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호

용틀임하는 용산, ‘제2의 강남’ 될까?

桑田碧海교통·녹지·문화시설 OK! 天井不知치솟는 땅값이 개발 걸림돌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입력2005-11-29 15: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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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군기지와 성매매 집결지, 노후 상가들로 칙칙했던 서울 용산구 일대가 대변신을 꾀하고 있다. 미군기지는 국내 최대 공원, 대규모 철도차량정비창은 국제첨단업무단지로 조성한다는 야심찬 계획이 마련돼 있다. 속속 들어서는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와 재개발 대상 토지 가격은 강남지역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용산은 과연 ‘강북의 금싸라기’인가.
    용틀임하는 용산, ‘제2의 강남’ 될까?
    서울시 지도를 펴면 한가운데 자리잡은 곳이 서울 용산 일대다.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 줄기는 중간쯤에서 완만한 U자 형을 그리는데, 그 움푹한 강 줄기에 에워싸인 지역이 바로 용산이다. 남산을 배경으로 한강을 접했으니, 곧 배산임수(背山臨水)다. 게다가 도심과 강남을 연결하는 교통요지다. 한강대교 북단에서 시작되는 한강로는 단숨에 서울역, 시청, 광화문으로 연결된다. 또한 한남대교는 강남과 강북을 잇는 대표적인 교량이다.

    그러나 이 좋은 지리적 여건은 용산 사람들의 삶을 기름지게 하기보다는 용산이 외국 군대의 단골 주둔지로 활용되는 단초가 됐다. 한강을 통해 상륙한 뒤 남산과 북한산을 점령하면 단시간에 서울을 함락시킬 수 있는 데다, 일이 잘못될 경우 퇴로까지 확보된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강남·북을 연결하는 길목이어서 군수물자 수송에 편리하다는 점도 여기에 한몫했다.

    용산과 외국 군대의 인연은 임진왜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군은 명(明)나라 침략을 겨냥해 지금의 원효로 4가와 청파동 일대를 보급기지로 활용했다. 1882년 임오군란 당시엔 청나라 병력이 주둔했다. 1904년 일본은 러일전쟁을 앞두고 용산 일대에 수만명의 일본군이 주둔할 수 있는 병영을 지었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100여 년간 용산을 외국 군대에 내주게 된 것이다. 일본은 광복 때까지 이곳에 조선군 사령부를 두었고, 광복 후엔 미군이 일본 병영을 접수했다.

    꿈틀대는 용산

    광복 직후부터 용산구 정중앙의 81만평 노른자위를 차지해온 미군기지는 도심에 인접한 용산지역 발전에 걸림돌이 됐다. 용산의 발전을 막은 또 다른 장애물은 한강과 수직으로 용산을 관통하는 철도와 용산역사 주변의 21만평 철도차량정비창이다. 철도시설은 미군기지와 함께 용산을 동서로 분할해 지역간 경제적 차이를 벌리는 요인이 됐다.



    그런 용산이 최근 용틀임을 하고 있다. 한강대교 북단에서 삼각지까지 높은 건물이라곤 국제빌딩이 유일하던 한강로 일대에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것만 봐도 용산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삼각지 전쟁기념관 맞은편 옛 상명여고 부지엔 지상 36층 규모의 ‘용산 자이’ 5개동이 완공돼 12월 입주를 앞두고 있고, 용산 자이와 용산역 사이에 28∼33층 규모로 세워진 ‘벽산 메가트리움’ 4개동은 이미 입주를 완료했다. 용산 자이와 인접한 ‘대우월드마크’는 2004년 11월 착공해 2007년 말 완공 예정으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대우월드마크는 지상 37층, 지하 6층의 주상복합건물로 공동주택과 업무·근린생활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렇듯 삼각지 인근의 꿈틀거림이 먼저 눈에 띄지만, 용산은 사실상 구(區) 전체가 개발대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각종 개발계획이 예정돼 있다. 용산가족공원 남측엔 주상복합아파트 ‘시티파크’와 ‘파크타워’가 건설 중이고, 신계동 신계주택재개발 특별구역엔 지상 25층짜리 아파트 9개동이 건립될 계획으로 최근 조합설립 인가를 받았다. 효창동과 용문동 일대 노후 주택단지도 주택재개발구역으로 지정돼 아파트단지로 변모한다. 서울역 앞 동자동 일대엔 도심 공동화 방지를 위해 관광호텔과 공동주택, 업무·판매 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한남동 보광동 이태원동 서빙고동 동빙고동 일대 33만평은 2003년 11월 뉴타운지구로 지정됐다. 용산구는 한강 및 남산 조망권을 확보한 한남 뉴타운지구에 탑상형(타워형) 고층건물을 배치해 반포대교 남단과 한남대교 남단에서 바라볼 때 남산의 사계(四季)를 감상할 수 있게 하고, 구릉지엔 저층의 고급 연립주택과 테라스하우스를 지어 안정적인 경관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명실상부한 부도심

