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호

휴대전화 보조금 금지법, ‘일몰’이냐 ‘일출’이냐

“넌 주고싶고 난 받고싶은데, 누가 말려?”

  • 이나리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5-11-29 16: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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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3월 만료 예정인 ‘휴대전화 보조금 금지법’.정보통신부는 “다 풀었다간 큰일 난다”며 규제 연장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국회, 소비자단체, 공정거래위원회 모두 “말 안 된다” 고개 흔들고. 정통부의 고립은 소비자를 위한 것인가, 조직 보호 논리인가.
    휴대전화 보조금 금지법, ‘일몰’이냐 ‘일출’이냐
    휴대전화단말기 보조금 지급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정보통신부(이하 정통부), 소비자단체, SK텔레콤(이하 SKT) KTF LG텔레콤(이하 LGT) 등 서비스 사업자, 국회의원들이며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규제개혁위원회까지 나서, 한치 양보 없는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논점은 하나, 보조금 지급 금지를 계속 유지하느냐 마느냐이다.

    주무부처인 정통부의 안(案)은 이미 나와 있다. ‘특정 서비스 회사 3년 이상 가입자’에 한해서 2006년 3월부터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규제가 상당히 느슨해진 듯 보인다. ‘전면금지’했던 것을 일부나마 푸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사정은 정반대다. 전기통신사업법상의 ‘휴대폰 단말기 보조금 지급 금지’ 조항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2006년 3월 일몰(자연 폐지)을 상정한 한시법이었다. 그에 대해 정통부가 ‘일부만 풀어주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건 규제 완화가 아니라 규제 연장에 해당한다. 정통부 안대로라면 전체 소비자의 약 60%가 보조금 지급을 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생명이 다해가는 법을 왜 정통부는 굳이 되살려내려는 걸까. 그것도 공정위, 규제개혁위원회,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이하 과기정위) 소속 상당수 의원 등 ‘막강 세력’의 거듭된 반대를 뚫고. 소비자단체들의 시선도 싸늘해, “정통부는 소비자 권익은 안중에 없고 사업자 이익만 챙기는 부처”라는 비난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정통부 정책 결정과정에도 참여하는 한 대학교수는 “새 법안의 본질은 정통부를 정점으로, 통신사업자들을 하부구조로 하는 일종의 ‘관제 카르텔’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통신시장에 대한 규제 권한을 결코 놓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보조금 지급, 지금도 다 하는 일”



    물론 정통부는 이런 주장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새 법안은 보조금 지급 완전 자유화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한 일종의 완충장치일 뿐, 보조금 정책으로 시장을 좌지우지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정통부는 또한 일부 규제를 계속해나가는 편이 오히려 소비자에게 이익이며 통신시장 ‘정상화’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어느 쪽 주장이 진실에 더 가까운 걸까.

    원래 보조금은 비정상적이거나 불법적인 것이 아니다. 세계 각국의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이 보조금을 가장 유력한 마케팅 수단의 하나로 활용하고 있다.

    사업자들은 가입자 유치를 통해 얻는 미래 기대이익이 현재 비용보다 클 때 이 보조금을 준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여서, 1997년 PCS 사업자들의 이동통신 시장 진출로 고객 확보가 지상명제가 되면서 비로소 단말기 보조금 지급이 시작됐다. 그 덕분일까, 시장은 날로 커졌고 매출액도 급증했다. 단말기 제조업체들도 신이 났다. 1997~2000년 내수 시장 수요 폭발에 힘입어 제조업체들은 해외진출 확대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 막 무르익어가는 이동통신시장에서 승기를 잡으려는 사업자들의 보조금 경쟁이 도를 넘으면서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가 엊그제인데 낭비가 지나치다 ▲돈 많은 선발 사업자(SKT) 외에는 부담이 너무 커 경영부실이 우려된다 ▲단말기 제조 기술 국산화율이 낮아 무역수지가 악화되고 있다는 등. 결국 정통부가 나서 전기통신사업법에 ‘2003년 3월~2006년 2월 보조금 지급 금지’를 명문화하기에 이르렀다. 법을 어기면 시장점유율에 따라 차등 적용한 과징금을 내도록 했다. 한시적으로 운영키로 한 것은 공정위, 시민단체 등이 ‘시장경쟁 저해, 소비자 선택권 제한’에 대한 우려를 강하게 표명했기 때문이다.

