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호

‘강정구 파문’의 발원지, 통일연대의 실체

노동계·시민단체 간판 내걸고 퇴로 차단한 ‘좌경모험주의’

  •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 jpho@chol.com

    입력2005-11-29 14: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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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발언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이 극에 달했다. 이와 함께 강 교수가 소속된 ‘통일연대’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민노당과 민노총, 전교조, 민족문제연구소, 민변, 범민련 등 국내 40여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해 만든 통일연대는 과연 어떤 조직일까.
    ‘강정구 파문’의 발원지, 통일연대의 실체
    “55년전 우리 선배들이 피흘려 싸웠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5월말 전북 순창군 회문산 일대에서 열린 ‘남녘 통일애국열사 추모제’라는 ‘빨치산’ 추모행사에서 통일연대의 모 간부가 한 발언이다. 300여 명이 참석한 이 행사에는 통일연대 한상렬 상임대표의장을 비롯해 전국연합, 범민련남측본부 간부들이 연사로 나섰다.

    한 빨치산 출신자는 ‘사령부를 목숨으로 끝까지 수호하자’ ‘제국주의 양키군대를 한 놈도 남김없이 섬멸하자’ ‘미국과 이승만 괴뢰정부를 타도하자’는 등 빨치산 시절의 구호를 제창했고, ‘해방 60돌, 당 창건 60돌, 6·15 5돌을 맞아 통일을 달성하자’는 등 북한의 조선노동당 창건 60년 기념구호도 외쳤다. 미국의 개입으로 북한 주도의 통일이 좌절된 것이 역사의 불행이라고 한탄해 우리 사회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은 강정구 교수는 이들에 비하면 차라리 온건한 편이다.

    ‘통일’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북한 주도의 통일을 공공연하게 염원하는 통일연대는 ‘6·15남북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라는 긴 명칭으로 2001년 3월 결성됐다. 통일연대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 단체의 성격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시작화면에 “부시 체포하러 11월18일 부산으로 모입시다”라는 구호가 보이고, ‘아펙반대국민행동’ ‘이라크파병반대국민행동’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 등 각종 반미(反美) 투쟁기구의 홈페이지가 링크돼 있다.

    통일연대는 친북운동권단체들의 총본산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에 민노당,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민주노총 등의 노동계와 친일(親日)인사 명단발표를 주도한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조국통일범민주연합(범민련) 등 40여 개 단체가 가세해 만든 연대기구다. 전주고백교회의 한상렬 목사가 상임대표의장을 맡고 있으며, 전국연합의 오종렬 상임의장, 민노당 김혜경 전 대표, 민주노총 이수호 전 대표 등이 상임대표다. 상임집행위원장은 한충목 전국연합 집행위원장이 겸임하고 있다.



    통일연대는 다른 진보적인 시민단체나 연대기구들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극명한 차이가 드러나는 사안이 바로 북한 인권 문제다. 진보를 자처하는 상당수 시민단체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통일연대는 오히려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세력을 향해 신랄한 공격을 퍼붓는다.

    “북한에 인권 문제 없다”

    지난해 6월 한상렬 대표를 비롯한 통일연대 소속회원 30여 명은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인터넷라디오방송국 ‘자유북한방송국(FNK)’을 찾아가 방송 중단을 요구하면서 방송 운영자들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당시 통일연대측은 FNK의 탈북자들을 향해 ‘나라를 배반한 반역자’라며 “통일조국이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에서 북측을 비방하는 따위의 방송은 설 자리가 없다”고 비난했다.

    또 올 2월에는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주최한 ‘북한인권 난민국제회의’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7월에는 미국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가 미국 워싱턴에서 주최한 ‘북한인권국제회의’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미 대사관 근처에서 했다.

    최근에는 유럽연합(EU)이 대북인권결의안을 유엔에 상정하자 이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놓았다. 이 성명에 따르면 통일연대는 “‘영아살해’ ‘강제유산’ ‘고문’ ‘정치범 수용소’ 등 북한 인권침해의 근거들은 이른바 기획탈북자의 과장된 증언과 확인되지 않은 선정적 사실들”이라고 주장하면서 북한 정권의 인권침해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단체는 7000여 명에 달하는 한국 내 탈북자와 수만명으로 추산되는 중국 내 탈북자의 일관되고 구체적인 증언과 영상 등 북한 내 인권 상황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믿을 수 없는 왜곡’이라고 반박한다. 결국 세 차례에 걸친 유엔인권위의 북한인권결의를 주도한 EU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얘기다.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경기 때 북한에서 온 여성 응원단이 남북정상회담 사진이 담긴 현수막이 비에 젖는 것을 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차에서 뛰어내려 현수막을 걷어 행진하는 소동을 벌인 적이 있다. 이 여성의 행동이 진심에서든 아니든, 모든 인민이 수령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사회에서 최소한의 인권이 보장된다고 볼 수 있을까.

