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호

제3국 ‘징검다리 조기유학’ 열풍

뉴질랜드·캐나다 ‘무공해 교육’ 거쳐 아이비리그로!

  •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5-11-30 11: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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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비리그에 들어가려면 미국 유명 사립고를 나와야 한다? 그건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최근엔 다른 영어권 국가에서 중·고교 시절을 보낸 뒤 미국 명문대로 진학하는 한국 학생이 늘고 있다. 특히 환경 공해와 ‘사교육 공해’가 없는 뉴질랜드는 글로벌 인재를 키우는 ‘기회의 땅’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제3국 ‘징검다리 조기유학’ 열풍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위치한 시립학교 크리스틴 스쿨 .

    남반구 뉴질랜드의 9월은 봄의 문턱에 서 있다. 뉴질랜드 북섬의 관문, 오클랜드. 꽃샘추위가 찾아왔건만, 대자연을 껴안은 도시는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다. 비 그친 하늘에 뜬 선명한 무지개와 한없이 투명한 바다는 청정지역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 천혜의 자연이 숨쉬는 오클랜드는 환경 공해와 ‘사교육 공해’가 없는 교육 도시이기도 하다.

    한국이라면 유흥가와 러브호텔로 넘쳐날 법한 전망 좋은 해변. 하지만 오클랜드의 아름다운 해변 근처엔 어김없이 학교가 들어서 있다. 청소년을 위한 국가 차원의 배려다. 오클랜드 북부의 롱베이 해안과 맞닿은 공립고교 롱베이 칼리지. 수십 명의 한국인 조기유학생이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다.

    이수지(19·고3)양은 미국 아이비리그(미국 동부의 8개 명문대를 일컫는 말) 진학을 목표로 2002년 뉴질랜드에 왔다. 미국보다 학비가 저렴하고 안전하며, 한국보다 영어를 쉽게 배울 수 있는 뉴질랜드가 최선의 조기유학지라고 판단한 것. 서울 백석중에 다니며 전교 1, 2등을 다투던 그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에 부모님을 졸라 ‘나홀로 유학’을 감행했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어학연수차 뉴질랜드에 처음 왔어요. 타국에서 혼자 공부할 수 있을지, 새로운 문화에 무사히 적응할 수 있을지 시험해보기 위해서였죠. 한 달쯤 머물면서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어릴 때부터 영어 공부를 좋아했기 때문에 기본적인 의사소통엔 큰 문제가 없었고요. 단기연수를 왔다가 아예 뉴질랜드에서 계속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뉴질랜드 생활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외동딸로 자란 그는 늘 한국의 부모님을 그리워했고, 마음이 맞는 ‘키위(뉴질랜드 현지인)’ 친구를 찾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다정다감하고 적극적인 성격 덕분에 방황은 길지 않았다. 그는 롱베이 칼리지에서 3년 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으며 교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학생이 됐다. 이양이 감기로 앓기라도 하면 교장선생님이 직접 집으로 전화를 걸 정도다.



    “적응 기간 1년이 지나니 ‘난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음악 미술 스포츠 등 다양한 취미활동도 맘껏 즐길 수 있으니까요.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야간자율학습도 모자라 여러 개 학원을 전전하는 ‘살인적인’ 스케줄에 시달리지만, 저는 이곳에서 균형 잡힌 삶을 살고 있어요. 한국에서 쓰는 사교육비나, 뉴질랜드에서 드는 교육비나 별반 차이도 없고요. 같은 비용이라면 미래에 대한 폭넓은 선택권을 가질 수 있는 유학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많은 학교가 여전히 주입식 교육에 매달리는 데 비해 뉴질랜드 고교는 리서치나 토론을 통한 ‘자기주도적 학습’을 강조한다. 매년 10개가 넘는 과목을 의무적으로 배워야 하는 한국의 고교생과 달리, 뉴질랜드 고교생은 2학년 때부터 5~6과목을 선택해 심화 학습한다.

    “원하는 과목을 골라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예를 들어 경제의 경우,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데 정부가 어떻게 개입하면 좋은가’라는 주제로 리서치 과제가 주어져요. 리서치 페이퍼를 완성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여러 경제 서적도 읽고 인터넷으로 다양한 정보도 수집합니다. 시험은 모두 주관식으로 출제돼요. 세계사 시험을 볼 땐, 주로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의 발생 배경과 결과에 대해 에세이를 씁니다. 꾸준히 공부하지 않으면 교과과정을 따라잡기 어렵죠.”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하려면 학과 성적만큼 중요한 것이 과외활동이다. 뉴질랜드 고교생은 보통 정규 수업이 끝난 오후 3시부터 2시간가량 특별활동에 매달린다. 오케스트라, 학생회, 합창단 등 이양이 참가한 클럽은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다. 주말엔 친구들과 근처 양로원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콘서트도 연다. 학업과 클럽활동, 봉사활동을 병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었다.

