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호

한국 유학생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체험일기

섬뜩한 비바람 굉음 속, 귀마개 나눠주며 “죽어도 같이, 살아도 같이…”

  • 한은정 미국 사우스앨라배마주립대 석사과정·커뮤니케이션

    입력2005-10-25 14: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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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강력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강타한 지 두 달이 가까워오도록 사망자수를 가늠할 수 없는 죽음의 도시, 뉴올리언스. 그곳에서 차로 1시간여 떨어진 앨라배마에도 ‘카트리나’는 공포의 식인상어처럼 주민들을 덮쳤다. 겨우 몸을 추스린 주민들은 요란한 바람소리에 귀를 틀어막아야 했고, 며칠째 출입이 통제된 대피소에 갇힌 사람들은 먹을 게 없어 굶기를 밥먹듯했다. 가공할 재난의 한복판에서 한국 여학생이 써내려간 생생한 체험일기.
    ▼ 8월27일 토요일

    오랜만에 월마트에 장보러 갔다가 과 친구 캐서린을 만났다.

    “은정! 너도 허리케인 때문에 비상물품 사러 왔구나? 그나저나 넌 어디로 대피할거야?”

    “뭐? 허리케인! 허리케인이 또 온대?”

    “몰랐어? 내일모레 어마어마한 허리케인이 여길 지나간다는데….”



    “허리케인이 와도 난 그냥 우리 아파트에 있을 거야. 귀찮아. 대피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젠 안 해.”

    “혹시라도 사태가 심각해지면 바로 학교로 대피해. 알았지? 절대로 혼자 있지 마. 학교 대피소 어딘지 알지? 모르면 나한테 전화해. 알려줄게.”

    “고마워. 너도 몸조심해.”

    초강력 태풍? 까짓 거…

    어쩐지 오늘따라 사람이 유난히 많다 했더니 다들 허리케인에 대비해 물, 음료수, 양초, 플래시, 건전지 같은 비상물품을 사러 왔나 보다. 한국만 사재기가 심한 줄 알았는데 이곳에 와보니 미국 사람이 더 심한 것 같다. 뉴스에서 태풍 얘기만 나왔다 하면 하룻밤 사이에 월마트에 있는 모든 비상물품이 바닥난다. 지난해 허리케인 ‘아이반’이 왔을 때 뒤늦게 월마트에 갔다가 양초나 물은커녕, 창문에 붙일 청테이프 하나 못 사고 그냥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이번엔 아예 포기하기로 했다. 사실 한국에서 30년 넘게 살면서 단 한번도 자연재해를 당해본 적이 없던 나는 ‘초강력 태풍’이라는 게 얼마나 심각한지 몰랐다. 이곳에 온 지 1년 반 만에 벌써 몇 번씩이나 허리케인을 만나고 보니(지난해 9월 ‘아이반’을 시작으로 ‘데니스’, 그리고 몇 개의 소규모 허리케인이 여길 지나갔다) 이젠 대피하는 것도 귀찮다. 게다가 날씨가 너무나 화창해(정말 한국의 초가을 날씨 그 자체다. 하늘도 아름답고, 바람도 매우 상쾌했다) 도저히 허리케인 상륙 소식을 믿을 수가 없었다. 여하튼 난 허리케인 소식에 전혀 개의치 않고, 내 쇼핑 리스트에 있는 물건만 사갖고 왔다.

    집에 오니 일본인 룸메이트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언니는 허리케인 오면 대피할 건가요, 아니면 그냥 아파트에 있을 건가요?”

    “난 여기 있을 거야. 넌 너 가고 싶은 데로 가.”

    “아녜요. 저도 언니랑 같이 여기 있을래요. 이번 허리케인도 별 피해 없이 그냥 지나갈 것 같은데요, 뭐.”

    ▼ 8월28일 일요일

    예배가 끝나고 교회에서 다 같이 점심을 먹는데 한 친구가 환호성을 질렀다.

    “야호, 다음주 화요일까지 학교 휴교다. 신난다!”

    “진짜?”

    학생들 모두 우르르 몰려가 학교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정말로 휴교령이 내려졌다. 휴교령엔 “일단 현재로선 화요일(8월30일)까지만 휴교이고, 또 기숙사도 일부만 강제 대피령을 내린다. 내일 오후 3시에 다시 속보로 알려줄 테니 수시로 변동사항을 체크하라”고 돼 있었다. 지난해에도 느낀 거지만 학교 홈페이지는 비상시에 맹활약을 한다. 교직원이 잠도 안 자는지 매 시간 속보를 올린다.

    “혼자 있다간 완전 고립이야!”

