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호

자녀 특·목·고 보내 행복하십니까?

사교육비 월 700만원, 자기 비하 못 이겨 정신과 치료…

  •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5-11-30 10: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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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위권 중학생에게 특목고는 선망의 대상이다. 특목고는 올해 입시에서도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며 변함없는 인기를 과시했다. 그러나 특목고 진학이 그저 장밋빛이기만 할까? 열등생으로 전락한 패배감에 심리치료를 받고, 과도한 경쟁에 건강과 의욕을 상실한 특목고생이 적지 않다. 학부모는 고액 과외를 불사하며 자녀 기(氣) 살리기에 나선다. 화려한 간판 뒤에 숨은 특목고 학생들의 우울한 그림자.
    #1.“정신과 치료, 학교엔 비밀인데…”

    자녀 특·목·고 보내 행복하십니까?
    나는 서울 A외고 2학년에 재학 중인 17세 여학생이다. 남들은 내가 공부를 잘해 외고에 다니니 좋겠다며 부러워한다. 사실 중학교 땐 전교 1, 2등을 도맡아 해서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던 내가 고등학교에서 열등생으로 분류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외고에 입학해 처음 받아든 성적표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숫자가 찍혀 있었다. 반에서도 중위권을 훌쩍 넘긴 등수였다. 처음엔 워낙 잘하는 친구들끼리 모여 그렇겠지, 좀더 열심히 하면 금방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거야 하고 생각했다. ‘2학기 중간고사에는 달라질 거야, 아니 기말고사엔 성적이 오를 거야….’ 스스로를 위로하며 2년 동안 애써봤지만, 성적은 그 자리에서 벗어날 줄 몰랐다. 중위권을 넘는 숫자가 내 진짜 등수임을 인정하는 순간, 나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나를 더 견딜 수 없게 하는 것은 부모님의 달라진 눈빛이다. 공부 잘한다고 딸을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던 두 분은 이제 내가 부끄러운 모양이다. 어머니는 남에게는 내색조차 하지 않고, 성적이 안 나오는 딸 때문에 혼자 속앓이를 하신다.

    요즘 나는 교실에선 멍 하니 앉아 있고, 같은 반 친구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교실에 감도는 팽팽한 긴장에 숨이 막힌다. 학원도 빠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이 딱히 오르지 않을 거란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난 이제 선생님의 주목을 받는 기대주가 아니라, 그저 교실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조용한 학생에 불과하다. 일반고에 다녔다면, 이렇게 자기비하에 빠지진 않았을 텐데….



    최근엔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 물론 학교엔 비밀이다. 내가 고등학교에서 이토록 힘겨워한다는 사실을 알린다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학원 선생님은 내게 “일반고로 전학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하지만, 망설여진다. 일반고 친구들에게 ‘부적응자’로 낙인찍힐까봐 두려워서다. 외고에 입학한 것 자체가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2. “1등 엄마가 못 돼서 미안해”

    나는 올해 아들을 서울 C과학고에 입학시킨 40대 주부다. 지난해 아들의 과학고 합격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내 아들이 전국에서 똑똑하다고 소문난 수재들과 경쟁해 150여 명 안에 들었으니, 정말 자랑스러운 일 아닌가.

    그런데 요즘 아이가 무척 힘들어한다. 언젠가 시험을 치른 아들이 말했다.

    “엄마! 나는 두 번째 문제를 몰라서 틀렸는데, 다른 애들은 일반화학을 미리 공부하고 와서 모두 쉽게 풀었대요. 친구들은 화학Ⅰ, 유기화학까지 다 공부하고 왔는데 나는 이제 시작이잖아요. 아무리 노력해도 선행학습을 많이 해온 친구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어요. 미리 공부를 못 해와서 꼭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아요.”

    다른 엄마들처럼 발빠르게 정보를 입수해 아들이 고등학교 과정을 다 공부하고 입학하도록 이끌지 못한 것이 이렇게 후회될 줄이야…. 나는 아들이 과학고에만 입학하면 모든 게 끝나는 줄 알았다. 그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요즘은 ‘아이가 1등이면 엄마도 1등’이라는데, 나는 정말 무능한 엄마인가보다.

    다른 학부모들 얘길 들어보니, 전교 60등 안에 들어야 조기 졸업해서 카이스트에 진학할 수 있다고 한다. 1~2점 차이로 등수가 천양지차로 갈리는 살벌한 현장에 있으니, 아이는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일 것이다. 조기 졸업을 목표로 한 아이들은 2학년 1학기까지 고등학교 전 과정을 끝내야 한단다.