    “고등학교에 아이비리그 대학 진학을 돕는 프로그램이 따로 운영되진 않아요. 한국 유학원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개인적으로 SAT(미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를 준비했지요. 고교 1, 2학년 땐 폭넓은 독서로 기초 실력을 다졌고, 2학년 때부터 집중적으로 기출 문제를 풀었어요. SATⅠ은 1450점(1600점 만점), SATⅡ는 수학과 일어에서 만점을 받았습니다. 대학교 1학년 교과과정을 미리 이수하는 AP(Advanced Placement) 과정에도 참여했어요. 요즘은 예일대, 하버드대, 코넬대 등에 지원하기 위해 에세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SAT 응시자 80%가 한국 학생”

    제3국 ‘징검다리 조기유학’ 열풍

    뉴질랜드의 공립고교인 롱베이 칼리지를 수석으로 졸업하는 조기유학생 이수지양(오른쪽에서 두번째)과 반 친구들.

    최근 이수지양처럼 미국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뉴질랜드, 캐나다를 거치는 조기유학생이 늘고 있다. 이민 절차가 까다롭고 학비가 비싸며 각종 위험에 노출된 미국 대신 물가가 싸고 환경이 깨끗한 두 나라가 대안으로 떠오른 것. 최근 오클랜드에서 SAT를 치른 최경식(18)군은 “오클랜드의 SAT 응시자 가운데 80%가 한국 학생”이라고 전할 정도다.

    다이너스티 국제교육센터(www.dynastyedu.com) 이욱 원장은 지난 5년간 오클랜드에서 한국 조기유학생들의 징검다리 유학을 지원해왔다. 1994년 뉴질랜드로 이민 온 그는 두 아들을 미국 프린스턴대와 다트머스대에 진학시킨 경험을 살려 진학 컨설팅 사업에 뛰어들었다. 한국, 홍콩, 뉴질랜드의 국제 금융기관에서 22년간 근무하며 글로벌 인재 양성의 절실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뉴질랜드는 아이비리그 진학에 앞서 중·고교 시절을 보내기 좋은 이상적인 나라입니다. 미국 동부 유명 사립고교 출신이 명문대 진학에 꼭 유리한 것은 아니에요. 미국 대학은 학생을 선발할 때 국적과 출신고교 비율을 감안합니다. 한국 국적을 보유한 학생이라면 미국 유명 사립고를 졸업하는 것보다 다른 영어권 국가에서 고교 시절을 보내는 것이 아이비리그 대학 진학에 오히려 유리할 수 있어요.”

    한국인이 미국 명문대에 진학하는 방법으로 크게 세 가지 루트가 있다.

    첫째, 미국의 중·고교를 거쳐 대학에 진학하는 방법이다. 1990년대 초 에세이집 ‘7막7장’을 펴낸 홍정욱 헤럴드미디어 대표는 한국에 아이비리그 진학 붐을 일으킨 주인공. 그는 중학생 때 미국으로 건너가 동부의 유명 사립고교인 초우트스쿨을 거쳐 하버드대에 입학했다. 그의 성공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미국 동부의 유명 사립고교는 아이비리그로 입성하는 필수 관문처럼 여겨졌다.

    둘째, 국내의 외국어고나 민족사관고 유학반을 거쳐 진학하는 방법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의 특수목적고에서 외국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위해 유학반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들 학교의 유학반은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고, SAT 준비와 에세이 작성을 체계적으로 돕는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SAT나 영작문을 지도하는 ‘족집게 학원’도 성황을 이뤄, 다양한 교재와 정보를 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학생이 하루 종일 영어만 구사하는 환경에 놓여 있지 않다는 게 큰 단점이다.

    셋째, 뉴질랜드 캐나다 호주 등 영어권 국가의 조기유학을 거쳐 미국 명문대로 진학하는 경우다. 미국과 비슷한 서구 문화를 경험하고 영어를 빨리 익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진학정보를 얻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전문적인 진학 컨설팅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것.