    보조금 금지는 여러 긍정적·부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KTF, LGT의 수익성 개선에 일정 정도 힘이 되고 단말기 수요가 줄어든 것은 긍정적인 면. 그러나 모든 규제가 그렇듯 ‘그늘’도 있어,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보조금이 금지된 2000년 6월~2004년 9월 서비스시장 매출 손실액은 약 4조5000억원, 단말기 시장 매출 손실액은 약 3조6000억원에 이르렀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법으로 금지했고, 걸리면 무지막지한 벌금(누적 과징금 약 1547억원)까지 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보조금 지급은 근절되기는커녕 대부분의 대리점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KTF의 한 임원 얘기를 들어보자.

    “성장기 이동통신시장에서 단말기 보조금 지급은 ‘필연’에 가까웠다. 싼 가격에 단말기를 사려는 소비자의 요구가 컸음은 물론, 사업자도 ‘남은 땅 한 평’까지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전력투구했다. 대리점 또한 보조금을 붙여 많이 파는 것이 훨씬 이익이다. 단말기 제조사야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이동통신산업의) 네 주체가 모두 (보조금 지급을) 강력히 원하는데 시장원리상 어떻게 근절될 수 있겠는가.”

    결과는 다양한 편법의 성행이었다. 정부 조사가 강하냐 약하냐에 따라 시장 상황은 냉각과 과열을 반복했다. 어쨌거나 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보조금 금지법’이 이제 내년 2월이면 만료되는 것이다.

    SKT發 마케팅 전쟁 가능할까

    보조금 지급을 자유화해야 한다는 쪽은 3년 전 법 제정 사유들이 지금에 와선 대부분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모든 사업자가 흑자 구조를 갖게 됐으며, 부품 수입에 따른 무역수지 악화 또한 국산화율 제고로 거의 해소됐다. 무엇보다 ‘일몰 찬성론자’들이 강조하는 점은 사업자들이 과도한 단말기 보조금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졌다는 것이다. 포화 상태인 시장에서 제 살 깎아먹기식 보조금 지급 경쟁을 하는 것은 수익성 악화만 초래한다는 공감대가 이미 형성돼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정통부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정통부는 보조금 지급을 자유화할 경우 ▲마케팅 전쟁이 일어나 시장이 혼탁해지고 ▲자금력이 부족한 후발 사업자(특히 LGT)가 심각한 위기에 처하며 ▲시장 점유율이 고착화하고 ▲사업자의 요금 인하 요인이 없어져 결국 소비자에게 피해가 돌아갈 뿐 아니라 ▲단말기를 자주 갈아치우는 소비자만 혜택을 보게 돼 형평성이 무너진다고 지적한다. 정통부 양환정 통신이용제도과장은 “1999년 시장 규모가 8조5000억원일 때 쓰인 보조금은 3조원에 달했다. 그러나 보조금 금지가 적용된 지난해는 시장 규모가 16조원임에도 보조금은 1조원밖에 쓰이지 않았다. 법적 제재가 시장 과열을 막는 데 효력을 발휘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보조금 금지가 해제되면 정말 마케팅 전쟁이 일어날까. 유감스럽게도 ‘과학적이면서 중립적인’ 정답은 없다. 관계 부처는 물론 사업자, 시민단체, 경쟁정책 전문가 모두 나름의 ‘철학’과 논리에 따라 상반된 답을 내놓고 있다. 정통부 고위관계자마저 “컵에 물이 ‘반이나 있다’고 보느냐 ‘반밖에 없다’고 보느냐의 차이”라 말할 정도다.

    어쨌거나 정통부와 KTF, LGT는 “월등한 자금력을 가진 SKT가 치고 나가면 과당경쟁이 불붙을 수밖에 없고, 이를 제어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규제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SKT측은 “법이 일몰된다 해도 우리가 먼저 보조금 전쟁에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 강조하고 있다. “SKT는 이미 2007년말까지 시장 규모를 52.3% 이상 키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무엇보다 SKT 주도로 이동통신 시장의 경쟁이 심각하게 제한될 경우 정통부는 SKT와 신세기통신의 합병인가 조건을 통해 추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주가 하락을 감수하면서 보조금을 과다 사용할 이유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LGT의 수익성 악화로 인한 퇴출 우려에 대해서도 “LGT 퇴출은 독점 사업자(SKT)에 대한 요금규제 강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SKT가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SKT 관계자는 “지금까지 통신위원회 조사 결과를 보면 항상 SKT보다 LGT 등 후발사업자의 평균 보조금 지급액이 더 컸다. 지난 9월에는 통신위원회가 ‘후발사업자들이 시장 혼탁을 주도하고 SKT는 불가피하게 맞대응하는 것일 뿐’이라는 보도자료까지 내지 않았느냐”고 강조했다.

