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호

한승주 전 주미 대사의 북핵·6자회담 진단

“북·미 갈등만 무마하려는 건 핵심 비켜가는 편의주의”

  • 송문홍 동아일보 논설위원 songmh@dong.com / 사진·김형우기자 동아일보사진 DB파트

    입력2005-08-25 11: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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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승주 전 주미 대사의 북핵·6자회담 진단
    북한핵 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줄다리기 끝에 휴회된 4차 6자회담이 8월말~9월초에 속개된다. 7월26일부터 13일간 열린 4차 회담은 협상의 방식과 내용, 기간 등 여러 면에서 이전 회담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무엇보다 돋보인 것은 북한과 미국이 수시로 접촉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는 점. 이는 그동안 세 차례 열린 회담에서 양측간에 실질적인 대화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엔 뭔가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 같다’는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한 ‘변화’였다. 베이징 현장에 나간 기자들뿐 아니라 국내 언론 관계자들이 회담이 열리는 2주일 내내 신경을 곤두세운 채 대기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과 중국의 매개역할도 두드러졌다. 북한이 핵을 폐기할 경우 전력(電力) 200만kW를 제공한다는 내용의 ‘중대 제안’으로 4차 회담의 물꼬를 튼 한국은 미국과 북한 사이를 수시로 오가며 접점 찾기에 분주했고, 중국 역시 연거푸 합의문 초안을 내놓는 등 의장국으로서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최종적인 합의는 또다시 뒤로 미뤄졌다. 북한이 들고 나온 ‘핵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견해 차가 끝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칙적인 합의는 가능할 것”

    이제까지 진행된 회담의 내용에 대해서는 국내외에서 긍정과 부정, 두 가지 시각이 엇갈린다. 긍정적인 시각은 북·미간에 처음으로 실질적인 대화가 이뤄진 것에 의미를 둔다. 북한과 미국이 서로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던 완고한 자세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의미 있는 출발이라는 해석이다. 반면 부정적인 시각은 북한의 주장에 달라진 것이 없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겉으로는 전에 없이 적극적인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실제 협상에서는 상대방이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들을 내세워 타결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4차 6자회담은 과연 북한 핵 문제가 해결의 궤도로 들어서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낙관과 비관의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지금 상황에서, 어느 일방의 견해만을 내세우기란 그동안 북핵 문제를 추적해온 전문가들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한승주 고려대 교수를 인터뷰 대상자로 지목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였다. 19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촉발된 1차 핵 위기 때 외무장관으로서 한국의 핵 외교를 진두지휘했고, 2002년 10월 북한의 우라늄 핵개발 의혹으로 불거진 2차 핵 위기 후에는 주미 대사로서 대미(對美) 창구 구실을 한 한 교수는 현 상황을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분석해줄 적임자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8월12일 서울 한남동에 있는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북한 핵문제의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주된 업무인 저는 독자들이 매일 신문지면을 통해 보도되는 핵 관련 상황에 그다지 큰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신동아’처럼 긴 기사를 쓰는 매체에서 복잡한 사안의 핵심과 맥락을 짚어주는 것이 오히려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학자로서 외교 일선의 경험을 겸비한 한 교수의 말씀은 북핵 문제를 올바로 바라보는 데 유익한 척도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먼저 4차 6자회담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로 얘기를 시작해볼까요?

    “알다시피 이번 회의가 1년여 만에 열렸는데 그동안 북한은 여러 이유를 들어 시간을 끌어오지 않았습니까? 그 사이에 북한은 나름대로 핵 능력도 키우고, 또 2월10일 핵 보유 선언까지 했으니까 시간을 활용한 셈이고, 그래서 이제는 ‘회의에 나갈 때가 됐다’고 생각했겠지요. ‘북한이 왜 이 시점에 회담에 나왔느냐’에 대해선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더는 시간을 끌기도 어렵고, 미국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것으로 봅니다. 또 회담에 응함으로써 남측으로부터 식량 및 비료 지원을 받아낼 수 있고, 북한에 대한 높아지는 외부비판을 면해보겠다는 의도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회의에서 모종의 구체적인 합의에 도달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습니다. 다른 한편 북한 입장에서도 원칙적인 합의라는 것은 어느 단계에선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제 생각으로는 몇 주 후에 회의가 다시 열리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핵 폐기의 원칙과 방향에 대한 큰 틀의 합의는 가능하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지요. 하지만 북한으로서는 쉽게 합의해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리라는 겁니다. 어렵게 협상을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더 큰 대가를 얻겠다는 계산이 있었겠지요. 물론 북한과 미국이 서로 비난하지 않고 생산적인 대화를 했다는 것이 이번 회담의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볼 때 이번 4차 회담은 성과 없는 회의는 아니었다, 일단 문제해결이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힐 수석대표의 역량