    용산에 ‘개발 바람’이 불기 시작한 때는 2000년. 서울시는 2011년 도시기본계획안에 용산 부도심 지구단위계획안을 포함시켰다. 서울역에서 삼각지와 용산역을 거쳐 한강대교 북단으로 이어지는 한강로 주변 100만여 평을 2011년까지 체계적으로 개발해 명실상부한 부도심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계획안의 골자다. 서울시는 청량리·왕십리, 영등포, 영동, 용산을 4개 부도심으로 개발해 도심과 강남의 집중현상을 고르게 분산시키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서울시가 2011년 도시기본계획을 수정해 발표한 ‘2020 도시기본계획’ 역시 상암·마곡 지역의 부도심 개발 계획을 추가했을 뿐 용산 일대를 ‘국제업무단지’로 만든다는 계획엔 변함이 없다. 서울시는 도심과 여의도·용산·상암·강남을 국제업무 거점으로 육성해 강남·북 균형발전을 꾀할 방침이다.

    용틀임하는 용산, ‘제2의 강남’ 될까?

    용산역 앞 주상복합타운 조감도. 용산구는 현재 성매매 집결지와 노후상가가 즐비한 용산역사 전면을 주상복합 타운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용산은 또한 고속철 호남선의 시·종착역이며 2008년엔 경의선 용산∼문산간 복선전철이 완공된다. 2010년 완공 예정인 신공항철도도 용산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6월 공사가 시작된 신분당선(서울 강남∼성남 정자)도 장기적으론 용산까지 확장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용산이 강남·북을 잇고, 지방으로 통하며, 세계로 이어지는 관문 역할을 할 때가 되면 용산은 최고 높이 350m, 110층 규모의 랜드마크 타워가 세워진 국제업무단지로 변해 있을 듯하다. 용산역사 뒤편 14만여 평의 철도차량정비창 부지에 공항터미널과 컨벤션센터, 호텔 등을 유치할 장기계획이 바로 그것이다. 이에 앞서 용산구는 고속철 개통과 함께 새로 단장한 용산 민자역사 전면의 노후 상가와 성매매 집결지를 정비해 공원과 초고층 주상복합건물로 탈바꿈하는 내용의 도시환경정비구역지정계획안을 확정해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한 상태다.

    한강로를 사이에 두고 용산역사와 마주한 국제빌딩 주변 3만여 평과 태평양 사옥 부지 2000여 평에도 업무시설이 대거 들어설 계획이다. 이 때문에 한강로가 강북의 ‘테헤란로’로 탈바꿈할 것이란 소리도 들린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최막중 교수는 “용산이 강북 도심과 여의도, 강남을 연결하는 트라이앵글의 중심에 위치해 세 갈래로 갈라지는 오피스 수요를 끌어들일 목적의 업무단지로 개발되고 있다”며 “한강과 미군기지에 들어설 공원이 어우러져 자연친화적 업무환경이 조성되면 외국계 오피스 수요가 늘 것”이라고 전망한다. “최근 오피스 수요자들은 ‘어메너티’가 높은 프라임 오피스를 선호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 ‘어메너티(amenity·매력, 쾌적성)’는 공원 등 녹지공간과 문화·교육 등 생활환경의 쾌적성,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삶의 질에 대한 종합적 평가를 가리킨다. 최 교수는 “최근 들어 외자 및 고급 두뇌 유치에 어메너티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민족·역사공원 2009년 착공

