진(逆進)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동맹의 미래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고 논쟁적인 문제는 주한미군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가 될 것이다. 특히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 개념은 한미상호방위조약상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인 한반도 전쟁 억지를 넘어서 주변 지역의 군사분쟁에도 주한미군을 투입할 수 있는 개연성을 열어두고 있어 한국에서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주한미군의 원정군화(遠征軍化)는 6·15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고 난 뒤인 2000년 9월 클린턴 미 대통령이 “아시아에 미군이 주둔하는 목적은 단순히 위험에 대처하는 차원을 넘어 위험 발생을 방지하는, 안정을 위한 균형자 역할을 하는 데 있으므로 남북간 긴장이 완화되고 중국이 계속 개방된다 하더라도 주한미군을 유지해야 한다”고 발언했을 때부터 이미 암시됐다.



    그러나 미국이 더욱 구체적인 제안을 한 것은 9·11테러 이후 2002년 11월에 열린 한미안보협의회에서였다. 미국의 관점에서 보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화는 이미 정해진 결론이다. 이는 미국의 세계적 군사방위 체제의 변형과도 관련이 있다.

    주둔군의 기동군화

    냉전은 적대적 이익과 비전, 그리고 적대적 이념을 가진 양 진영이 세계패권을 놓고 벌인 투쟁이었다. 미국의 군사전략은 공산주의 팽창을 세계적 차원에서 봉쇄한다는 개념이 기반이 되었다. 당시만 해도 지정학과 이념이 분쟁 지역을 결정했으며 전략적 유연성의 문제는 크게 대두되지 않았다.

    이러한 구도 아래서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팽창을 봉쇄하는 지역적 전초기지로 인식됐고, 한미동맹은 ‘한반도-범위 동맹’으로, 대규모 주한미군은 한반도에만 고정된 군사력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냉전 종식 이후 세계적 안보조건이 변화했으며 9·11테러는 미국의 군사전략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했다.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은 냉전 구도 아래 감춰져온 민족주의나 종교적 충돌로 인한 ‘새로운 위협’과 지구적 테러에 대처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은 냉전기 안보 동학(動學)을 기초로 새로운 안보환경에 부합하도록 해외주둔군 구조를 조정하고 있으며, 분쟁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서 신속히 전력을 전개할 수 있도록 전력 기지를 확보하는 한편, 주둔군을 소규모 기동군화하고 있다.

    이러한 군사전략상의 근본적 변화에서 도출되는 논리적 결론은, 현재와 같은 주한미군의 구조와 성격은 냉전의 유제(遺制)로 궁극적으로는 유지할 수 없으므로 주한미군의 역할은 세계적·지역적 분쟁에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확대돼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한국이 주한미군에 대해 ‘한반도-범위 억지력(抑止力)’으로만 계속 남길 바란다면 미국은 한미동맹을 자국 군사자원의 합리적 사용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북한에 비해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한 남한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화를 반대한다면 미국은 한미동맹이 한국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하다고 불만을 터뜨릴 것이다.

    반면 한국 정부 일각에서는 한반도 밖에 있는 미군의 한국 유입(flow-in)은 환영하지만, 주한미군의 유출(flow-out)은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도 “만약 한반도 유사시 북한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주일미군을 한반도에 투입하는 데 대해 일본이 반대한다면 한국은 이를 받아들일 것인가” 하고 되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입장은 무엇인가. 전략적 유연성은 대만해협, 동중국해, 그리고 북한과 관련해서도 중대한 정치적·안보적 함의를 갖는 개념이다. 사실 한국은 중국을 봉쇄하거나 북한을 징벌하려는 미국의 정책이나 조치에 연루되는 것을 기피해왔다.

    결국 경제가 중요한 요인이다. 일부 한국인은 중국을 ‘새로운 미국’이라고 부른다. 한중간 교역은 관계정상화 이후 10년간 10배로 증가했다. 한국의 최대 수출국은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뀌었다. 한국은 일본을 제치고 3대 대중(對中) 투자국이 됐다.

    韓中간 전쟁 발발 가능성

    또한 한국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주변 어느 나라보다 북한에 대해 영향력이 큰 중국과 선린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한국은 통일한국이 중국에 적대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중국이 가질 때만 비로소 한반도의 평화통일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전략적 유연성에 동의하지 못하는 더욱 중요한 이유는 한국과 중국 사이에 원하지 않는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 때문이다. 대만해협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미국은 주한미군(주일미군과 함께)을 파병할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의 병력 증원노력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해 한국내 주한미군 기지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할 개연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중국에 대해 자위권을 발동하지 않을 수 없다.