    과도한 학습 부담 때문에 아이가 주저앉을까봐 걱정이다. 차라리 일반고에 갔다면, 스트레스를 덜 받고 명문대에 무난히 진학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요즘 아이가 부쩍 체력도 떨어지고, 자신감도 잃은 것 같다. 기숙사에서 돌아온 아이의 축 늘어진 어깨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다시 부는 특목고 열풍

    ‘외고 특별전형 경쟁률 껑충’ ‘특목고 인기 다시 살아난다’…. 11월초 언론은 예년보다 상승한 외고, 과학고의 경쟁률을 알리며 일제히 ‘특목고 열풍’을 보도했다. 내신강화를 골자로 한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이 발표되면서 지난해 잠시 주춤했던 특목고의 인기가 올해 되살아난 것. 이는 2008학년도 입시 이후 대학별 고사와 다양한 특기자 전형이 강화되면서 특목고 출신이 진학에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란 여론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특목고는 ‘특수목적고등학교’의 준말로 예술계 고교나 실업계 고교도 포함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과학고나 외국어고, 자립형 사립고, 국제고 등을 지칭한다. 최근 ‘누가 뭐래도 우리는 민사고 특목고 간다’는 제목의 책이 인기를 모을 만큼,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특목고 예찬’이 절정을 이룬다. 평준화 고교에서 접할 수 없는 고급 커리큘럼과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이 특목고의 가장 큰 장점. 게다가 고교 시절 뛰어난 학생들과 사귀면 훗날 훌륭한 인맥을 쌓을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그러나 특목고 진학 열풍의 이면엔, 앞서 등장한 두 사람의 고백처럼 고통스러운 부작용이 도사리고 있다. 특수한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건립된 특목고가 ‘명문대 진학을 위한 입시교육기관’으로 전락하면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성적에 특히 민감한 상위권 학생들이 뛰어난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좌절을 내면화하고 극도의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지난 봄 서울과 인천의 과학고, 대전 지역의 외고에서 전해진 특목고 재학생의 자살 소식은 특목고 교육의 폐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과열된 경쟁을 피해 특목고를 떠나는 학생도 종종 눈에 띈다. 올해 서울의 명문대에 입학한 이모(19)양은 서울 A외고 1학년 재학 시절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매번 피 말리는 등수 경쟁으로 초조해하기보다, 더 넓은 세상을 체험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창궐로 고2 때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모교인 외고가 아닌 일반고행(行)을 택했다.

    “수업시간에 쪽지시험을 보면 점수를 공개했어요. 선생님이 ‘다 맞은 사람, 한 개 틀린 사람’ 하고 물으시면, 학생들이 손을 드는 거죠. 하루는 우리 반 과반수 의 학생이 쪽지 시험에서 100점을 맞았는데, 전 하나를 틀린 거예요. 그것 때문에 예민해져서 다음 수업 시간 내내 양호실에 누워 있었어요.

    학교에선 모의고사 시험 성적을 전교 1등부터 50등까지 붙여놓곤 했어요. 중학교에서 1, 2등 하던 학생들끼리 0.1~0.2점 차로 경쟁하는데, 50등 안에 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죠. 동아리 선배가 ‘넌 왜 50등 안에 못 드느냐’고 물으면 어찌나 자존심 상하던지…. 그런데 내 점수면 일반고에선 전교 1, 2등도 가능하겠더라고요.

    매번 이렇게 가슴 졸이며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반 친구의 70%가 외국에서 살다온 걸 보고, 저도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게 됐죠. 짧은 중국 유학 생활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정말 즐거웠어요. 성적만으로 상대를 평가하지 않는 것도 좋았고…. 그래서 주저 없이 일반고를 택했어요. 외고 출신이라 ‘왕따’ 당하지 않을까 고민도 했는데, 친구들이 따뜻하게 맞아주더라고요. 뛰어난 친구들 사이에서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것보다 마음 편한 일반고 생활이 훨씬 행복해요.”

    “무조건 서울대 가라”

    특목고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에서 좌절하는 학생들의 문제를 그저 ‘나약한 심신’ 탓으로 돌려야 할까. 서울 모 대학 교육학과 J교수는 “우수한 학생들을 싹쓸이해간 특목고가 다시 그 아이들을 비교육적인 방법으로 서열화하고 있다”며 “특목고가 설립 취지에 맞게 특성화 교육을 실천하기보다 입시교육에 올인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대학 입학처장을 맡았던 그는 “우리 대학에 진학한 특목고 출신 학생들이 ‘SKY(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못 간 것에 대한 피해의식과 고등학교 때 느끼던 열등감을 표출하는 경우가 많더라”며 “개개인의 장점을 살리기보다 성적으로 주눅들게 만드는 교육행태가 우수한 학생들에게 자기비하감만 심어줬다”고 비판한다.