    용산 미군기지의 2008년 평택 이전이 결정되고, 정부가 반환되는 미군기지를 민족·역사공원으로 건립키로 함에 따라 용산은 대규모 녹지를 확보한 친환경 주거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정부는 11월10일 국무총리실 산하에 용산공원건립추진단(단장·유종상 국조실 기획차장, 이하 ‘추진단’)을 설치하고, 이해찬 국무총리와 선우중호 전 서울대 총장이 공동위원장인 용산 민족·역사공원 건립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를 발족했다. 추진위는 역사·민족·문화·건축·도시계획·조경 분야의 민간 전문가 16명과 국무총리, 관계부처 장관, 서울시장 등 정부위원 10명으로 구성됐으며, 공원의 주제 및 명칭, 기본구상 등 용산공원 추진에 대한 중요정책을 심의한다.

    추진단은 우선 용산 민족·역사공원 건립을 위한 특별법을 마련해 내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또 올 연말부터 공원 조성 방식에 대한 공개토론회를 열고, 내년엔 공원 명칭을 공모할 예정이다. 2007년에 설계도를 공모하는 등 2008년까지 세부계획을 마련하면 2009년 착공해 2014년에 1단계 사업이 마무리된다는 것이 추진단의 설명이다.

    정부는 한데 묶여 있는 메인포스트(54만평)와 사우스포스트(24만평)는 공원화하되 메인 부지와 떨어져 산재한 8만∼9만평은 매각해 이전비용으로 충당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추진단은 공원 건립과 관련해 프랑스의 라빌레트 공원, 미국의 센트럴 파크와 크리시 필드, 캐나다의 다운스뷰 파크 등을 비교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미군기지에 대한 대규모 공원화 사업이 구체화함에 따라 공원 조망권 확보 여부가 인근 주상복합아파트 시세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닥터 아파트’에 따르면 11월4일 현재 한강로 1가 용산 자이 38평형은 7억원 내외, 59평형은 12억원을 넘어선다. 최초 분양가가 평당 900만∼950만원이던 점을 감안하면 프리미엄이 분양가 수준인 셈이다. 반면 용산 자이 뒤편의 공원 조망이 어려운 문배동 대우 이안용산은 33평형이 3억5000만원 선으로 분양가와 차이가 거의 없다. 비슷한 위치에 있는 문배동 CJ 나인파크도 34평형 기준으로 매매가가 분양가인 5억원선에 머물러 있다.

    전체 국보(國寶) 4분의 1 보유

    지난 10월28일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도 용산의 주거환경을 업그레이드하는 요소다. 용산 가족공원 내 9만3000평 부지를 차지한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규모. 한옥 대청마루를 연상케 하는 열린 마당을 중심으로 동관에는 상설 전시관이, 서관엔 도서실, 어린이 박물관, 공연장이 배치된 복합문화공간이다. 각종 탑과 불상을 전시한 야외 전시장 겸 산책로는 용산가족공원과 연결돼 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 한남동에 개관한 삼성미술관 리움은 한국의 국보급 전통미술과 근현대미술, 국제미술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시공간.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쿨하스가 각각 설계한 뮤지엄1, 뮤지엄2,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로 구성된 리움 건물은 그 자체가 현대건축의 흐름을 보여준다.

    용틀임하는 용산, ‘제2의 강남’ 될까?

    지난 10월28일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위)과 지난해 10월 개관한 삼성미술관 리움(아래)은 용산을 새로운 문화밸리로 만들었다.

