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호

스트레스가 뽑아가는 머리카락

  • 강훈 성바오로병원 피부과 교수

    입력2005-09-29 16: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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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트레스 악순환이 부른 탈모

    스트레스가 뽑아가는 머리카락
    현대인은 날마다 크고 작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치르는 대가인지도 모른다. 스트레스 때문에 일어나는 폐해는 다양한데, 모발로 범위를 좁혀 보면 탈모와 모발이 가늘어지는 증상이 가장 많이 나타난다.

    초췌한 모습에 모자를 깊게 눌러 쓴 P씨(35)가 부인과 함께 피부과를 찾았다. P씨는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계속 모자를 아래로 잡아당겼다. 문제가 있는 모발을 감추기 위한 행동이었다. 부인에 따르면, 6개월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P씨가 달라졌다고 했다. 평소 효자로 소문난 P씨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러면서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는데, 이젠 모발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P씨는 머리 전체에 탈모가 일어났으며, 눈썹과 수염, 손톱까지 빠지고 있었다.

    탈모는 유전이나 호르몬의 영향 등에 의해 일어나기도 하지만, P씨의 경우처럼 심한 정신적인 충격이나 스트레스도 탈모를 일으킨다. 비록 목숨을 위협하는 질병은 아니지만 당사자는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대인관계를 기피해 사회활동까지 포기하는 등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다.

    또한 스트레스 때문에 탈모가 생기면, 탈모 때문에 또다시 스트레스가 생기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 때문에 일부 환자들은 아주 심한 만성질환이나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이라 여기기도 한다. IMF 외환위기 때나 요즘처럼 조기 명예퇴직의 압력이 심한 상황에서 30∼40대 남성 가운데 모발클리닉 환자가 급증하는 것도 스트레스가 탈모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모발의 생리

    탈모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먼저 모발의 생리에 대해 알아보자.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인체의 모든 모발은 생장기, 퇴행기, 휴지기를 거친다. 생장기는 모발이 자라서 성장하는 시기다. 일반적으로 이 생장기가 가장 길다. 퇴행기엔 모발이 성장을 멈추고 서서히 빠질 채비를 한다. 머리 깊숙이 있던 생장기 모발이 퇴행기에 들어가면, 점점 두피 쪽으로 밀려 올라온다. 마지막으로 휴지기는 모낭(머리털이 자라는 주머니같이 생긴 막)이 두피 가까이 올라와서 모발이 빠질 때만 기다린다.

    모발의 생장 주기는 한 모낭에서 평생 계속 일어나며, 모발이 나고 빠지기를 반복한다. 보통 사람은 일생 동안 이런 주기를 25번 정도 거친다고 한다. 그런데 스트레스는 바로 이런 정상적인 모발 생장 주기에 영향을 끼쳐 탈모를 일으킨다.

    스트레스가 탈모에 영향을 주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다.

    ▶스트레스를 계속 받아 탈모를 일으키는 경우다.▶어떤 요인이 있은 뒤 스트레스가 탈모를 부추기는 경우다. 1차적으로 내분비 질환, 각종 신진대사물질, 독성물질, 면역학적 원인들이 작용하여 탈모가 일어난다. 여기에 당사자가 어떠한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탈모가 일어나는 것이다.▶스트레스가 악순환되는 경우다. 탈모가 있은 뒤 탈모 자체가 큰 스트레스로 변해 영원히 탈모가 일어나거나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한다.

    최근 비교적 젊은 층에서 문제가 되는 탈모는 바로 세 번째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탈모가 만성이 되고 심한 경우 정신질환을 일으키기도 한다.

    머리카락은 신체에서 작은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가장 손쉽게 자기 모습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부분이다. 사회 통념상 머리카락이 적거나 없으면 나이가 들어 보인다고 여긴다. 게다가 그 사람의 역량까지 동시에 깎아내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저명인사나 인기 연예인 가운데 가발을 써서 탈모를 감추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결국 탈모로 인한 심한 스트레스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젊은 층에서 탈모가 일어나면 사회활동을 기피하고, 사람 앞에 나서는 일을 주저하게 된다. 하지만 요즘은 탈모가 일어나는 연령의 경계가 허물어져 소아에서도 탈모가 급증하고 있다. 소아의 경우 과외공부 등 학습 관련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다.

    마음에서 오는 탈모 유형

    스트레스는 모발의 생장기간을 단축시키거나 휴지기 모발의 비율을 증가시킨다. 따라서 탈모가 심해지거나 모발이 가늘어진다.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는 탈모 질환으로는 남성형 탈모(대머리), 원형 탈모, 휴지기 탈모 등이 있다.