    지금은 중단된 신포 경수로 현장에선 남한 직원이 김정일의 사진이 실린 노동신문을 무심코 깔고 앉았다는 이유로 공사가 중단된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북한이 남한 사람에게 이럴 정도면 과연 자국민은 얼마나 혹독하게 통제하며 노예화하고 있을지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통일연대는 ‘북한에 인권 문제는 없다’는 자세로 일관해왔다. 통일연대는 이번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제출을 EU가 주도했음에도 “미국, 영국, 일본이 유엔 총회 상정을 주도하고 있다”며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려는 미국의 음모로 몰아가는 형국이다.

    ‘미군 강점 60년 청산’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소속 대남선전기구인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이 이름을 바꾼 반제민족민주전선(반민전) 기관지 ‘구국전선’ 신년사에서 맥아더 동상 철거를 강조했다. 그런데 친북운동단체들이 올해 반미운동의 일환으로 맥아더 동상 철거운동에 총력을 기울였으며, 강정구 교수는 모 인터넷사이트에 이를 옹호하는 내용의 칼럼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를 써서 파문이 일었다.

    통일연대도 지난 8·15를 전후해 맥아더 동상 철거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였다. 8·15 광복과 더불어 미군은 원초적으로 우리에게 불행을 강요했고, 그 대표적인 상징물이 바로 맥아더 동상이라는 역사인식에 따른 결과다. 근래 반미정서가 높아졌음에도 일반 국민의 정서와는 거리가 먼 시도이며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좌경모험주의’에 가깝다.

    북한의 경제 파탄과 극도의 정치 통제가 널리 알려진 지금, 6·25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미군의 개입이 역사의 불행이었다고 하는 주장이 공감을 얻을 리 없다. 맥아더 동상철거운동을 벌이는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 충격을 받은 사람도 적지 않다. 통일연대의 활동방향은 이 연대기구의 핵심단체인 전국연합이 지난 8월 중앙위원회에서 결의한 내용과 궤를 같이한다. 당시 결의내용 중 일부다.

    ‘치욕의 미군 강점 60년을 더는 연장할 수 없다는 민족적 결의로 9·11 미군 강점 60년 청산을 위한 인천투쟁(맥아더 동상철거)에 총력 결집할 것을 특별히 결의한다. 우리는 5·15 광주투쟁, 7·10 평택투쟁, 8·15대회를 거치며 승리해온 반미자주화투쟁이 9·11 인천투쟁에서 더욱 상승 발전해 11월 부산 아펙투쟁과 12월 2차 평택투쟁으로 폭발하도록 총력을 다할 것이다.’

    이후 통일연대는 9월11일 인천에서 벌어진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집회를 앞두고 ‘맥아더는 주한미군의 본질을 드러내는 가장 훌륭한 상징’이라고 규정하고, 한총련 등과 함께 집회에 참여해 동상 철거에 반대하는 보수단체 회원들과 충돌하기도 했다.

    전통적인 친북운동권인 전국연합, 범민련, 한총련이 북한 인권 논의를 원천봉쇄하고 미군철수와 한미군사동맹 해체를 목표로 한 반미운동을 벌이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통일연대는 이들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민변이나 노동계가 참여한 연대기구다. 그런데도 통일연대가 사실상 전국연합과 그 궤를 같이하는 외곽 투쟁기구 노릇을 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그동안 북한과 거리를 두던 노동계와 시민운동 단체들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대세(大勢)를 의식해 친북운동에 적극 가담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단체가 민노총과 민노당이다.