    휴대전화 보조금 금지법, ‘일몰’이냐 ‘일출’이냐


    ‘과열’은 안 되지만 뺏어오는 건 좋다?

    SKT는 내처, 규제 해제보다 오히려 정통부의 ‘3년 이상 가입자 보조금 지급 안’이 과당경쟁을 불러올 가능성이 더 크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통부 안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기는 KTF도 마찬가지다. 이유는 이렇다.

    각 사업자의 ‘3년 이상 가입자’ 수를 보면 SKT는 약 1000만명, KTF는 400만명, LGT는 150만명이다. 이들에게만 보조금 지급이 허용되는 만큼 SKT에는 550만명, KTF에는 1150만명, LGT에는 1400만명 규모의 새 시장이 열리게 된다. SKT 측은 “아무리 SKT라도 1000만명이나 되는 고객 중 단말기 교체 희망자를 모두 붙잡아두기는 힘에 부친다. 반면 LGT는 지켜야 할 고객 수는 작으면서 빼앗아올 고객 수는 많아져, 한정된 마케팅 비용을 새 가입자 유치에 효과적으로 쏟아부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저런 계산에 따라 KTF는 보조금 금지를 계속 유지할 것을 강력히 원하고 있다. LGT는 정통부 안에 대체로 동의하나 더 강력한 규제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LGT측은 “보조금은 5만원 이상 못 쓰게 해야 한다. 와이브로 등 신규서비스 단말기에 대해 보조금을 40%까지 지급할 수 있게 한 것도 철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통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사업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끝이 없다. 자사의 득실만 따지기 때문”이라며 법안 마련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 때문일까, 정통부 안은 공청회를 거치면서 주요 내용이 계속 바뀌었다. 사업자들의 이런저런 요구와 문제제기를 그때그때 수용한 까닭이었다.

    그러면서 애초 규제 완전폐지 충격 완화와 소비자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했던 법안은 점차 ‘유효경쟁정책(정통부가 통신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하려 선발 사업자를 규제하고 후발 사업자를 간접 지원하는 정책)’의 면모를 보이게 됐다. 처음에는 “자사 3년 이상 가입 고객에게만 보조금 지급 가능”을 명시했다가, “그러면 타사 고객을 데려올 수 없어 시장이 고착된다”는 KTF·LGT의 문제제기에 밀려 “타사 3년 이상 고객도 번호이동제를 통해 넘어올 땐 보조금 지급”으로 방향을 튼 것이 대표적 예다.

    결국 “보조금 경쟁 과열을 막는 것이 목표”라 해놓고 “3년 이상 ‘우량 가입자’를 빼앗아오는 경쟁은 해도 좋다”는 이율배반적 결론을 내놓게 된 것. 정통부 안이 “소비자가 아닌 사업자만을 위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사무처장은 “정통부 안은 단말기 보조금을 사실상 유효경쟁정책 수단으로 쓰겠다는 것”이라며 “안 그래도 그 ‘유효경쟁’이란 것 때문에 요금경쟁도 못하고 있는 판에 영업 경쟁까지 하지 말란 얘기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정통부 관계자도 “앞뒤 일관성이 없다는 점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A사의 3년 이상 고객이 B사에 기여한 바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하지만 논리적 일관성에만 매달리다 보면 소비자 혜택이 줄어든다. A사에서 B사로 바꾸고 싶어도 보조금을 못 받으면 주저앉을 가능성이 크지 않으냐”며 나름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어쨌거나 정통부 안대로 가면 최소한 ‘3년 이하 가입자’에 대한 불법 보조금 지급 행위만큼은 근절될까. 일선 대리점은 물론 학계 인사들도 “가능성이 낮다”고 입을 모은다. “아무리 강하게 규제하고 높은 과징금을 매겨도 소비자의 필요(needs)와 대리점의 이윤이 맞아떨어져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시장 형성을 제어할 수는 없다. 또 다른 불법을 양산하게 될 뿐이다.” 한국규제학회 소속의 한 대학교수의 지적이다.