    오후 2시쯤 교회에서 돌아와 보니 아파트 현관문에 허리케인 경보용 노란 딱지가 붙어 있었다. 내용인즉, “엄청난 허리케인이 온다. 얼른 피난 가라. 네가 여기 있든 피난 가든 그건 네 맘이지만, 네가 여기 있다가 사고 나면 우린 책임 안 진다”였다. 아파트 관리실도 문을 닫았고, 주차창도 많이 비어 있었다. 다들 벌써 대피했나? 참고로, 여기 사람들은 허리케인이 오면 주로 텍사스주나 조지아주로 피난 간다.

    나는 피난 갈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허리케인이 오면 며칠간 전기가 안 들어올 테니) 밀린 빨랫감을 모두 모아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욕실과 냉장고를 청소했다. 그때 마침 친구 영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빨리 짐 싸서 자기 집으로 피난 오란다. 몇 시간 후면 허리케인이 온다고, 이번 허리케인은 정말 어마어마한 거라서 자동차도 다 날려버리고 아파트도 무너질 거라 혼자 있다간 완전 고립된다고 했다. 영주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어머니를 따라 미국으로 왔는데 그동안 큰 허리케인을 여러 번 만나봤기 때문에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안다고 했다. 허리케인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고 그저 천하태평인 나 같은 유학생을 보면 정말 답답하다고 했다.

    결국 영주의 끈질긴 설득에 “알았어. 저녁에 해지면 짐 싸서 너희 집에 갈게”하고는 곧바로 여기저기 가까운 친구며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내 룸메이트는 자기랑 친한 일본인 아줌마 집으로 피난 가겠다고 하고, 나랑 친한 몇몇 미국인은 하나같이 “허리케인에 완벽하게 대비해놨다”면서 다들 자기 집으로 피난 오라고 했다. 교회 집사님들을 비롯한 한국인은 “근처에 사는 이웃과 비상연락망을 통해 매 시간 서로서로 살피고, 유사시엔 같이 움직이기로 약속했다”고 했다. 한국 남학생들은 우르르 한집에 모여 있겠다고 했다. 기숙사에 살고 있는 과 후배 수진이는 나랑 같이 오늘 저녁에 영주네 집으로 가기로 했다. 수진이가 살고 있는 기숙사는 상대적으로 좀 튼튼한 건물이라(다른 기숙사 건물은 어젯밤부터 강제 대피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강제 대피령을 알리는 빨간 딱지가 안 붙었다. 그래도 밤에 혼자 있으면 무서우니 같이 피난을 가겠다고 했다.

    허리케인이 오면 학교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기숙사에 빨간 딱지를 붙이고 학생들 모두 나가라고 독촉하는 거다. 그리고 곧바로 학교 안에 있는 건물에 비상대피소를 마련해서 오갈 데 없는 학생들, 특히 외국 유학생들을 대피시킨다. 지난해엔 일반 시민도 우리 학교 안에 있는 대피소로 왔다.

    여하튼 주민 대부분이 허리케인이 오기 며칠 전부터 전반적으로 “그냥 내 집에 있겠다”는 추세였다. 어떤 한국인 말대로 “허리케인이 와도 큰 피해 없는데 괜히 지레 겁먹고 피난 갔다가 쓸데없이 돈만 날리고 왔다”는 기억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한국인의 안전불감증이란….

    갈대처럼 휘청이는 나무들

    오후 4시경, 혼자 집을 지키면서 영주네 집으로 피난 갈 때 가져갈 중요한 서류(유학생에겐 여권, 비자, I-20, 운전 면허증이 가장 중요하다. 미국 사람들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비상시엔 ‘이혼서류’를 꼭 챙겨야 한다고 했다)와 귀중품(노트북컴퓨터, 책, 각종 페이퍼)을 챙겼다. 학교 후배 주은에게서 안부전화가 왔다. 오전에 미시시피주 빌럭시에 있는 교회에 가서 예배 보고 지금 모빌로 돌아오는 중인데, 고속도로가 피난차량으로 꽉 차서 시속 16km도 못 달리고 있다고 했다. 모빌 시민 대부분은 피난을 가지 않는 분위기인 데 반해 이웃 미시시피주나 루이지애나주는 태풍의 핵심지역으로 보도되면서 이곳 모빌로 피난 오는 사람들로 고속도로가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주은과 통화를 마치자마자 이번엔 수진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선, 학교 휴교령이 다음주 수요일까지 연장됐고, 또 수진이네 기숙사 건물에도 빨간 딱지가 붙었다며 지금 바로 영주네 집으로 가자고 했다. 시력이 매우 나쁜 나로선 야간운전이 무척 힘들고 게다가 비까지 쏟아진다면 거의 죽음일 게 분명했다.