    -하지만 이번에 북핵 해결의 원칙과 방향에 합의가 이뤄진다고 해도 앞으로 갈 길은 훨씬 먼 것이 사실입니다. 일례로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구체적인 순서에 있어 북한과 미국은 서로 정반대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은 미국이 체제보장을 해준 다음에야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고,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난 다음에 관계정상화를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협상을 통해 이런 절차에 대해 합의해 나가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지요.

    “북한 처지에서는 그동안 6자회담에 나오는 것 자체가 큰 지렛대였다는 점에서 4차 회담에 응함으로써 그것을 절반쯤 사용한 셈이지요. 이번에 원칙적인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다음 번에는 합의를 이룰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놨고, 또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도 보여줬기 때문에 앞으로 활용할 지렛대를 많이 남겨놨다고 할 수 있어요. 예컨대 북한은 이번에 평화적 핵 이용 권리 외에도 미국과의 국교정상화, 한반도 비핵지대화, 미국의 핵무기 제거 등 여러 가지 조건을 내놓지 않았습니까.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전에 없던 조건을 새롭게 제시해서 향후 협상에서 교환할 카드로 만들어놓은 것이라 앞으로 그 과정이 길고 멀고 또 비쌀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겠지요.”

    -4차 6자회담에 대해 최근 미국에서도 평가가 엇갈리는 것 같더군요. 회담이 속개된 후 성과를 낼지에 대해서도 낙관과 비관이 엇갈리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면 ‘앞으로 대화가 계속될 수 있는 발판은 마련됐다’는 말씀은 비교적 후한 점수를 주신 것 같습니다.

    “회담에 대해 긍정 혹은 부정 쪽으로 치우쳐 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회담은 모두 허사다, 이렇게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고, 그런 식의 비관론은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해요. 다른 한편 국내 일각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이제 핵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미국만 융통성을 발휘하면 핵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는 식의 평가는 너무 안이한 인식이고,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고 봅니다.”

    -이번 회담이 이전 세 차례 회담과 다른 양상을 보인 배경으로 북한측 요인에 대해서는 앞에서 말씀하셨습니다만, 미국측 요인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집권 2기로 접어든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이젠 뭔가 결실을 봐야 할 때’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외교 장악력과 함께 크리스토퍼 힐 수석대표의 협상력에 무게를 두는 시각도 있는 듯합니다. 주미 대사를 지낸 입장에서 이번에 미국이 적극적인 자세로 전환한 배경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시 행정부 1기 때에는 내부적으로 의견이 통일되지 않은 면이 있었고, 또 북한에 대한 불신도 매우 컸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른바 네오콘적인 생각이 강했지요. 그러던 것이 1차 6자회담 이후로 부시 대통령의 생각이 대화파쪽, 그러니까 콜린 파월 등 국무부의 의견으로 기울기 시작했는데, 그럼에도 딕 체니 부통령으로 대표되는 강경파의 영향력은 여전히 컸어요. 비유하자면 운전은 부시 대통령 혹은 국무부가 하는데 신호등이나 속도 조절은 강경파가 하는 식이었다고 할 수 있지요.

    집권 2기에 들어와 라이스 국무장관이 부시 대통령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면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거기에 힐 대표가 등장했지요. 힐 대표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자신에게 호감을 갖게 만드는 뛰어난 자질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힐은 미국 정부 안에서 강경파나 대화파와 두루 통할 뿐 아니라 한국 정부에서도 어느 정도 신뢰를 얻고 있는 것 같아요.”

    -지난해 주한 대사로 부임하고 1년도 지나지 않아 국무부 차관보로 자리를 옮긴 후 6자회담 수석대표가 됐으니, 이례적으로 빠른 시간에 그런 확고한 지위를 확보한 셈이지요.

    “또한 힐 대표는 자기가 미국 정부에서 신임을 얻고 있다는 것을 북한 사람들과 대화할 때에도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북한에 대해 쓴소리, 싫은 소리를 하면서도 북한이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게 만드는 재치도 갖고 있어요. 힐 대표의 이런 장점이 4차 회담의 연장선상에서는 무언가 작품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해봅니다.”