    이런 흐름은 주사파 최대의 지하조직 ‘민족민주혁명당’이 수사기관에 의해 그 존재가 밝혀지자, 그중 일부 세력이 조직적으로 민노당에 가입하면서 나타난 변화로 보인다. 지난 2월 민노당 중앙위원회는 북한 핵무기 보유선언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밝히려는 결의를 시도하다 실패한 바 있다. 민노당 내부에 주사파 계열의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또 최근 10·26 재보궐선거 패배로 인한 지도부 교체 이후 친북편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기존의 전국연합, 한총련 등에 국한됐던 반미친북 운동에 노동계와 시민운동 단체가 가세하면서 그 세가 커졌고, 그것이 통일연대라는 이름으로 조직된 것이다. 이후 반미친북 활동의 대부분이 통일연대의 이름으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통일연대의 실질적 활동은 전국연합과 범민련 회원들에 의해 주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40여 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지만 대부분 이름만 걸고 있을 뿐, 전국연합과 범민련측에서 집행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통상 연대기구는 초기에 여러 단체가 모이지만 집행부를 주도하는 단체나 인사들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은데, 통일연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자신이 가입한 연대기구가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나 행동을 하면 문제 제기를 하고 그래도 시정되지 않으면 탈퇴하는 게 상식이지만, ‘의견차이’니 ‘분열’이니 하는 구설이 꺼림칙해 대충 넘어가는 것이 어느샌가 습관처럼 돼버렸다. 진보단체들이 내부에서 벌어지는 비민주성과 전횡을 오랜 기간 온정주의로 대하면서 비판능력을 상실하고, 이런 치부를 건드리는 것을 오히려 내부의 단합을 해치는 이적행위로 간주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무슨 사안이 터지면 마치 자판기에서 커피가 나오듯이 연대투쟁기구들이 만들어지고, 이 기구는 참여한 단체들의 공유된 의사를 대변하기보다는 소수 주도세력의 기획대로 선명성만 추구하는 전철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친북운동권은 이런 담합 분위기를 악용해 폭넓은 연대기구를 만들어 세(勢)를 과시하면서 자신들의 뜻대로 주도하고 있다.

    전국연합 핵심강령은 ‘반미’

    ‘강정구 파문’의 발원지, 통일연대의 실체

    통일연대 인터넷 홈페이지 시작화면. ‘부시 체포하러’ 부산으로 가자는 구호와 함께 하단에 반미 투쟁기구의 홈페이지가 링크돼 있다.

    통일연대를 주도하는 전국연합은 대표적 재야단체이던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의 지도부(김근태, 이부영, 장기표, 이재오 등)가 1991년 대거 정치권으로 이동하면서 그 후신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하지만 다양한 주장이 공존하던 전민련과 달리 NL(민족해방) 계열이 주도권을 확고히 장악했을 뿐 아니라 거의 일색이 되면서 조직의 성격이 크게 바뀌었다.

    그 결과는 강령에 고스란히 반영돼 이른바 자주·민주·통일을 명확히 하고, 특히 통일운동에 적극성을 보였다. 조직적으로는 명망가 주도로부터 탈피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단체가입 중심으로 편성하면서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청년단체협의회, 한총련 등이 주도적인 조직으로 나서게 된다.

    전국연합의 강령을 보면 그 지향하는 바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최우선적인 것이 ‘반미’다. ‘친미 예속성을 타파하고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한다’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군 작전권을 회수하며 미국 등 외국과 맺은 불평등한 군사협정을 폐기한다’ 등이 핵심강령이다.

    통일분야에서는 ‘전 민족 구성원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남북정치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통일한다’ ‘남북의 제도적 차이를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의 정부, 두 개의 제도에 입각하여 통일한다’는 등 북한이 주장하는 정치협상회의 및 연방제 통일과 기본적으로 뜻을 같이한다. 경제분야에서는 ‘재벌해체’와 ‘가족농에 기초한 협업농 체계 구축’ 등을 제시, 시장경제 체제를 부정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국연합은 1990년대 중반 한 차례 위기를 맞는다. 이창복 상임의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범민련 해체를 둘러싼 극심한 내분을 겪으면서 정치권으로 이동하거나 일선에서 물러나고, 이 과정에서 조직이 크게 위축된 것. 또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한 후 북한의 조기 붕괴설이 득세하면서 친북운동권 전반이 약화되는 상황에 이른다.

    그러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 대북포용정책을 펴면서 전국연합 등 친북세력은 부활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친북운동은 활기를 띠게 됐으며 이 추세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러 친북단체 중에서도 핵심적인 전국연합은 여러 단체의 연합체이면서도 중앙이 나름의 주도성을 갖고 움직이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즉 중앙 집행부에서 직업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니셔티브를 행사하는 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

    전국연합은 또 1990년대 중반 이후 비교적 합리적인 인사들이 지도부에서 대거 이탈하면서 친북 성향이 더욱 강화됐다. 근래 전국연합은 자체의 독자적 활동보다는 사안에 따라 타 단체들과 통일연대와 같은 연대 틀을 만들어 사업을 진행하는 방식을 취한다.