    혹자는 경제발전을 최우선 국가 목표로 삼고 있는 중국이 미국과 한국, 또는 일본과의 전면전을 무릅쓰고 대만해협에서 분쟁을 확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가 한국을 중국과의 원하지 않는 전쟁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우려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전쟁이 반드시 합리적이고 전략적인 계산에 따라 발발하지는 않았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중국과 다른 열강이 전략적 관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전쟁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한미동맹이 한국의 최대 안보자산이지만 국가의 생명보다는 덜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편 한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정당화하는 이유로 미국이 제시한 주일미군의 한반도 유입과 관련한 반문에도 대답해야 한다. 한국은 주일미군에 전략적 유연성을 허용한 일본의 결정이 같은 사안이라 해도 한국의 결정보다 훨씬 쉬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한국이 내세울 수 있는 근거는 북한의 군사력이 중국의 군사력과 비교되지 않고, 북일관계는 한중관계와 비교되지 않으며, 중국은 정복 불가능하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아 전쟁 후 복수심에 불타는 북한을 다시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등이다.

    중국과의 이러한 안보·경제·정치적 관계를 고려할 때, 중국이 침략전쟁을 일으킬 경우를 제외하고는, 중국의 분쟁지역에 주한미군을 파병하려는 미국의 일방적 결정을 한국이 지지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중국과의 분쟁에 대한 한국의 거부감은 한국 집권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4년 여론조사 결과에도 명확히 드러난 바 있다.

    한국이 향후 외교통상 관계에서 어느 나라에 우선권을 둬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여당 의원의 63%가 미국이 아닌 중국을 지목했다. 한국의 이러한 태도는 미일군사협력에 적극성을 띤 일본의 태도와는 상반되는 것이다. 2005년 3월 일본은 대만해협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미국과의 공동 전략목표임을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한중관계는 중일관계와 크게 다르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중국과 일본 양국의 역사적 불신, 영토분쟁, 그리고 양국이 서로 느끼는 군사적 위협 등은 최근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야기된 한중 갈등의 수준을 크게 뛰어넘는다. 무엇보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통일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계산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한미동맹 난제를 푸는 세 가지 ‘묘수’

    중국과의 경제적·안보적 관계를 고려할 때 중국의 분쟁지역에 주한미군을 파병하려는 미국의 일방적 결정을 한국이 지지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국 영토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 아닌, 미국 주도의 대중(對中) 분쟁에서 과연 일본이 중국에 대해 군사적으로 맞설지는 분명치 않다. 중국의 군비확충과 최근 미 부시 행정부의 일본중심주의로 일본이 중국에 대해 적극적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일본의 경제적·지정학적 조건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은 2004년 미국을 제치고 일본의 제1교역 상대국이 되었다. 또한 일본은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공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중국이 문제의 전쟁에서 살아남아 강대국 지위를 유지한다는 것은 일본의 안보전략에 중대한 함의를 갖는다.

    다른 한편으로 부시 정부가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지칭하고 외교정책의 궁극적 목표를 ‘폭정의 세계적 종식’에 두고 있다고 선언한 맥락에서 볼 때도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개념은 한국인의 우려를 자아내는 요소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일각에서는 미국이 선제공격할 것이라고 북한이 오인(誤認)해 야기될 수 있는 한반도 전쟁의 가능성을 우려한다. 이들은 주한미군이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함에 따라 오인의 가능성이 한층 증가할 것으로 본다.

    게다가 많은 한국인은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에 대해 우려한다. 미국이 1994년, 한국 정부와 상의 없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감행하려 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이 발발하면 한민족은 돌이키기 힘든 재앙을 맞게 된다.

    재배치하되 안보 위협 없도록

    그러나 한국 정부는 북한과 평화적으로 공존하면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교류협력을 통해 한반도를 평화적으로 통일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는 통일을 향한 포괄적이고 심층적인 접근에 장애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듯하다.

    따라서 한국이 미군의 주둔을 원하고 미국이 한국(또는 통일한국)의 전략적·정치적·경제적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인식한다는 가정 아래 다음과 같은 합의를 이룰 수 있다면 양국의 공동이익이 증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과 미국은 주한미군의 역할을 확대해 세계 안보 촉진과 새로운 위협에 대한 대응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한편, 이러한 새로운 전략적 유연성이 한국의 안보를 불필요하게 위협해서는 안 된다는 데 동의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미국은 주한미군의 한국내 기지 사용, 그리고(또는) 미군의 한국 유입과 한국으로부터의 유출이 특정국의 도발행위나 세계 평화를 파괴하는 위협이 발생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한다.