    중대 제안의 효과? 글쎄…

    -이번 회담의 또 한 가지 주요 변수로 북한에 전력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한 우리 정부가 있습니다. 제가 최근 만나본 정부 관계자들에게서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이끌어내는 데 우리 정부가 나름대로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이랄까, 그런 것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 우리 정부의 ‘중대 제안’은 북한에 압박요인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고 보는데요. 즉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전력을 제공하겠다’는 내용을 뒤집어 읽으면 ‘북한이 핵을 끝내 포기하지 않을 경우에 핵문제와 남북 경협을 연계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런 맥락에서 북한은 ‘핵문제는 미국과 담판 지을 사안이고 남북관계와는 별개’라고 주장해왔던 것이고요. 아무튼 이번 회담에 임한 우리 정부의 전략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합니까.

    “북한은 3차 6자회담 이후 시간이 많이 흘러 더는 회담을 거부할 명분도 없고 여건도 되지 않기 때문에 일단 회의에는 참가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봐요. 그런데 마침 우리쪽에서 중대 제안을 내놓은 것이지요. 북한에선 이미 참가키로 한 회담인데 기왕이면 한국 정부에 생색도 내게 해주고 이를 통해 비료나 식량 지원의 명분도 살려주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의 ‘중대 제안’이 결정적인 구실을 했느냐는 점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보는데….”

    -한편 북한은 ‘중대 제안’에 대해선 분명한 수용이나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으면서 한술 더 떠 공사가 중단된 금호지구 경수로까지 요구했지요.

    “북한으로서는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어요? 이렇게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일들을 보탬으로써 거래에서 더 큰 반대급부를 얻을 수도 있겠고…. 경수로 건도 그렇지만 평화적 핵 이용권에 대한 주장도 북한이 그런 것을 실제로 실현할 수 있다고, 다시 말해 미국이 그런 요구를 수용하리라고 기대하면서 내놓은 것은 아니라고 봐요.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거지요.”

    -협상카드를 잘게 나누는 이른바 ‘살라미 전술’이라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북한이 갑자기 경수로까지 요구했을 때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른 경수로 건설에서 중대한 문제는 경수로가 완공된다고 해도 북한의 낙후된 송배전망으로는 전력을 북한 각지에 제대로 공급하기가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남한이 북한에 전력을 제공한다고 제의했을 때 여기엔 송배전망 건설까지 포함되는 것이거든요. 그렇다면 북한은 ‘중대 제안’을 통해 북한 각지에 송배전망이 깔리게 되면 그것을 경수로에 연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건 물론 북핵 해법의 큰 맥락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사소한 얘기입니다만.

    “제네바합의 당시 송배전망 문제를 좀더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 불찰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경수로를 완성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것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몫입니다. 당시로서는 북한 핵을 동결하고 나아가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북한은 남한이 제공할 송배전 시스템을 나중에 경수로에 연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부가 현 단계에서 그런 것까지 고려해 송배전망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봐요.”

    우리 정부, 핵심 비켜가는 성향

    얘기가 제네바 기본합의로 이어지자 그러지 않아도 느릿하던 한 교수의 말이 한층 신중해졌다. 단어 하나하나를 신경써서 고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이 외무장관으로 재임하던 때의 일이니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물론 국내 일각에서도 “이번 협상은 제네바합의의 재판(再版)이 되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마당에 이 부분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 일단 직설 화법을 피해 우회로를 택했다.

    -“북한은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할 권리가 있다”고 밝힌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최근 발언과 관련해 이런 식으로 질문을 드릴까 합니다. 한 교수께서는 1994년 제네바합의 당시 외무장관으로서 북한 핵 외교를 일선에서 지휘했습니다. 당시 제네바합의의 결론을 간단하게 말하면 ‘북한의 과거 핵 개발은 일단 덮어두고 현재 및 미래 핵부터 동결하자’는 것이었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경수로의 핵심 부품이 전달되는 시점에 북한이 과거 핵을 포함한 모든 핵 의혹을 해소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니까 북한의 과거 핵개발까지 완전하게 규명되지 않는 한 경수로는 완공되지 않는다는 의미였습니다.”