    소비자단체 “보조금이라도 달라”

    하지만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통부 예측대로 보조금 규제가 요금 인하로 이어질 수만 있다면 소비자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일 것이다. 정통부는 보조금 지급을 완전 허용하면 사업자들의 수익성이 악화돼 요금을 내릴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서울YMCA의 김종남 국장은 “보조금과 요금 인하는 아무 상관이 없다. 보조금 지급이 자유롭던 1999년, 2000년에 오히려 (요금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그간 요금 인하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은 시민단체의 압력과 여론 형성, 총선 같은 정치적 이슈였지 보조금 지급 유무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나라 통신요금을 좌지우지하는 건 사업자가 아니라 정통부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정통부측은 “여론의 압력이 있다 해도 사업자가 (요금을) 인하할 힘이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지금 안 대로라면 SKT만 해도 지켜야 할 가입자가 1000만명이나 되는 만큼, 보조금으로 다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은 좋은 요금제로 관리하려 들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또한 ‘모순’인 것이, SKT의 아무리 ‘좋은 요금제’도 정통부의 인가 없이는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반대로 정통부가 요금 인하의 필요성을 역설하면, 또 못 들은 척할 수 없는 것이 SKT 처지다. 결국 칼자루를 쥔 것은 이러나 저러나 정통부인 셈이다.

    ‘보조금과 요금 인하가 직접 연결돼 있느냐’의 문제는 정통부 안의 또 다른 명분인 ‘소비자 형평성’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요지인즉, 보조금 지급을 전면 허용하면 요금 인하가 불가능해져, 단말기를 자주 바꾸는 사람만 혜택을 보고 장기(長期) 사용자는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정통부 고위관계자는 “단말기를 오래 쓰는 사람이 보조금 혜택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법안의 목적”이라 설명했다.

    그러나 “보조금 금지가 요금 인하로 이어진 적은 없다”는 시민단체쪽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정통부의 주장은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경영학적 관점에서 볼 때, 다른 소비자의 후생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 누군가의 후생이 증가한다면(보조금을 받는다면) 이는 전체 이용자 후생의 총합이 증가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또 “모든 가입자가 일정 기간 후에는 단말기를 교체해야 하기 때문에 보조금 자유화가 소비자 형평성을 제약한다고는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통부 관계자들은 “왜 꼭 3년 이상이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똑 떨어지는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단 숫자가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의 41.1%로 적당하고, 3년간 지속될 법 적용 기간 중 한번씩은 혜택을 보도록 하자는 것”이란 설명 정도가 다이다.

    정통부 ‘판도라의 상자’ 여나

    휴대전화 보조금 금지법, ‘일몰’이냐 ‘일출’이냐

    ‘불법’ 보조금 지급 사실을 홍보하고 있는 서울 서대문구의 한 휴대전화 판매점.

    새 규제안의 경우 복잡한 규칙 때문에 소비자들이 혼란을 겪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SKT의 한 임원은 “예를 들어 실제로는 보조금 지급 대상이 아닌데 ‘된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해지나 재가입, 번호이동이 한 번도 없이 3년이 지났어야 하는데 보조금을 받기 위해 그랬든, 대리점이 몰래 농간을 부렸든, ‘해지 후 재가입’ 절차를 밟은 이가 꽤 많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홍익대 김종석 교수(경영학)는 “정통부 안대로라면 정부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입한 지는 2년밖에 안 됐지만 한 달 평균 15만원의 요금을 내는 사람과, 가입한 지 4년 됐으나 사용료는 매달 3만원뿐인 사람 중 누구의 기여도가 더 높으냐. 소비자 형평성을 따진다지만 결국 대단히 차별적인 규제”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정통부 관계자는 “일부 착각이 있을 수 있고 민원도 예상된다. 하지만 각 경우의 해결책을 약관에 하나하나 반영하면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의 말은 사업자나 소비자에겐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법 적용이 더 많은 예외로 가득한 더더욱 복잡한 형태가 될 것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리점이나 인터넷상에서 ‘3년 이상 된 번호’를 매매하는 일마저 벌어질 수 있다. 모두 큰 사회적 비용이 따르는 것들이다.