    ▶남성형 탈모

    흔히 대머리라고 부르는 질환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안드로겐이라는 남성호르몬의 작용으로 발생하는데, 남녀 구분 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 10명 중 4명꼴로 나타나고, 20∼30대부터 시작되어 나이가 들면서 점점 진행된다. 남성과 여성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기 때문에 남성형 탈모, 여성형 탈모로 나누기도 한다.

    스트레스는 두피에 있는 세균을 번식시킨다. 또한 변성된 피지의 지방성분 및 산화제 생산을 증가시켜 탈모를 촉진한다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탈모가 진행되는 동안 생장기 모발은 수명이 짧아지고 숫자도 줄어든다. 즉 생장기보다 머리가 빠지는 휴지기가 길어져 휴지기 모발 수가 늘어나면서 머리를 빗거나 감을 때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

    ▶원형 탈모

    스트레스가 뽑아가는 머리카락
    몇 해 전 유명 연예인 A씨(25)가 군 입대를 3주 앞두고 피부과에 찾아왔다.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온 그는 원형 탈모증을 앓고 있었다. 연예인과 공직자 2세의 병역기피 문제가 사회문제로 크게 부각되던 때였다. A씨는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와 전역 후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마음이 무거웠던 것이다.

    원형 탈모증은 글자 그대로 머리털이 동전 모양으로 빠지는 것을 말한다. 대머리라고는 할 수 없는, 일시적인 탈모 증상이다. 예전엔 전염성으로 의심받았지만, 요즘은 마음에서 오는 병으로 진단한다. A씨 같은 연예인들은 머리 모양을 자주 바꾸기 때문에 두피가 약해져 나타나기도 한다.

    원형 탈모증은 가려움증이나 통증이 없다. 그래서 우연히 거울을 보다 발견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알려줄 때까지 본인은 모를 수도 있다. 쌀알만한 것에서부터 손바닥만한 것까지 크기도 다양하다. 보통 두 군데 내지 세 군데의 탈모 부위가 생긴다.

    원형으로 탈모된 부위는 털구멍이 거의 보이지 않고, 두피가 반짝이며 다소 움푹 들어간 듯하다. 초기엔 피부가 약간 붓는 것 같다가 진행되면 부드러워지고 탈모 부위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면 쉽게 빠진다.

    원형 탈모증은 그대로 두어도 저절로 낫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낫는다고 해도 털이 완전히 나기까지는 2∼3개월 이상 걸린다. 처음엔 솜털 같은 가느다란 털이 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굵고 검은 털로 바뀐다. 드물게 눈썹, 턱수염, 겨드랑이에도 원형 탈모증이 생기는데, 이런 경우를 악성 원형 탈모증이라고 한다. 악성 원형 탈모증은 저절로 낫기 어렵기 때문에 치료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원형 탈모증을 예방하는 길이다. 또한 발병하면 빨리 치료를 받을수록 치유가 잘 되므로 원형 탈모증이라고 판단되면 서둘러 진료를 받아야 한다.

    ▶휴지기 탈모

    3개월 전 L씨(25)가 긴 가발을 쓰고 피부과를 찾았다. 비만으로 고민하던 L씨는 2년 전부터 하루에 한 끼만 먹는 다이어트를 시작해 70kg이던 몸무게를 40kg으로 줄였다. 문제는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8개월 만에 나타났다. 머리카락이 잘 부러지고 갈라지더니 점점 숱이 줄어든 것. 이제는 가발이나 모자 없이는 외출할 수 없는 상태다.

    L씨는 비록 체중 감량엔 성공했지만, 탈모로 인한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더욱이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룰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 급격히 증가하는 탈모증은 바로 이런 스트레스로 인한 휴지기 탈모다. 물론 L씨의 경우는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영양 불균형이 원인이다. 그러나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는 데도 탈모 증상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사례도 적지 않아 심한 스트레스가 탈모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휴지기 탈모는 대개 수개월 내에 자연적으로 멈춘다. 그러면 새로운 모발이 자라므로 특별한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탈모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되거나 고민이 많아지는 게 문제다. 이럴 때는 정신적인 치료가 중요하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스트레스와 관련한 탈모를 확실하게 조절하는 약제는 개발되지 않았다. 단지 모발 생장 주기 가운데 생장기간을 연장시키고 조기에 퇴행기로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춘다. 즉 휴지기 탈모를 최대한 억제하는 게 치료 방법이다.

    휴지기 탈모 억제가 치료법

    생장기를 늘려주는 효과가 있는 미녹시딜은 스트레스 관련 탈모질환에 도움이 된다. 또한 신경펩티드의 작용을 억제하는 항우울제도 스트레스로 인한 탈모의 예방과 억제에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에 관해 좀더 많은 연구가 진행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원인을 최대한 줄이는 노력이다. 고른 영양 섭취, 취미나 여가 활동을 늘리는 것은 탈모 예방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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