    우리 민족은 ‘김일성 민족’?

    통일연대의 주도세력인 친북운동권이 대중의 정서를 무시하고 고립을 자초하면서까지 공공연하게 북한정권을 옹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다른 선택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들은 1990년대 중반 식량난을 계기로 북한 일인독재의 참혹한 실상이 세상에 알려진 상황에서도 잘못된 방향을 수정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당시 주사파의 대부라 불리던 김영환을 비롯한 주사파 핵심 인물들이 오류를 인정하며 방향전환한 것에 대해 ‘변절’이라고 공격했다. 소련과 동유럽 붕괴에 이은 또 한 번의 교정 기회를 놓치면서 스스로 퇴로를 없애버린 것이다.

    두 번째로는 DJ 정부에 이은 현 정부의 대북유화정책이 결과적으로 친북운동권에 일정한 공간을 만들어주면서 생긴 과실(果實)에 고무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남북 민간교류에서 북한이 범민련을 창구로 요구하고 정부가 이를 용인하면서 이들에게 일종의 권력이 생겼고, 방송매체를 위주로 발언 기회도 늘어났다.

    이들은 모든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고 그야말로 ‘결정적인 그날’이 멀지 않았다는 식의 논리를 끊임없이 주입해 동력으로 삼는다. 그만큼 현실과 점점 더 멀어지고 국민 정서와도 유리되면서 폐쇄적 울타리 안에서 자기만족에 빠지게 된다. 예를 들어 통일연대의 ‘통일일꾼 수련회’ 자료집에는 북한가요 ‘우리는 하나’가 버젓이 실려 있다. ‘우리는 하나, 태양민족 우리는 하나…’로 이어지는 노랫말을 보면 이 노래가 우리 민족을 ‘태양민족’, 즉 ‘김일성 민족’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북관계나 북미관계 등 국제정세를 바라보는 시각도 상당히 편향적이다. 다음은 지난 8월 열린 전국연합 중앙위원회의 정세진단 문건 내용 중 일부다.

    ‘향후 남북관계는 예측을 불허할 정도로 파격적인 진전을 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정세는 북미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남북관계가 급진전하고 민족공조로 미국과의 대결에서 승리해 나가는 양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큼.

    김정일 위원장의 특사면담 이후 남북관계는 급물살을 타고 있음. 회담방식의 변화, 개성 백두산 평양 등 관광확대, 8·15 축전에서 북측 대표단의 행보 등을 종합하면 이는 남북관계를 전진시키려는 북의 확고한 의지를 알 수 있음.’

    소수의 목소리지만…

    이런 맹목성이 가끔 해프닝을 낳기도 한다. 북한이 분단 고착화 시도라며 거부하던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1991년 전격적으로 결정하자 주사파는 갑자기 말을 바꿔야 했으며, 북한이 핵이 없다고 했을 땐 왜 핵이 없다는 북한을 괴롭히느냐고 하다가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고 선언하자 북한이 핵을 갖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말을 바꿨다.

    1980년대 말 최전성기를 맞았던 운동권 세력에 비하면 지속적인 이탈로 인해 그 10% 이하로 약화된 친북운동권이나 정권유지에 급급한 북한정권을 보면 우리가 그 위험을 과장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들과 일정한 견해 차이를 보이는 여권이나 시민단체들이 이들을 감싸거나 연대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지고 있다.



    2005년 1월 출범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에 통일연대 고문 한승헌 변호사가 임명되면서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다. 한승헌 위원장은 이른바 민변 계열 변호사의 대부 격이고 송두율 교수의 변호를 맡은 바 있으나, 통일연대의 맹목적 친(親)김정일 노선에 전면 동의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명목상 고문을 맡으면서 활동에는 관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런 식의 관계를 맺는 것이 결국은 친북운동권에 우산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강정구 교수 사태도 마찬가지다. 강 교수의 주장이야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 중 하나로 평가할 수 있지만, 정부가 강 교수를 감싸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국민은 큰 혼란을 겪어야 했다. 북한 달래기에 급급한 정부가 남한 내 친북세력에 관용을 베풀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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