    올해 초 문화재청의 집계에 따르면 용산구는 국내에서 국보를 가장 많이 보유한 기초자치단체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단 1건의 국보만 보유했던 용산구는 국보 57건을 소장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용산 이전이 이뤄지고, 삼성미술관 리움이 개관하면서 호암미술관 소장 국보 48점 중 24점을 옮겨와 총 82점의 국보를 보유하게 됐다. 이는 신라 천년 고도인 경주(60점)보다도 많은 수치. 서울에 있는 국보의 절반 이상, 전체 국보의 4분의 1이 용산구에 모여 있다. 1년 사이 국내 최고 박물관과 미술관을 확보한 용산은 도심과 강남을 능가하는 새로운 문화밸리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 저서 ‘대한민국 재테크사’를 펴낸 김대중 교보증권 자산관리영업지원부장은 “정부가 지난 30년간 강북 개발을 억제하고 강남 개발에 주력해온 데 반해 향후 부동산정책은 강남을 억제하고 강북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잡혀 있다”며 “이런 점을 감안하면 도심이나 강남까지 자동차나 지하철로 10∼15분이면 진·출입이 가능한 사통팔달의 교통망과 주거의 쾌적성, 빼어난 조망권을 확보하고, 동부이촌동으로 대표되는 부촌에 인접해 ‘상류층 프리미엄’까지 기대된다는 점에서 용산은 투자 전망이 밝다”고 말한다.

    이런 주변 여건이 호재로 작용하면서 용산에 새로 들어서는 주상복합아파트 시세는 평당 2000만원 안팎에 달한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에 따르면 국립중앙박물관에 인접한 시티파크 43평형이 8억6000만∼9억6000만원, 54평형은 11억2500만∼12억7500만원이다.

    다만 8·31 부동산종합대책 이후 거래는 뚝 끊겼다. 시세도 약보합세다. 시티파크 바로 옆에 지어지고 있는 파크타워는 지난 4월 분양 후 공원 조망이 가능한 51평형(오피스텔)에 최고 1억원의 프리미엄이 붙었으나 8·31 대책 이후 5000만∼8000만원으로 하락한 뒤 약보합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의 설명이다.

    “평당 3000만원까지 오른다”

    부동산 컨설팅업체 NDC의 이갑노 이사는 “올초까지 한강로 주변 주상복합아파트에 대한 문의가 많았으나 최근엔 전화문의조차 없다”면서도 “민족·역사 공원 건립과 국립중앙박물관 개관 등 호재가 잇따르고, 용산지역 개발에 대한 기대심리가 작용해 아파트 소유자들이 매매가를 낮추지 않고 있다”고 전한다.

    최근의 보합세와 부동산 거래 공백이 용산지역 부동산 가격이 제자리를 찾는 기회라는 해석도 있다. 안명숙 우리은행 PB사업팀 부동산재테크팀장은 “8·31 대책 발표 이후 용산뿐 아니라 부동산시장 전반에서 매매가가 하락하고 거래가 줄었다”며 “용산의 경우 과도하게 거품이 낀 터라 지금의 거래 급감은 투기수요가 줄고 실수요자 중심으로 교통정리가 되는 단계라고 본다”고 말했다.