    규제정책 전문가인 한 대학교수는 정통부 안에 대해 “학문적으로 볼 때 전형적 저질 규제다.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맞지 않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김종석 교수 또한 “보조금 지급은 전면 허용되어야 한다”며 “예정된 쇼크는 쇼크가 아니다. 정통부는 자꾸 시장에 줄 충격을 말하는데, 보조금 금지가 없어질 거라는 건 3년 전부터 예고돼온 일”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아울러 “이미 시장엔 보조금이 횡행하고 있다. 관행이 된 불법인 만큼 양성화하는 편이 낫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혼란’을 상정해 규제부터 하고 보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일몰 후 현행법으로 제어할 수 없는 명백한 문제가 발생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책을 내놓으면 될 일 아니냐는 것이다.

    문제제기가 많은 만큼 정통부는 법안 제정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선 그 첫 관문인 부처간 협의에서부터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처간 협의에는 재정경제부, 공정위, 정통부, 규제개혁위, 법제처, 법무부가 참여한다. 이중 공정위와 규제개혁위의 적극적 반대가 확실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이미 보조금 규제를 ‘정보통신분야 규제개선 과제’로 선정했다. 같은 해 10월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 때에도 제출 자료를 통해 “단말기 보조금 금지는 통신시장 서비스 경쟁을 저해하고 소비자 이익을 침해하므로 한시적 존속기간이 끝나는 대로 폐지토록 부처간 협의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행정입법 성공 가능성이 낮자 정통부는 11월초, 의원입법을 시도했다. 정통부 안에 호의적이던 서혜석 의원이 의원입법을 검토키로 했다. 하지만 서 의원도 정통부 안만을 들고 나서지는 않았다. ‘보조금 허용 + 약관 규제 + 보조금 지급기준 삽입’이란 독자안을 마련한 것. 어쨌거나 정통부는 이를 실마리 삼아 11월11일 서둘러 당정협의를 시도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참석 의원 상당수가 3년 이상 가입자 허용에 대한 기준, 소비자 후생 저하, 부처간 협의 등을 문제삼으며 난색을 표한 것이다.

    특히 부처간 협의가 한참 진행 중인 데 의원입법을 밀어붙이려 한 점에 대해서는 시민단체 등으로부터도 비난이 쏟아졌다. 공정위만 해도 당정협의 전날까지 정통부가 의원입법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기자가 그 사실을 알리자 공정위 주무과장은 “법안에 대한 검토조차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냐”며 “그럴 리가 없다”는 말을 되뇌었다.

    전후 사정이 궁금해 정통부 관계자에게 “왜 공정위에 알리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공정위가 마이크로소프트 심결 문제로 무척 바쁜가 보더라. 재정경제부와 산업자원부에는 알렸다”는 다소 군색한 답을 내놓았다.

    정통부 안이 여당의 당론 수렴을 통해 의원입법화할 가능성이 희박해진 지금, 정통부는 다시 행정입법에 전력투구한다는 방침을 정한 상태다. 정통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물론 (타 부처나 국회) 설득에 실패해 일몰로 갈 수도 있다. 그로 인해 벌어질 혼란에 대해선 정통부 안에 반대한 모든 이가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이해득실로 얽히고설킨 복잡한 사안이지만, 보조금 문제를 가늠할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는 소비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정통부측은 이마저 “우리 소비자는 아직 ‘보조금은 내 호주머니에서 나간 돈’이라는 인식이 희박하다. 소비자의식이 낮은 만큼 어차피 사업자나 대리점이 이끄는 대로 움직일 것”이라며 크게 개의치 않는 모양새다. 그러니 유명 인터넷 가격비교 사이트 ‘다나와’의 설문에서 조사대상자 889명 중 89%가 보조금 지급에 찬성했다거나, 국내 최대 휴대전화 단말기 이용자 커뮤니티인 ‘세티즌’ 조사에서 응답자(3379명)의 90.7%가 보조금 지급을 원했다는 뉴스 는 유념할 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소비자는 ‘왕’이요 ‘갑’

    그렇더라도 정통부는, 고심 끝에 내놓은 법안에 대해 각계에서 “조직 보호 논리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는 데 대해서만큼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정면대응해야 한다. 정통부 안이 국민 복지 향상의 일념으로 마련된 것임을 증명해 보여야 하는 것이다. 타 부처와 소비자단체, 국회의원과 각계 전문가들의 다양한 문제의식이며 대안에 열린 자세로 귀기울이고 토론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그 한 방법일 것이다. 누가 뭐래도 시장민주주의 사회에선, 소비자가 ‘왕’이요 ‘갑’이다. 그리고 정통부의 ‘왕’은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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