    아니나다를까, 6시경 수진이를 태우고 영주네 집으로 가는 도중에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면서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엉금엉금 거북이 운전으로 영주네 집에 겨우 도착하고 보니 저녁 7시.

    예상대로 영주네 집 문이란 문은 모두 나무판자로 단단히 둘러쳐져 있었다. 이곳에선 허리케인이 온다는 소식만 들리면 온 집안 남자들이 마당으로 나와 나무판자로 집을 둘러친다. 미국 주택은 창문이 많고 커서(거실 전면이 유리로 된 집도 많다) 강풍이 불면 와장창 깨지기 때문에 나무판자로 튼튼하게 둘러쳐야 한다. 나는 지난해 나무판자를 사지 못해서 라면박스로 아파트 창문을 둘러쳤다.

    영주 남편이 새벽 5시부터 일어나 혼자서 세 건물(영주네 집, 근처에 사는 부모님 집, 그리고 영주네 가게)에 나무판자를 둘러치느라 엄청 고생했다고 한다.

    밤 10시경, 영주가 “죽어도 온 가족이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한다”며 엄마 곁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우린 다같이 영주네 부모님 집으로 피난을 갔다. 늦은 시각인데도 영주 부모님은 안 주무시고 계속 TV 속보를 지켜보고 계셨다.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미국인인 영주 아빠가 소형 귀마개를 건네줬다. 초강력 태풍이 오면 굉음이 나는데, 이 굉음이 공포심을 더 자극하기 때문에 귀마개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거였다. 난 속으로 ‘미국인들 참 우습네’ 하면서 귀마개도 내팽개치고 그냥 평소처럼 일찌감치 잤다.



    ▼ 8월29일 월요일

    새벽 6시. 잠에서 깨어나니 바람소리, 빗소리가 뒤섞인 늑대 울음 같은 소리가 들렸다. 살짝 뒷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집 전체를 나무판자로 둘러쳐놨기 때문에 집안은 그야말로 암흑 그 자체) 뒷마당에 있는 커다란 나무들이 갈대처럼 휘청대고 있었다. 게다가 방안에 있을 때는 그리 크지 않게 들리던 바람소리가 문을 여니 엄청났다. 지난밤에 영주 아빠가 왜 귀마개를 줬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허리케인 상습지역은 보험도 못 들어

    한편 영주 엄마는 새벽 3시경 전기가 나갔다며 발전기를 돌려 열심히 아침을 준비했다. 이곳 동남부 지역엔 허리케인이 워낙 잦고, 또 허리케인이 한번 왔다 하면 평균 일주일 정도는 전기가 안 들어오기 때문에 웬만한 집에선 모두 가정용 발전기를 갖고 있다고 한다. 아무튼 발전기도 가스가 떨어지면 못 돌리니 아껴서 써야 했다. 휴대전화 충전할 때, 요리할 때만 잠깐씩 돌리고, 정말 못 참을 정도로 더우면 선풍기 잠깐 켜고….

    그 와중에도 영주 엄마는 나와 수진이를 위해 그 귀한 발전기를 돌려서 노트북컴퓨터를 충전할 수 있게 해줬다. 하루 종일 컴컴한 집에 갇혀 있으려면 심심할 테니 컴퓨터로 다운로드한 한국 드라마라도 보라고 했다. 덕분에 나랑 수진이는 하루 종일 먹고 자고를 반복하면서 그 유명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1회부터 10회까지 볼 수 있었다.

    아침을 먹고 나자 여기저기서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고 모두들 전화 통화(받는 전화, 거는 전화)로 바빴다. 특히 나와 수진이는 한국의 가족, 친지에게서 걸려온 안부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CNN의 위력이 어찌나 대단하던지, 한국에 있는 가족이 여기 있는 우리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었고, 불안한 마음에 수시로 전화를 해댔다. 수진이네 엄마는 우리가 전혀 듣지도 못한 (TV로 뉴스를 볼 수 없으니) 뉴올리언스 상황까지 다 아시고는 “뉴올리언스엔 지금 시체들이 둥둥 떠다녀서 세균이 득실댄다는데 너 지금 당장 예방주사라도 맞아야 하는 거 아니냐?”며 걱정했다. 병원도 다 문 닫고 (응급실만 빼고) 게다가 도로에 나갈 수도 없는 이 와중에 어디 가서 예방주사를 맞냐고요!