    서울 C외고 출신 김만석(26·가명)씨는 고등학교 시절 추억을 씁쓸하게 떠올린다. 그는 서울 상위권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된 직장도 얻었지만, 모교를 찾아가는 일은 마냥 껄끄럽다고 한다.

    “담임선생님이 반에서 1~5등 하는 애들은 모두 당신의 성을 붙여서 이름을 부르시곤 했죠. 면담할 땐 성적순으로 불려 나갔고요. 선생님은 10등 이후의 아이들 이름은 거의 기억을 못하셨어요. 그냥 ‘야!’ 하고 부르셨죠.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그런 대접을 받아본 적은 없는데….

    ‘서울대에 몇 명이나 입학하느냐’가 관건이다 보니, 입학원서 쓸 땐 재미난 풍경도 벌어져요. 담임선생님은 학생에게 ‘서울대 낮은 학과를 지원하라’고 권유하는데, 학생과 학부모는 ‘특차로 사립명문대 상위학과에 가겠다’고 우겨 밤새 승강이가 벌어지는 거죠. 학교 간판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원하는 전공을 공부하는 것 아닌가요?

    자녀 특·목·고 보내 행복하십니까?

    6월13일 전교조는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서울 종로구 국제고, 구로구 과학고 설립에 대한 반대 견해를 밝혔다.

    서울대에 못 가는 학생은 선생님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어요. 제 입학원서를 쓰시는 담임선생님을 보면서 ‘이분이 내게 얼마나 관심을 갖고 계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졸업할 때 서울대 진학생은 30만원, 연·고대 진학생은 20만원, 나머지는 10만원씩 모아서 담임 선생님께 드렸어요. 이건 공공연한 비밀이자 전통이죠. 입시지도 하느라 고생하신 선생님께 감사드리는 건 좋은데, 그것도 학교별로 ‘계급차이’가 나니 유쾌하진 않았어요.”

    물론 학생을 성적대로 줄 세우는 입시위주 교육의 폐해는 특목고뿐 아니라 일반고 전반에서도 드러난다. 문제는 상위권 학생일수록 성적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최근 특목고에 다니며 받는 스트레스로 인해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받는 학생과 학부모가 꾸준히 늘고 있다.

    특목고 적성, 일반고 적성

    교육컨설팅업체 와이즈멘토의 조진표 대표는 “자녀가 주변에서 돋보이고 칭찬 받아야 더 힘을 내서 공부하는 스타일이거나 소심하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라면, 특목고에 보내지 않는 편이 낫다”고 조언한다. 이런 유형의 학생은 특목고에서 중하위권으로 뒤처지면 자신을 ‘문제아’라 여기고 자책하기 쉽다는 것. 일반고에서 우수한 실력을 발휘할 학생이 특목고에서 오히려 자신감을 잃고, 중하위권 학생의 부정적인 행동 양상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과도한 경쟁 속에서 무리하게 공부하다 보니 결승점에 다다르지도 못한 채 지쳐버리기도 한다. 서울 모 외고에서 전교 1등을 다투던 윤민정(가명·18) 양은 고3이 된 올해 4월 모의고사와 내신성적이 모두 바닥권으로 떨어졌다. 입학 당시만 해도 중간 정도 성적이던 윤양은 독한 마음을 먹고 하루에 3~4시간만 자며 공부에 매달려 7개월 만에 성적을 최상위권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윤양의 심신에 이상신호가 켜졌다. 체력 안배에 실패한 그는 공부할 기력도, 학습에 대한 흥미도 잃어버렸다.

    수험생 컨설턴트이자 한의사인 황앤리 한의원 황치혁 원장은 “특목고의 빡빡한 커리큘럼과 숨 막히는 경쟁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일부 특목고 학생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한계 이상으로 몰아넣다가 결국 스프링이 탄성 한계를 넘어서듯 의욕을 완전히 상실한다”고 설명했다. 체력 저하와 성적으로 고민하는 많은 특목고 학생을 상담해온 그는 “특목고에서 심리적·정신적 타격을 입고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도 적지 않은 만큼 특목고의 교육 시스템이 늘 높은 학습 성과를 보장한다고 믿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목고 선택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인은 학생의 적성이다. 그러나 학부모는 자녀의 특기와 적성은 무시한 채, 그저 성적에 맞춰 민족사관고, 과학고, 외국어고 순으로 보내려 하는 우를 범한다.