    예를 들어 주한미군은 한국내 기지에서의 군사작전이나 타지역 재배치로 한국에 대한 타국의 직접적 위협이 초래되더라도 그러한 작전이나 재배치가 도발행위나 평화 파괴행위를 저지하는 데 필수적인 경우 이를 수행할 수 있다. 양국은 각자의 헌법 절차를 통해 주한미군의 사용, 그리고(또는) 재배치가 도발행위를 저지하고 평화를 회복하는 데 필수적인지 , 그리고 그러한 주한미군의 사용, 그리고(또는) 재배치가 한국의 안보에 대한 직접적 위협을 구성하는지를 공동으로 판단한다는 데에 동의한다.’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는 것은 주한미군이 미 태평양사령관과 군 통수권자에게 속할 뿐 아니라, 이 개념이 일방통행식이 아니라 한반도 유사시 한국 밖에 주둔하는 미군의 한국 투입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는 미국의 주장과 근본적으로 부합한다.

    이는 또한 중국의 팽창주의, 나아가 북한 유사시 중국의 개입과 영토주장을 용이하게 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비판받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야기한 한국의 우려를 완화한다는 점에서 한국을 위한 예방 조치로 볼 수 있다.

    한미 양국은 중국을 비롯한 지역내 타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도록 ‘지역적’이라는 용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 대신 ‘세계안보’나 ‘새로운 위협’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미중(美中)간 필연적 대결을 상정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이다.

    한국군 차출은 불가능

    혹자는 한국군이 한미연합사에 속해 있어 주한미군이 한반도 외의 분쟁에 개입할 경우 덩달아 개입할 수 있다고 주장할는지 모른다. “한미연합전력은 태평양상의 다른 우발사태에도 동원될 수 있다”고 한 캠벨 미8군 사령관의 발언에서 보듯, 미국은 이와 같은 형태의 한미 군사협력을 원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이미 언급했듯이 연합전력에 의한 지역내 합동작전은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연합사령관은 ‘한국을 공산주의 침략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나아가 우리 정부가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완전히 환수하게 되면 이러한 논란은 자연히 의미를 잃는다.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 문제를 관통하는 또 다른 원칙은 전략적 유연성이 한국의 안보를 불필요하게 위협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건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은 타협불가능한 국가 최대, 최고의 임무다. 한국이라고 예외일 리 없다.

    한미 양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한국 안보에 대한 직접적 위협을 구성하는지를 공동으로 판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세계평화 촉진의 책임을 공유하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평화파괴나 도발행위가 발생하는 경우 자국 안보에 직접적 위협을 초래하더라도 주한미군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안보 위협 ‘공동 판단’이 중요

    한미 양국의 ‘공동판단’은 주한미군의 한국내 기지 사용, 미군의 한국 유입과 한국에서의 유출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려는 한국의 의지를 담고 있다고 해석돼선 안 된다. 중요한 것은 한미간 상호신뢰이고 양국의 존경받는 지도력인 바, 이러한 ‘공동판단’ 조항은 성숙한 한미동맹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주한미군 역할 변경 문제와도 밀접히 관련된 동시에 성숙한 한미동맹의 기초를 다지는 군사적 조치가 바로 작전통제권 환수다. 우선 작전통제권 환수가 필요한 몇 가지 이유를 들어보자.

    첫째, 작전통제권은 독립국가가 갖는 고유한 주권의 핵심이다. 따라서 미국에 작전통제권을 이양하는 것은 주권의 핵심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간, 나아가 어느 나라와의 정상적인 외교관계이든 궁극적으로 작전통제권의 환수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미동맹의 미래는 종속이 아니라 성숙한 동반자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 양국 국방부 일각에서는 한미 양국의 군 통수권자들이 군사위원회를 통해 전략지시를 내리고 연합사령관은 그것을 이행하게 되어 있으므로 실제로는 연합사령관이 한국군에 대해 작전통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라면, 다시 말해 한국이 사실상 작전통제권을 보유하고 있다면 연합사령관이 형식적 권리만 갖도록 할 이유가 없어진다. 미국 국방부와 주한미군은 작전통제권의 이양이 전략적, 정치적, 예산상의 이유 때문에 시기상조라고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미국은 군사 주권을 회복하려는 한국의 정치지도자와 국민의 열망과 요구에 응하는 것이 자국의 근본적 전략과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둘째, 작전통제권 환수는 양국이 서로의 안보 이익을 인정함으로써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는 수단이 된다. 냉전 종식 후 포괄적 국가이익에 근거를 둔 보편경쟁으로 일반화하고 있는 국제관계 동학에 능동적으로 적응하여 한국의 국익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주방위력을 보유해야만 한다.

    이는 단순한 투입(input) 증대에 따른 군사력 총량의 증가가 아니라, 독립국가인 한국의 군사 조건에 가장 적합한 군사구조를 구축하고 이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특히 냉전기 미소 군사대결의 유제인 지상군 위주의 기형적 한국군 구조는 자주적 작전권의 확립을 통해서만 바로잡을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한미 안보협력은 한국군의 자립에서 시작될 것이다.