    한편, 목사님 댁에 안부전화를 했던 영주 엄마는 “미시시피주에서 피난 와서 목사님 댁에 머물고 있는 손님의 자동차에 집채만한 나무둥치가 바람에 날려와 떨어지는 바람에 차가 다 깨졌다”며 걱정했다. 영주씨 부부는 가게 지붕이 날아간 것 같다는 직원의 전화를 받고 잔뜩 걱정을 했다. 재해보험에 들어놓긴 했는데 보험회사에서 보상을 전혀 해줄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지난해 ‘아이반’이 올 때도 영주네 가게는 큰 피해를 당했지만 보험회사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

    심지어 올봄에 새 보험에 가입하려고 여기저기 보험회사에 연락했는데 계속 거부당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피해가 워낙 심각해서 중소 보험회사들은 아예 문을 닫았고, 큰 보험회사들도 휘청거리는 상황이라 요즘은 신규 고객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보험 상담을 하려고 찾아가면 일단 입구에서 안내자가 주소를 물어본 후 거주지(혹은 상가 위치)가 바닷가에서 가까운 곳이거나 저지대면 아예 처음부터 상담도 안 하고 바로 돌려보낸다는 것이다.

    혹시나 해서 학교 대피소에 있다는 상민에게 전화를 했더니 “다 괜찮은데, 먹을 걸 안 갖고 와서 배가 너무 고프다”고 했다. 친구네 집에 가서 얻어먹으려고 해도 밖으로 나갈 수가 없으니(일단 대피소에 들어가면 학교 경찰이 24시간 지키면서 출입을 통제한다. 설사 경찰이 허가해준다 해도 지금 상황으론 운전이 불가능하다) 상민은 한동안 꼼짝없이 굶어야 한다.

    빌럭시에선 80명이 한꺼번에 몰살

    점심식사 후 두어 시간 낮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영주 아빠가 “다행히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이곳 모빌을 비껴서 지나갔다”고 했다. 대신 근처의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와 미시시피 빌럭시 지역 피해가 엄청나다고 했다. 뉴올리언스는 아예 도시 전체가 물에 잠겼고 빌럭시에선 한 카운티에서 무려 80명이 몰사했다고 했다. 발전기를 돌려 TV를 켜보니 정말 뉴올리언스 시내는 교통신호등 높이까지 물이 차올라 있었다.

    이곳 모빌도 다운타운 쪽은(다운타운이 있는 동쪽은 해안 저지대이고, 공항 및 내가 다니는 학교가 있는 서쪽은 고지대다) 주요 도로 및 관공서, 주택 일부가 물에 잠겼다. 영주 엄마는 “그래도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라며 “모빌은 은혜 받은 땅이라 매번 태풍이 비껴간다”고 했다. 20년 전에 엄청난 태풍이 와서 도시 전체가 마비됐던 거말고는 지금까지 큰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반면 카지노가 주산업인 미시시피주 빌럭시나 퇴폐 유흥업소가 많은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는 저주받은 도시라서 이번에 큰 피해를 본 거라고 했다. 믿거나 말거나….

    카트리나가 모빌 지역을 비껴 지나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갑자기 안심이 되었는지 영주 아빠와 영주 남편은 우비를 입고 바깥으로 나가 별 피해가 없는지 집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나와 수진이도 하루 종일 집안에 갇혀 있느라 답답하던 차에 운동도 할 겸 밖으로 나가 동네를 살폈다. 빗줄기는 약해졌지만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특히 바람이 너무 세서 걷기가 힘들었다. 휘청휘청 날아갈 것만 같았다.

    다행히 영주 부모님댁과 영주네 집은 앞마당에 있는 키 작은 나무들만 뽑히고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주변에 있는 집들을 보니 울타리랑 지붕이 군데군데 날아가고 없었고 도로엔 크고 작은 나무둥치와 전선이 뒤섞여 널브러져 있었다. 신호등도 모두 고장나 있었다. 영주 말로는 도로에 있는 전선을 다 치우고, 새로 가설하고, 신호등 복구하고 하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걸릴 거라고 했다. 그 말은 전기가 다시 들어오려면 일주일은 걸릴 거라는 얘기였다.

    ▼ 8월30일 화요일

    ‘윙윙윙, 징징징….’

    뭔지 모를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깼다. 이게 뭔 소리지? 혹시 ‘카트리나’가 아직 안 지나갔나? 불안한 마음에 밖을 내다보니 영주의 남편이랑 아빠가 창문과 현관문에 둘러친 널빤지를 제거하는 소리였다. ‘카트리나’가 완전히 지나갔나 보다. 하늘을 보니 언제 심술을 부렸냐는 듯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화창한 아침이었다. 이웃주민도 나와서 열심히 널빤지를 뜯고, 지붕에 올라가 새는 곳을 막고, 부서진 울타리를 고치고, 집 주변에 널린 나뭇가지를 치우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웃는 얼굴이었다. 어쩌다 나랑 눈이라도 마주치면 꼭 “굿모닝” 하면서 인사까지 했다. 엄청난 자연재해로 이런저런 피해를 당하고 복구 중인 불쌍한 사람들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밝은 얼굴이었다. 자신감인지, 여유로움인지 난 그들의 긍정적인 태도가 부럽고, 또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전기 끊기니 숯 사재기