    -저보다 훨씬 정확하게 표현하시네요.(웃음) 아무튼 제 얘기는, 정동영 장관의 최근 발언을 볼 때 이번에도 자칫 제네바합의 때와 같은 불완전한 미봉으로 귀결될 우려가 없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때처럼 북한이 핵 동결과 궁극적인 핵 폐기를 나누어 협상에 활용할 빌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을 용인하면서 북한이 인정하는 핵무기 및 핵무기 프로그램만 이번 협상의 대상이 된다면, 훗날 북한이 다시 한번 핵 위기를 일으킬 소지를 남기는 결과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정 장관의 발언은 전략적 실책이라고 봅니다만.

    한승주 전 주미 대사의 북핵·6자회담 진단

    2003년 10월 태국 방콕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때 열린 한미정상회담에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왼쪽),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과 나란히 앉은 한승주 당시 주미대사.

    “정 장관께서 그런 발언을 왜 했는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선의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이 미국의 의도와 다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힐 대표도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 문제는 북한이 NPT에 가입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를 받아들이면서 국제사회의 불신을 어느 정도 해소했을 때 생각해볼 문제’라는 식으로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측면이 있고, 또 하나는 한미의 긴밀한 공조과정에서 일종의 역할 분담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노무현 정부 이후 한미관계가 순탄치는 않았다는 점에서 후자의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작지 않을까 싶은데요.

    “한미간에 사전 약속을 한 뒤에 그런 말이 나왔을 수도 있고, 사전 협의가 없었던 상태에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될 수도 있는 거니까…. 1990년대에는 지금 상황과는 정반대로 우리는 북한 핵에 대해 강경한 태도였고, 미국은 유연한 태도였어요. 그런 역할 분담 같은 것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때도 양측이 사전에 약속한 것은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던 겁니다.”

    -1994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제네바합의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표시했다는 얘기가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 노무현 정부는 북핵 불용(不容)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론 정동영 장관의 이번 발언처럼 납득하기 힘든 말들을 불쑥불쑥 내놓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개발 논리에도 일리가 있다”고 했던 노 대통령의 지난해 11월 로스앤젤레스 발언도 그런 예지요.

    문제는 북한의 핵 폐기가 보통 복잡한 사안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1992년 5월 이전에 북한이 얼마만큼의 플루토늄을 추출했느냐는 것에서부터 2002년 10월 이후 고농축 우라늄(HEU) 개발에 이르기까지 모든 핵 의혹을 해소하려면 먼저 우리 정부부터 확고한 전략과 비전을 가져야 하는데, 과연 그런 것이 있느냐는 데 대해 많은 사람이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정부가 북한 핵 폐기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계획이 있느냐는 점에 대해선 제가 지금 확신을 갖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대화의 진전을 위해서이겠지만, 우리측에 문제의 핵심을 비켜가려는 경향이 있는 게 아니냐는 점은 지적할 수 있다고 봐요.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 문제도 그런 예입니다. 정 장관은 이것이 주권국가로서 일반적 권리이며 따라서 미국이 양보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취지로 그런 발언을 한 것 같은데, 여기서 간과하고 있는 대목이 있어요. 북한이 평화적 핵 이용권을 가질 때 우리에게 어떤 이해관계가 있느냐, 북한 핵문제의 궁극적 해결에 있어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느냐에 대해 천착해야 한다는 겁니다. 미국은 북한의 전력(前歷)을 볼 때 평화적 핵 프로그램도 언제든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곤란하다는 것인데, 정 장관의 발언은 그 부분을 피해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정 장관의 발언은 일반적 원칙론적인 것이고, 또 북한과 미국 사이의 분규만 무마하면 된다는 식의 편의주의랄까….”

    북한이 평화체제 거론하는 이유

    -이번 회담에서 북한은 북·미관계 정상화에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북한은 1993~94년 계속된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제네바합의를 논의할 때에도 평양에 미국대표부를 개설하는 문제 등에 합의했지요. 그렇게 보면 북한에 있어 북·미관계 개선은 매우 절박한 과제인 듯합니다.

    “그렇지만 북한은 1990년대에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후 미국이 평양 대표부 설치에 열의를 보였는데도 오히려 북측이 소극적으로 나와 결국 무산됐거든요. 이번에도 북한이 북·미 관계 정상화를 들고 나왔지만 현 단계에서는 무리한 측면이 있다고 봐요. 1994년 당시엔 핵 문제에서 웬만큼 합의를 이룬 뒤에 그것을 전제로 대표부 문제가 논의됐습니다. 관계정상화가 이뤄지려면 인권 문제나 미사일 문제 등 핵 외에 다른 요인들도 해결돼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북한은 다른 문제를 모두 건너뛰어서 관계정상화를 하자고 나오는 겁니다. 그렇게 보면 북한이 관계정상화를 제기한 것은 그 자체로 북한의 희망을 밝힌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핵 협상의 수위를 높이는 측면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이 내세우는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문제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겠군요.