    ‘외고 떨어질 정도’면 도전할 만

    아이비리그 진학 컨설턴트 한상범씨는 아이비리그를 지원하는 한국 학생들의 공통된 약점으로 ‘우수한 학업 성적에 비해 부족한 대외 활동, 리더십 부족, 허약한 기초 체력, 취약한 해외 인적 네트워크’를 꼽았다. 한씨는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려면, 영어권 국가에서 중·고교 시절을 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며 미국 명문대 진학에 더 유리하다”고 분석한다. 한국식 교과과정을 이수하면서 미국 명문대가 요구하는 다양한 클럽활동이나 봉사활동 경력을 쌓기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비리그 진학을 목표로 한 유학이 성공하려면 여러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학생의 의지와 공부습관, 부모의 경제력이 그것이다. 이욱 원장은 “국내 외국어고 진학에 아깝게 실패할 정도의 실력이라면 뉴질랜드에서 아이비리그 진학에 도전해볼 만하다”며 “자녀 앞으로 1년에 3만~4만뉴질랜드달러(2000만~3000만원)는 부담 없이 투자할 수 있는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자녀가 안정적으로 공부에 전념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유학생이 외국 문화에 대한 열린 자세와 성실한 공부 습관을 갖추지 않았다면 가차없이 한국으로 돌려보낸다는 것이 이 원장의 교육방침이다.

    오클랜드에서 아이비리그 합격생을 많이 배출하기로 유명한 곳은 크리스틴 스쿨.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과정까지 통합된 명문 사립학교다. 고등학생(9~10학년)의 경우 연간 학비가 2만뉴질랜드달러(약 1500만원)로 공립학교보다 1.5배가량 비싸지만, 시설과 교사진은 오클랜드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크리스틴 스쿨은 오클랜드에서는 드물게 국제수능시험(IB· International Baccalaureate) 코스를 운영해, 학생들의 외국대학 진학을 돕는다. 스위스 제네바 국제수능시험 관리국이 주관하는 IB는 전세계 영어권 국가의 대학입학 기준으로 사용된다. 전세계 응시생 중 5%만이 40점 이상을 얻을 수 있도록 설계됐는데, 39점 이상이면 영국 옥스퍼드대 의과대학, 40점 이상이면 케임브리지대 의과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미국 명문대의 경우 IB 스코어를 필수적으로 요구하진 않지만, 지원자가 우수한 성적을 거뒀을 경우 참고한다.

    제3국 ‘징검다리 조기유학’ 열풍

    잡지, 소설, 사회과학 서적 등 수만권의 책을 보유한 크리스틴 스쿨 도서관.

    올해 가을 예일대에 입학한 박승아(19)양은 크리스틴 스쿨의 ‘전설’로 통한다. IB에서 45점 만점을 받고, SAT에서도 만점에 가까운 1550점을 얻은 것. 이모인 탤런트 최명길씨를 쏙 빼닮은 외모에, 교내 댄스파티에서 동양인 최초로 퀸에 오를 만큼 다방면에 재능을 지녔다. 크리스틴 스쿨에서 4년간(한국의 중3~고3) 전체수석을 놓치지 않은 그는 자유로운 뉴질랜드 교육의 수혜자다.

    “아홉 살 때 아버지의 건강이 나빠 요양차 뉴질랜드에 왔어요. 원래는 1년만 있다 귀국할 예정이었는데, 답답한 서울의 아파트 생활로 돌아가기 싫더라고요. 부모님께 뉴질랜드에 살자고 졸랐죠. 뉴질랜드에선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드럼, 승마, 골프, 테니스, 힙합 등 여러 가지 취미 활동을 맘껏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한국인 학생회, 유네스코 등 15개나 되는 사회봉사활동까지 하느라 고등학교 다닐 땐 점심을 제대로 먹어본 기억이 없을 정도예요. 지난해 10~11월엔 SAT 시험, IB 시험, 학교 내신 리포트까지 겹쳐 2주 동안 하루 한 시간밖에 못 잤다니까요.”

    시사잡지, 명작 읽고 몸풀기

    크리스틴 스쿨에 다니는 김나경(17·고2)양은 선배인 박승아양을 모델 삼아 아이비리그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희망 대학을 정하고, SAT를 치르기 위한 몸풀기에 들어갔다. SAT에 출제되는 단어를 매일 200~300개씩 외우고, 아이비리그 대학 선정 독서목록에 오른 책들을 찾아 읽고 있다. 김양이 가장 즐겨 보는 잡지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자연, 인류, 문화, 역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쌓을 수 있어, 깊이 있는 공부에 도움이 된다. 올해 겨울부터는 SAT 실전 문제풀이에 들어갈 생각이다.