    올해 아들을 서울 B외고에 보낸 어머니 이모(47)씨는 “성적이 과학고에 들어가긴 아슬아슬해 외고에 진학시켰는데, 아이가 이과를 지망해서 고민스럽다”고 털어놨다. 2008학년도 입시안에 따라 특목고에서 설치(전공)학과 이외의 별도과정을 개설하는 것이 금지됐기 때문. 외고에서 어문 계열이 아닌 의대, 한의대 등 이공계열을 지원할 경우 고등학교에서 해당 과목을 공부할 수 없다. 이씨는 “아들을 학원에 보내 이과 수학 및 과학을 미리 공부시키고 있다”며 “이공계로 진학하기에 불리한 내신과 교육 여건을 감수하고서 아이를 외고에 보낸 것이 바른 선택이었는지 늘 갈등한다”고 말한다.

    특목고 진학 후 뒤늦게 진로를 바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는 상황도 벌어진다. 교육컨설팅업체 에듀플렉스의 이병훈 감사는 “외고에 다니던 학생이 학습 부적응으로 인해 자신감을 잃고, 과거 미술을 배웠던 경험을 살려 예고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교육전문가들은 “무작정 성적에 맞춰 특목고에 진학했다가 고교 시절이 오히려 자녀의 인생에 ‘독(毒)’이 되기도 한다”며 “자녀가 무엇을 원하고 잘하는지를 파악해 그 특성에 맞는 특목고를 선택하라”고 입을 모은다. 외국어에 소질이 있거나 외국 대학에 진학하길 원한다면 외고나 민족사관고를, 이과에 소질이 있다면 과학고를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것이 특목고의 설립 취지를 제대로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사교육비 상승 주도하는 외고

    내신 비중을 강화한 2008학년도 입시안이 특목고생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우선 외고나 과학고의 경우 동일계열에 진학하면 다양한 특별전형에 지원할 수 있어 내신에서의 불리함을 극복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일반고 학생과 특목고 학생이 비슷한 수능 성적을 받았을 경우, 내신이 좋은 일반고 학생이 대학과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훨씬 넓은 편. “일반고에 다녔다면, 그 수능 점수로 더 좋은 대학, 좋은 과에 갈 수 있었는데…” 하며 아쉬워하는 특목고 출신도 적지 않다.

    ‘평준화 보완과 사교육비 절감의 구원투수’로 여겨진 특목고의 사교육비 실태는 어떨까. 서울 강남지역 학생이 몰리는 몇몇 외고를 중심으로 사교육비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와이즈멘토 조진표 대표는 “기숙사를 운영하는 과학고나 민족사관고와 달리, 학생들이 방과 후 자유롭게 학원에 갈 수 있는 외고(한국외대 부속외고 제외)가 교육비 과소비 현상을 주도한다”고 비판했다. 서울 A외고에 다니는 딸을 둔 어머니는 “감당 못할 사교육비로 허리가 휠 지경”이라고 호소한다.

    “사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뛰어난 학생들끼리 경쟁하다 보니 내신을 잘 받으려면 일반고 학생들보다 더 비싸고 수준 높은 과외를 시켜야 하죠. 외고 다니는 학생치고 외국에서 살다오지 않은 학생이 드물어서 특히 영어는 고급 수준으로 공부시킵니다. 토플, 문법 영어 과외는 따로 시키고요. 국어도 내신과 논술, 수능을 구분해 따로 가르칩니다. 수학 역시 내신을 대비해 선행학습을 시키고, 수리논술도 따로 준비하도록 돕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방학 땐 한 달에 600만~700만원을 사교육비로 씁니다. 특목고 학부모들 사이엔 ‘고3때는 장롱에 5000만원을 넣어놓고 매달 꺼내 쓴다’는 말이 있을 정도예요.”