    안 팀장은 또 “용산은 부동산 투자자들이 강남 다음으로 관심을 갖는 곳이지만 그 가치는 향후 1, 2년 사이에 판가름나는 것이 아니라 민족·역사공원과 국제업무단지 조성이 완료된 뒤 빛을 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용산은 강남과 입지 조건이 비슷한 만큼 장기적으로 평당 3000만원까지 오를 가능성이 높다”며 “우선 2008년 시티파크 입주 무렵이면 용산의 가치가 재평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용산을 국제정보, 업무관리, 주상복합 기능을 갖춘 국제업무단지로 건설하겠다는 서울시와 용산구의 야심찬 계획 앞에는 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 각종 개발계획이 예정돼 있으나 실질적으로 개발이 구체화된 곳은 몇 곳 안 된다. 용산역사 주변 국제업무단지 조성계획부터 불투명하다. 서울시와 철도청이 철도차량정비창 이전에는 합의했으나 비용 조달과 부지 확보 등 구체적 사안들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철도차량정비창 이전계획의 불확실성은 신공항철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인천공항과 도심을 연결하는 신공항철도가 용산을 통과해 서울역에 정차하는 것으로 결정됐고, 용산역 개통은 철도차량정비창 이전시기가 확정되고, 국제업무단지 조성계획이 가시화된 뒤로 미뤄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용산·이태원·한남 지구단위계획 구역이 정해졌지만 지구단위계획은 일종의 관리계획이라는 점도 한계로 작용한다. 지구단위계획안은 토지를 합리적·체계적으로 개발 또는 관리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건폐율 또는 용적률을 완화하는 것일 뿐 실질적인 개발은 필지별 토지 소유주의 의지에 달려 있다. 큰 틀에서 통일성을 갖고 개발되도록 공공이 나서 기준을 정해놓지만 사업 추진은 어차피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

    지구단위계획이 확정된 뒤 사업계획을 협의하고 시행사를 선정하는 것은 같은 구역 내에 토지를 소유한 지주들 소관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조율이 간단치 않다. 용산 지구단위계획안이 2001년에 확정됐음에도 대부분의 구역에 재개발조합조차 설립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나마 옛 상명여고 부지나 세계일보 부지, CJ공장 부지 등 필지가 넓고 소유자가 단일한 곳은 주상복합아파트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말뿐인 국제업무단지

    중앙대 김종보 교수(행정법)는 “현행법으로는 지구단위계획 구역을 정해도 필지별로 개발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며 “도시에 통일된 이미지를 주고, 체계적으로 개발하려면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현재 노웅래 의원이 발의해놓은 ‘도시광역개발특별법’을 만든 김 교수는 “한남 뉴타운지구 개발이 진척되지 않는 것도 현행 도시환경정비법으로는 뉴타운 사업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업 부동산컨설팅 업체로 광화문의 파이낸스센터, 강남 스타타워 등의 자산관리를 맡고 있는 BHP코리아 송혁진 상무가 용산이 업무단지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도 이 같은 ‘불투명성’ 때문이다. “용산구 곳곳을 업무시설로 만들겠다고 설정해놓았지만 개별 토지 소유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데다 땅값은 이미 오를 대로 올라 웬만한 부동산 개발업자는 사업을 벌일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것. 더욱이 민간 지주들은 재개발할 경우 업무시설보다는 아파트를 짓고 싶어하기 때문에 용산은 오히려 주거지역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실제 용산역사 인근 부동산중개업소들에 따르면 한강로변 토지 매매가는 평당 6000만∼7000만원. 길가에서 골목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가격이 낮아지는데, 그래도 평당 4000만∼5000만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최근 17평짜리 상가가 평당 6500만원에 거래됐다”며 “8·31 대책의 여파도 크지만 땅값이 워낙 비싸 일반 투자자들이 선뜻 나서지 못한다”고 전했다.

    업무시설이라곤 국제빌딩밖에 없는 상황에서 말뿐인 국제업무단지화 추진이 기업을 용산으로 끌어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에도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법률, 회계, 출판, 건축, 설계 등 업무 지원시설과 서비스 시설이 전무한 상태에서 고급 빌딩만 들어선다고 저절로 수요가 창출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들마저 ‘강남행’을 선호한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계획설계연구부 양재섭 연구위원이 1990∼2003년 매출액 순위 기준 3000대 기업의 소재지 이전 동향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0여 년 사이 서울 강북과 수도권 소재 144개 기업이 본사를 서울 강남으로 옮긴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서울 도심에서 강남으로 소재지를 옮긴 기업이 64개나 됐다. 분당 등 신도시와 안산 성남 용인 과천 등 경기 남부지역으로 옮긴 기업도 100곳에 달했다.