    에어컨 대신(여전히 발전기를 돌려서 전기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커다란 선풍기 하나 달랑 켜놓고 다같이 아침을 먹었다. 영주랑 영주 남편은 가게가 무사한지 점검하러 나갔고, 나랑 수진이도 짐을 챙겨 나섰다. 시동을 걸고 보니 기름이 얼마 없었다. 수진이가 “태풍 지나가고 나면 기름값이 엄청 오를 텐데 왜 미리미리 기름을 가득 채워놓지 않았냐”며 나무랐다. 아니나다를까. 도로 주변에 있는 주유소들이 거의 다 폭삭 망가졌다. 이를 어쩌나, 진작 기름 넣을 걸, 후회막급이었다.

    도로 상황은 어제와 똑같았다. 조심조심 운전하고 있는데 갑자기 차에서 뭔가 타는 듯한 냄새와 함께 연기가 나더니 도로 한가운데 갑자기 멈춰섰다. 우선 급한 대로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라도 옮겨놓으려 했지만 시동 자체가 걸리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도로 한가운데서 우두커니 기다리고 있는데, 지나가던 운전자들이 차례차례 멈춰서 나한테 왔다. 난 한국의 험악한 분위기를 생각하면서 도로 한가운데 멈춰서 운전을 방해하니깐 나한테 삿대질하러 오는구나 했다.

    그런데 웬걸, 다들 나한테 “무슨 일이냐, 괜찮냐, 도로 한가운데 이렇게 서 있으면 다른 차들이 당신을 치고 갈 수도 있다, 우린 괜찮은데 네가 위험하다, 내가 도와주겠다”며 내 차를 여기저기 살피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그냥 무작정 밀어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아예 소매를 걷어붙이고 자동차 밑으로 들어가 살피기도 했다. 어떤 이는 “너무 걱정하지 말고 진정하라”며 차가운 얼음물을 주고 가고, 어떤 이는 “우리 집이 바로 저기 길 건너편이니 혹시라도 저녁때까지 못 고치면 즉시 찾아오라”며 자기 집 전화번호를 주고 갔다.

    결국 아무도 내 차를 고치지 못했지만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에 그만 놀랐다. 사실 그들 모두 ‘카트리나’ 때문에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피해를 보았을 것이다. 또 복구작업을 하느라 정신이 없을 텐데 여유를 잃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뒤늦게 현장으로 달려온 영주 말로는 “이 동네는 재난을 당하고 나면 사람들이 서로 불쌍하게 여기면서 인심이 더 후해진다”고 했다. 정말 본받고 싶은 문화다. 어쨌든 고맙게도 지나가던 한 트럭 운전자가 견인장비를 빌려줘서 일단 차를 가장 가까운 주차장에 끌어다 놓았다. 어차피 한동안은 정비소도 문을 못 열기 때문에 고칠 수 없을 테니 그냥 놔두기로 했다.

    우린 영주 차를 타고 학교 기숙사로 향했다. 기숙사로 향하는 길에 언뜻 보니 홈디포 앞에 엄청난 인파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자체 발전기를 가동했는지 홈디포가 벌써 문을 열었다. 영주 말로는 가정용 발전기나 전기 없이 숯으로 바비큐요리를 해먹을 수 있는 그릴을 사려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주유소는 폐허가 되고

    수진이 기숙사에 와보니 놀랍게도 벌써 전기가 들어와 있었다. 학교 자체 발전기를 돌려서 기본적인 전력은 공급해주었다. 수진이 룸메이트와 친구들은 어젯밤에 대피소에서 돌아왔다며 이 와중에 어딜 놀러 가려는지 열심히 화장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철없는 아가씨들은 ‘카트리나’의 피해가 얼마나 큰지, 지금 상황이 어떤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기숙사에 들어서자마자 한 애가 날더러 대뜸 “너 차 있냐?”며 “우린 지금 쇼핑 가고 싶은데 좀 태워다줄 수 있냐”고 했다.

    세상에, 이런 정신없는 철부지들을 봤나. 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얘들아, 뉴스 못 봤니? 지금 바깥 상황이 어떤가 하면 말이야, 미시시피 빌럭시에선 한 카운티에서 무려 80명이 죽었고…” 하면서 조곤조곤 설명했다. 내 얘기를 다 듣고 나서도 이 철부지들은 별로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한 아이가 “어머나, 이를 어째, 내 남자친구가 미시시피에 사는데” 하면서 조금 불안해한 거말고는.