    “그렇지요. 국교정상화라는 것도 평화체제를 전제로 하는 것이고, 또 평화체제의 일환으로 국교정상화를 얘기하는 겁니다. 평화체제로 가기 위해서는 핵 문제를 얼마나, 어떤 형식으로 해결할 것이냐가 관건이 되지요. 그런데 북한이 이런 문제는 제쳐놓고 곧바로 평화체제를 내세우는 것은, 그 목표를 실제로 실현하겠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기보다는 무언가 다른 의도를 갖고 있는 게 아니냐,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예전에 불가침조약을 맺자고 했다가 흐지부지된 것도 마찬가집니다.”

    -그런 점에서 솔직히 ‘북한 문제가 과연 협상으로 풀릴 수 있는 문제인가’ 하는 회의가 들 때도 있습니다. 이번 회담에서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동시이행 원칙에 대해서는 북한과 한국, 미국이 모두 밝혔지만, 실제로 구체적인 이행과정을 보면 정반대 수순이거든요. 이런 것들에서 먼저 이견이 좁혀져야 북미 관계정상화도 논의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는 것인데…. 힐 대표가 아무리 유능한 협상가라고 해도 이런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솔직히 접점을 찾기도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에 힐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패키지 딜(package deal·일괄타결)을 얘기했지요? 사실 모든 거래는 패키지 딜이라고 봐요. 패키지가 얼마나 크냐 작으냐의 문제가 있을 뿐이지요. 지금 미국이 생각하는 패키지는 핵 협상에 경제, 안보 등 다른 이슈들도 모두 포함하겠다는 것인데, 이게 이른바 ‘대담한 접근’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북한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고, 그보다 작은 패키지의 일괄타결을 협상을 통해 이끌어내자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이 원하는 것은 리비아식의 핵 해법이지만, 저는 미국 사람들을 만날 때 ‘반드시 리비아식 해법을 기대하거나 규정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일단 핵을 동결하고, 우라늄 문제는 나중에 해법을 찾더라도 플루토늄을 줄이기 시작하고, 이런 식으로 하나씩 발판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냐는 거지요.”

    한국과 미국, 서로 소화할 여유 생겨

    -결국 북핵 해결의 과정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북·미간, 한미간, 남북간의 신뢰라고 봅니다. 북·미간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하는 근본적 원인은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데에 있는 것이고, 한미관계 역시 이 정부 들어와 특히 신뢰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2003년 봄 현 정부 출범 이후 한미관계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당시 미국은 한국의 새 정부와 친숙해지기 전이었고, 9·11 이후 북한을 포함해 적대국가에 대해 한결 강경하게 대처하던 시기였지요. 그래서 걱정되는 부분이 많았는데, 그후 서로 이해하는 부분도 많아졌고, 상대방을 다루는 노하우도 축적됐습니다. 사안에 따라 섭섭한 얘기가 나와도 나름대로 소화하고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겁니다.

    그래서 최근 정 장관 발언에 대해서도 미국이 부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동맹국 사이라도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니냐, 한미동맹에 이상 없다’는 식의 반응이 즉각 나왔던 겁니다. 아마도 2년 전이었다면 이러기가 쉽지 않았을 거예요. 물론 한미관계가 미영관계 또는 미일관계처럼 돈독해지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지금이 어려운 상황은 아니라고 봅니다.”

