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황우석 교수의 알려지지 않은 어린 시절

새벽별 이고 쇠죽 끓이던 어머니가 ‘밤샘 연구’의 교본

  • 김승훈 동아사이언스 기자 shkim@donga.com

황우석 교수의 알려지지 않은 어린 시절

2/4
황우석 교수의 알려지지 않은 어린 시절

부여군에 있는 황우석 교수의 생가.

황 교수 집과 이 이장의 집은 붙어 있었다. 아랫집에 황 교수가 살고, 윗집에 이 이장이 살았다. 아래윗집에 살다 보니 서로 속속들이 알게 됐다. 동고동락하며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다. 학교도 같이 다니고 방과 후 멱을 감거나 고기 잡는 것도 함께했다. 당시 고향 마을에 남아 있던 풍습인 보름밥 훔쳐 먹기도 함께했다.

황 교수는 초등학교 시절 여자 동창생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다. 어릴 때도 지금처럼 단아한 얼굴에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지녔다. 귀공자풍의 용모가 여자아이들의 호감을 샀나 보다. 하지만 그 호감이 혐오의 화살로 돌변해 황 교수의 가슴을 찌르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아이들은 대부분이 가난했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도 빠듯했다. 1950∼60년대 농촌에서 배 불리 먹는 집이 드물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밭일을 하거나 땔감을 구해야 했다. 공부할 시간도 없었다. 그런데 황 교수를 좋아하는 여자아이들은 다 먹고 살 걱정 없는 부잣집 아이들이었다. 자기 자식이 가난한 집 아이인 황 교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부모들은 노발대발했다. 우석이에겐 말도 걸지 말라고 했다.

가난으로 빚어진 웃지 못할 에피소드는 그 밖에도 많다. 그 무렵 학교에서 반장이나 부반장이 되는 아이, 그리고 상장을 받는 아이는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부잣집이나 지역 유지의 자녀였던 것이다. 하지만 황 교수는 그런 사정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공부했고, 덕분에 졸업식 때 당당하게 초등교육회장상을 받았다. 이광희 이장의 회고다.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우석이는 어릴 때부터 공부에 있어서만큼은 집념이 대단했습니다. 소 꼴을 베러 갈 때도 책은 꼭 챙겨 갔어요. 소를 풀어놓고는 나무 그늘에 앉아 책을 봤어요. 늘 손에서 책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짬짬이 시간 날 때마다 책을 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죠. 전기도 들어오지 않을 때니 밤에 공부하려면 호롱불 밑에서 해야 했는데, 그것도 기름을 아낀다고 일찍 꺼야 했습니다. 집안일을 도우면서 공부한다는 것, 어린 나이에 쉽지 않은 일이죠. 초등학교 6년 동안 딱 두 번 결석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건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몸이 약해졌기 때문이었어요.”

물론 황 교수를 키워낸 것은 가족의 사랑이었다. 조부 황태희 옹은 유학자였다. 공맹(孔孟)에 조예가 깊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선비였다. 식언(食言)과 가식이 없었다. 옳지 않은 길은 가지 않았으며,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굽히지 않았다. 윗사람은 공경하고, 아랫사람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포용했다.

항렬로 치면 황우석 교수의 아저씨뻘 되는 황동주씨는 “어른에게 깍듯하게 행동하고 옳은 것은 초지일관하는 황 교수의 ‘심지’는 할아버지에게서 영향받은 것”이라고 귀띔했다.

어릴 때부터 황 교수의 몸에 밴 예의범절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경호 차량의 호위를 받으며 고향에 내려가는 요즘, 황 교수는 동네 초입부터 마을 어른이 눈에 띄면 바로 차에서 내려 뛰어가 90도로 허리 굽혀 인사를 올린다.

할아버지는 손자 우석에게 삶을 살아가는 가치관과 휴머니즘을 싹트게 해줬다. 할아버지는 한의학에도 뛰어난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변변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가난한 환자를 가족처럼 따뜻하게 돌봐줬다. 집 주위에는 약재로 쓰이는 나무나 약초를 심어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의술(醫術)이 아닌 인술(仁術)을 행한 것이다. 황동주씨의 얘기다.

“옛날 그 집에는 책이 엄청 많았습니다. 그런데 우석이 조부께선 그 책들을 아낌없이 나눠줬습니다. 동네 선비는 물론 멀리서 말을 듣고 찾아오는 가난한 선비들에게도 책을 나눠줬죠.”

조부의 이웃 사랑은 그대로 황 교수에게 전해진 듯하다. 황 교수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적극적으로 남을 돕는다’ ‘사교성이 강하다’ ‘협조심이 강하다’ 등 그의 따뜻한 심성을 엿볼 수 있는 문구들이 눈에 띈다. 남을 배려하고 생각하는 어린 우석의 여린 마음의 불씨 하나가 훗날 60억 인류의 삶을 뒤바꿀 거대한 불길로 일어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2/4
김승훈 동아사이언스 기자 shkim@donga.com
목록 닫기

황우석 교수의 알려지지 않은 어린 시절

댓글 창 닫기

2019/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