    나는 급한 대로 휴대전화만 충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우리 아파트도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그런데 아직 전기가 안 들어와 에어컨을 켜지 못하니 무척 더웠다. 게다가 습하기까지 하니 비닐하우스에 사는 느낌이다. 문이란 문은 모두 열어놓고, 가만히 앉아서 책만 읽는데도 등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두 시간에 한 번씩 샤워를 했다. 그나마 물이 나오니 다행이지, 단전에 단수까지 되었다면 정말 이 더위에 사흘도 못 견디고 죽을 것 같았다.

    ▼ 8월31일 수요일

    오늘 오전에도 우리 아파트엔 여전히 전기가 안 들어와 혼자서 과자 부스러기랑 과일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있는데 근처에 사는 아는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너희 집 근처 맥도날드가 문을 열었다고 하는 걸 보니 너희 아파트에도 전기 들어왔겠지? 오늘 우리 식구 좀 거기 가서 지내면 안 될까? 아기가 더워서 잠을 못자고 계속 울고불고 난리다.”

    “언니, 여기도 정전인데요, 전기 들어오면 연락드릴게요. 그때 오세요.”

    언니 전화를 받고 생각해보니 정말 어른도 더워서 미칠 지경인데 아기나 아이들은 어떨까 싶었다. 엄마들은 어린애들이 난리치면 더 더울 텐데.

    오후 2시. 여전히 땀 뻘뻘 흘리면서 혼자서 책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깨보니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다. 야호! 드디어 전기가 들어왔다. 부랴부랴 사람들한테 연락했더니 오전에 전화했던 언니는 이미 다른 집으로 대피했고, 학교 근처 아파트는 거의 전기가 들어왔다고 했다. 게다가 기숙사는 인터넷까지 된다며 한국 남학생들은 기숙사에 모여 컴퓨터 게임하느라 정신없었다.

    ▼ 9월2일 금요일

    한국에 있는 지인들과 친구들에게 안부 메일도 보낼 겸, 밀린 숙제도 할 겸 학교 조교실에 갔다. 교수가 한 명 나와 있었다. 오늘 내일 중으로 교수진 회의를 열어 휴교령을 연장할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학과장 교수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못 받았다며 걱정했다. 그는 “여기 모빌에 있는 학생들은 당장 화요일부터 수업 듣는 데 별 문제가 없겠지만 근처 미시시피나 루이지애나에 사는 학생들은 피해가 심각해서 도저히 학교에 올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우리끼리만 수업하면 안 되지 않겠냐”고 했다.

    우리 학교에서 미시시피주 빌럭시까지 40분밖에 안 걸리고, 플로리다주 펜서콜라는 1시간 거리, 그리고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도 1시간30분 거리여서 그쪽에서 우리 학교로 통학하는 학생도 꽤 많다. 형평성 면에서 보면 학생들 이 모두 등교할 수 있을 때 수업을 정상화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무한정 휴교를 연장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학과 친구들, 교수들 및 한국인 중 다운타운 쪽 혹은 집 주변에 학교나 병원 같은 공공시설이 없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아직까지 전기가 안 들어와, 궁여지책으로 은행이나 쇼핑몰에 가서 하루 종일 지내며 더위를 식힌다고 했다.

    ▼ 9월3일 토요일

    아침 8시. 새벽같이 어딘가를 다녀온 룸메이트가 한숨을 폭폭 쉬며 말했다.

    “자동차에 기름을 넣느라 새벽 6시부터 두 시간이나 줄서서 기다렸어요. 문을 연 주유소도 별로 없고, 기름값도 엄청 비싸고요, 기름도 조금씩만 배급해줘요.”

    그나마 내 룸메이트는 친구가 전화로 미리 알려줘서 사람이 덜 붐비는 주유소로 갔기 때문에 두 시간밖에 안 기다렸지만 다른 사람들은 훨씬 더 오래 기다려야 할 거라고 했다. 드디어 주유전쟁이 시작됐나 보다. ‘카트리나’ 이후 이곳 동남부 지역 정유시설이 파손되면서 기름도 동이 났다. 다른 주에서 기름을 공급해주려 해도 도로상황이 안 좋아 꽤 오래 걸린다고 했다. 대부분의 주유소가 폐허가 된 상태라 기름 가격이 치솟는 건 고사하고 도대체 기름 구경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대중교통시설이 전무한(택시는 있지만, 지하철도 없고, 버스가 있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 한 번도 본 적은 없다) 이 동네에서는 자동차가 없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자동차 기름이 떨어졌다는 건 집에 마실 물이 없는 거와 똑같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주유소 찾아다니느라 난리였다. 내 차가 고장났다는 얘기를 듣고 자기 차로 학교에서 우리 집까지 날 태워다준 우리 과 교수는(친절도 하시지) 농반진반으로 “어차피 요즘은 기름이 없어서 차를 못 끌고 다니니, 고장난 게 오히려 잘된 거다”라며 위로했다. 맞는 말이다.