    작전통제권 환수해 대북협상력 높여야

    셋째, 대북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작전통제권을 완전히 환수해야만 북한이 남한의 자주성과 정치·군사적 권위를 인정하고 대남(對南) 협상자세가 변화하게 되며, 이에 따라 한국의 대북 협상력도 강화될 수 있다. 작전통제권을 미군이 보유하는 한 북한은 ‘배후 실세’인 미국에 대한 접근에만 치중하고 남한을 배제하려는 태도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6·15 남북공동선언에 남북 긴장완화 조항 등을 삽입하지 못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또 한국이 작전통제권을 환수하면 미국과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는 북한의 주장도 논리적 근거의 핵심을 잃게 될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북한과 직접 군사협상을 벌여야 하는 부담을 더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주지하듯이 미국이 작전통제권을 보유해야 한다는 명분 중 하나는 한국이 북침하여 미국이 원하지 않는 전쟁에 개입해야 하는 상황을 방지한다는 데 있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가 북방정책을 추진하고 한국이 중국 및 러시아와 수교한 이후, 그리고 한국의 민주화로 대북정책이 평화공존을 지향한 이후로 한국이 북한을 공격할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근본적인 정치적·전략적 변화는 한미간 작전통제권 논의에서도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

    한편 미군에 대한 타국군의 작전통제가 미국 헌법에 위배되고, 미군이 역사적으로 타국군의 지휘를 받은 적이 없으므로 작전통제권이 한국으로 넘어가면 미군이 남한에서 철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작전통제권 환수는 한국군이 미군을 작전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한미 연합전력 구조(combined forces)를 미일동맹처럼 두 나라의 분리된 작전기구가 서로 협력하는 합동전력 구조(joint forces)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와 같은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

    작전통제권 환수는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합리적이다. 양국은 먼저 각 단계의 구체적 목표와 그것을 달성할 수단이 명시된 시간표를 작성해야 한다. 이러한 시간표 아래 한국은 우선 미국과 협의해 6개의 연합권한위임사항(CODA)을 환수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한미 양국은 한미 연합훈련시 한국군 장성이 작전통제권을 잠정적으로 행사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양국은 또한 순조로운 작전통제권 이양을 위해, 연합사 미군 간부들이 미 8군사령부나 주한미군사령부의 보직을 겸직하고 있듯이, 한국 합참의 유관 간부들이 연합사 보직을 겸하도록 배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군은 이 과정에서 전략정보수집 및 분석 능력, 전장감시 기능과 조기경보 역량을 증대하고 군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하며 전쟁기획 및 효과적 C4I 체제를 구비하는 데 역량을 모아야 한다. 또한 한미 양국은 필요할 경우 작전효율을 높이기 위해 다시 연합작전기구로 전환할 수 있도록 면밀한 유사시 계획을 함께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한미공동 대북정책기구 구성하자

    한미동맹의 긴장과 부담은 대북정책의 차이에서도 비롯되므로 한미 양국이 대북정책을 공동 수립하고 이행한다면 대북정책의 생산성이 증대될 뿐 아니라 한국내 반미감정을 완화하는 효과도 거두는 일거양득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한미간 이해관계의 충돌이 북한 문제 해결을 막고 있다고 보는 듯하다. 한국의 근본 이익은 평화통일로 이어지는 안정에 있고, 미국의 핵심 이익은 한반도 비핵화에 있기 때문이라는 이러한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북한에 대한 양국의 인식에 중대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북한을 ‘악마’나 ‘폭정’으로 규정한다. 한국은 북한을 위험하지만 포용해 관리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인식 차이는 보편주의적·도덕주의적 철학에 기초를 둔 미국의 접근법과 북한과의 오랜 역사적 경험에 따른 한국의 접근법 사이에 놓인 거리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한미 양국은 유관 부서의 책임자와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공동대북정책위원회를 만들어 이를 통해 체계적으로 대북정책을 재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위원회는 대북정책의 장단기 목표를 분명히 하고 공유하며-예를 들어, 비핵 문제를 현재의 핵협상에서 제외할 것인가와 같은-북한의 재래식·비재래식 무력 능력을 객관적 정보에 의해 재실사하게 된다. 또한 북한의 군사·경제·정치 과정과 상의하달식 의사결정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북한의 진의를 파악하는 작업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한미동맹은 건재할 것이다.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이 ‘동맹 없는 한국’을 원하지 않을 것이고 미국의 지도자들도 ‘동북아의 총아로 떠오른 한국을 잃어버린 지도자’로 기록되기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 조건이 언제나 그대로일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동맹이 가져다주는 이익이 대칭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익 분배와 관련한 언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지속적 언쟁이야말로 한미동맹의 건강성과 성숙한 미래를 나타내는 지표다. 지속적 언쟁과 조정을 통한 동맹의 현실적응만이 침묵과 좌절로 인해 급격하고 거친 파열음을 내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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