    강남 학원가에서는 큭목고 재학생을 겨냥한 특별반이 운영된다. 우수한 강사를 초빙, 특목고 학생 4~5명을 모아 고급 커리큘럼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것. 일반고에서 1, 2등 하는 학생도 이 팀에는 좀체 끼지 못한다. 특목고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일반고 전교 1, 2등과 우리 아이가 비교되는 게 싫다”며 ‘순수 특목고 팀’을 고집하기 때문. 학생을 4~5명으로 한정하다 보니, 강사 초빙 비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교육부가 지난 9월 발표한 ‘자립형 사립고 시범운영 평가보고서’는 자립형 사립고의 사교육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최우수 학생들을 선발해 교육하는 전국 6개 자립형 사립고(강원 민족사관고, 전북 상산고, 포항제철고, 광양제철고, 부산 해운대고, 울산 현대청운고) 학생 10명 중 7명이 사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 것. 이는 교육부가 자립형 사립고 학생 4965명 전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다.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민족사관고를 제외한 나머지 5개 학교의 사교육 비율이 모두 전국 평균치(58.7%, 2004년 한국교육개발원)를 크게 넘어선다. 부산 해운대고 83.7%, 광양제철고가 81.4% 등 전체 6개 자립형 사립고 평균이 68.2%에 이른다.

    사교육비로 지출하는 비용 또한 자립형 사립고 학생들이 일반고 재학생에 비해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학생 중 11.6%가 사교육을 받고 있다고 응답한 민족사관고는 학생의 1인당 월 사교육비가 105만원이나 됐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이들은 방학 동안 집중적으로 고액 과외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해운대고 56만원, 상산고 42만원, 포항제철고 39만원 등 자립형 사립고 학생의 월 사교육비 평균 비용도 52만원으로 전국 일반고교생의 월 평균 사교육비 36만원(2004년 한국교육개발원)보다 16만원이나 많았다. 교육부 보고서도 “자립형 사립고의 사교육비 감소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결론을 내렸다.

    특목고-대학 연계 늘려야

    고소득 부모의 전폭적인 ‘사교육 지원’을 받으며 공부하는 급우들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특목고생도 많다. 서울 모 외고 2학년으로 평소 상위권에 드는 정민영(가명·17) 양은 “나중에 돈을 많이 벌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교육의 질(質)은 경제력이 좌우한다’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악바리처럼 공부해 과외 한번 받지 않고 내신성적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고액 과외를 받으며 발빠르게 입시 정보를 교환하는 부잣집 친구들에게 늘 불안함을 느낀다.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라 믿고 있지만, 부모 덕분에 다양한 해외 경험을 쌓으며 영어와 고급문화를 익혀온 친구들과의 간극은 결코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특목고를 둘러싼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특목고 열풍은 좀처럼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는 11월초 “과학고 1개, 외국어고 4개, 예술고 3개, 국제고 2개를 신설하겠다”고 밝혔고, 다른 지자체에서도 자립형 사립고 및 특목고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평준화 틀 안에서 교육의 다양성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만큼, 특성화 교육을 담당할 특목고가 증가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듯하다.

    그러나 다양한 교육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설립된 특목고가 그 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는 따져봐야 할 대목이다.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이철호 부소장은 “지금의 서열화한 대학입시 체제에서 운영되는 특목고는 외국어나 수학·과학 분야의 인재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많은 학생을 명문대에 보내는 데 사활을 걸었다”며 “특목고 인기가 부침을 겪는 것도 입시제도의 영향 때문이지 특목고의 교육 목표가 달라졌기 때문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특목고 교육이 정상화하는 데는 대학입시제도의 개선이 절대적이라는 것.

    와이즈멘토 조진표 대표는 “입시학원으로 전락했다고 비판받는 외고가 특성화 교육기관으로 제몫을 다하려면, 과학고와 카이스트처럼 외고와 각 대학 국제학부, 외교학과, 어문학부를 연계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특목고를 좋다, 나쁘다고 평가할 객관적 기준은 없다. 개인에 따라 특목고에서 향유하는 경험은 천차만별이기 때문. 특목고 설립 취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 시점에서, 민사고와 특목고 지망생을 전문적으로 가르쳐온 영재사관학원의 박교선 부원장의 말은 되새겨볼 만하다.

    “중학생에게 ‘서울대 입학만을 목표로 한다면 특목고에 가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특목고에 가면 쉽게 명문대에 갈 수 있다’는 환상이 ‘특목고 부적응자’를 양산하기 때문이죠. 특목고 학생은 일반고의 획일적인 교육과정에서 누릴 수 없는 다양한 교육 혜택을 얻습니다. 특목고를 ‘명문대 진학의 수단’으로 간주해선 안 됩니다. 특목고에서 설사 지방대를 간다고 해도, 고교 시절 훌륭한 교육 과정을 경험한다는 것 자체를 소중한 가치로 여겼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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