    ▼ 9월4일 일요일

    교회에 가니 낯선 얼굴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근처 빌럭시와 뉴올리언스에 사는 한인들인데 ‘카트리나’로 집을 통째로 잃고, 이곳으로 피난 왔다고 했다. 어차피 복구작업이 완전히 끝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최소 6개월은 걸릴 것이기 때문에 아예 이곳에 집을 얻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이들도 모두 이 지역에 있는 학교로 전학시키고….

    저녁엔 조지아주 애틀랜타 지역 한인교회 청년부를 중심으로 구성된 재난민구조단이 왔다. 여기 모빌주민을 도와주러 온 게 아니라 빌럭시와 뉴올리언스 지역으로 가는 도중에 교회에서 하룻밤 묵어가기 위해 온 것이란다. 라면과 물, 옷가지 등 각종 구호 물품을 잔뜩 싣고 오긴 했다는데, 정작 중요한 건 지금 상황으론 그 지역에 들어갈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는 것이었다. 도로도 파손됐고, 주요 다리도 다 끊어져 건너갈 수도 없고, 뉴올리언스는 일반인의 출입이 아예 통제됐다고 했다.

    교회 식구들은 뉴올리언스에서 신학대에 다니는 전도사 가족 걱정이 태산이었다. 전도사 가족은 태풍을 난생 처음 만나보는지라 이렇게 심각할 줄 예상 못했다. 피난 올 때도 여권이나 비자는 챙겨오지 않고, 그저 하루 이틀 입을 옷가지만 챙겨왔다고 한다.

    지금은 아쉬운 대로 교회 분들 집에서 묵고 있지만 조만간 아파트나 집을 얻어서 나가야 하는데 빈 집도 빈 방도 없다고 한다. 빌럭시와 뉴올리언스에서 온 이재민이 너무 많이 몰려와 이곳 모빌에 있는 모든 주택, 아파트, 심지어 호텔까지 꽉 찼다고 한다. ‘카트리나’ 이후 기름전쟁만 있을 줄 알았는데 주택전쟁까지 일어났다.

    집 잃은 동료들

    ▼ 9월6일 화요일

    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다. 교수, 학생, 교직원이 모두 “무사하냐, 집은 별 피해 없냐”며 안부를 챙기느라 정신없었다. 교수 상당수가 바닷가에 그림같이 예쁜 별장을 갖고 있는데 이번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았다. 내 지도교수는 “집이 완전히 무너지진 않았지만 내가 아끼는 소중한 물건들이 많이 쓸려 내려갔다”며 안타까워했다. 강의조교로 일하고 있는 내 친구 하나는 그동안 미시시피에서 통학했는데 이번에 집이 통째로 날아가 온 가족이 이곳으로 이사 왔다고 했다.

    교수건 학생이건 모두들 집수리와 청소를 해야 한다며 수업만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 바람에 여러 가지 학사 일정이 뒤로 늦춰졌다. 개인적으로 나는 지난 8월19일에 치른 졸업시험 결과를 아직도 못 받았다. 원래는 시험보고 일주일 후면 결과가 나오는데, 이번엔 교수들이 다들 정신이 없어 아직 채점을 못했다고 한다.

    게다가 학교측에선 태풍으로 휴강이 잦아 수업일수가 모자란다며 이번 학기 종강을 열흘 연기했다. 원래는 12월10일까지 모든 기말고사가 끝나고 바로 겨울방학으로 들어가는데, 올해는 12월20일경에 종강한다고 했다. 허리케인 때문에 뜻밖의 방학이 생겼다고 좋아라 했는데 이게 뭐람.

    학교측은 주차증 발급기간 및 등록금 납부 마감일도 연기해줬고, 특히 미시시피주와 루이지애나주에 사는 학생들이 큰 피해를 당했다는 점을 감안, 타주 학생들을 대상으로 ‘Out of state fee’를 면제해주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내 어느 주를 막론하고 우리 같은 외국 유학생들과 타주 학생들은 ‘In state fee’ 외에 추가로 ‘Out of state fee’를 내기 때문에 사실상 학비를 두 배, 세 배 더 내고 다닌다. 그런데 그 엄청난 액수의 학비를 면제해주겠다고 하니 즐거웠다.