    김양의 꿈은 세계적인 작가. 그래서 중학교 2학년 여름,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싫다’며 뉴질랜드로 나홀로 유학을 왔다. 일본어 에세이 경시대회에 출전해 1등상을 수상할 만큼 뛰어난 글솜씨도 갖췄다. 그러나 유학생활을 성실하게 해온 그에게도 슬럼프는 있었다.

    “크리스틴 스쿨에 입학한 2년 전 가을, 친구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학업 수준도 갑자기 높아지면서 우울증 같은 게 생겼어요. 부모님이 옆에 없어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도 없었고요. 인터넷에 중독될 뻔한 위기도 있었답니다. 이후 어머니가 저와 1년간 함께 지내기로 하고 오클랜드에 오셔서 뒷바라지해주신 덕분에 슬럼프를 극복했어요.”

    김양의 경우처럼 부모는 자녀의 조기유학 성공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조기유학생의 일탈은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조기유학생은 영어가 빨리 늘지 않고, 외국 문화에 쉽게 동화하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다. ‘부모가 자녀의 조기유학에 동행할 것인가’ 여부는 학생의 성격, 가정의 경제적 여건과 학생이 처한 환경에 따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2001년 부모와 함께 ‘이민형 유학’을 온 랑기토토 칼리지 최경식(18·고3)군은 “부모님이 옆에 계시지 않았다면 뉴질랜드에 오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최군의 가족은 뉴질랜드로 여행을 왔던 아버지의 강력한 권유로 이민을 결심했다. 이민자는 학비 부담이 거의 없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왔는데, 한국에서 공부한 영어가 별로 소용이 없더라고요. 등교 첫날 도시락을 가져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못 알아들어서 비를 흠뻑 맞으며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어요. 이동 수업인 걸 몰라서 학교를 한참 헤매기도 했고…. 그처럼 힘들 때마다 절 감싸주는 가족이 큰 힘이 됐지요. 2개월 정도 지나니 영어가 자연스럽게 귀에 들어오더군요.”

    최군은 이과 과목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 프린스턴대나 MIT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얼마 전 치른 SATⅠ에서 1520점을, SATⅡ의 화학 물리 수학에선 모두 만점을 받았다. 최근엔 대만인 친구에게 수학을 가르치며 시간당 10달러씩 레슨비도 받고 있다. 본인의 의지로 시작한 유학은 아니지만, 지금은 좋아하는 과목을 마음껏 공부하고 세계로 안목을 넓힐 수 있어 자신의 생활이 흡족하다.

    부모의 역할

    조기유학 성공을 위한 부모의 바람직한 역할은 무엇일까. 다음은 크리스틴 스쿨 IB 코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한국 학생 코디네이터를 겸하고 있는 주경진(47) 교사의 조언이다.

    “학생이 유학에 강한 의지와 좋은 학습습관을 갖고 있다면 부모가 꼭 동행하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자녀가 다닐 학교와 머물 홈스테이 가정에 대해 꼼꼼하게 사전 점검해야지요. 아이를 담당할 가디언(guardian·보호자)과 충분한 대화를 나누고, 한 달에 한 번씩 가디언을 통해 아이의 출석기록과 성적표를 확인하세요. 다만 진학 준비로 학업 부담이 매우 큰 고2~3학년 시기엔 부모가 자녀의 곁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제3국 ‘징검다리 조기유학’ 열풍

    롱베이 칼리지의 컴퓨터 수업 시간.