    -한미관계 얘기가 나온 김에 이런 부분도 묻고 싶군요. 과거 한미관계는 조금 나쁘게 표현한다면 한국이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관계였습니다. 그렇지만 한국 처지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일이 있으면 미국에 떼를 쓰기도 하고 ‘좀 봐주라’는 식으로 넘어가기도 했어요. 한미간에 일종의 정서적 연대감이 있었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이후 그런 한미관계가 본질적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세계 11대 경제대국인 만큼 이젠 대미관계도 좀더 떳떳하게 가져가자, 이런 생각이 커진 거지요. 이 정부 초기에 한미관계가 순탄치 않았던 것은 이런 심리가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그 와중에 주한미군 감축 및 기지이전 문제, 자이툰부대 파병 등 굵직한 현안이 대두됐습니다. 한미 양국, 특히 한국측은 예전과 달리 매우 실무적 혹은 자주적인 자세로 이런 일들을 처리했고, 협상을 끝내놓고 보니까 썩 나쁘지 않은 결과가 나오더라는 겁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정부 관계자들은 정권 초기에 비해 한미관계가 많이 안정됐다고 얘기합니다. 요는 한미 동맹관계가 좋게 말해 실용적으로, 나쁘게 말하면 서로 냉정하게 따지고 계산하는 관계로 바뀌었다는 것인데, 이런 식의 질적인 변화는 결국 실리 차원에서는 우리 쪽에 손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그런 식의 변화로 인해 우리가 심리적인 만족감을 얻을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서로에 대한 감정이라든가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아무튼 정권 초기에 걱정하던 것과는 달리 한미 상호간에 서로 인내심이 많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주미 대사로 재직하실 때 여러 면에서 꽤 피곤했을 것 같아요.(웃음) 아닙니까?

    “모든 일은 상대적이고, 저는 다른 시기에 주미 대사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분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경우엔 김영삼 정부에서 외무장관직을 수행할 때에 비해 직무상 한계를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개인적으로 ‘이젠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아닌가요?

    “제가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하기는 곤란하지 않겠어요? 그냥 주미 대사직을 그만둔 데에는 자의적인 측면도 있었다, 그 정도로 해두지요.”

    -그 답변은 너무 외교적인 표현 같은데요. 제 질문의 취지는 충분히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만.(웃음)

    “제가 주미 대사로 나갔던 것은 저 스스로 우리 주변 상황이 정말로 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1년 반쯤 지나서 이제 급한 불은 껐다, 어느 정도 원래 궤도에 돌아왔다고 생각한 만큼 대사직에서 사퇴할 때가 된 거지요.”

    한승주 전 주미 대사의 북핵·6자회담 진단

    한승주 전 대사의 연구실은 남산이 내다보이는 작은 방이다. 그는 이곳에서 새로운 책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YS 때는 외무부가 일을 많이 했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할 즈음에 동행한 ‘신동아’ 황일도 기자가 한 교수에게 재미있는 질문을 던졌다. 김영삼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일해본 처지에서 전·현직 대통령을 비교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주문이었다. 김 전 대통령과 노 대통령 모두 자기 생각이 강하고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는 스타일인데, 그런 두 대통령 밑에서 일하는 데 차이는 없었느냐는 것.

    예전의 한 교수라면 이런 류의 질문에 대답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일반적인 질문에도 상대가 답답하게 느낄 정도로 냉철하게 용어를 고르는 스타일이던 그가 이런 ‘미끼’를 덥석 물 리 없다. 그래서 과거에 한 교수를 한두 차례 인터뷰했던 기자는 이런 식의 질문은 처음부터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에게서 나온 답변은 뜻밖이었다.

    “글쎄…. 그래도 YS와 일하기가 훨씬 나았죠. 그분이 고집도 세고, 화도 잘 내고 그랬지만, 거기서 끝나거든요. 제가 ‘그건 그게 아닙니다’ 하고 말하면 설득이 가능하고, 설득하면 그것으로 문제는 끝납니다. 반면 지금 분은 뭐랄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렵다고 할까, 그런 게 다르고…(웃음). YS 시절엔 외무부가 일을 참 많이 했어요. 지금은 아마도 그때 하곤 많이….”

    한 교수는 서가에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저서를 한두 권 꺼내 비교하면서 향후 집필계획에 대해서도 말했다. 일반 학술서와 외교비망록, 자서전 중 어떤 스타일의 저술이 좋을까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듯했다. 지금까지 한 교수의 저술은 전문 학술서 위주였다. 답변 스타일에 변화가 생긴 것처럼 앞으로는 저술 방향에도 변화가 생길까?

    그래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자화자찬성 자서전 외엔 공직(公職) 경험을 책으로 남기는 풍토가 거의 없는 우리 사회에서 한 교수가 자신의 외교 경험을 소상하게 글로 남긴다면 후학들에게 훌륭한 전범(典範)이 될 수 있을 테니까.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한 학기 남겨놓은 한 교수가 ‘한국의 헨리 키신저’ 역할을 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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