    아직 차를 고치지 못한 나는 입학 후 처음으로 학교 스쿨버스를 탔다. 시원하고, 깨끗하고, 음악도 틀어주고, 운전기사도 친절하고 게다가 무료니 앞으로 차를 고치고 나서도 자주 이용하기로 했다. 학교측이 엄청난 돈을 들여 학교 버스를 운행하는데도, 그동안 학생들이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학생들 대부분이 자기 차를 갖고 있으니 굳이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기름전쟁’ 때문에 자동차를 끌고 다니기 힘들어지니 학교 버스나 기차를 이용하는 학생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주유전쟁은 여전했다. 우리 아파트 바로 옆에 있는 한 주유소가 오늘 처음으로 문을 열었는데, 주유하려는 차들로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일단 주유소로 진입하려는 차량으로 도로가 꽉 막혔고(2차선 도로인데 한 차선이 아예 막혀서 일방통행로가 되어버렸다) 경찰이 하루 종일 상주하면서 교통정리를 했다. 그나마도 이 주유소는 기름 보유량이 얼마 되지 않아 내일까지만 문을 여니 모레부턴 다른 주유소로 가란다.

    미국의 힘, 자원봉사자들

    ▼ 9월27일 화요일

    요즘은 거의 수업시간마다 (과목을 막론하고) ‘카트리나’와 관련한 다양한 토론이 벌어진다. 우선 ‘카트리나’ 관련 언론보도가 뉴올리언스에만 집중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미시시피나 앨라배마의 피해는 축소되고 있다는 주장이 많았다. 뉴올리언스의 피해가 심각한 건 사실이지만 빌럭시의 피해도 만만찮고 이곳 모빌도 해안가는 아직도 복구가 덜 된 상태다. 정부와 언론의 거의 모든 관심과 재정지원이 뉴올리언스 쪽으로만 집중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학생들은 “언론이 뉴올리언스 관련 보도를 할 때마다 먹을 걸 훔치기 위해 약탈하거나 살인을 저지르는 흑인들의 부정적인 모습만 강조한다”며 “언론은 뉴올리언스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주 사람들의 공포심을 부추기면서 뉴올리언스를 더욱 고립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부시 정부가 뉴올리언스에 대해 아낌없는 지원을 하기로 약속한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그 돈이 다 어디서 나오겠냐고, 그게 다 우리가 내는 세금이 아니겠냐면서.

    ‘카트리나’ 이후 미국 적십자사는 피해 여부에 관계없이 특정 지역의 모든 거주자에게 똑같은 액수의 지원금을 주고 있는데 그건 말이 안 된다는 주장도 많았다. 적십자사에서 앨라배마,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3개 주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1인당 390달러씩을 주기로 했고, 적십자사에 찾아가 자신의 현주소가 나와 있는 신분증만 보여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수표를 준다는 것이었다. “설마 공짜로 모든 거주자에게 돈을 주겠어?” 하면서 반신반의하는 내게 친구는 “왜 요즘 갑자기 쇼핑몰에서 대박세일을 하는지 알아? 이 돈을 받은 사람들에게 돈 쓰라고 그러는 거야”라고 했다. 정말로 요즘 쇼핑몰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물론 태풍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집을 수리하고 다시 단장하려고 쇼핑을 온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 친구 말처럼 공짜로 생긴 돈을 쓰러 온 사람도 많은 듯했다.

    학교 곳곳에는 크고 작은 ‘Hurricane Relief’ 박스가 생겼다. 이재민에게 필요한 물건을 넣으라는 상자였다. 내 생각엔 아무런 광고도 없이 그냥 길모퉁이에 저렇게 두면 누가 구호품을 넣겠나 싶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어떤 때는 옷가지 같은 물건이 너무 많아 박스가 넘치기도 했다.

    나와 가장 친한 미국 친구인 수전 아줌마는 친구들한테 보내는 단체 이메일을 통해 “카트리나로 집을 잃은 사람이 너무 많은데 요즘 아파트는커녕 호텔도 꽉 찼다고 하니 혹시라도 집에 남는 방이 있으면 이재민을 손님으로 맞아 재워주자”며 자원봉사활동을 촉구했다. 수전은 이미 한 명의 이재민을 맞이해 같이 살고 있다.

    어제는 혹시나 해서 적십자사에서 이재민 신청을 받는다는 장소에 가봤다. 허리케인 직후 처음 문 열었을 때보다는 줄이 길지 않았지만 여전히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이 더운 날씨에 에어컨도 없는 그곳에서 미국 전역에서 온 수많은 자원봉사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고 있었다.

    미국에 온 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미국을 살리는 힘은 바로 자원봉사 정신이 아닌가 싶다. 부시 정부가 아무리 부족하고 또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해도 시민들의 이런 건강한 정신이 살아 있기에 미국은 여전히 강국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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