    부모와 함께 이민형 유학을 온 학생은 마음의 안정을 얻지만, 영어가 빨리 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어요. 처음 도착해서는 자녀를 1년 정도 현지인 홈스테이 가정에 보내는 것도 고려할 만합니다. 서구 문화에 신속히 적응하고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얻으며 자립심을 길러 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외국에서 자녀를 뒷바라지하는 어머니가 겪는 스트레스는 아이들의 스트레스에 못지않아요. 한국 비디오를 보고 한국 교회에 나가는 어머니가 영어를 익힐 기회가 별로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집을 빌리는 것도, 세금을 내는 것도 모두 영어를 잘 하는 자녀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자녀는 엄마를 ‘밥해주는 사람’ 쯤으로 여겨 무시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요. 어머니가 자녀의 눈치를 보며 권위를 잃으면 자녀가 잘못을 저질러도 야단조차 칠 수 없게 됩니다. 몇 년 동안 기러기 엄마로 지내는 것은 부부에게나 자녀에게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최근 뉴질랜드 중·고교에 한국인 학생이 증가하면서 이들의 적응을 돕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있다. 외국인 학생에게 홈스테이 가정을 알선하고, 유학생의 학교생활과 수업 태도를 상담해주는 국제 업무 부서를 운영하는가 하면 그 부서에 한국인 교사를 채용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크리스틴 스쿨의 인터내셔널 디렉터 제니 테일러 교사는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 학생이 1~2명에 불과했는데, 요즘은 97명(유학생은 24명)이나 된다”면서 “한국 학생의 장점은 성실함”이라고 말했다. 다만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명확한 아이디어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롱베이 칼리지의 인터내셔널 디렉터 재니스 한나 교사는 “한국 학생들을 보며 안타까운 것은 자신들끼리 커뮤니티를 형성해 어울리면서 ‘키위’들과 쉽게 동화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공부에만 주된 관심을 쏟는 한국 학생들은 다양한 클럽 활동을 즐기며 삶의 균형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뉴질랜드가 신흥 징검다리 유학지라면 캐나다는 미국 명문대 진학을 위한 ‘원조’ 징검다리 유학지다. 아이비리그 진학 컨설턴트 한상범씨는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한 학생 중 20%가 캐나다 명문 사립고교 출신”이라며 미국과의 지리적 근접성, 저렴한 물가, 쾌적한 환경을 유학지로서 캐나다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뉴질랜드 vs 캐나다

    캐나다 런던시의 낸시캠벨 사립학교에 재학 중인 박예제(18)양은 올해 우수한 내신 성적과 SAT 점수 덕분에 MIT로부터 조기 입학허가서를 받았다. 뉴마켓에 위치한 피커링 칼리지 이여진양도 420여 명의 전교생 중 1등을 놓치지 않으며 아이비리그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한국 학생을 아이비리그로 진학시키는 전문 컨설팅 프로그램이 완벽하게 마련된 것은 아니지만, 지리적 근접성 덕분에 미국 명문대 진학에 관한 정보를 어느 곳보다 쉽게 얻을 수 있다.

    족집게 과외는 임기응변

    조기유학은 아이비리그 진학의 지름길이다. 그러나 지름길에 언제부터 발을 내딛고, 그 길을 어떻게 걸어가느냐가 목표 달성 여부를 결정한다. 이욱 원장은 “미국 명문대 진학을 체계적으로 준비하려면, 늦어도 중학교 2학년 때 유학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그 이전은 자녀가 자립심을 갖기 어려운 시기고, 고교생이 되어 외국에 온다면 새로운 교과과정을 쫓아가기에 버겁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학교 3학년 말 이후 유학 온 학생들은 토론이나 영문학 공부에서 특히 어려움을 호소했다.

    유학 시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습법이다. 이욱 원장은 “미국 명문대를 무난히 졸업하려면 임기응변식 점수 따기 훈련에 그칠 게 아니라 내실을 다지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단 중학교 시기엔 영어에 대한 감을 잡습니다. 그 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폭넓은 독서에 중점을 둬야 합니다. 셰익스피어나 찰스 디킨스, 에밀리 브론테 등 고전 작가의 영어 소설이나 ‘타임’ ‘뉴스위크’와 같은 시사잡지를 읽는 것이 좋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며 교양을 쌓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러한 인문학적 소양이 SAT와 IB의 에세이 시험을 치르기 위한 기본이 됩니다.

    에세이를 평가하는 기준은 뚜렷한 주제의식, 유창한 문장 구성, 논리 전개의 타당성 등입니다. 예를 들어 박승아양은 IB에서 ‘마오리 여성의 시대적 지위 변화’라는 에세이를 써 높은 점수를 받았어요. 소재가 독특하고, 30여 군데의 도서관을 다니며 수집한 풍부한 사례를 바탕으로 글을 썼기 때문이죠. 자신의 고유한 경험을 주제와 잘 연관시키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고교 2학년 때는 SAT 실전 모의고사를 풀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시험에 출제되는 어휘를 암기하고, 내신 성적도 잘 유지해야죠. 평소에 학과 공부를 열심히 하고 독서량이 많은 학생이라면 특별한 준비 없이도 SAT에서 1400점 이상을 받을 수 있어요. 한국에서 SAT ‘족집게 학원’이 유행한다고요? 기본기는 다지지 않고 점수 따기 훈련만 하면 설사 SAT 성적이 좋게 나온다 해도 대학 공부를 버텨내기 어려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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