    최근 삼성그룹, 현대자동차, LG화재, 동양화재 등 대기업들도 강남권 사옥 신축 및 증축 계획을 잇달아 발표해 대형 오피스의 강남 집중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투자 자문업체 알투코리아의 조사에 따르면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모비스, 현대하이스코는 2004년에서 2005년 초에 걸쳐 종로구 계동 사옥에서 각각 역삼동 로담코빌딩과 랜드마크빌딩으로 이전을 마쳤고, 현대자동차는 양재동 사옥을 2006년 12월까지 증축할 예정이다. 삼성그룹은 사옥으로 쓰일 ‘삼성타운’을 서초동에 2008년까지 건설할 예정이며, 동양화재와 LG화재도 역삼동에 사옥을 신축한 후 2005년 하반기와 2006년 상반기에 각각 입주를 완료할 예정이다.



    기업 선호도 5.9%에 불과

    양재섭 연구위원은 “지난 10여 년간 본사를 이전한 479개 기업을 대상으로 장래 이전 희망지를 물었을 때 응답한 242개 기업의 33%가 최적 후보지로 서울 강남을 꼽은 반면 서울시가 업무단지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암·용산은 5.9%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기업이 강남을 선호하는 이유로 주변의 쾌적한 업무환경(23.5%)과 양호한 기반시설(19.9%) 등 물리적 환경 외에도 각종 업무 지원시설 풍부(19.6%), 교통 편리(16.6%) 등 다양한 입지적 장점을 들었다. 기업 본사 이전시에는 건물의 시설 수준(24.4%)과 임대료 수준(23.9%), 그밖에 교통여건(11.3%), 기업 내 조직간 업무연계성(7.1%)을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울 내에서 이전한 기업의 경우 임대료 수준을 가장 먼저 고려하고 있다.

    양 연구위원은 이런 추세를 감안할 때 용산이 도심과 강남의 오피스 수요를 분담하는 국제업무단지로 조성되려면 먼저 도심과 강남, 여의도와 차별되는 업무단지의 성격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도심과 강남, 여의도엔 각기 중추 행정, 국제무역·전시·IT, 방송·금융보험·증권 업체가 밀집해 있다. 양 연구위원은 “기업을 끌어들일 만한 기반시설과 각종 업무 지원시설을 갖추기 위해서는 공공기관, 대기업 등 핵심 기업(Key Company)이나 호텔, 컨벤션센터 등을 유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용산만 업무단지 조성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암·마곡, 수원, 송탄, 판교 등도 추진 중이라는 점을 고려해 과잉 공급되지 않도록 개발시기를 서로 조절하는 등 중장기적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울대 최막중 교수는 또 “용산은 강남과 도심을 남북으로 연결하지만 동서를 연결하는 기반시설이 상당히 취약하다”며 “한강로와 원효로를 잇는 교통 개발에 대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용산 개발계획을 평가해달라는 요구에 도시계획 전문가 대다수는 임오군란 이후 120여 년 만에 되찾은 미군기지 공원화라는 큰 계획이 확정된 만큼 용산의 개발 가능성 자체에는 의구심을 보이지 않았다. 대기업 소속 한 부동산 개발업자는 “10~15년 후 용산의 모습은 기대해볼 만하다”며 “용산은 미래 지향적 도시”라고 말했다. 하지만 단기간에 용산이 화려하게, 그것도 강남처럼 변할 거라는 기대에는 모두 고개를 젓는다. 용산은 강남이 될 수 없을뿐더러 왜 강남이 모델이 돼야 하느냐며 의문을 나타냈다. 택지를 조성해 바둑판처럼 도로를 구획하고, 성냥갑 같은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며, 천편일률적인 초고층 빌딩숲을 만든 것을 과연 모델로 삼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원로 도시계획전문가의 말은 눈부신 개발계획에 현혹돼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도시계획의 본질은 공공성이다. 그런데 도시계획이 자꾸만 공공성을 잃고 부동산 구매력이 있는 사람들의 이익만 대변하고 있다. 공공정책이 부자들의 수요에 맞춰가야 할 것인가. 공공성을 잃으면 도시계획도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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